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87화
276장 긴급 대선 (7)
새 정부의 행보는 재계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봤다.
출범하자마자 노골적으로 수영그룹의 편의를 봐주는 법안을 벌써 2번이나 연달아 발의했고, 모두 통과되었다.
재벌들 입장에서는 수영그룹이 새정부와 얼마나 친한지 놓치지 않고 확인해야 했기에, 각 그룹의 기획부서는 상시 날카로운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회장님, 박부성 대통령은 최소한 한국 전체에 핵융합 플랜트를 깔려는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전력사업을 통째로 수영그룹에 선물로 주려는 거 같습니다."
"박부성이 정말로 수영그룹에 아무런 지원도 받지 않은 게 확실한가?"
"정치 자금 이동 내역은 없습니다. 애초에 수영그룹은 비자금을 전혀 안 만듭니다. 1원 하나까지도 모두 인공지능을 통해 투명하고 정확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도움이나 후원을 받은 것은?"
"아직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직, 간접적으로 들어간 후원은 없습니다."
기획실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보고를 이었다.
"사실 하수영 의원은 굳이 박부성에게 배팅을 할 필요가 없기도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자기 계파인 이서환 부산시의원을 얼마든지 대통령으로 만들어줄 수 있었으니까요."
수영그룹에 직접 기대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다 합치면 무시무시하다.
하수영이 본격적으로 여의도에 뛰어들면 대통령은 무조건 그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여의도 터줏대감들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박부성이는 이미 당선이 됐잖나. 5년 단임제인데 이제 뒤를 신경 쓸 것도 없을 텐데. 아니면 후불제로 큰 거 하나를 약속받았을까?"
그래서 핵융합 플랜트를 전국에 깔아버리려고 하는 걸 수도 있다.
기획실장이 조심스럽게 다른 생각을 내놓았다.
"법사위 심사 중에서 로한 의원이 국내전력사업은 너무 작아서 흥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수익 몇조 원 남겨봐야 무상으로 사들이는 전투기 몇 대 값이라고 말입니다."
"젠장. 왜 내 밑에는 그런 놈이 없는 거지. 죄다 월급만 축내는 모지 리들밖에 없다니."
듣고 있는 임원들을 움찔하게 만드는 투덜거림이었다.
"회장님 말씀처럼 후불제일 수도 있습니다. 퇴임 후 뭔가를 바라고 전력사업을 수영그룹에 선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전력사업은 시작일 뿐이라는 소리겠군."
"예, 맞습니다. 로한 의원이 한 말은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걸 돌려서 전달한 걸 수도 있습니다. 더 큰 것을 갖다 바쳐라, 그래야 퇴직금을 제대로 챙겨주겠다,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수영그룹이 대통령 퇴직금을 얼마까지 챙겨줄 수 있지?"
기획실장은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암산을 한 후 얼른 대답했다.
"100조 원까지는 챙겨줘도 수영그룹 입장에서는 티도 안 날 겁니다."
"100조 원? 어이구야."
회장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혀를 찼다.
아무리 재벌이라고 하지만 100조원은 어마어마한 돈이다.
특히 회삿돈도 아닌 개인 돈이라는 범주에서 봤을 때.
재벌 입장에서도 로또나 다름없는 수준.
"박부성이가 정말 그 정도 퇴직금을 바란다면 누가 뭐라던 간에 작정하고 퍼주려고 하겠구먼."
"전력사업은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정부에서 퍼줄 만한 게 또 뭐가 있지? 그중 우리 그룹에 손해가 될만한 건?"
"항공우주사업, 만능 랩팩토리 투자, 농수산 시장 지원, 반도체가 일단 있습니다. 철강건설도 퍼줄 만한 여지가 아직 큽니다. 포스코 광운제철소는 부유력이 좋은 반수성 철강으로 엄청난 돈을 벌고 있지만, 하수영 의원은 제철소 지분을 50%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광운제철소 남은 지분도 죄다 몰아주려고 하겠군."
"예. 그리고 의료사업도 있습니다."
"앞으로 대대적인 민영화가 시작되겠어."
퇴직금을 노리고 수영그룹에 몰아주기 위한 엄청난 민영화 열풍.
기득권층 재벌의 시선에서는 이런 식의 해석이 오히려 합리적이고 타당했다.
***
"진짜 퇴직금을 바라고 이렇게 선제적으로 퍼주는 걸까요?"
"선제적 퍼주기, 워딩 좋네요."
"요즘 신 정부 행동이 너무 젠틀해서 좀 적응이 안 돼요. 뭐만 했다 하면 그냥 오케이고, 결과도 거의 즉석으로 나와요. 전부 문제없음이고요."
정서희는 식품사업이 편해져서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순탄해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프라임컴퍼니는 예전에도 대체 불가능성 때문에 사업 자체는 잘 나갔지만, 정부와 삐걱삐걱했기 때문에 행정처리를 할 때만큼은 일정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그런 게 없다.
말단부터 고위직까지 모든 공무원들이 알아서 설설 기고 있어서, 안 그래도 순탄했던 식품사업이 하늘을 나는 게 아니라 우주를 유영하는 수준으로 잘 나가고 있었다.
"수영 씨는 대통령이 좋은 뜻으로 하는 건 아닌 거 같다고 했죠?"
"네. 정말 좋은 사람이면 저 자리까지 살아서, 그것도 수많은 지지를 받으며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살아남질 못해요. 결국 중간에 제거돼요."
"저도 동의해요. 지금 여의도 중진들은 이상하게 대통령에 호의적이에요. 허니문 기간이라고 생각을 해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에요."
"원래 여의도에 진출할 때부터 주변 평판은 좋았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지금 국회는 전부 고인물이잖아요."
지금 여당과 야당은 원래 한 몸이었는데, 경쟁당이 자폭하여 소멸하면서 내부 분열과 분당을 겪으면서 새로운 여야 체제가 만들어졌다.
그 외 군소정당들은 필요에 따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를 반복하면서 자기들 몸값을 올리는 데 주력했고.
옛날에는 카메라 앞에서 여야가 싸우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지금은 항상 화기애애하고 분위기 좋은 편이다.
의원들 개인끼리, 혹은 소수 그룹끼리 가끔 서로 싸우는 경우는 있어도, 정당 차원에서 큰 대립은 없어진 지 오래다.
애초에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으니까.
"저 너무 궁금한데."
"에이, 가만히 지켜보면 나온다니까. 진득하게 기다려요. 어차피 3년 안에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레임덕을 고려하면 대통령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3년 안에 해내야만 한다.
"3년을 어떻게 기다려요. 너무 궁금한데."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내가 빨리 스킵할 수 있게 해주죠."
"방법이 있어요?"
"간단합니다."
하수영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저쪽이 마련한 잔치판으로 걸어들어가면 됩니다. 그럼 알아서 상차려서 내올 겁니다."
상대가 선물을 무슨 의도로 준비했는지 그 꿍꿍이가 알고 싶다?
그럼 그 선물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줘라.
그러면 상대는 더욱 신이 나서 다른 선물을 추가로 준비할 것이고, 그것도 거듭 받아줘라.
상대가 이 정도면 충분히 선물을 했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선물을 바친 의도를 보여줄 것이다.
하수영은 정말 오랜만에 직접 국민들 앞에 서기로 했다.
기자들은 부르지 않고, CVN케이 블에 생방송으로 출연해서 특별공식 보도를 내보내기로 했다.
대국민발표나 마찬가지이지만, CVN케이블은 하수영의 요구대로 그런 낯간지러운 표현은 생략했다.
"제가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그런 것도 아니고 일개 기초의원인데, 대국민발표라고 하면 뭔가 낯 뜨겁습니다."
아무튼 하수영이 생방송으로 직접 중대발표를 한다고 하니, 기자들도 보도를 위해서 청담동 휴민트타워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빌딩 입구에서부터 제지당했다.
"못 들어가십니다. 못 들어가요."
"아니, 왜요? 우리는 기자란 말입니다! 진실을 보도할 권리가 있습니다!"
"진실은 다른 데 가서 찾으시고요, 여기는 사유지라서 못 들어갑니다."
"하수영 의원은 사인이 아니라 공인입니다! 기자들의 질문과 취재를 거부할 권리가 없습니다!"
"있습니다, 있어요. 지금 안 물러가시면 바로 경찰 부릅니다."
결국 기자들은 어느 누구도 휴민트타워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은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자유롭게 드나드는 CVN케이블 시사보도국 직원들이 부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
"의원님, 준비됐습니다."
"음,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나가면 됩니까?"
"예, 바로 신호 드리겠습니다."
이미 CVN케이블은 몇 분째 빈 단상을 생중계로 내보내면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었다.
CVN 직원들조차도 하수영이 오늘 무슨 발표를 하는 건지는 알지 못했다.
"이번에 새 정부가 전력사업 규제 풀어준 거 때문이 아닐까요?"
"에이, 설마요. 수영그룹은 전력사업은 관심이 없댔어요."
"관심이 없는데 핵융합 발전소를 만들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면 서까지?"
"그거 연구개발은 별로 투자 안 했다던데. 로한 의원님 머릿속에서 사고실험 다 끝내고 만들기만 한 거라고 했어요."
"진짜 궁금해 죽겠네. 대체 뭘 발표한다는 건지."
드디어 하수영이 방송 카메라의 시선을 받으며 단상 앞으로 걸어 나왔다.
CVN 소속 카메라맨들은 쉴 새없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하수영의 사진을 찍었다.
하수영은 원고 한 장 없이 빈손으로 마이크 앞에 선 후 카메라를 똑바로 직시했다.
"역시 영화도 찍어본 분이라 그런지 카메라 앞에서 시선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시네요."
"뭘까. 뭘 발표하는 걸까."
"아우, 두근두근해."
마이크를 느긋하게 살피는 등 여유로운 제스처와 약간의 정적으로 주의를 끈 후, 하수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수영조명 유한회사 유일사원인 하수영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원이란 회사원이 아닌, '주인'이라는 개념이다.
수영그룹은 프라임컴퍼니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사업체가 단독사하수영 체제의 유한회사로 되어 있었다. 혹은 그 유한회사의 자회사였다.
"수영조명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를 운영하는 전력회사입니다. 원자력 발전소와 똑같은 '핵'이란 글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나 오해하실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침 목소리가 시청자들의 귀를 착한 사로잡고, 시청률은 실시간으로 계속 올랐다.
UCC 등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중계방송을 내보내는 스트리머들도 파다했다.
"핵융합 발전은 절대 안전합니다. 발전소가 파괴되어도 그냥 고철이 될 뿐입니다. 방사능 누출도, 폭발위험도 없습니다. 온실가스도 배출하지 않으며, 물을 분해하여 얻는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에 바다가 존재하는 한 에너지가 고갈될 일도 없습니다."
헬륨 확보 및 핵융합 기술 완성혈안이 되어 있는 중국 등 다른 나라들도 이 방송을 눈이 빠져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인류가 현실적으로 가질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며 친환경적이고 반영구적인 에너지원, 그게 바로 핵융합 발전입니다."
하수영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원래 개인농장 전력 확보를 위해 핵융합 발전소에 투자했지만, 원자력 카르텔의 가격 장난에 고통 받는 소비자들의 고통을 더 이상 등한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VN케이블 시청자 채팅창에는 환호와 비명이 섞인 채팅이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국내 전력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습니다. 누진제? 없습니다. 한 달에 1,000kWh든 2,000kWh든 마음껏 펑펑 쓰십시오! 앞으로 우리 나라 속담은 이렇게 바뀌게 될 겁니다. '물 쓰듯이 쓴다'가 아니라 '전기 쓰듯이 펑펑 쓴다'로 말입니다. 약속드립니다."
하수영은 옅은 미소로 덧붙였다.
"핸드폰 데이터 요금제, 맘에 드셨죠? 전기료도 그것처럼 해드리겠습니다."
***
전력사업 관련 증시가 대폭락의 늪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