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07화
280장 오직 YES (1)
공문을 받은 래플과 쿠글 앱마켓부서장은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마음 같아서는 회피하고 싶었지만, 회사 및 주주 분위기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정식 공문이기에 당연히 주주들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졌고, 방문을 거부했다가는 소송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재수 없으면 폭락장에 분노한 어느 개미 주주의 산탄총에 맞아서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다.
그렇게 두 회사의 앱마켓 부서장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의 심정을 끌어안고 한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부터 뭔가 남달랐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길게 쭉 빠진 근사한 리무진과 수행비서, 그리고 경호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한 순간부터 두 앱마켓 부서장은 멈출 일이 없었다.
리무진은 앞뒤로 경호차량까지 대동한 채 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한강을 바로 옆에 끼고 있는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1만 평이 훨씬 넘는 부지 위에 우뚝 세워진 주상복합쇼핑문화센터의지상공원을 통째로 씌운 유리창이 찬란한 빛을 반사하며 맞이했다.
크고 거대한 하부 몸통에서 뻗어 나온, 500미터를 훨씬 넘어 보이는 3개의 주상타워가 시선을 압도하고 있었다.
"정말 거대한 빌딩이군요. 미국에서도 이렇게 큰 빌딩은 좀처럼 찾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이것보다 더 높거나 더 넓은 빌딩은 얼마든지 많을 겁니다. 서울은 땅도 좁고 고도 제한도 걸려있어서 이 정도가 한계였습니다. 부지 확보 문제도 있고요."
수행비서는 쿠글 앱마켓 부서장의 칭찬을 가볍게 흘리며 안으로 안내했다.
신기하게도 이 거대한 건축물 안에는 사람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신기하군요. 공동주거용으로 보이는데 왜 사람이 전혀 안 보이는 겁니까?"
"공동주거상업용이긴 합니다만,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부 하수영 회장님 소유거든요."
"이 건물이 모두 하수영 회장님 거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상업구역도 아직 오픈 전입니다. 오늘 이수영아트센터에 초청을 받으신 건 귀부서장님과 래플의 앱마켓 부서장님, 이렇게 두 분뿐이십니다."
드디어 완공을 맞이한 수영아트센터.
청담동 531세대 구축 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따낸 수영이 시민실내문화공원이라는 개념을 넣어 지은 복합센터다.
주거에서부터 식사, 쇼핑, 레저, 영화, 데이트, 오페라 관람 등 모든 것을 건물 안에서 원스톱으로 끝낼 수 있는, 수영그룹의 야심작.
하수영은 531명의 지주조합원들에게 전용주거세대를 분양했지만, 동시에 그들이 만족할 만한 웃돈을 얹어서 되사들였다.
때문에 공동건물이면서도 소유주는 부동산법인 하수영 하나만 존재하는, 단일건물이나 마찬가지인 입장이 된 것이다.
***
하수영이 마련한 곳은 6층 제2공원이었다.
한쪽 벽 전체와 천장이 개폐형 유리로 되어 있어,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바깥과 하늘을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이렇게 벽과 천장을 모두 열어둡니다."
초강화유리벽은 아래로 밀려 내려가면서 오픈되는 구조였고, 유리천장은 반으로 갈라지면서 위로 들리듯이 열리는 구조였다.
언뜻 보기에도 유리천장의 두께는 1미터는 넘어 보였다.
"헬기가 들이박아도 내부는 안전하도록 내구성에 꽤 신경을 썼죠."
하수영은 한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공원 최외곽에 마련한 테이블에서 둘을 맞이했다.
래플 부서장과 쿠글 부서장은 어색한 눈짓을 교환하면서 테이블을 살폈다.
미국에서는 최상류층만 먹을 수 있는 값비싼 메뉴가 되어버린 생선 요리가 한 가득이다.
그 외에도 한식,중식, 양식, 일식을 가리지 않고 국경을 뛰어넘은 온갖 만찬을 전부 다 모아놓은 듯한 식탁이었다.
"이런 걸 한국에서는 식탁이 부러 지도록 차린 만찬이라고 하던가요?"
"이 정도로 식탁이 부러지려면 한참 멀었죠. 그래도 고대 황제 못지 않은 사치스러운 메뉴로 준비를 해봤습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실지 몰라서 가능한 많이 준비를 해봤습니다. 설마 이 중에 하나쯤은 좋아하시는 음식이 있겠지요."
"이 정도 만찬이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찾는 게 훨씬 어려울 거 같습니다."
"영광이군요. 자자, 어서 드세요."
하수영이 박수를 가볍게 치자, 서버들이 커다란 와인 카트를 끌고 왔다.
수백 가지가 넘는 와인병이 질서정연하게 꽂힌 이동식 카트였다.
네가 어떤 술을 좋아할지 몰라서 닥치는 대로 준비해 봤어, 라는 느낌이다.
두 부서장은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적당한 와인을 골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와인 카트가 물러나고 위스키 카트가 나타났다.
그 다음에는 브랜드 카트가, 그 다음에는 전통주 카트가,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렇게 각자 마음에 드는 술을 모두 고르고 나자 서버들이 다가와서 차가운 얼음통에 여러 병의 술을 담갔다.
"자자, 어서들 배부터 채웁시다. 한국에는 티배깅도, 아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어요."
하수영이 웃는 얼굴로 권했고, 둘은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일단 밝은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그들은 이제 질린 표정으로 하수영의 식사 장면을 넋 놓고 구경했다.
'저 많은 게……?'
'들어간다고?'
'아직도 먹는다고?'
농담이 아니라 수십인 분은 넘어 보이는 요리가 하수영의 입안으로 끊임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수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여러 명을 모아 놓아도 저렇게 많은 음식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두 분은 벌써 다 드셨어요?"
"아, 예. 저는 이미 충분히 먹었습니다."
"저도 배가 불러서 더 이상은 들어가지 않을 듯합니다."
"이런…… 겨우 이 정도 음식도 못 해치우실 분들이 수수료는 왜 그렇게 욕심을 내신 걸까."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흠칫했다.
하수영은 어느새 수저와 나이프, 포크를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의 옆에는 이미 빈 와인병이 4개가 놓여 있었지만, 얼굴에는 조금의 취기조차 없었다.
"두 분은 모르시겠지만, 저는 원래 모바일 앱마켓 시장은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
"……."
"우리 회사에서 프리덤 AI를 만든 것도 음식점 예약과 결제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나중에는 농축수산물 산지직송 배송과 결제, 사업체에서 운영하는 마트와 편의점, 백화점 쇼핑 결제 같은 걸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죠."
하수영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근데 왜 프리덤 AI가 프리덤폰이 돼서 한국 시장을 점령하게 됐을까요? 혹시 그 이유를 아십니까?"
둘은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들의 시선에서는 당연히 한국 모바일폰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 프리덤 AI를 개발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논조를 보면 그게 아닌 거 같으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서해전자 겔드폰에서 프리덤 AI를 빼앗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방어권을 행사할 수 밖에 없었어요."
"방어권……."
"근데 우리는 살짝 방어만 했을 뿐인데, 겔드폰이 알아서 나가자빠지 더군요."
"……."
"……."
"반도체도 그랬습니다. 우리 농장에서는 하이엔드 로봇을 많이 사용하는데, 혹시라도 반도체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농사짓는 데 큰 자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았어요."
"농사를 위해서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쿠글 부서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고, 하수영은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요. 반도체 부품 가지고 장난치려는 조짐이야 늘 있었거든요. 결국 일본에서 미 의회에 로비까지 하고 원자재 수출도 막고, 뭐 그런 식으로 되지 않았습니까? 미리 대비하지 않았으면 농사 로봇을 제때 수급하지 못해서 소출량에 큰 문제가 발생했을 겁니다."
"……."
"핵융합 발전소도 마찬가집니다. 지금은 거의 망했지만, 우리나라 전력 카르텔이 장난 아니었거든요. 핵피아라고 불리는 놈들이 전기시장가지고 아주 기승을 부렸었죠."
"……."
"농장을 지키기 위해서 반도체, 철강, 전력발전, 이런 것들에 발을 뻗쳐야 했습니다. 조선업과 해운업에도 손을 걸쳤어요. 농산물을 해외로 운반하려니까 방해되는 게 또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직접 해야 하거든요."
두 부서장은 질린 표정으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와, 설마설마 앱마켓 시장에서까지 제 농장을 건드릴 줄은 몰랐습니다. 쌀과 밀, 고기와 생선을 전자거래로 구매하는데 수수료를 내야 한다고요? 그것도 농사짓는 데 도움이라고는 전혀 준 적 없는 모바일앱 회사에?"
하수영은 보드카 한 병을 따더니, 그대로 원샷을 때려 버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죽기 전에 목구멍이 뻘개져서 역으로 쏟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목마른 사람이 겨우 물 한 컵 마신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빈 병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
"이게 말이 되는 현실입니까? 말이 될까요?"
"……아닙니다."
"전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은 유통이 기승을 부려서 농부가 가져가는 건 정말 쥐꼬리입니다. 시장이 작으니까 유통이 갑이에요, 갑."
"……."
"그래서 유통도 제가 직접 하면서 겨우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했더니, 이번에는 시장이 큰 게 또 문제를 일으키네요. 진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앱마켓 시장에 진출하고 말았어요. 이거 어떻게 책임지실거예요?"
"예?"
"책임이요?"
"두 분이 인앱결제 수수료 같은 이상한 통행세 따위를 거둬서 그것 때문에 제가 이 귀찮은 앱마켓 시장에 끌려오고 말았잖아요. 한 번 들어온 이상 이제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꾸준히 해야 하는데, 당연히 두 분이 저에게 배상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두 부서장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시장을 빼앗기고 큰 피해를 본 건 자신들 회사다.
물론 소비자를 더욱 착취하겠다는 발상을 실행하다가 역으로 피해를 본 것이지만.
그리고 어쨌든 간에 수영그룹은 앱마켓 시장 장악을 통해 큰 이익을 보게 생겼지 않은가.
프리덤 AI를 대체할 만한 AI비서를 출시하지 않는 한, 두 회사는 이제 모바일 시장에서 답이 없었다.
쿠글은 안드로이드가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될 위기에 놓였고, 래플은 당장 내년부터 래플폰 판매량이 얼마나 바닥을 칠지를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손해배상을 요구하다니.
"저는 피해자로서 두 분에게 먼저 저를 이 귀찮기만 한 모바일 시장에 끌어들인 것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사과해 주세요."
"……."
"……."
"빨리 사과부터 하세요. 그래야 모바일 시장의 미래를 함께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어요. 선스텝이 없으면 후스텝도 없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두부서장은 순순히 고개 숙여 하수영한테 사과했다.
"엎드려 절 받기지만 괜찮네요. 저도 저를 귀찮은 모바일 시장에 끌어들인 두 분의 죄를 이만 사하겠습니다. 두 분, 고개 드세요. 이제 더이상 죄인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고, 고맙습니다."
하수영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인 뒤 목소리에 진지함을 한껏 담았다.
"모바일 시장이 삼분되어 봤자 소비자들이 복잡하기만 하고 뭐 좋을게 있겠어요? OTT 시장을 한 번 보세요. 넷플렉스 하나가 성공하니까 슬금슬금 너도나도 하겠다고 하니까 지금 온갖 OTT들이 범람해서 소비자들 결제 부담만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회장님, 설마……?"
"프리덤OS를 중심으로 모바일앱시장을 그냥 하나로 통합합시다. 모두가 윈윈하는 길입니다. 이제 대답해 주세요."
안색이 굳어진 래플 부서장이 반문했다.
"만약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캐삭빵 하자고요? 오케이. 쿠글은요?"
"캐삭빵이 대체 뭡니까?"
"래플, 쿠글 둘 다 캐삭빵 오케이.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끝까지 갑니다. 이제 적이지만 건투를 빌죠."
둘은 아직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전혀 이해를 못 했다.
애초에 캐삭빵이 무슨 뜻인지도 이해하지 못해서 당황해하고 있었으니까.
하수영은 가볍게 혀를 찼다.
"온리 예스라고 주주들이 그렇게 신신당부했을 텐데, 이런 사람들이 부서장이라니. 쯧쯧……."
둘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