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09화
280장 오직 YES (3)
서진파운드리가 반도체 생산시장을 몽땅 먹어치우긴 했다.
파운드리 1위를 자랑하던 TSMC는 협력업체로 전락하고, 서해전자마저 종합반도체회사에서 설계만 하는 팹리스로 체제 전환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 줄 말리기 정책 때문에 5년 이내의 최신형 반도체를 공급받기 어려웠다.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그리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대규모 팹을 유지하고 설계, 공정, 생산 능력을 키우는 사업에만 매년 5조 위안(1,000조 원)씩 쏟아붓고 있었다.
일본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죽어버린 반도체 산업 되살리기에 힘을 쏟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자기 집에서 최소한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서진파운드리가 언제 자신들에게 칼끝을 겨눌지 알 수가 없으니.
미국은 조금 달랐다.
서진파운드리의 견제가 두려워서라기보다는, 저 미친 북한이 언제 갑자기 남한에 핵을 떨어뜨릴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에 기초해서 마이크론을 유지하고 있었다.
-님, 우리 너무 불안한데 그냥 미국에도 공장 하나 세워주면 안 됨?
-응, 안 됨. 왜, 이혼할까?
-죄송. 없던 걸로 해주셈.
미 정부와 서진파운드리는 대충이 런 관계인 셈이다.
미국 반도체 종사자들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아무튼 마이크론은 서진파운드리가 모두 박살 나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미국의 자체적인 보험이었다.
마이크론도 미 정부의 그런 입장을 알고 있기에, 서진파운드리 경쟁사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경쟁을 하기에는 체급이 너무 달랐다.
저쪽에서는 입자3D프린터로 반도 체를 손쉽게 찍어낸다.
비용도, 시간도, 환경오염도, 성능도, 무엇 하나도 비빌 수조차 없다.
깔끔한 패배를 받아들인 마이크론은 이제 옛 영광을 잊고 패전처리투수라는 신세를 받아들인 노장처럼 연금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입자집합명령 장치는 너무 중요한 기술이기 때문에 울타리 밖으로 빼돌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미 정부의 대국적 반도체 공급 안보 정책기조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석학들이 평생 같이 밥한번 먹고 싶은 마성의 남자, 로한이 마이크론을 찾아왔다.
"원래는 마이크론 인수를 생각했었습니다만……."
"인수를 원한다면 미 정부에서 모든 걸 깔끔하게 준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서진파운드리는 그냥 중요한 파트너로 남고 싶군요. 레거시 공정개선기술을 제공하겠습니다."
마이크론은 물론이고 미 정부도 반색을 해서 거래를 받아들였다.
물론 이 거래의 궁극적인 목적은 래플과 쿠글의 데이터센터 죽이기다.
하지만 피를 흘리는 대신 더 신선하고 효능 좋은 피가 대량으로 수혈된다.
미 상무부 장관이 득달같이 마이크론을 방문해서 로한과 미팅을 가졌다.
"정말 레거시 반도체의 생산 효율이 30% 이상 증진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기술은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서류 검토 시간만 남아 있을 뿐이죠."
로한은 USB메모리 장치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고, 상무부 장관은 마른침을 삼켰다.
저 작은 데이터 장치 안에 수십억, 수백억 달러짜리 기술이 들어 있다.
'아니지. 내 눈앞에 있는 이 남자야말로 걸어 다니는 수십조 달러짜리 황금 고블린……!'
장관은 마음속으로 뺨을 철썩철썩때리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이 기술로 만든 마이크론 반도체는 래플과 쿠글에는 일절 공급하지 않는 조건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혹시 두 회사가 걱정되십니까?"
"예. 아무래도……."
"모바일앱 시장은 지금 그 둘이 독점적 담합을 벌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 피해는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입습니다."
"……."
"실물상품 거래에도 수수료를 붙이겠다는 게 정상적인 발상입니까? 아니면 미국은 아직 적용하지 않았으니 상관없다는 건가요? 결국에는 미국 시장에도 적용이 되었을 겁니다."
장관은 로한의 말에 반박할 소재를 떠올릴 수 없었다.
"우리 수영그룹은 언제나 친소비자적인 방향으로 활동을 합니다. 소비자와 공생해야 경제 생태계가 유지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으음, 수영그룹의 그런 기업 정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쿠글, 래플. 둘이서 나눠 먹고 있던 시장에 제3의 경쟁자가 들어오면 둘 다 정신을 바짝 차릴 겁니다. 마인드를 고칠 수는 없겠지만 행동은 고칠 수 있습니다. 돈 된다고 닥치는 대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걸 말입니다."
"과격하시군요."
"회장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죠. 사실 저는 래플, 쿠글이 망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프리덤 데이터센터를 마이크론 레거시 반도체로만 차리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리고 미국 직원들도 최대한 많이 고용할 생각입니다. 데이터센터도 여기저기 가능한 많이 지을 거고요. 쿠글과 래플, 그 둘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게 되실 겁니다."
로한은 미국 정부가 언제나 예민하게 생각하는, 미국인 고용 창출 카드를 제시했다.
"차라리 마이크론을 인수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원하신다면 가능하지만, 그냥 마이크론의 든든한 백기사로 남아 있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점령군 행세를 하기는 싫군요."
서진파운드리가 마이크론을 인수하면 웃긴 상황이기는 하다.
3D입자프린터 반도체 업체가 이제는 아무 쓸모가 없는, 구시대의 유물인 레거시 반도체 업체를 인수하는 꼴이니.
자동차회사가 마차 제조회사를 인수하는 꼴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서진파운드리 팹이 미국에 들어오는 게 가장 베스트지만, 그걸 원하지 않으니…….'
장관은 입맛이 썼다.
그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 때문에 마이크론 인수를 찔러본 것이다.
미국에서 반도체 회사를 직접 운영하다 보면 언젠가는 답답해서 그냥 입자집합명령 설비를 들여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우리 회장님은 미국을 매우 가깝게 생각하십니다. 심지어 한국 정부 보다도 미국 정부를 더욱 깊이 신뢰하시지요."
"감사의 말씀을 대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내 집, 내방에 두는 게 순리 아니겠습니까."
"이해했습니다."
"마이크론 팹라인 개선에는 저도 한번 힘을 써보겠습니다. 이제는 파트너쉽 회사니까요."
마이크론은 한때 서진파운드리에 큰 오더를 주는 고객사였으며, 경쟁사였다가, 이제까지는 또 패자였다.
그리고 이제는 중요한 협력사로 거 듭나게 되었다.
***
-마이크론, 서진파운드리와 손잡는다!
-레거시 반도체, 획기적인 성능개선을 앞둬.
-계약 조건은 비밀.
로한은 미국을 시작으로 글로벌 특허를 등록했다.
지금 레거시 반도체 기술에서 30% 이상의 효율을 기대할 수 있는 특허들이었다.
간단한 공정 개선 따위가 아니라 복잡하고 정교한 설비를 필요로 하는 특허들.
그렇지만 마이크론은 오히려 만족했다.
간단하다면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그만큼 남이 베끼기 쉬워진다.
특히 미국의 자본과 법으로도 손대기 어려운 중국국영반도체 회사에서 알음알음 베낄 것이다.
하지만 로한이 내놓은 특허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컴퓨터공작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운 매우 섬세한 부품들이 수도 없이 들어간 공정설비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 특수공정설비를 만드는 기술력이 바로 숨겨진 진짜였다.
미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 특수공정설비, 다른 부품들은 현재 미국 기술로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순 있는데, 여기 핵심 부품으로 선정된 12가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불가능하단 말인가요?"
"불가능하진 않지만 개발 성공까지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될지…… 이건 꼭 마치 로한이 현재 미국의 기술 한계점을 정확히 알고, 거기에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짜깁기해서 내놓은 특허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기술 한계점을 아슬아슬하게 맞췄다?"
"우리 미국이 이를 악물고 한계까지 쥐어짜낼 때 달성할 수 있는 수준에 딱 맞춘 기술을 내놓은 것처럼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한이 지금까지 내놓은 것들을 차근차근 되새김질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로한이라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지.'
"그렇다면 장관의 말은, 당장 마이크론이 이 특허를 활용하기는 어렵단 이야기입니까?"
"네. 대신 좋은 점도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도용하기에는 너무 높은 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건 참 듣기 좋은 소식이군요."
"그리고 제일 좋은 소식이 하나있습니다."
"뭡니까?"
"이 핵심 부품 12가지는 수영그룹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무리 없이 제공해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아, 그러고 보니 이 핵심 부품들, 크기가 비교적 작은 것들이군요."
작기 때문에 그만큼 오히려 만들기가 어렵다.
그리고 수영그룹은 작고 어려운 초미세부품을 아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 있다.
"예. 입자집합명령 장치를 활용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입집명 장치는 대부분 서 진파운드리에서 돌리고 있지 않나요? 몇 개 안 되는 여유분도 수영병원에서 만능치료기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입집명 장치는 매우 만들기가 어려워서 수영그룹도 물량이 몇 개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반도체, 의료 등 꼭 필요한 부분부터 먼저 배급이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2대 정도를 한동안 마이크론을 위해서 돌리겠다고 했습니다. 바로 제일 까다로운 이 12가지 특수부품 생산에 말이죠."
"아니, 왜 가장 좋은 소식을 이제야 말하는 겁니까? 장관, 으로 앙큼해요."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먼저 요구하시지 않아서 가장 좋은 소식은 마지막 직전으로 순서를 미뤘습니다."
"마지막 직전? 이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겁니까?"
대통령의 표정이 웃다 말고 가라앉았다.
가장 좋은 소식은 마지막 전에 이미 나왔으니, 마지막 소식은 좋은 소식이 아닐 것이다.
"로한 교수의 신 특허를 이용한 특수공정설비는 앞으로도 수영그룹에 그 생산이 종속된다는 겁니다. 이게 단점입니다."
조금 긴장하던 대통령은 맥이 빠져서 풀썩 웃었다.
"에이, 난 또 뭐라고. 그 정도가 무슨 단점입니까? 수영그룹이 우리 미국과 틀어질 일이 없는데 말이죠."
대통령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장관이 오히려 조금 당화했다.
그는 '하수영=아메리카'라는 신미국 정책의 기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승인합니다. 추진하세요."
백악관은 마이크론의 팹 개선을 위한 긴급추가예산 집행을 승인했다.
쿠글과 래플은 서진파운드리가 마이크론에 새로운 특허기술을 제공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방심했다.
수영그룹이 이제야 이 지겨운 치킨 레이스를 종료하고 승자의 도량을 보인다고 착각한 것이다.
더 자신들을 패봐야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으니, 이제 딴 곳으로 눈길을 돌린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입니다. 서진파운드리의 반도체를 팔지 않는 것으로 모든 싸움을 끝내려는 거 같습니다."
"그 정도 조치만 해도 메가톤급 핵을 투하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미 우리는 초토화가 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더 이상 때려부술 것도 이제 남아 있지 않지……."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어쨌든 이제 전쟁은 끝났다.
아니, 끝난 것이라 생각했다.
래플이야 서진파운드리와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치명적인 타격은 없었다.
쿠글은 새로 짓는 데이터센터 등 추가로 필요한 컴퓨터 제품들은 이제부터 마이크론에서 사 와야겠다고 생각을 돌렸다.
"마이크론이 신 공정 기술을 제공한 건 미국 정부를 향한 화해의 제스쳐인 거 같습니다. 한국에는 개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박장에서 돈을 다 잃은 상대가 개판을 치지 말고 얌전히 떠나라고 약간의 돈을 쥐어주는 거죠."
"로한은 개평을 주려고 미국에 왔던 거군."
"예. 우리 쿠글과 래플이 너무 치명적인 경지까지 몰리면, 아무리 미정부라 해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을 테니까요."
쿠글과 래플 역시 '하수영=아메리카' 혹은 '하메리칸'이란 개념을 몰랐다.
하수영이 쿠글과 래플을 아예 파산시켜도 미 정부가 속으로 않을지언정 뭐라고는 못하고, 오히려 도와줄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로한이 마이크론과 맺은 거래를 승자가 베푸는 작은 아량이라고 착각했고, 거기에 취해서 안도의 한숨만을 돌렸다.
특수공정설비 제조는 빠른 속도로 이뤄졌고, 마이크론은 팹 라인에 새공정설비를 적용해 더 싼 비용으로 레거시 반도체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쿠글과 래플이 진실에 어렴풋하게 닿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 즈음이었다.
"뭐라고요? 물량이 없다고요?"
"네. 지금 우리 회사의 신 공정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 캐파는 전부 수영그룹에서 가져갔습니다."
"수영그룹에서 레거시 반도체를 대체 어디에 쓴단 말입니까?"
"글쎄요. 미국에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짓는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우리에게 반도체를 팔지 않겠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로한 교수의 특허가 적용된 반도체는 그쪽에서 전부 물량을 가져갔습니다. 그게 로열티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