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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189화 (1,189/1,270)

프랜차이즈 갓 1189화

276장 미끼를 물었다 (2)

박부성 대통령은 하수영과 원래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그가 국회의원이던 시절에는 전혀 체급이 맞지 않아 감히 다가오기도 버거웠었다.

하수영이 중앙정치판에 진출했다면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청담동이라는 지방 텃밭에 자기만의 성을 쌓은 호족 놀음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역구도 완전 생판 다른 국회의원이 하수영을 느닷없이 찾아가기에는 아무래도 외부의 시선이 너무 뻔했으니까.

전 현역 군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박부성은 하필 육군 출신이었다. 그것도 예편한 지 제법 오래된.

게다가 하수영은 해군 전력 증강만 살뜰하게 챙겼기에 육군 장성들로부터 상당한 원망을 받았다.

특별히 육군을 박대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차별화된 대우 때문에 육군 스스로가 소외감을 느꼈던 것이다.

공군은 육군과는 입장이 조금 달랐다.

해군을 질시한 나머지 흑화하고만 육군과 달리, 공군은 해군 항공전력에 포함될 여지가 컸으니까.

오죽하면 공군 장성들의 가장 큰 꿈이, '하수영 함대'의 항공사령관으로 전출되는 것이었을까.

해군을 부러워하면서 자신들도 그 이너서클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 이게 딱 공군의 포지션이었던 것이다.

육군과는 확실히 달랐다.

-박부성은 왜 취임하자마자 수영그룹에 저렇게 퍼주지 못해서 안달인가?

그리고 정서희는 오늘 그 답을 얻었다.

"어떤 내용의 개헌이죠? 오래전부터 준비한 거라면 로한을 위해서는 아닌 거 같은데."

"로한 의원님을 위한 조항도 삽입될 예정인 거 같습니다."

"대통령 출마 나이 조정이요?"

"네. 대통령 출마 연령 조항을 아예 삭제할 모양인 듯합니다."

"당연히 보여주기용 조항 삭제죠?"

"아마도 그럴 겁니다. 로한 의원을 위해서 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목적은 개헌을 반대하지 않게 하기 위한 타협이죠."

"그리고 개헌 홍보도 출마 연령 제한 조항 삭제에 무게를 둬서 떠들어 댈 거고요."

"그럴 겁니다. 언론사들은 이미 그들과 한 몸이니까요."

그들이 개헌을 추구하는 진짜 목적은 숨긴 채, 로한을 위한 연령 조항삭제만을 적극적으로 강조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개헌 조항을 일일이 읽어보지 않는다.

읽어보더라도 이게 궁극적으로 어떤 효력을 발휘할지 추론할 사고능력이 없다. 생각을 하는 데 시간을 쏟아붓지도 않는다.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 매스컴을 통해서 전달하는, 필터링되고 가공된 해석을 '자기 판단'이라 믿고 따를 뿐이다.

때문에 언론을 쥐고 있는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대중은 그게 옳은 줄 알고 따르게 된다.

소수의 깨어 있는 자들이 뭉쳐서 일어나 봤자, 그들의 목소리가 구석구석까지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 수영그룹 입장에선 개헌을 반대할 이유가 없네요. 전력망 인프라도 받아먹었고, 이제 광운제철소도 완전히 넘겨받기 직전이니."

"우리 그룹 입장에서야 좋은 일이죠. 국민들은 좀 다르겠지만요."

"그래서 박부성과 여야에서 개헌을 통해 바라는 게 뭐죠?"

정서희는 머릿속에 답이 그려지면서도 확인을 위해 물었다.

"쌍두정부제입니다."

"대통령은 외치를, 총리가 내치를 하는 형태인가요?"

"네.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을 담당하고, 그 외 내치는 총리가 담당합니다. 총리는 대통령이 지명하지 않고, 국회에서 의원들 투표로만 선출하고요."

"내각제라고 하면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게 뻔하니까 겉 포장만 바꿨네요."

"사실상 내각제죠. 대놓고 추진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한 번 우회하는 겁니다."

내치를 담당하는 국무총리가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즉 현재의 대통령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은 그저 해외 순방이나 다니는 얼굴마담으로 전락할 뿐.

"이 개헌이 우리한테 불리할 게 있을까요?"

"거의 없다고 봅니다. 로한 의원님의 대통령 출마 연령 제한이 풀리는 것도 그렇고, 의석을 장악하면 오히려 쉽게 총리를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저들이 국정권까지 순순히 내주려 하지는 않을 텐데요."

"예. 아마도 로한 의원님이 국정권까지 욕심을 내면 결사반대로 나올게 분명합니다. 근데 애초에 거기까지는 관심이 없으셨던 거 아닙니까?"

"맞아요. 수영 씨 말로는 로한은 그냥 권력에서 나오는 변수를 만들지 않는 안전장치로 족하다고 그랬어요."

그렇기 때문에 로한은 두루두루 친한 의원들을 많이 만들고는 있지만, 당이나 계파 조성을 따로 추진하지는 않는다.

"일단 수영 씨부터 만나야겠어요."

***

정서희는 청담동으로 이동했다.

하수영은 이야기를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을 뿐이었다.

"수영 씨 예상대로네요. 수영 씨를 위해서도, 국민들을 위해서도 아니에요. 그냥 권력을 추구했을 뿐인 거죠."

"제가 그래서 여의도에 얼씬도 안합니다. 아우, 쪼끄만 것들이 뭐라도 감투 좀 써보겠다고 하루 종일 시끄럽게 쫑알 거 생각하니 벌써부터 귀가 찡찡거려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뭘 어떻게 해요. 지들이 알아서할 문제지. 저한테 해가 되는 것도 없는데."

"수영 씨 따르는 지지자들만 전국에 수백만 명이 넘잖아요. 수백만이 넘는 표면 대통령도 결정할 수 있는 궁극기인데, 개헌안이 통과되면 수영 씨가 가진 무기가 힘을 잃잖아요."

"애초에 대통령 선거에 감 놔라 배놔라 할 생각 없었어요. 그럴 거였으면 진작 당 하나 새로 만들었죠."

"……."

"이번 생은 권력 놀음에 별로 신경쓰고 싶지가 않아서요. 농사짓기 바쁩니다. 우주농장 화성농장 지으려면 갈 길이 구만리인데."

"음, 알았어요. 그럼 우리도 거기에 맞춰서 움직일게요."

"우리한테 피해만 안 오면 됐죠. 복잡한 권력 놀음에 휘말리지 말고, 먹거리 사업이나 열심히 합시다."

"그럴게요. 그래도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계속 지켜봐도 되죠?"

"그럼요. 간섭은 안 해도 관찰은 해야죠."

정서희는 풀썩 웃었다.

"뭐 근데 우리가 할 거라고는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정부가 주는 선물이나 얌전히 받아먹기만 하면 되네요."

말이 선물이지,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바로 소비자들이다.

전력 시장을 수영조명이 제패함으로써 소비자는 전기료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되었다.

무선 통신도 그랬고, 이제 철강 산업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근데 만약에요, 쟤들 저러다가 이 나라 폭삭 망하면 어떡해요? 보통 위정자들이 권력 놀음에만 심취하면 결국 망하고 말던데."

"그럼 저점매수 들어가면 됩니다."

정서희는 맥이 탁 풀린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가만 보면 수영 씨는 되게 어려울 것 같은 문제를 참 쉽게 바라보고 해결하는 거 같아요."

"이게 다 연륜이죠."

"뭐래요. 나보다 어리면서."

하수영은 잔잔한 미소를 띠고 그녀의 눈을 직시했다.

"정말 그럴까요?"

"아, 몰라. 그런 눈빛 하지 마요. 암튼 알았어요. 여의도에서 국에 말아 먹든 비벼 먹든 그냥 놔둘게요."

하수영이 서해건설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탄생한 프라임건설은 유한회사로 변경한 지 오래다.

지금은 식품사업과 달리 프라임건설그룹이라고 따로 분리되며, 프라임건설 밑에 여러 개의 철강, 제철업체들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토목,건축, 건설 자재에 관한 회사들을 기회가 나는 대로 인수해서 덩치를 키우고 있던 이 그룹이 광운제철소 인수합병에 뛰어들었다.

[수영그룹, 광운제철소 지분 무차별 모집 중!]

[3개월 평균 거래가에 15%의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

[개인 주주들, 주식을 꽉 쥔 채놓지 않고 있어. 더 높은 프리미엄을 받을 거라는 심리?]

문제는 주식이 투자자들 주머니에서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

다들 주식을 쥐고 있으면 막판에 상장폐지를 위해서 수영그룹이 더 많은 프리미엄을 주고 살 거라는 기대감에 차 있었다.

때문에 공개 모집으로 긁어모으는 주식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빠르게 늘어나지도 않았다.

결국 시간 안에 목표로 삼았던 양을 모으는 데에는 실패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이도공 회장이 전화로 사과를 해왔고, 하수영은 쾌활하게 반응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충분히 이럴 수 있는 거죠."

-다른 제철소 인수를 알아볼까요?

"한국에 광운제철소급 제철소가 또 어디 있다고요? 백두제철소도 한참 급이 딸리는데. 그리고 백두그룹도 그거 팔지도 않을 거고."

-바닥부터 아예 새로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자신 있어요? 그쪽은 진짜 맨주먹백지상태로 시작해야 할 텐데."

-의원님이 원하시는 거라면 당연히 해야죠. 돈은 제한 없이 들어갈 겁니다만.

"돈이야 뭐 그러라고 있는 거고요. 좋습니다. 이도공 회장님 각오를 확인했으니 저도 믿고 맡길 수 있겠어요."

하수영의 음성이 심상치 않자 이도 공도 바짝 긴장했다.

-혹시 다른 계획이 있으셨습니까?

"철강의 원조는 바로 미국이죠. 미국이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미국이요?

"네. 제가 미국하고 좀 많이 친하잖아요?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아낌없이 보내서 노하우를 전수해 주겠다고 합니다. 제철소 짓고 돌리는데 시간을 절약할 수 있죠."

-그렇다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아, 그럼 광운제철소에서 생산하는 반수성 금속들은……?

"제철소가 1, 2년 만에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니, 그동안은 계속 생산을 하죠. 새 제철소가 지어지면 그때부터는 계약 종료라고 미리 통지를 해주고요."

-오늘 바로 알려주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몇 년 일찍 대비할 시간을 줘야 신사죠. 비즈니스가 꼭 야비하고 비열하고 처절하게만 해야 하란 법은 없습니다."

-그럼 광운제철소 주식은……?

"아, 제가 쥐고 있는 건 오늘 바로 시장에 전부 던질 겁니다. 프라임건설에서 확보한 주식도 전부 던져 버리세요."

-주가가 대폭락하겠군요. 이거 광운제철소만으로 끝나지 않겠는데요.

"내가 필요 없어져서 공개시장에 내다 판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이것도 결국 투자일 뿐이죠.

하수영은 쥐고 있던 광운제철소 주식을 모조리 시장에 내던졌고, 사이드카가 발동할 정도로 큰 충격이 닥쳤다.

증자를 거듭 통해 만든 50%의 어마어마한 물량이 쏟아져 나오자, 철강 관련주는 일제히 하한가를 찍어버렸다.

-머임? 대체 무슨 일이야?

-야이 X발. 프리미엄 노리고 끝까지 광운제철소 쥐고 있던 놈들 때문에 우리 철강 회장님께서 광운제철소에서 아예 손 떼시겠다잖아!

-지금 반수성 금속 광운제철소에서만 찍어내고 있는데 이거 생산 중지하면 타격 엄청나다.

-백퍼 생산 중지하겠지?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손해 감수하고 주식을 한꺼번에 내던지겠어? 더러워서 더 이상 관여 않겠다는 퍼포먼스 아니겠냐?

-근데 계약이 있을 텐데 하루아침에 생산 안 하겠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프라임건설그룹에서 이도공 회장의 공식발표에서 찾을 수 있었다.

"프라임건설그룹은 신규 제철소를 건설하여 고품질의 철강제품을 직접 생산할 계획입니다. 그때까지는 반수성 금속이 광운제철소에서 생산될 예정이니, 투자자 및 고객 여러분들은 아무런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게 왜 아무런 걱정을 안 할 일이야. 광운제철소가 똥값 되게 생겼는데.

-시발. 15% 프리미엄 받고 팔아치울걸. 지금 가격 떨어지고 팔리지도 않고 아 미치겠다 진짜.

포스코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증시시장을 휩쓸었고, 언론은 매일 국내 철강 시장이 가진 불안함을 부채질했다.

그사이, 정부에서 발의한 개헌안은 조용히 대국민 공고에 들어갔다.

최대 60일 이내에 이뤄질 의결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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