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15화
282장 튜토리얼이 너무 헬이다 (1)
프라임팜에서 최태웅이 현재 볼 수 있는 구매가능 아이템은 죄다 생선 뿐이었다.
"보통 쌀이나 밀, 콩 같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 아닌가? 그게 기초 식량이잖아."
「기초 식량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팜버스에서는 생선이 가장 등급이 낮습니다.」
"그럼 생선보다 위는 뭔데?"
「송이버섯이 그 다음으로 개방될 예정입니다.」
"그 위는?"
「그건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바로 윗단계 개방 예정인 아이 템만 미리 말씀드릴 수 있군요.」
"아, 룰인 거야?"
「룰은 아니지만 게이머의 흥미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죠. 팜버스의 창조주이자 관리자는 바로 저, 프리덤입니다.」
프라임팜 생선 아이템은 HA와 팜수치를 동시에 소모해서 구매할 수 있었다.
일반 아이템은 전부 HA만 소모하는데 비해, 팜수치까지 이중으로 소모하는 것이다.
"이거 팜수치 소모하면 내 팜수치 등급이 떨어지거나 그런 건 아니야?"
「절대 아닙니다. 애초에 소모하라고 만들어놓은 수치입니다. 경험치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최대누적치는 별도로 표시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소모하시면 됩니다.」
"그럼 참치나 한 마리 사봐야겠다. 50kg 짜리로 이거 배송받는 건 프라임팜 아이템을 사용했을 때 되는 거지?"
「물론입니다. 그동안은 영구적으로 아이템의 형태로 소유하는 겁니다.」
"무슨 식료품 채권 같다."
「정확히 본질을 보셨군요. 역시 누구보다 빠르게 해군원수 직속부대 부사관을 지원하신 분답습니다.」
최태웅은 일단 프라임팜에 접근을 해보았다.
온라인마켓을 이용하듯이 그냥 손쉽게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었다.
굳이 맵을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프라임팜 일동은 최초로 방문해 주신 고객님을 허리 숙여 환영합니다.>
<딱 한 번뿐인 최초 방문객 환영행사! 고객님은 10년간 프라임팜의 모든 아이템을 9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HA와 팜수치 모두 할인이 적용됩니다.>
<할인가에 구매하신 아이템은 귀속템이며, 다른 플레이어에게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뭐야? 이거 양도가 불가능하면 전부 다 내가 먹어야 하는 거야?"
「아니죠. 배송주소를 다른 사람으로 하면 그만 아닙니까?」
"아, 그러네."
「게임 안에서 HA를 받고 양도하는 게 불가능한 것뿐이지, 현실에서 다른 사람에게 파는 건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이거 약관 위반은 아니겠지?"
「제가 최고관리자입니다.」
"아참. 맞다."
최태웅은 50kg짜리 참치를 사려다가 슬그머니 손가락을 다른 아이템으로 옮겼다.
참다랑어 통조림 캔이었다.
통조림 여러 개를 클릭해서 5만 HA어치를 구매했다. 현실에서도 5만 원에 달하는 가격이었다.
90% 할인을 적용해서 5,000HA에 구매했고, 팜수 치 5,000 역시 지불했다.
<누적 수치 / 현재 팜수치>
<10억 / 9억 9,999만 5,000>
"오, 누적 팜수치는 그대로구나."
「그렇습니다. 팜수치가 접근권한에 적용되는 것은 누적 수치를 기준으로 하니까, 팜수치는 그냥 그때그때 마음껏 쓰시면 됩니다.」
"팜수치를 아꼈다가 다른 좋은 것에 써야 한다 그런 건 없어? 그것도 공략이라서 못 알려주나?"
「팜수치는 프라임팜의 아이템을 구매하는 데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팜수치 자체는 HA화폐와 달리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그럼 걱정 없이 마음껏 지르라는 거네."
혹시 팜수치가 게임 내 파워를 강화하는 데 쓸 수 있다면 통조림 따위를 사는 것은 아깝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고 하니까, 걱정 없이 프라임팜을 이용하면 될 거 같다.
최태웅은 구매한 통조림 아이템을 즉시 사용해 보았다.
배송지를 입력하라는 메시지창이 떠올랐고, 그는 간단히 지시했다.
"프리덤 알아서 처리해."
「알겠습니다.」
배송지 입력은 순식간에 끝이 났고, 최태웅은 다음 날 진짜 실물 참다랑어 통조림 5만 원어치를 받아볼수 있었다.
"10개월 치 이용권 벌었다. 진짜 갓갓겜이네, 이거."
「재밌죠?」
"뭔가 진짜 농사지어서 밥 해먹는 느낌 난다."
「바로 그게 팜버스의 묘미입니다! 게임을 하면서 직접 농사짓고 실제로 밥도 해먹는 경험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느 세상에도 이런 게임은 없죠!」
"진짜 수영그룹에서만 출시할 수 있는 게임이네."
다른 후발주자들은 절대로 흉내 낼수도, 따라올 수도 없는 게임 아닌가.
조건부이지만 게임 속 재화로 실물식량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다니.
「무엇보다 프라임팜 세계관 최초방문자 90% 할인이 개꿀입니다. 제 말대로 계정 리부트 안 하길 잘했죠?」
"그러네. 앞으로도 네가 암시 주는 건 귀담아서 들어야겠어."
식비를 아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는 그렇게 소박한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ㅅㅂ
-응? 무슨 튜토리얼?
- 지금 니가 하고, 내가 하고, 쟤가 하는 거. 그냥 팜버스 유저들이 모두 하는 거.
-이거 튜토리얼이라고? ㄹㅇ? 그런 말 전혀 없었는데?
-프리덤한테 물어보니까 팜버스는 튜토리얼 같은 거 없다고 함.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뉴비 어서 오고.
-아니 ㅋㅋㅋ 이거 출시한 지 벌써 일주일째인데 왜 이렇게 정보가 늦음? 설마 일주일 동안 인터넷 끊고 어디 산속에라도 들어가 있었음?
-동시접속자 8억 명을 자랑하는 유료갓겜이 서비스한 지 일주일째인데 아직도 튜토리얼이 뭔지 모르는 뉴비가 있다?
팜버스 시스템에는 튜토리얼 개념이 없다.
하지만 어느 한 유저의 불평글에서 시작된 밈이 전 세계를 휩쓸며, 저들 대부분은 지금 하고 있는 단계가 튜토리얼이라고 불렀다.
-이게 농사짓는 게임인데 지금 농사는 구경도 못 하고 있음.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뭘 하든간에 그건 튜토리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임.
-하얗게 불태웠다. 초신성 터지려는 거 겨우 막아냈어. 근데 행성계가 모두 쑥대밭이 돼버려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네ㅎㅎ
-나처럼 그냥 암석행성 채굴이나 해서 장사나 해. 이거 꽤 쏠쏠하다.
-이 팜버스 월드에 과연 농사가능한 골디락스 행성이 존재하기는 하냐?
-땅에 발 딛고 사는 부족 국가에서는 농사 불가능함?
-여기는 판매 가능한 작물 씨앗이 없음ㅋㅋㅋ 당장 기원 작물 찾아서 품종 개량부터 해야 할 판임 ㅋㅋㅋ
-봐라. 이게 바로 벼의 기원이다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 무슨 벼가 그렇게 생김? 알맹이가 없다시피 하네. 조나 피인 줄 알았음
팜버스는 여러 다양한 생태계를 갖추고 있으며, 모두가 하나의 통합된 거대한 우주였다.
광활한 우주.
판타지 월드.
원시 행성. 얼어붙은 행성. 용암이 들끓는 행성.
마계, 명계.
그리고 수백만 년 전의 지구와 비슷한 환경.
등등이다.
[우주전함 10만 척 갖고 스타팅한 유저다. 질문 받는다.]
ㄴ공간이동 가능함?
ㄴ워프 가능한데 한 번 점프하는데 10일간 에너지 풀차지 해야 함. 즉 10일에 한 번만 워프점프 가능함. 아, 현실 시간 기준임.
ㄴ한 번 점프에 얼마 이동 가능?
ㄴ최대 1만 광년까지 이동 가능함.
ㄴ근데 가장 가까운 다른 스타팅 포인트가 1억 광년 떨어져 있음ㅋㅋㅋ
ㄴ엌ㅋㅋㅋ 그럼 10만 일을 기다려야 타 스타팅 포인트 갈 수 있는 거임?
ㄴoo 그래서 그냥 딴 데 안 가고 우리 성단 안에서만 놀려고ㅋㅋ 우리 성단만 어차피 플레이어가 100만 명이 넘어서 굳이 다른 은하계 갈 필요는 못 느낌.
ㄴ단일통합서버이기는 한데 사실상 나누어진 거나 다름없네.
ㄴ우주 함대가 원시부족 사회에 쳐들어가서 다 뿌수고 점령할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군.
우주함대를 갖고 시작한 유저들은 정착 가능한 행성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함대를 끌고 다니면서 정착가능한 행성을 찾아 하염없이 돌아다니거나, 아니면 행성을 인간이 살수 있는 환경으로 테라포밍해야 했다.
테라포밍을 시도할 만한 행성은 그리고 꼭 우주 괴수들의 영역이었기에, 괴수들과 힘든 사투를 벌여야 했다.
-괴수를 다 물리쳤다고 끝이 아니다. 균열은 계속해서 생겨난다. 오펜스가 끝났으면 이제 무한 디펜스들어간다.
-무한 디펜스하면서 인간이 보호 장비 없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테라포밍해야 한다. 안 그럼 농사 못짓는다. 이거 보통 난이도가 아님.
우주가 아닌 다른 세계관도 대체로 한 가지씩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평화로운 판타지 월드 같은 경우는 곡물을 얼마든지 재배 가능하지만, 상점에서 매입하는 '쌀, 밀, 보리' 같은 지구 작물의 종자를 구할 수 없었다.
NPC들은 이 말만 반복해댔다.
-국왕 전하. 그것은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신의 곡물이옵니다.
또 부족 사회에서는 벼의 기원, 밀의 기원, 보리의 기원부터 찾아내야 했다.
그게 정말 기원이 맞는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으며, 올바른 방향으로 품종 개량을 해야 했다.
유로파를 닮은 행성, 표면이 수십 km 두께의 얼음으로 덮인 물의 행성에서는 특별히 강한 괴수 천적이 없었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ㅋㅋㅋ우리 저 얼음 어떻게 뚫고 나감? 두께가 수십㎞임 ㅅㅂㅋㅋㅋㅋ
-해저 광산에 자원이고 물고기고 넘쳐나는데 농사를 지으려면 일단 마른 땅부터 확보해야 하는데 ㅋㅋㅋㅋ
-그냥 포기하면 편해. 나처럼 해저광산이나 채굴하고 돈 벌어서 잠수함 업그레이드해. 난 해저 도시 건설하는 게 목표임.
튜토리얼을 깰 길이 안 보이자 슬슬 딴생각을 하는 유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팜버스는 놀라운 그래픽과 광활한 확장성, 엄청난 자유도, 그리고 뛰어난 게임성을 두루두루 갖춘 게임이었다.
-굳이 농사에 집착할 필요 있나? 농사 같은 거 못 지어도 그냥 갓갓게임임.
-ㅇㅈ 농사 안 지어도 개꿀잼
-사실 농사짓는 게 뭐 재미있을지 잘 모르겠음. 그냥 우주함대 가지고 세력전이나 하는 게 더 나을 듯.
자리를 잡은 플레이어들은 괴수, 자연재해 등의 이벤트와 맞서 싸우면서 여유가 생기자 슬슬 영역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도처에 널린 천연자원을 캐다 팔아야 HA를 벌 수 있었고, 많은 HA가 있어야 직원을 고용하거나 아이 템을 구매하여 강력해질 수 있었다.
개인PK, 길드전, 공성전, 세력전, 암투 등을 펼치며 영역 싸움을 하고, 아이템과 화폐를 거래하고, NPC들이 주는 각종 퀘스트를 해결해 나가며 MMORPG의 재미를 차근차근 누리는 분위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뉴비인데요. 농지는 어디 가면 살수 있어요?
-응, 이거 농사짓는 게임 아님.
-그냥 튜토리얼에 만족해. 튜토리얼만 해도 잼난다.
-농사지으려면 현실 시간으로 몇 년은 지나야 발전 가능할 듯.
-패왕광부 길드는 벌써 3번째 행성 테라포밍 실패하느라고 우주전함만 21대를 말아먹었네.
***
어느덧 화성유인탐사대는 화성 도착을 며칠 앞두고 있었다.
우주비행사 길드는 여전히 테라포밍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우주적 재앙에 맞서 싸우고 있는 플레이어 집단 중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게시물이 팜버스 커뮤니티를 온통 뒤흔들어 놨다.
[군바리의 팜버스 힐링 라이프]
눈에 띄지 않는 소소한 제목의 게시글은 처음에는 조회수가 두 자리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상태로 며칠을 머물러 있던 게시글은 어느 순간 여기저기 링크라전달되며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오늘 멧돼지가 쳐들어와서 밭을 다 망쳤다. 짜증 나서 엽총을 사려고 했는데 사냥허가와 총기소지허가를 받아야 된단다.ㅡㅡ
이 게임은 가끔 쓸데없이 너무 디테일해서 사람을 답답하게 한다.
그래도 힘든 항해 때마다 고글을 쓰고 시골 풍경을 감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 농지도 드디어 1만제곱미터를 돌파했다.
이제부턴 감자뿐만 아니라 벼도 키워볼 생각이다.]
-뭐임? 다른 게임 유저가 글 잘못 올린 거 아님?
-인터페이스 보니까 팜버스 맞는데?
-헐. 골디락스 존 스타팅 플레이어가 정말 있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