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208화 (1,208/1,270)

프랜차이즈 갓 1208화

280장 오직 YES (2)

하수영의 수행원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청담동을 찾았으면서, 정작 청담동식 언어를 전혀 모르고 오다니.'

'저렇게 성의가 없을 수가.'

'쿠글과 래플이라고 해서 별다를게 없군. 대단치도 않아.'

'아니야. 정상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 오만에 젖어버린 게 아닐까?'

래플과 쿠글의 주주 분위기는 한국에서도 이미 알고 있다.

저들도 여기에 오면서 하수영이 하는 말에 무조건 Yes로 응대하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 어떤 딜이 오더라도 반드시 수용하겠다는 각오 역시 굳혔을 테고.

하지만 모바일 시장의 절대갑으로서 오랫동안 군림하며 몸에 밴 그 나쁜 버릇을 끝내 고치지 못했다.

'감히 질문을 한다고?'

'지금이 질문을 할 상황인가? 미친거 아닌가?'

'저런 놈들이니까 실물상품 거래에도 수수료를 붙인다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을 할 수 있는 거지.'

'역시 래플과 쿠글은 악마 그 자체였다…….'

두 부서장은 돌아가는 분위기를 전혀 몰랐다.

애초에 하수영이 네이티브 영어 사용자였기에 통역사나 수행원도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고, 따라서 부하들이 눈치를 줄 수도 없었다.

밖에서 대기 중인 부하들이 안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안다면 땅을 치고 통곡할 것이다.

"자자, 어서 들자고요."

하수영은 적극적으로 술을 권했고, 두 부서장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한 채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계속 먹고 마셨다.

다음 날, 하수영은 직접 그들을 데리고 식도락 관광 패키지 풀코스를 돌았다.

둘은 독도수영펜션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먹은 만찬과, 부산해운대 수영펜션에서 어두워지는 저녁을 안주 삼아 즐긴 와인 파티를 최고로 손꼽았다.

"한국, 정말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인 줄 진작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한국을 찾을 걸 그랬습니다, 하하!"

"만족하셨다면 돌아가셔서 식도락관광 패키지 주변에 소문 좀 내주세요, 하하. 제가 감히 전 세계에 자부하는 최고의 관광상품이라고 생각 합니다. 티배깅도 식후경이라고 하는데, 그냥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 싸게 많이많이 먹는 게 바로 관광이 아니고 뭐겠어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여행이라는 게 사실 먹는 거 빼고 남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결국 다른 지역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먹나 경험을 해봐야 그게 여행이죠."

"남의 나라 도시 구경 맨날 해봐야 남는 거 하나도 없어요. 먹는 게 결국은 남는 겁니다."

수영농장이 자랑하는 무공해 청정요리 맛을 듬뿍 즐긴 두 부서장은 진심으로 극찬을 남겼다.

비즈니스와는 별개로, 하수영이 대접한 요리들은 국경과 문화를 초월한 맛을 품고 있었다.

수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두 부서장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손쉽게 충족시키는 놀라운 퀄리티였다.

'미국에서는 마리당 수천, 수만 달러 이상도 나가는 생선 요리들을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다니.'

'수영농장의 저력이 생각보다 대단하군.'

그 부서장이 가장 놀란 점은 한국에서 생선 가격이 무척 싸고, 또 일반 소비자들도 쉽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에서는 대부호들이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들인데.

사람이 먹는 육류로 만든 사료를 먹여서 키우는 담수어나 간신히 맛볼 수 있고, 해수어는 꿈조차 꾸지 못한다.

그마저도 일반소매시장에서는 유통이 되지 않고, 부호들의 사전 주문에 따라 양식해서 출하하는 방식이다.

출국일이 다가왔다.

하수영은 마지막까지 두 부서장이 잊지 못할 근사한 만찬을 대접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값비싼 양식 해수어들을 가득 실은 냉동 컨테이너를, 심지어 화물전용기로 따로 그들의 집에 부쳐주겠다고 했다.

아주 융숭한 대접이었다.

"한국에서 보낸 만찬은 즐거우셨습니까?"

"네. 정말 잊지 못할 근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또 찾아오겠습니다. 그때는 제 사비로 식도락 패키지 풀코스를 즐겨 보렵니다, 하하."

"그럼요. 언제든지 찾아 주세요. 한국은 먼 길에서 온 손님을 박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웃는 얼굴로 배웅한 하수영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비행기에 올라탔다.

퍼스트 클래스에 앉아 이륙하는 진동을 느낄 무렵, 둘은 만찬에 취해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가만, 비즈니스는 어떻게 되는 거지?"

분명 첫날 하수영은 수영아트센터에서 프리덤OS 시장을 중심으로 모이라고 제안했었다.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고, 그 뒤에 갑자기 즐거운 만찬이 시작되었으며, 그 만찬은 천일야화처럼 쉬지 않고 4일 내내 이어졌다.

만찬과 미주에 취해 있다 보니 그 다음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1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공항에 내려서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자마자 회사에서 쏟아진 부재중 연락을 볼 수 있었다.

[이거 보는 대로 당장 전화해!]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겁니까?]

[항복을 하라고 보내놨더니 전면전 통보를 얻어내는 건 대체 무슨 이유입니까?]

[부서장님, 큰일 났습니다!]

쿠글 부서장은 안색이 흙빛이 되어 얼른 인터넷 등 뉴스를 검색했다.

[프리덤인더스트리, 두 모바일앱경쟁사에 유감 표하다.]

'래플과 쿠글의 수수료 장사 야욕은 완전히 꺼진 게 아니다. 아직도 그 불씨가 남아 있다.'

'불씨가 남아 있는 한 언제고 조금이라도 여건이 되면 금방 활활 타오르려 할 것이다.'

'소비자를 위한다는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소비자는 고객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일 뿐이며, 앱 개발사들은 종처럼 부릴 수 있는 하청업체일 뿐이다.'

'오로지 돈 그 자체만 목적이 되어버린 데빌 컴퍼니 듀오, 그 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기업과 소비자는 공생관계다. 서로 적당히 타협하고 양보하고 조율할 줄 알아야 항구적으로 생태계가 유지된다. 대기업이 독점이란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착취하기만 하면, 시장 자체가 증발해 버린다.'

'신체에는 이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세포가 있다. 바로 암세포다.'

프리덤인더스트리의 논조는 매우 공격적이었고, 날것 그대로의 적의를 담고 있었다.

보통 기업 간에는 이렇게까지 날카롭게 날을 세우지 않는다.

명예 등 소송 문제도 있고, 비즈니 스에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수영그룹은 프리덤인 더스트리를 내세워서 마구 달려들고 있었다.

다시는 관계의 뒤가 없는 것처럼.

마치 상대방의 파멸을 얻어내기 위해 브레이커를 망가뜨리고 폭주한 배우자의 이혼 소송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마지막 기사 논조가 화룡점정이었다.

-이런 돈밖에 모르는 기업에 앱마켓 시장을 내어줄 순 없다. 그것은 소중한 고객들을 굶주린 맹수 앞에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도는 명백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섬멸전을 벌이겠다는 각오가 분명하게 보였다.

***

수영그룹은 빈말을 하지 않았다.

먼저 한국에서 칼을 빼 들었다.

그동안 부당한 AS 정책에 치를 떨던 소비자들을 규합해서 집단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일체의 비용 없이 이름만 빌려주면 대리소송이 가능하다는 말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몰려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어차피 외국기업과 수영그룹의 싸움이니, 이기 회에 하수영한테 잘 보이겠다는 마음에 줄을 세웠다.

한국 시장이야 이미 프리덤인더스트리가 장악한 터라 두 기업 입장에서 큰 피해는 예상되지 않았다.

AS 정책 불만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에게 전부 패소해서 배상을 한다 해도 그 돈이 그리 크진 않을 것이다.

"이건 워밍업에 불과하다, 이 자식들아."

진짜 공격이 시작되었다.

첫 타켓은 바로 쿠글의 데이터센터였다.

쿠글은 대륙별로 여러 개의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지어서 데이터 보존을 수행한다.

대량의 데이터 장기백업용으로 자기테이프 저장 매체를 주로 사용하지만, 원활한 서비스 처리를 위해서 HDD와 SSD 역시 무지막지하게 사용한다.

수영그룹이 노린 것은 바로 저장장치용 SSD와 서버 컴퓨터였다.

-윈텔. 너희 앞으로 쿠글과 래플에 CPU 팔지 마.

-뭐? 아니, 너희가 그러라고 하면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만…….

-그거 우리에게 싹 돌려라. 우리가다 사준다. 물량 제한 안 둘게.

-알았어. 그럼 너희에게 팔게.

-너희가 파는 CPU 어차피 100%우리가 만들어서 납품하는 거잖아? 우리가 사가는 물량은 납품가에서 1%씩 빼줄게. 니네 판매가는 그대로 유지해도 됨.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생산가격에서 1% 빼주는 대신 판매가는 건드리지 않겠다니.

래플 입장에서는 무조건적인 이익이었으니 전혀 불만이 없이 싱글벙글했다.

앉은 자리에서 1%의 비용절감이 거저 들어오는 셈이니까.

엔도비도, ADM도, 모두 같은 제안을 받고 하나같이 승낙했다.

일본에서 그랬듯이 수영그룹이 '저 회사에 내가 만든 너희 반도체를 납품하지 말라.'고 해버리면, 초슈퍼을의 말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적절한 당근이 함께라면 얼마든지 기꺼운 마음으로 따라 갈 수 있다.

쿠글 입장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사업의 핵심인데, 그것을 만들 컴퓨터라는 자재 자체를 원천박탈당한 셈이다.

래플 역시 이 공격에서 피해갈 순없었다.

그나마 래플은 쿠글보다는 피해를 덜 보는 방향으로 회피할 가능성이 있었다.

진작부터 서진파운드리와 프리덤인더스트리를 경계하며, 마이크론과 손을 잡고 레거시 반도체 생태계 보존에 주력해 왔기 때문이다.

미 정부 역시 자국의 레거시 반도 체 기술 생태계를 보존한다는 전략으로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퍼붓고 있었고.

래플은 꾸준히 탈수영반도체 전략을 취해왔기에 이번에도 피해는 있겠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반갑습니다, 마이크론."

"로한 박사! 귀하신 분이 이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로?"

"좋은 기술 몇 개 좀 나눔하려고 왔습니다."

"설마 입자집합명령 장치 기술을요?"

"아니요. 그건 그룹 외 유출 금지입니다. 예외는 없어요."

시무룩해진 마이크론 앞에서 로한은 당근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귀사의 레거시 공정의 효율을 30% 이상 증진시킬 수 있는 반도체 공정기술입니다. 아직 특허를 내진 않았는데, 귀사가 거래에 응하면 특허를 등록하고 라이선스를 발급해 주겠습니다."

"30% 효율 증진이라고요!"

마이크론은 눈을 번쩍 떴다.

이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다.

특허 양도가 아니라 라이선스 발급이니 로열티를 내야겠지만, 합리적인 선에서 책정된다면 무조건 받아야 한다.

"그, 그럼 로열티는 얼마나?"

"금액은 뭐 대단치 않습니다. 매년 1달러면 됩니다."

"매년 1달러……."

상징적인 금액일 뿐이다.

진정한 로열티는 돈이 아닌 다른 조건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대신 라이선스 기술을 적용해서 만든 반도체를 판매할 때에는, 계약 시 우리 수영그룹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어차피 30% 효율을 증진시켜 봤자 미국 외에서는 못 판다. 그래도 서진파운드리 반도체를 따라갈 순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거시 반도체 생태계를 보존하려는 미 정부의 지갑이 한숨을 돌리게 해줄 순 있다. 마이크론 역시 숨통이 트이고.

마이크론은 이 변칙 로열티의 진정한 목적을 눈치챘다.

"쿠글과 래플에 팔아선 안 되는 반도체들이군요."

"그렇습니다. 계약하시겠어요? 그럼 오늘 당장에라도 미국을 포함해서 국제특허를 등록할 겁니다."

기술 내용을 보지 않아도 특허는 이미 완벽할 것이다.

마이크론은 이 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래플이 사주던 물량만큼, 우리 수영그룹에서 사주겠습니다. 프리덤 미국 데이터센터들은 구 레거시 반도체 부품으로 만들면 되겠죠."

마이크론은 그렇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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