프랜차이즈 갓 1219화
283장 화성에서 농사짓기 (1)
잠시 시간을 거슬러서 화성탐사선 상황을 되짚어 보자.
영광된 우주비행에 선택받은 한국인 우주파일럿 2인은 안정항로에 접어든 이후 한시름을 놓았다.
이미 수없이 많은 관광객들을 달에 보냈던 커리어가 있지만, 그래도 우주로 나간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무사히 지구를 탈출하고 나서야 여유가 생겼다.
"화성 가는 동안 할 것도 없어서 지루할 텐데, 팜버스나 해볼래요?"
"그런데 실시간 온라인 게임이면 우주선 안에서는 못하는 거 아닙니까? 통신 딜레이 때문에 원활한 플레이가 불가능할 텐데요."
"동기화 통신이라서 화성에서도 통신 딜레이 안 납니다. 걱정 말고 해보시죠."
"……."
두 파일럿은 '양자 얽힘'이란 단어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역시 그 소문이 사실인가?
달 탐사를 했을 때에도 통신 딜레이가 전혀 발생하지 않아서 나사에서도 그런 쪽으로 확신을 하고 있었는데…….
"양자 얽힘 아닙니다. 그거보다 훨씬 더 좋은 거예요."
"아,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요?"
"그냥 지금 들어선 안 될 정보를 들은 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어디 가서 말 안 할거잖아요? 안 그래요?"
말했다가는 곱게 살지 못할 거라는 압박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두 파일럿은 교육받은 대로, 서약받은 대로 절대 어디 가서 말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 또 다짐을 했다.
"어차피 화성까지 가는 동안 할 것도 없는데 팜버스나 해보세요. 이거 꽤 재미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파일럿은 VR고글을 쓰고 팜버스 플레이를 시작했다.
항해 일정은 프리덤이 알아서 해주기에 인간 파일럿이 신경 쓸 것은 없었다.
파일럿들은 규칙적으로 운동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파일럿들은 곧 팜버스의 재미에 푹 빠지고 말았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데, 두 분은 특별히 같은 스타팅 포인트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제가 배려를 했습니다. 기왕이면 함께 플레이하는 게 더 재밌잖아요."
"감사합니다."
파일럿들이 배정된 지역은 우주괴수를 상대로 우주함대를 끌고 싸우는 파멸의 장소.
실제로 우주여행을 하면서 우주함대를 이끌고 괴수에 싸우는 플레이가 공개되자, 두 파일럿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CTW2022라는 유저가 등장하면서 삽시간에 어그로가 그쪽으로 쏠려 버렸다.
"우리도 농사를 지어야겠는데."
"내가 우주농장 스테이션을 한 번 지어볼게. 이거라면 가능할 거야."
"그럼 나는 계속 행성 테라포밍을 시도해 볼게."
두 파일럿은 손발이 착착 맡았다.
서로 역할을 나눠서 공략을 시도했고 흐름도 나쁘지 않았으나, 처참한 결과로 돌아왔다.
"아오! 자연에서 키운 게 아니라고 안 산다는 건 대체 뭐냐고!"
"이 무슨……."
X망겜, 이라고 외치려다가 하수영의 눈치를 보고 슬그머니 말을 거둬들였다.
하수영이 인자하게 말했다.
"원래 게임은 개발사 욕하면서 하는 겁니다. 유저의 당연한 권리죠. 저는 괜찮으니까 마음껏 욕하면서 하세요. 어차피 제가 만든 게임도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마음껏 욕하면서 게임하겠습니다."
우주비행사 길드가 설립되었고, 수 없이 많은 플레이어들이 길드원으로 들어왔다.
길드장과 부길드장이 현역 화성비행사라는 사실에 많은 유저들이 매력을 느끼고 몰려들었다.
길드는 척박한 은하 속에서 경작이 가능한 행성을 찾고, 황폐한 행성을 테라포밍하며, '자연적으로' 경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곧 화성 궤도 진입에 대비해서 감속합니다. 준비하십시오.」
정신없이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순식간에 화성까지 도착했다.
편도로 불과 27일밖에 걸리지 않은, 말도 안 되는 대기록이었다.
"27일 만에 화성을 도착하다니, 정말 위대한 도약입니다!"
"심지어 지금은 화성과 지구가 가장 가까운 때도 아닌데……."
지구와 화성은 가장 가까울 때에는 5,600만㎞, 가장 멀 때에는 4억 1백만㎞이다.
근일점 (가장 가까운 거리) 주기는 약 2년 2개월이기에, 지금까지는 2년 주기로 화성탐사선을 발사해 왔다.
가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연료라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청담 2호는 시속 180,000km로 27일을 달려서 1억㎞를 돌파해서 화성에 도착하고 말았다.
23일이 아니라 27일이 걸린 이유는, 출발 시 파일럿의 적응을 위해 천천히 가속하고, 도착 시에도 천천히 감속하는 시간 때문이다.
금성 등 타행성의 중력을 이용한 스윙바이를 하지 않고, 지구에서부터 화성까지 직진으로 날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정이었다.
"나로, 여기는 청담둘. 우리는 곧 화성 궤도에 진입한다."
「정말 고생 많았다. 전 세계가 지금 여러분들을 지켜보고 있다. 마지막까지 안전항해에 신경을 써달라.」
나로우주센터장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화면에 비치는 센터 통제실 직원들은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소리 없이 울기까지 했다.
"곧 착륙한다."
하수영이 직접 조종간을 잡았고, 다른 두 파일럿도 바짝 긴장해서 착륙에 대비했다.
"자세 제어 작동."
"역추진 기동자세 완료."
"대기권 진입. 감속 시작."
"초속 6km 진입. 초속 5km 진입. 초속 4km 진입……."
청담 2호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엔데버, 아틀란티스, 디스커버리도 똑바로 선 자세로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4척의 우주선은 서로가 서로를 카메라로 비춰주며, 화성에 내려앉는 감격의 순간을 CG가 아닌 생생한 영상 그대로 지구에 전송하고 있었다.
약 30분 전에 켠 개인방송은 또다시 실시간 시청자들이 폭주하고 있었다.
하수영은 개인방송용 카메라를 흘끔 쳐다보고는 시청자들을 향해 말했다.
"화성 출발 이후, 현재까지 총누적된 울트라챗 금액은 190억 달러로군요."
화성 출발 때 전 세계 대부호들이 경쟁적으로 울트라챗을 빵빵 터트려준 덕분에, 총누적금액은 190억 달러나 되었다.
이에 쿠글은 자기들 수수료는 1,000만 달러만 가져가겠다며 먼저 통 큰 양보를 해왔다.
원래라면 37%의 수수료를 가져가야 하지만, 감히 하수영한테 37%를 요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껏 강화조약을 맺은 상태인데, 전쟁 재발의 빌미를 줄 순 없었으니까.
"현재까지 울트라챗 후원 순위 1등 시청자는 GeologistincheongD 님이 시군요. 공지합니다. 1차 누적금을 포함해서 터치다운 전까지 1등 시청자는 제가 다음 화성 때 최초의 화성 관광객으로 모시겠습니다."
순간, 안 그래도 빠르게 터지고 있던 울트라챗 금액이 미친 듯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재래식 폭탄을 융단폭격으로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마치 핵미사일을 온 지구에 발사한 것 같은 기세였다.
"동반자 포함해서 10인까지 가능하며, 모든 이용요금은 울트라챗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ㅁㅊㄷ ㅁㅊㄷ
-울트라챗 터지는 거 보소 엌ㅋㅋㅋㅋㅋㅋ
-분명 1위가 3,000만 달러 정도였던 거 같은데, 왜 갑자기 10위도 1억 달러 넘어섬? 뭐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최초 달 여행 티켓도 200억 달러에 낙찰됐어. 심지어 이건 화성이야. 부자들이 안 달려들고 배기겠냐?
-지금 1위 달리고 있는 시청자, 안살린 왕자님이겠지?
-아니야. 안살린 왕자님이라면 마지막까지 지켜보다가 느긋하게 매너입찰하신다.
-후원금에 어차피 티켓값도 포함된 거니까 미친 듯이 터지겠네.
-석유재벌님들! 시간이 없어요! 터치다운까지 예상 시간은 이제 20분도 안 남았습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후원금이 터지고 있었다.
쿠글이 미리 결제한도 및 후원한도를 풀어놓지 않았더라면 아마 대부호들이 문차이 CEO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었을지도 모른다.
금액이 너무 크다 보니까 카드결제가 아니라 모두 계좌 현찰박치기를 하고 있었다.
"자, 터치다운까지 이제 곧 10초 진입합니다. 10, 9, 8, 7, 6……."
하수영은 그 와중에도 느긋하게 경매 호가를 올리는 진행자처럼 경쟁을 부추기고 있었다.
엄청난 긴장과 압박감에 시달리는 두 파일럿은 그런 모습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마치 화성을 한 수백 번쯤 왔다 갔다 한 듯한 저런 느긋함이라니.
'정말 대단하신 분…….'
"4, 3, 2, 1, 터치다운!"
-우와아아아아아아!
-매너 입찰! 매너 입찰! 매너 입찰!
-100% 안살린 왕자님이다!
터치다운을 외치기 3초 전, 1등은 112억 달러로 2위인 48억 달러를 따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가 112억 달러, 저사람이 1위를 차지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거액을 한꺼번에 투척하며 누적 총액 1위를 달성한 사람이 나왔다.
GeologistincheongD, 그가 400억달러로 가뿐하게 다시 1위를 씹어먹은 것이다.
-GeologistincheongD? 역시 이분이 안살린 왕자님인 줄 알았다.
-지구 출발 때에도 조용히 한 번에 1위 차지하시더니, 화성 도착 때에도 한 번에 다시 1위 탈환하시네 ㄷㄷㄷㄷㄷㄷ -대단대단. 400억 달러면 대체 얼마야? 한 40조 원 되나?
-ㅇㅇ 그 정도 됨.
-진짜 미쳤다.
-이제 우주선 열린다!
청담 2호의 출입구가 열리고, 사다리가 펼쳐졌다.
하수영이 가장 먼저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고, 다른 3척의 우주왕복선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지구로 전송했다.
지구인들은 하수영과 다른 두 우주 비행사가 차례차례 화성땅을 밟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하수영이 태극기와 쌀, 밀, 옥수수가 그려진 가문기를 꺼내서 꽂았고, 한국인들이 모인 채널 게시판에서는 폭주와 찬양이 터져 나왔다.
"나로 센터, 우리는 청담둘. 파일럿 3인은 모두 화성에 안전하게 내려왔다. 모두 이상 없다."
-정말 축하하고, 고생하셨다.
센터장의 응답은 교신 양식에는 벗어난 것이지만, 아무도 그걸 트집잡지 않았다.
최초의 달 유인 탐사는 엄두도 못냈지만, 최초의 달 관광은 한국이 차지했다.
최초의 화성 무인탐사 역시 구경만 했지만, 최초의 화성 유인탐사 영광은 한국이 차지했다.
"멧 데이먼,보고 있나요? 조만간 당신을 꼭 화성에 초대하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어요."
안드로이드 프리덤들이 내려서 착착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펜션 델루나에서 사용하는 대형 체임버를 펼쳐서 비행사들이 지낼 공간을 만들었다.
탈출 포드를 곳곳에 배치하고, 체임버에 순환시설을 부착하고 실내에 공기를 불어넣었다.
3척의 우주 왕복선은 물자를 전부 하역한 뒤, 1척만 남고 나머지 2척은 다시 대기권으로 상승하여 정지 궤도를 유지했다.
갑작스러운 지진 혹은 모래폭풍이 들이닥쳐서 우주선이 동시에 모두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태양광 패널은 아예 싣고 오지도 않았기에 펼칠 일이 없었다.
두 파일럿은 대체 어떻게 전기를 해결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이거 너무 편한데요?
-그냥 이렇게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건가요?
-어허, 우주비행사가 하나하나 직접 모든 걸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안드로이드 프리덤이 있는데 뭐하러 고생합니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훈련을…….
-눈으로 보면서 머릿속에 담아두기만 해도 충분해요. 현대 군대에서 만약을 대비해서 참호 파고, 행군 훈련하고 그러나요? 그런 레거시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쯤이면 이미 다 파괴되고 전쟁도 끝난 상황입니다.
-…….
-저 안드로이드 프리덤들이 모두 파손돼서 우리가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면 탐사단은 그냥 전멸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펼쳐진 체임버에 공기 주입이 다 끝나고, 파일럿들은 감압 과정을 거친 후 들어섰다.
지구의 호텔을 온 듯한 아늑함에 파일럿들은 뭔가 낯선 기분이 들었다.
먼 화성에서 이렇게 편히 지내도 되는 건가?
"이제 뭘 해야 하지?"
"그러게요. 안드로이드 프리덤이다 알아서 하니 막상 우리가 할 게 없군요."
하수영이 옆에서 재촉했다.
"게임 켜고 어서 들어가세요. 지금 그 레벨에 '아 이제 뭘 하지?'이 말이 나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