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90화
276장 미끼를 물었다(3)
하수영과 프라임건설은 정말 가지고 있던 모든 광운제철소 지분을 주식장에 던져 버렸다.
다 합치면 50%가 넘는 물량이었기에, 광운제철소 주식은 거래가 마비돼버렸다.
당연히 더 파는 사람은 없었고, 하수영이 손에서 내려놓은 마당에 그것을 덥석 사는 사람도 없었다.
호가만 끝없이 내려가며, 거래 자체가 말라붙어 버리고 말았다.
-아모른직다 하수영 형님께서 마음을 돌려주실 거야
-꿈 깨라 농민회장님의 발걸음은 태산과도 같아서 좀처럼 꿈쩍도 하지 않지만 일단 한 번 움직이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음이요
-살려주세요 여기 30층에 사람 있어요
-50층에도 사람 있는데요
-60층에도 있습니다ㅠㅠ
철강 관련주는 모조리 박살이 나버렸다.
조선소만이 철강산업의 고객은 아니지만, 반수성 금속이 철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막대했다는 방증이다.
-근데 왜 관련 철강주들까지 모조리 박살이 나는 거임? 광운제철소하나만 박살 나야 하는 거 아닌가?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지금 수영그룹 계열사 중에서 상장회사가 몇 개나 되는지 한 번 알아보고 와라.
-전부 다 상장회사 아니었음?
-상장회사는 개뿔. 거의 대부분이 농민회장님 단독소유의 유한회사 법인이고, 주식회사는 몇 개 안 된다. 프라임컴퍼니도 회사가치 수십조 원넘는 주식회사인데 상장은 안 되어 있음.
-주주라고는 전성렬 회장, 정서희부회장, 하수영 농민회장님 이렇게 달랑 셋이 전부ㅎㅎ
-그리고 농민회장님 손이 오죽 크시냐? 농장 전기 자급화한다고 핵융합 발전소를 턱하니 만들어서 국내원전 카르텔 굶어 죽게 만든 분이시다
-철강회사 직접 차리면 국내 철강업체들은 이제 다 끝난 거지 ㅇㅇ 앞으로 수영철강에서 전부 다 해먹을 듯
-철강 제철주는 가능한 빨리 손털길 권한다 이미 답 없어
탈출 러시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더 큰 프리미엄을 노리고 광운제철소 주식을 잡고 있던 주주들은 땅을 치고 후회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제는 탈출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팔고 싶어도 아무도 사질 않으니.
누군가 사주는 사람이 있어야 거래가 성립되지 않겠는가.
[수영그룹, 전기에 이어 철강시장도 접수하나?]
[반수성 처리 금속이 저렴해지면 향후 우리나라 조선소의 수주 경쟁력도 지금보다 더욱 증가할 듯.]
[철강계에는 다소 악재일 수 있으나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큰 이익]
[박부성 정부, "안타깝지만 투자자 개인의 판단에 의한 시장 조정으로 생각된다. 섣부른 정부의 개입은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라는 입장 밝혀. 정부의 개입은 없을 것.]
전국의 눈과 귀가 온통 철강주, 조선주에만 쏠려 있었다.
수영그룹에서 거액 프리미엄을 받는다는 꿈이 좌절된 투자자가 한강에 투신했다는 기사가 나가고, 대중의 관심이 더욱 폭발적으로 들끓었다.
(투신이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방송국에서 전문가 패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토론을 열어, 가칭 '수영철강'이 국내 산업계에 끼칠 영향과 변화를 논하기 바빴다.
이러는 동안에도 개헌의 공고일은 차근차근 경과되고 있었다.
개헌안은 20일 이상 공고 후에는 국회의결을 붙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지금 국민들 대다수는 개헌안의 내용을 차근차근 뜯어볼 만한 여유를 갖고 있지 못했다.
모든 언론들이 합세해서 철강과 조선 관련 보도만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
소수의 깨어 있는 이들은 개헌안내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사실상 내각제 개헌이나 마찬가지잖아?"
"조항을 보면 그냥 총리가 실제 집 주인이고, 대통령은 그냥 외부 영업사원인데?"
"아니, 총리가 내치를 전부 휘두르고 대통령은 전혀 권한이 없는데, 그런 총리를 국회에서 의원들끼리 투표로 뽑는다는 게 말이 돼?"
"이건 사실상 대통령 직선제 폐지나 다름없는 악법이라고!"
"얼마나 큰 피를 흘려서 따낸 대통령 직선제인데!"
그들은 주변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며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대통령 직선제 폐지라뇨? 여전히 대통령은 국민들 손으로 뽑게 되어 있는데요?"
"아니, 그게 이름만 대통령이지, 예전의 대통령하고는 전혀 다른 거라 고요."
"다르긴 뭐라 달라요? 대통령은 국민투표로 뽑는다, 이렇게 조항이 딱 있다고 되어 있는데요?"
"글쎄 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국방과 외교뿐이라고요. 내치는 전혀 손을 못 대요. 이게 무슨 대통령입니까?"
"아, 난 그런 거 몰라요. 먹고살기도 바쁜데 왜 그런 거까지 신경 써야 돼요?"
국민 주권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은 열심히 주변을 설득하러 다녔다.
하지만 그들의 머릿수는 소수였고, 스피커도 형편없었다.
그에 비해서 정부와 국회는 10대 신문사와 주요 방송국 등 빵빵한 출력의 스피커를 무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철강주 이슈로 개헌을 덮어두기는 무리일 거 같습니다."
"이 이상 개헌을 숨겼다가는 오히려 이상함을 느끼는 국민들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개헌을 조명해야 합니다."
"시간은 충분히 끌었습니다. 이제 오늘이면 국회 본회의 결과가 나옵니다."
"국회 본회의 통과가 나오는 즉시 일제히 개헌안 이슈를 터뜨리도록 합시다. 그래야 국민투표에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어떤 변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법에서 정해진 개헌안 공고 20일이 끝나자마자 국회에서는 곧바로 본회의를 열고 개헌안 투표를 진행했다.
기명투표로 진행된 개헌안은 기권 3명을 제외하고, 297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가결되었다.
기권 3표 중 1표는 바로 로한이 던진 표였고, 인터뷰를 위해 그에게 기자들이 몰렸다.
"부끄럽지만 저는 행정체제의 개편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관해서는 기권표를 던졌습니다. 저보다 더 잘 아시는 의원분들이 옳은 결정을 해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조마조마해서 그의 인터뷰를 지켜 본 여야 중진 의원들은 안도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저는 다른 누구보다도 국방과 과학기술 전문가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두 영역에 있어서는 절대로 기권이나 포기, 판단 보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들께 약속드립니다."
방송을 지켜본 시청자들은 로한에 관해서 한층 더 큰 호감을 품었다.
"그래, 국회의원이라고 무조건 모든 분야에 다 해박할 수는 없는 법이지."
"애초에 로한은 국방과 과학 발전을 위해서 출사표를 던진 거잖아? 그리고 지금까지 자기 분야에서는 다른 299명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성과를 이뤘고 말이야."
"오히려 잘 모르는 분야에 관해서는 솔직히 인정하고 기권하는 게 더 대단해 보여. 어설픈 찬반표로 영향을 끼치지 않겠다는 거잖아."
"역시 똑 부러지는 사람이네. 행정쪽 경험도 충분히 쌓으면 나중에 진짜 아무도 상대 안 되는 대선후보감이 되겠어."
***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언론에서는 일제히 집단포문을 열었다.
언론들은 개헌안이 담고 있는 조항중 '대선 연령 제한 조항 삭제'를 놓고 하루 종일, 몇 날 며칠이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국민들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기 위함이다.
-만 40세 이상으로 대선 출마 연령을 개헌으로 고정해놓은 취지는 이해한다. 옛날에는 그 정도 나이는 되어야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 거라는 당연한 인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변했다. 30대에도 충분히 대통령 직무를 수행 할 수 있는 경험과 지식, 도량을 갖춘 인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장 고개를 들어 청담동을 보아라. 하수영 의원과 로한 의원, 지금이라도 그들이 대통령직을 맡는다면 누구보다 더 뛰어난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어떤 대선 후보가 젊은 나이로 인해 연륜이 부족하여 대선감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민들이 투표에서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면 그만이다.
-헌법에서 아예 연령 제한으로 못을 박아버리는 것은 그런 국민들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위헌적 제도라 할 수 있다.
-국민들은 현명하다. 후보자가 대통령감인지 아닌지는 투표로서 판가름을 해줄 것이다. 헌법에서 정하는 출마 요건은 한국 거주 기간 등 최소한의 영역에서 그쳐야만 한다.
-개헌이 통과되면 우리는 당장 다음 대통령으로 하수영 의원이나 로한 의원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이냐.
언론들은 그렇게 대통령 연령 제한 조항 삭제를 끊임없이 들먹이며,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대충 듣고 있으면 다음 대선에 당장이라도 하수영 대통령, 혹은 로한 대통령이 탄생할 것만 같았다.
그 둘이 대선 출마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은 채, 그렇게 국민들의 정신을 현혹시켰다.
"그러니까 이 개헌안이 국민투표로 확정이 되어야 로한 의원이 다음 대선에 나올 수 있단 거지?"
"그렇다니까. 여의도에서는 로한 같은 뛰어난 인재가 나이 제한 때문에 대선에 나오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서 이번 개헌을 밀어붙인 거래."
"헐 웬일로 정치인들이 기특한 짓을 했대?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근데 대통령 하면 정계 은퇴해야 하는 거 아니야? 로한이 너무 빨리 정치판을 떠나면 이 나라로서 큰 손실 아닌가?"
언론들은 그 부분에 관해서도 빈틈없이 변명거리를 준비해 두었다.
[돋보기로 들여다본 개헌안,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무엇인가?]
[대통령 연령 제한 조항 삭제, 그리고 4번까지 중임 가능한 4년 중 임제가 바로 그것이다. 즉 국민들의 선택만 꾸준히 받는다면 16년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대통령직 장기 수행으로 인한 부작용? 걱정하지 마라. 국민들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더 맡길 만한 인물이면 4번 연속 대통령을 시켜줄 것이고, 아니다 싶으면 1회만으로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다.]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을 유연하게 보장하는 개헌안, 오로지 국민의 의사결정권만을 위한 헌법.]
법 전문가들은 매일 같이 패널에 얼굴을 들이밀고 개헌안의 좋은 점을 홍보, 아니, 선동하기 바빴다.
-로한 의원이 만약 대통령 4선을 마치고 영예롭게 물러난다고 가정해 봅시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로한 의원은 다시 국회의원으로 출마해서 국무총리를 맡아 대통령의 내정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이 개헌은 유능한 일꾼을 국민들이 거듭 부릴 수 있고,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는 즉시 쫓아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습니다.
-현명한 국민들에게 어울리는 현명한 헌법인 것입니다.
온 나라가 그렇게 힘을 모아 떠들어대고 있으니, 많은 국민들이 정말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특히 로한이 당장에라도 대통령이 되고, 또 대통령직을 끝난 후에는 국무총리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상상으로 다들 가슴이 부풀었다.
"쓰레기 언론과 돈에 눈먼 전문가 들이 떠드는 말에 속지 마세요! 개헌안 대통령은 내정에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임기 내내 해외 순방이나 다니는 허수아비란 말입니다! 로한을 정말 그런 자리에 앉힐 겁니까!"
"국무총리? 로한이 하고 싶어도 다른 의원들이 표를 주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 로한은 국회에서 가장 인기가 많잖아요? 당연히 다른 의원들이 로한을 국무총리로 밀어주지 않을까요?"
"인기가 많은 건 자기들 권력에 도움이 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로한이 국무총리를 원한다면! 아무도 그에게 표를 주지 않을 겁니다! 그게 바로 정치라고요!"
그러나 스피커의 규모, 출력 차이는 절대적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언론의 로한팔이에 넘어가 개헌을 지지하게 되었고, 결국 최종 국민투표에서 56.1%로 개헌이 성사되었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그 날, 청와대에서는 은밀한 축배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