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96화
278장 컨텐츠가 필요합니다 (3)
중국의 반도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았다.
미중 무역 전쟁 중 국가전략 차원에서 미국이 반도체 수출 통제를 걸어버린 것이다.
중국은 최신 반도체 공정장비를 도입할 수 없었고, 반도체 완제품도 5년 이전 모델만 간신히 수급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PC나 서버 등의 영역에만 가능했다.
군사용, 우주용, 차량용 반도체는 아예 수급이 불가능했다.
미국은 중국의 무기산업, 항공우주 산업, 그리고 전기자동차 산업을 아예 싹까지 짓밟기 위해 반도체 포위망을 펼치고, 말라 죽기를 유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중국은 반도체 산업의 완전한 자급화를 추진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과의 갈등을 대비해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칼날을 세우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가면서 산업 조성을 시도했다.
아주 기본적인 공정장비, 원료 제조, 설계 및 패키징까지 전부 자체적으로 가능하도록 국가적인 대계를 준비했다.
연 5조 위안.
중국 중앙정부에서 선언한 금액이었다.
"매년 5조 위안을 반도체 산업에 쏟아부어, 위대한 중화의 반도체 질서를 새로이 바로잡을 계획입니다."
자그마치 한화로 1,000조 원을, 그것도 매년 쏟아붓겠다는 포부를 터뜨린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반도체 시장 자급화를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영역에 돈을 때려붓고 있었고, 어느 정도 성과도 쌓아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래 봐야 설계 면에서 미국기업들에 한참 못 미친다.
격투기 세계 챔피언과 유치원생 수준의 전투력 차이라고 해도 황송할 정도다.
그리고 생산 면에서는 서진파운드리의 발뒤꿈치도 구경하지 못한다.
차라리 미국과의 설계 능력 차이를 좁히는 게 훨씬 현실적인 수준일 것이다.
비용 등 효율만 보면 참으로 어리 석은 짓.
그러나 반도체 공급망을 언제까지고 미국에 멱살 잡힌 채 흔들릴 순없으니, 중국으로서는 손해인 건 알아도 갈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큰돈을 들여 투자했지만, 그 자체로 이익을 내기는 어렵다.
애초에 수출은 불가능하고, 내수용으로만 쓰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기업이 한참이나 성능이 떨어지고, 신뢰할 수 없는 중국 반도체를 쓰겠는가.
서진파운드리에서 만들어내는, 합리적인 가격에 이론상 한계치의 성능을 보장하는 무공해 반도체를 쓰고 말지.
***
닌텐도 역시 중국 반도체의 그런 사정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비참하고 어이가 없었다.
중국 놈들이 되지도 않는 자기네 반도체를 팔아먹을 궁리를 했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이 닌텐도의 이름값이 그 정도로 곤두박질쳤단 말인가!'
후루카 순타로 사장은 이를 악물었다.
중국 놈들이 그냥 들이댔을까.
서진파운드리에서 반도체를 공급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확실하게 계산이 섰으니, 이렇게 되도 않는 조악한 반도체를 팔겠다고 나선 게 아니겠는가.
"우리 중화전로제조고분공사에서는 거의 모든 종류의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군사용,우주선용, 전투기용, 차량용까지 전부 다요. 하드웨어 게임기에 들어가는 반도체 정도는 100% 전부 조달 가능합니다."
후루카 순타로 사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중국 협상가가 하는 말에서 왠지 게임기 하드웨어를 묘하게 깎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칙쇼! 이 자식들, 지금 감히 우리 닌텐도를 깔보고 있는 거냐!'
"합리적인 가격으로 맞춰드릴 수 있으니, 한 번 진지하게 고려를 해주십시오."
"……가격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 들어봅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축객령을 내리고 싶지만, 지금 베트남 공장은 재고가 떨어지는 즉시 멈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 세계 (중국 외) 반도체 생산시장은 서진파운드리가 독점하고 있으니, 엔도비 등 주문업체들은 닌텐도에 반도체를 공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적대적 인수합병에서 흑기사의 지위를 누리기로 결정을 굳혔으니까.
닌텐도로서는 유일하게 백기사가 되겠다고 찾아온 이 중국 회사를 뿌리칠 수가 없었다.
"여기 카탈로그를 준비해 왔습니다. 차근차근 보시면서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통역 없이 일본어로 바로 설명이 가능한 인물이 협상자로 나선 걸 보면, 그래도 중국이 이 거래에 정말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다는 건 알수 있었다.
떨떠름했지만 후루카 순타로 사장과 임원진은 중국 회사 측이 제공한 제품설명서를 면밀히 살폈다.
닌텐도 측은 소리 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이게 뭐야?'
'이거 뭔가 미심쩍은데.'
'정말 이게 티그라 칩만큼 성능을 낼 수 있다고?'
'중국제는 도통 신뢰를 할 수가…….'
원래 중국제 브랜드는 국제 사회에서 알아주는 저급품이자 불신의 상징이다.
그냥 싼맛에 적당히 쓰다가 버리는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중국이 만든 반도체 같은 고부가가치 첨단제품이라니.
이걸 과연 제대로 신뢰할 수 있을까?
"우리끼리 회의를 해보고 연락 주겠습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
닌텐도는 긴급회의를 열고, 중국반도체를 쓸 것이냐 말 것이냐를 논의했다.
"그 전에 앞서서 미국제 반도체를 정말 매입할 수 없는지를 확실히 체크해야 합니다."
반도체 브랜드는 미국 기업이지만, 생산은 모조리 메이드 인 코리아.
영업부에서는 발에 땀띠가 나도록 뛰어다니고 전화를 돌리고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지만 최대한 인정하기 싫었던 사실들을 정리해 왔다.
"반도체 기업들은 전부 다 서진파 운드리 흑기사로 참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닌텐도가 말라 죽든 말든 부품 공급은 없을 겁니다."
"마이크론은 어떤가?"
미국이 자국의 반도체 자급화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호흡기를 달고 연명 중인 마이크론.
전쟁 등 비상상황으로 서진파운드리가 마비될 때를 대비한 최후의 보험.
후루카 순타로 사장은 거기에 희박한 기대를 걸어 보았다.
"마이크론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은 대부분 PC와 서버용이라서 우리 스위치 기종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나마 몇 개 호환 가능한 부품들마저도 주문회사들에서 난색을 표했습니다. 마이크론이야 주문한 대로 생산만 해주는 거라서 중립이고요."
"마이크론 공장도 틀렸습니다."
그렇게 기대는 무참히 짓밟혔다.
수영그룹은 적대적 인수합병을 통보해 놓고는 주식 모집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닌텐도가 망하기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공장만 돌리지 못하게 만들면 닌텐도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으리라 자신하는 것이다.
닌텐도 측은 다른 것보다 그런 느긋한 태도가 더 분하고, 약이 바짝 올랐다.
절대로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반감이 바득바득 솟구쳤다.
"중국 반도체를 씁시다. 어차피 우리에게 남은 길은 이제 그것뿐이오."
몇몇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닌텐도는 다수의 찬성으로 중국 반도체를 선택했다.
***
계약을 맺자마자 중국 반도체가 베트남 공장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중국은 사흘도 안 돼서 닌텐도가 주문한 물량을 모두 공급했다.
닌텐도는 엔도비 등 미국 기업에서 공급한 기존 재고는 잠시 킵해두고, 중국이 보내온 부품들을 먼저 생산라인에 투입했다.
"처음 쓰는 부품들이라서 생산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릅니다. 일단 이것들을 먼저 소진하면서 문제점이 나타나는 것을 체크해야 합니다."
아직 기존 재고는 4개월의 시간이 있다.
시간이 있는 상황에서 차근차근 문제에 부딪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좋은 방법.
뒤가 없는 상황에서 중국 반도체에서 문제가 터져 버리면 그게 진짜 악몽이다.
"기존 미국제 재고들은 AS 용도로 아끼는 게 효율적입니다."
그리하여 중국제 부품이 들어간 스위치 기종이 먼저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베트남까지 날아간 닌텐도 본사 직원들은 공장에서 막 뽑혀 나온 스위치 기종 중에서 무작위로 표본 100개를 추출했다.
그리고 게임팩을 깔거나 다운로드를 받아서 이것저것 게임을 실행해 보았다.
"아! 돌아갑니다!"
"게임이 멀쩡히 돌아갑니다! 다행입니다!"
"프레임 드랍 현상이 이따금씩 발생하긴 하지만 이 정도는 양호한 수준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불량률도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원래 모델보다는 성능이 조금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불량률도 나쁘지 않았고,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무엇보다 가격이 엔도비 것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했다.
중국에서 첫 고객 디스카운트를 과감히 적용해 준 덕분이지만, 이정도면 오히려 엔도비 부품을 쓸 때보다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이대로 출시한다."
***
시게이 마모루는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드디어 마련한 신형 닌텐도를 행복하게 뜯고 있었다.
계정을 만들어 닌텐도 가입을 하고 E숍에 카드도 등록했다.
그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상 닌텐도를 손에서 떼어놓지 않은 채, 어디를 가더라도 들고 다니며 게임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은행 통장을 확인한 시게이 마모루는 뒤집어지고 말았다.
"이게 뭐야? 해외 결제라니! 난 이런 걸 결제한 적이 없는데!"
자그마치 300만 엔이 넘는 돈이 모조리 해외결제로 통장에서 빠져나가 있었던 것이다.
입출금 문자통지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은행 통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다음 이사 갈 때 보증금에 보태려고 아득바득 건드리지 않고 묵혀둔 돈이 날아간 상황.
시게이 마모루는 급히 은행을 찾아가서 항의했다.
"모두 정상결제입니다."
"아니라고요! 난 이런 걸 결제한적이 없단 말입니다!"
"하지만 저희 전산자료에서는 정상 출금이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대체 어디냐고요! 어디서 내 돈을 빼갔냐고요! 그걸 말해달라니까! 이건 금융 범죄라고, 범죄!"
"그건 저희가 말씀드릴 수 없어요. 검찰에서 영장을 가져오셔야 해요."
관료제의 단점만 축약해 놓은 화신이라는 은행에서는 폭력 충동이 일어날 만큼 고지식한 태도로, '안 된다', '모른다', '확인해 줄 수 없다', '영장을 가져와라' 이 말들만 반복했다.
"국가! 어느 나라에서 내 돈을 빼갔는지 그럼 그거만이라도 말해!"
"아일랜드라고 나오는데요."
이와 같은 일은 그에게만 일어나지 않았다.
닌텐도 신형 기종을 구매한 다른 유저들도 모두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통장 연계 카드를 닌텐도 E숍에 등록을 해놓았다는것.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홈페이지 고객센터에서 난동을 부렸지만, 닌텐도 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 E숍 보안은 완벽합니다. 전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한 번 점검을 해봤는데 외부에서 털어간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E숍의 보안은 완전무결합니다."
"결국 고객들이 카드 정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카드 정보가 흘러나간 것은 우리 닌텐도 E숍이 아닙니다."
"우리 닌텐도에 이렇게 따질 시간에, 어디에서 카드 정보가 새어나갔는지를 다시 알아보는 게 피해구제에 더 도움이 될 겁니다."
혹시나 중국이 무슨 수작을 부린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E숍은 정말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 잡듯이 로그를 뒤졌지만 모든 게 정상이었다.
닌텐도는 수천 명에 달하는 소비자들이 뭔가 실수를 한 거라고, 그렇게 마음 편하게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