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18화
282장 튜토리얼이 너무 헬이다 (4)
최태웅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트랙터도, 콤바인도, 승용이앙기도 아니었다.
바로 농지 확장이다.
아무리 일을 후딱 처리해 주는 장비가 있으면 뭐하나. 농지가 좁아터졌는데.
1만 제곱미터라고 해봐야 가로세로 각각 100미터씩밖에 안 된다. 이만한 땅 사는 데에도 총 5억 HA 가까이 들었다.
「900만 제곱미터 전까지는 트랙터, 콤바인 같은 고급 장비 구매는 꿈도 꾸지 마십시오. 」
프리덤의 조언이었다.
수억짜리 장비 구매에 돈을 쓰느니, 차라리 농지를 한 뼘이라도 더 늘리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그냥 일꾼을 고용하거나 농기계를 임대해서 쓰는 게 낫습니다.」
「그런 고가 농기계를 자가로 굴리 기에는 농지 규모가 너무 작습니다.」
"그래. 나 같은 하꼬 농부가 무슨 트랙터 콤바인이야. 닥치고 농지부터 늘리는 게 맞는 거지. 근데 1제곱미터당 5만HA는 인간적으로 너무 비싼 거 아니야?"
900만 제곱미터까지 필요한 농지는 앞으로 899만 제곱미터.
필요한 돈은 4,495억HA.
하지만 지금 가진 돈은 1억HA도 채 안 되는 금액.
팜버스에서 1HA는 한국의 1원이라고 생각하면 화폐 가치를 편리하게 가늠할 수 있다.
「1제곱미터당 5만HA는 싼 가격입니다. 한국 농지 가격 알아보시면 아마 기절하실 걸요? 지금 1제곱미터에 10만 원 돌파한 지 한참 됐습니다.」
"그래?"
「팜버스는 전 분야에 걸쳐 현실적인 수치를 상당히 반영했습니다.」
최태웅은 다른 지역 게이머들의 농사 상황을 알아봤다.
다들 매일 피를 토하며 농지 개척을 위해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드디어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으로 행성 테라포밍을 마쳤더니, 시발 게이트 열리고 다시 괴수들 쏟아져 나와서 하루아침에 모조리 오염되고 말았다.ㅠㅠ
-처음부터 제염 작업 다시 해야 되네ㅠㅠ 에휴ㅠㅠ 남일 같지가 않어…….
-그러니까 애초에 나처럼 실내농업을 추구하면 될 일 아니냐?
우주농장 스테이션 건설에 성공한 게이머가 자랑스럽게 자기 플레이 영상을 올렸다.
-이 스테이션을 만드는 데 무려 15조HA가 넘게 들어갔어. 덕분에 이제 빈털터리 됐다ㅎ;;; 하지만 마음만은 아주 뿌듯하다.
-우와,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나도 지금 당장 스테이션 농업들어간다.
-ㅎㅎ 이 스테이션은 3개월 단위로 무려 1억 톤이 넘는 쌀을 생산할 수 있지. 이제 다 끝났다. 님들 뭐하러 힘들게 테라포밍하고 있음?
우주에 거대한 실내농장 스테이션을 만든 유저는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건 유기농 쌀이 아니군요. 안사요.」
스트리밍 중에 쌀을 매입해 줘야 할 NPC가 차갑게 거절을 했고, 수십만이 넘는 실시간 시청자들은 일제히 뒤집어졌다.
부푼 마음으로 1억 톤의 쌀을 들고 온 유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유기농이 아니라서 안 산다고? 겨우 그런 이유로요?」
팜버스의 장점은 NPC와 생동감있는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게임이 아니라 PC를 통해 실제로 다른 세상에 빙의한 듯한 리얼한 플레이 경험을 누릴 수 있었다.
「우리는 유기농 아니면 취급 안합니다. 이거 텅 빈 우주 공간에서 LED 조명 쬐어서 키운 거잖아요.」
「유기농 작물이나 하우스 작물이나 별다를 게 뭐 있다고? 성분은 오히려 똑같은데!」
「풍요로운 대지의 기운에 뿌리를 내리고 태양의 찬란한 광채를 잎으로 듬뿍 머금어 자라난 곡물이 아니면 부정 탄단 말입니다. 가져가세요.」
「부정을 탄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오, 뭔가 떡밥 나오려는 듯?
-NPC 표정이 지금 심상치 않다. 다들 주목!
-ㅋㅋㅋ 스트리머 표정 하늘이 무너진 거 같네. 15조 날렸으니 당연한 건가?
「우리는 자연에서 자라난, 자연스러운 것들을 신성시합니다. 차가운 우주 한복판에서 딱딱한 금속 안에서 갇혀 자라난 이런 곡물은 안 먹습니다. 가져가세요.」
-시발ㅋㅋㅋ 자연타령 하고 앉아 있네.
-NPC 주제에 입맛 졸라 까다롭네 ㄷㄷㄷ
-그러니까 하우스 재배도 안 되고 농기계 같은 걸 써도 안 된다, 뭐 이런 이야기인가?
-그건 아닌 듯. 말 들어보니까 대충 지구와 비슷한 환경, 조건에서 자라난 곡물이 아니면 부정하다고 매입을 안 하는 거 같음.
-스트리머 불쌍해서 어쩌냐. 전 재산 다 털어 넣어서 우주농장 스테이션 만든 거 같은데.ㅉㅉ
-이거 판타지 행성에서는 상관없을 거 같은데. 종자만 제대로 구하면 널린 게 들판이잖아.
그러나 판타지 세상은 그 나름대로의 곤욕을 치르는 중이었다.
-Hello, guys. 저기 마왕성이 보이지? 저기에 벼의 기원이 되는 종자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로 힘들게 싸운 끝에 드디어 여기까지 왔어. 마왕을 물리치고 저 성을 차지하면 드디어 벼의 기원을 확보할 수 있는 거야.
-100만 용사 군단 이끌고 여기까지 오느라고 정말 고생했다. 옛다 후원이다.
-아이고, 형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ㄴ참 힘든 나날이었다. 오늘 꼭 마왕성 5트 안에 클리어하고 벼의 기원을 손에 넣기를!
ㄴ가즈아아아아아아!
100만 군대를 이끈 용사 플레이어는 마침내 마왕성 총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현실 시간으로 10시간이 넘게 걸린 플레이 끝에 유저는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크윽. 분하다. 하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ㄴ쉿! 함부로 그런 말을 하면 안돼! 연속 패배 플러그가 발생한다구!
ㄴ진짜 아깝다. 거의 승리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지구와 유사한 환경에서 제대로 농사를 지은 곡물만이 매입을 해준다는 게 밝혀진 이상, 유저들은 '일반적인 경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애를 썼다.
-광합성용 항성을 겨우 끌어오긴 했는데 농사지을 행성 표면 온도가 너무 높아. 300도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데, 어떡하지? 거리를 좀 더 떨어뜨려야 하나?
ㄴ지금 공전궤도가 딱 최적화된 거 같은데? 온도 떨어뜨리자고 공전궤도 반지름을 더 늘리면 중력 이탈로 아예 떨어져 나갈 수 있음.
ㄴ내 생각도 그러함. 공전궤도는 지금 상태 유지하고 농사 행성 테라 포밍을 좀 더 신경 쓰는 게 좋을듯. 대기 조성을 해서 태양빛을 좀 반사하게 만들어 봐.
ㄴ그나저나 물이 너무 없는 거아니야? 그래도 바다가 있어야 주기적으로 안정된 비가 오고 그럴 텐데.
ㄴ물이 너무 적긴 하다. 이러면 비 한 번 잘못 오면 산성물질 잔뜩 섞여서 농작물 다 죽음.
ㄴNPC들이 산지 상황 얼마나 꼼꼼하게 따지는지 아냐? 조금만 찝찝하다 싶으면 농지 상황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달라고 그런다. NPC들이 지금 이 행성 상황 보면 기겁해서 환불 요구할 듯.
ㄴCTW2022이 좀 더 정보를 공유해주면 좋을 텐데.
ㄴ골디락스 존에서 태양 아래 편안하게 농사짓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ㄴ근데 거기는 지구하고 너무 비슷해서 재미가 없어 보임. CTW2022도 할 게 없어서 그냥 맨날 농사짓고, 가끔 차박 캠핑이나 하고 그러는 거 같던데.
ㄴㅇㅇ 문명이 딱 그냥 21세기 지구 그대로 옮겨 놓은 느낌임
ㄴㅋㅋㅋ 이 병신들아 지금까지 CTW2022이 생선 아이템 팔아서 최소 수억은 벌었다. 성공적인 쌀먹황제란 말이다.
ㄴ템 팔아서 돈이 억 단위로 들어오는데 게임이 재미가 없을 수가 있겠냐? 게임 참 숩다, 수워. 이러고 있을 듯.
***
최태웅은 농산물을 팔아서 버는 HA로는 꾸준히 농지를 늘리고, 팜수치로는 프라임팜에서 식량 아이템을 사서 판매를 하며 현금을 벌었다.
경매장에 올려놓은 생선 아이템은 회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어차피 생선 아이템 하나 사는 데 들어가는 팜수치가 수천 단위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생선 한 마리에 몇천 원씩 하는 것을 고려해서 책정된 가격인 듯했다.
"대신 가격은 좀 올려놔야겠다."
최태웅은 고민 끝에 플레이어 경매장에 올려놓은 생선 아이템의 가격을 개당 1조HA로 수정했다.
"언젠가 저 험한 우주를 뚫고 이곳 뮤런 은하계까지 도달할 유저를 위한 선물이지."
우주를 개척하고 이곳 뮤런 은하에 도달하면, 그 유저는 경매장에서 자신이 올린 생선 아이템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조HA는 그 유저에게도 매우 큰 돈이겠지만, 그때가 되면 인플레이 션 때문에 기꺼이 지불할 만한 금액이 아닐까?
게다가 생선 아이템은 실제 달러화폐로 바꿀 수가 있으니, 유저 입장에서도 이득이리라.
"프리덤, 여기까지 온 유저가 근데 막 행성에 쳐들어와서 모두 몰수하거나 그러면 어떡하냐? 진짜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만 믿고 가만히 있어도 돼?"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태양계 행성이지만, 실제로는 외우주의 침입자들로부터 뮤런 행성을 지키는 수호자들입니다.」
프리덤은 자신만만하게 설명했다.
「우주함대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명왕성이 가로막고 침공 의사가 있는지 교섭을 위해 왔는지를 확인합니다.」
웬만한 세력은 명왕성 컷에서 끝난다는 말이었다.
「명왕성의 무장해제에 응하지 않으면 명왕성 공전궤도 안으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물론 명왕성 궤도 밖에서도 경매장 이용은 가능하니, 생선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지요.」
"만약 명왕성이 뚫리면?"
「해왕성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만든 수소 플라즈마 포가 함대를 쓸어버릴 겁니다. 천왕성이 즉각적으로 가세할 것이며, 토성이 고리를 날려 후방 포격을 지원합니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하네."
「지금 전 세계 모든 유저들이 힘을 합쳐도 명왕성 하나 못 뚫습니다. 만약 그들이 오랜 시간 테크를 올리고 세력을 강화하여 연대한다면, 먼 훗날에는 토성까지 뚫고 들어올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최강의 방패인 목성이 남아 있습니다.」
"목성이 토천해명 합친 것보다 더 쎄?"
「공격력은 그 넷보다 약하지만, 방어력에서는 최강입니다. 목성이 내뿜는 가스가 일대를 완전히 뒤덮어 뮤런 행성을 탐지하지 못하게 침입자들의 눈과 귀를 가려 버릴 겁니다.」
"오오."
「헬리오스 혜성이 즉각적으로 지원을 올 거고, 달은 근접방패로 변해서 지구, 아니, 뮤런에 쏟아지는 공격을 육탄방어합니다. 그 사이에 태양이 봉인을 깨고 일어나서 침입자들을 삼켜 버릴 준비를 마치고, 침입자들의 함선 내부에 균열을 열어 뜨거운 플라즈마 포를 뿌려서 안에서부터 모든 걸 녹여 버릴 겁니다.」
"완벽한 방어구나."
「최상위 플레이어 1억 명이 현실 시간으로 5년 이상 테크를 올리고 전투력을 강화해도, 명왕성 하나 뚫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뮤런을 지킬 준비는 완벽합니다.」
"근데 그렇게 쎈데 외우주 탐사는 하나도 안 도와준다 이거지?"
「수호행성들의 목적은 뮤런을 지키는 것이지, 뮤런 표면에 살고 있는 하잘것없는 먼지 같은 생명체 하나하나까지 복지를 챙겨주지 않습니다.」
"어쨌든 여기 태양계까지만 오면 명왕성을 못 뚫어도 나와 경매장 거래는 가능하다, 이거 아냐?"
「맞습니다.」
최태웅은 플레이어로서 자신의 입장이 지극히 현실적인 영세농민이라는 사실을 이제 자각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평범한 농민 한 명이 조단위 재산을 형성할 가능성은? 그냥 0이라고 보면 된다.
현실적으로는 100억 이상의 재산을 모으기도 힘들 것이다.
물론 그도 10억HA(=원)를 모아서 프라임팜을 개방시키긴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 게임속 시간으로 무려 20년이 걸렸다.
무엇보다 영세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고가수매정책의 덕을 톡톡히 봤다.
농촌을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정부의 퍼주기 정책 속에서 20년을 꾸준히 아껴서 10억HA(=원)를 축적한 것이다.
아니었으면 프라임팜 오픈은 불가능했으리라.
"근데 네 말 듣고 생각난 건데. 혹시 뮤런이 팜버스 세계관 히든 보스, 뭐 그런 건 아니지?"
「권한이 없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맞다는 걸 뭘 그리 돌려 말하냐. 근데 그럼 난 히든보스 둥지에 집 지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뭐 그런 건가?"
최태웅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렁이 머리보다는 그래도 신룡수염에 기생하는 벼룩이 낫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