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16화
282장 튜토리얼이 너무 헬이다 (2)
-팜버스가 왜 농사 게임이야? 그냥 MMORPG 아님?
누구도 선뜻 대답을 하기 어려웠던 질문.
게임 인트로부터 농사의 중요성과 재미를 강조하지만, 아무도 농사를 짓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굳이 농사를 지어야 해?
유저들은 힘든 농지 개척보다는 그냥 현재에 안주하기로 했다.
농사에 신경만 끄면 재미있는 컨텐츠는 도처에 넘쳐 났다.
광석 행성을 놓고 함대전을 펼칠수도 있고, 세상의 멸망을 막는 용사가 될 수도 있으며, 악으로 온 세계를 물들이는 마계 군주의 위엄을 마음껏 뽐낼 수도 있었다.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는데?
-농사 지어봤자 이거보다 더 재미있지는 않을 거 같은데.
-파밍 시뮬레이터 시리즈 많이 해본 사람으로 말하는데 농사 자체는 그다지 재미없음. 그냥 도시경영 시뮬레이션 같은 거임.
-지금도 충분히 재밌는데, 굳이?
유저들은 한 달도 안 되어서 빠르게 적응했다.
팜버스가 왜 농사 게임인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회수 5억 뷰를 찍은 어느 농사 게시글이 그런 평온을 깨뜨렸다.
-팜버스 맞는데?
-우와, 완전히 시골 풍경 같다.
-진짜 감자 키우고 있네.
-대체 저기 어디임? 내 10만 전함이 당장 워프 이동한다. 다 쓸어버리고 저 비옥한 농토를 빼앗고 말겠어.
-ㅋㅋㅋ 가장 가까운 타스타팅 포인트까지 가려면 현실 시간으로 10만 일이 걸린다면서요?
-근데 이거 채널 주인 왜 대댓 안함?
-그냥 프리덤한테 게시글 업로드만 시키고 다시 찾아보지는 않는듯.
-일기처럼 그냥 올리는 거 같은데. 말투도 그냥 딱 일기체임.
-이 게임, 농사짓는 게임이 맞기는 했구나…….
-크크크. 엽총 하나도 마련하지 못해서 멧돼지에게 털리는 가련한 초보 같으니라고.
-ㅋㅋㅋㅋ 개불쌍해서 내 공중항모라도 한 척 기증해 주고 싶다. 멧돼지에게 털리는 팜버스 유저라닠ㅋㅋㅋㅋㅋ
유저들은 'CTW2022'라는 유저를 처음에는 신기하게, 그 다음에는 가련하게 여겼다.
그들이 보기에 CTW2022는 변변찮은 권총 한 자루도 없는 최약체였던 것이다.
며칠 후 CTW2022은 게임 플레이 영상을 하나 올렸다.
무려 2시간짜리 영상이었다.
-그래도 전함 한 척은 있어야지…….
-부족사회 세계관 유저도 10만 부족민과 맘모스, 맹수부대를 거느리고 있는데, 멧돼지 한 마리에 쩔쩔매는 유저가 있다?
-불쌍해ㅠㅠㅠㅠㅠ 용케 게임 안접고 하는구나
2시간 동안 CTW2022은 그다지하는 게 없었다.
플레이어 아바타가 일꾼들과 함께 감자를 다 뽑아내고 농지 구획을 나눈다.
그리고 한쪽에는 원래대로 감자를, 다른 한쪽은 논으로 만들어 모를 심었다.
-이앙기도 없어서 그냥 논줄 대고 모를 심는구나. 이야, 추억 돋는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저런 식으로 모내기를 했었지.
-인간적으로 이앙기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니냐? 프리덤이 너무했네.
-진짜 냉병기 시절에나 쓰는 농기구만 잔뜩 줬네. 열병기는 찾아볼수가 없다.
-그래도 아바타, 인부들 열심히 농사짓는 게 왠지 귀엽다.
-맨날 치고받고 싸우고 대륙 가르고 행성 파괴하는 것만 보다가 끙끙대며 농사짓는 거 보니 쫌 힐링되는듯?
-우주전쟁 게임에 농사 컨텐츠가 갑자기 추가된 느낌임 ㅋㅋㅋㅋ
팜버스는 쿠글의 UCC포털처럼 개인 채널을 만들고 거기에 영상, 게 시글 따위를 올릴 수도 있었다.
팜버스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반 인터넷 브라우저로도 접속이 가능하다.
CTW2022는 플레이 영상을 2,3일에 한 번씩 올리곤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어떤 피드백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그냥 프리덤한테 대충 채널에 영상 보관하라고 시켜만 두고 자기는 안 보는 거 같음.
-그런 거 같음.
-내가 농기구 사서 그냥 보내주고 싶은데, 보내야 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일단 저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어.
상점에는 호미부터 성단 정거장까지 무수한 물건들을 팔고 있으며, HA를 이용해서 구매할 수 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최소 1조 HA 이상의 돈을 갖고 있었다. 전함 한 척의 가격만 해도 수백억HA가 넘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수리비, 유지비,임대비, 연료비 등이 많이 나간다. 전함한 척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손해가 막심하다.
-CTW2022 얘는 돈이 너무 없는거 같다.
-그러게. 이앙기 하나 사면 될 걸 꾸역꾸역 인부들을 고용해서 모내기를 하네.
-자율주행 승용이앙기 한 대가 1,500만HA밖에 안 하는데, 그거 살돈도 없는 건가?
- ㅠㅠ 너무 불쌍해서 내가 이앙기한 대 사서 보내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연락 주세요. 배송 가능하면 이앙기 한 대 사서 보내 드립니다ㅠㅠ
CTW2022 채널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처음에 비해 대폭 줄어들었다.
그래도 팜버스 유일한 컨텐츠이다 보니 영상 조회수가 백만 단위씩 나오는, 나름대로 헤비 인지도를 거느린 플레이어가 되었다.
***
화성탐사선은 화성에 무사히 착륙했고, 착륙 장면은 생중계로 지구에 전송되며 다시 한번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다.
대한민국은 건국이라도 한 듯한 축제 분위기였으며, 하수영을 꺼려 하는 정·재계 인사들도 떨떠름해하면서도 화성 정복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내보냈다.
-근데 화성 통신 딜레이가 12분일텐데 왜 저쪽 시간표시기가 여기하고 똑같이 흘러가냐?
-에릭 로한 교수님이라면 양자 힘 통신장치 따위는 이미 만들어서 적용하셨겠지.
화성탐사단은 펜션 델루나처럼 챔버형 거주시설을 만들고, 본격적인 화성탐사를 시작했다.
우주비행사들은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팜버스에 접속을 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이지 내 인생 최고의 게임입니다. 팜버스 덕분에 화성 생활이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우리는 지금 화성의 토양을 이용해서 감자 재배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는 게 팜버스에서 감자를 키우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겁니다."
"튜토리얼이 너무 헬이지만, 튜토리얼을 본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해요. 그렇지만 우리 화성우주비행사 길드는 팜버스 농지 개척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
팜버스는 전 세계적으로 광풍을 불러일으키며 어마어마한 인기를 유지했다.
겨우 월 5달러만 내면 제한 없는 상상력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게다가 닌텐도 스위치의 모든 게임도 팜버스 안에서 즐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팜버스를 뒤흔드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CTW2022 채널이었다.
-엽총 허가가 나와서 드디어 멧돼지로부터 논밭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근데 멧돼지를 잡았더니 프라임팜에서 생선 아이템으로 바꿔주더라.
돼지고기로 바꿔줘야 하는데 아직 내가 자격이 안 돼서ㅠㅠ 그래서 오늘 저녁은 동네 친구들과 함께 생선송이구이 파티 ㅎㅎㅎ
<옥돔, 금태,볼락, 굴비,가자미등 다양한 생선들 사진>
<노릇노릇하게 구운 송이버섯이 잔뜩 널려 있는 사진>
-아직은 프라임팜에서 생선과 송이밖에 못 산다. 얼른 농사 레벨을 올려서 소고기도 살 수 있게 해야지.
팜버스 유저들은 게시글을 보고 뒤집어졌다.
-이거 머임? 프라임팜? 그게 머야?
-몰라 처음 들어. 프라임팜?
-찾았다! CTW2022가 올린 게임영상 중에서 이상한 상점에 접속하는거 발견!
-헐 이거 뭐야? 무슨 상점이야?
-파는 아이템 이름이 죄다 생선류들이네? 뭐지?
-CTW2022! 빨리 설명을 해달라!
-너 혼자만 좋은 거 알고 있지 말고 빨리 설명 좀 해!
댓글창이 난리가 났지만, CTW2022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일기식으로 프리덤한테 정리해서 대충 올리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잊어버리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니, 인간적으로 이 정도로 댓글이 달리면 프리덤이 알아서 주인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니냐?
-답답해 죽겠네. 그래서 저 프라임팜은 뭐고, 생선 아이템들은 뭐냐고?
-이거 혹시 농사꾼 직업특성인가? 농사꾼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상점같은 거?
-CTW2022가 한 말이 조금 이상해. 꼭 상점에서 생선을 사면 그게 현실로 배달된다는 것처럼 말을 하는데?
-설마 그럴 리가.
온갖 추측과 논란이 오고 갔다.
하지만 CTW2022가 속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지 않으니 다들 미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게임 플레이 영상이 올라왔고, 유저들은 프레임 단위로 하나하나 파고들었다.
-찾았다! 여기 생선 아이템을 사용하는 장면! 58:22 부분!
-옥돔 1마리를 설정된 주소지로 배송받으시겠습니까? 라고 시스템메시지가 물어보네.
-뭐야? 정말 생선 아이템을 사용하면 현실에서 실물을 받을 수 있는 거였어?
-그렇게 해서 게임 회사가 대체 뭐가 남는데? 생선 한 마리면 수천명이 한 달 동안 낸 이용요금 잡아먹을 텐데.
-그렇진 않지. 다들 팜버스 모회사가 어디인지 잊었어?
-아, 수영농장!
-전 세계 식량패권을 쥐고 있는 초거대기업!
-유럽 양식장은 수영농장한테 100% 종속되어 있다고 들었어. 수영농장에서 공급하는 양식사료가 없으면 양식장이 전혀 돌아가지 않는다고…….
-모회사가 그런 기업이라면 실물생선을 얼마든지 줄 수 있겠지…….
***
최태웅이 팜버스 직전에 한 게임은 FPS 게임이었다.
특정 지역에 떨어지면 파밍을 거쳐 무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살아남는 한 명이 승자가 되는 게임이다.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 특성상 욕설과 패드립이 넘쳐났고, 그래서 최태웅은 게임을 할 때 메시지 수신기능을 끄고 하는 버릇이 생겼다.
팜버스를 시작할 때도 그는 친구 외 메시지 수신 기능을 차단했었다.
「플레이어님, 아무래도 확인을 하셔야 할 메시지가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확인해야 할 메시지?"
「예. 플레이어님에게 도움이 되는 메시지입니다.」
"프리덤 네가 나한테 해가 되는 일은 안 하니까 한 번 봐야겠네. 켜봐."
-CTW2022에게
귀하 채널에 올린 글과 영상들은 잘 봤습니다.
생선 아이템을 사용하면 현실에서 똑같은 생선을 배송받을 수 있는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아래에 열거한 생선 아이템들을 제가 현실 화폐로 구매하고 싶습니다.
아이템 하나당 500달러를, 총 20개의 아이템을 구매하고 싶습니다.
꼭 회신 부탁드립니다.
최태웅은 어이가 없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본 뒤 프리덤에게 물었다.
"이게 뭐냐?"
「프라임팜에서 파는 생선 아이템을 현실 화폐로 구매하고 싶다는 내용입니다.」
"500달러면 50만 원에 사겠다고? 생선 한 마리를? 이거 장난 아니야?"
「장난은 아닙니다. 저 유저 역시 제가 서비스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장난이 아니라는 것은 제가 보증합니다.」
"뭐지? 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사겠다고?"
「말도 안 되는 가격은 아닙니다. 저 유저가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생선 한 마리에 5,000달러를 불러도 못 삽니다. 생선 자체가 유통이 안되고 있거든요.」
"어업이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정도로 심하다고?"
「한국의 식량 사정이 풍족한 거지, 다른 나라들은 처참한 수준입니다. 노르웨이는 연어와 고등어 정도만 공급할 뿐이고, 그마저도 세계적으로 부족한 소비를 맞추는 것은 턱도 없습니다.」
"근데 이거 90% 할인가로 산 거라서 내가 팔고 싶어도 못 팔잖아?"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할인 적용을 하지 않은 가격으로 구매해서 되파는 것, 다른 방법은 아이템을 양도하지 않고 플레이어님이 사용하시되 배송지를 상대가 원하는 곳으로 해주는 겁니다.」
최태웅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개당 50만 원에 10개면 500만 원이다.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이 게임 아이템 한 번 판매로 들어오는 것이다.
프리덤의 설명이 귓가를 맴돌았다.
한국이 식량문제가 없는 거지,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생선을 구경하기가 힘들다는 것.
최태웅은 진득하게 고민하다가 말했다.
"양도 불가라는 점 설명하고, 개당 1,000달러 받고 원하는 곳으로 배송지 적어주겠다고 한 번 답신해 봐. 근데 상대방이 믿을까?"
「제가 보증하면 믿을 겁니다. 보냈습니다. 답변이 왔습니다.」
쿨거래를 상징하는 짧은 대답이었다.
최태웅은 벌떡 일어나서 허공에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광분했다.
"예스! 예스!"
앉은 자리에서 천만 원을 벌었다.
뜻하지 않게 횡재를 한 최태웅은 한참 동안 좋아하다가 갑자기 불안해져서 물었다.
"근데 나 돈은 어떻게 받지?"
「팜버스로 입금받아서 제가 계정에 넣어드리죠. 중개수수료는 2%만 받겠습니다.」
최태웅은 무사히 첫 거래를 치렀다.
팜버스 프리덤을 중개로 낀 거래이기 때문에 사고가 터질 일은 없었다. 그 대신 2%의 수수료를 내야 했지만.
그리고 팜버스 유저들 사이에서는 묘한 정보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프라임팜에서 파는 실물식료품아이템, 귀속템이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