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185화 (1,185/1,270)

프랜차이즈 갓 1185화

276장 긴급 대선 (5)

신임 대통령은 정말 약속을 지켰다.

국정을 시작하자마자 정부 발의로 발전소 쿼터제 폐지안을 올린 것이다.

원전 카르텔은 당연히 발칵 뒤집어졌다.

전력사업에 조금이라도 발을 걸치고 있는 기업들은 부랴부랴 로비에 나섰으나, 취임한 지 이제 겨우 일주일도 안 된 살아 있는 권력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정부 대변인은 대국민발표에서 폐지안의 취지를 힘차게 설명했다.

"핵융합 전기는 값싸면서도 안전하고, 탄소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등장점투성이입니다. 인류의 꿈이 현실로 이뤄진 지금, 과거의 기득권을 위해서 미래를 희생시킬 순 없습니다."

"앞으로 과감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이 걸어야 할 길입니다."

"발전소 쿼터제는 정당한 시장경쟁을 방해하고, 그 피해를 국민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소수 카르텔의 배를 불리는 악법입니다."

"쿼터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기존발전소를 모조리 가동 중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카르텔의 담합에 짓눌려 시장에 진입조차 못 하는 핵융합 발전소에 정당한 경쟁 기회를 주려는 것뿐입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발전소 쿼터제가 정확히 어떤 법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그런 법이 있다는 것조차 잘 몰랐다.

핵융합 발전소의 규모가 아직 모자라서 시장 진출을 못 하나 보다, 하고만 생각하는 게 대수였다.

심지어는 자기가 쓰는 전기가 이미 핵융합 전기인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

핵피아들이 언론들과 잡고 열심히 선동과 날조를 퍼뜨린 덕분이다.

"핵융합 전기는 현시대에서 가장 완벽하고 흠결 없는 에너지원입니다. 새 정부는 핵융합 전기에 정당한 기회를 쥐여줄 것입니다."

새 정부는 작정하고 1호 법안을 밀어붙였다.

다급해진 핵피아들이 언론사를 들쑤시며 여론 호도를 부탁했지만, 패는 정부로 넘어갔다.

-우리 집에 오는 전기가 핵융합전기가 아니었다고?

-X발. 어쩐지 전기료가 그대로더라.

-도대체 재벌 새끼들은 어디까지 해처먹어야 만족을 하는 거냐. 진짜 좀 작작 해처먹어라.

-서민들의 고혈을 아주 그냥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먹으려고 드는구나. 이게 K-재벌?

-진정한 K-재벌은 수영그룹이지. 노블리스 오블리주 그 자체.

발전소 쿼터제의 실체를 알고 있던 소수 깨어 있는 사람들은 이 같은 조치에 두 팔을 벌려 환영했다.

그들은 열심히 기사와 자료들을 퍼나르며, 원자력 마피아들이 마지막 한탕으로 얼마나 더 해처먹을 작정이었는지를 설파했다.

-수영그룹은 전력시장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핵융합 발전소를 세운 것도 농장과 사업체에 필요한 전기를 직접 공급하기 위해서였죠.

-거인의 무욕을 버러지 소인들이 제대로 이용해먹은 겁니다. 자동차가 개발되었는데 마차를 15년 동안 유지해서 마부들 생계를 보존해 줘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들 세금으로?

-쿼터제 폐지 법안에 모두 호응해 주십시오! 그래야 앞으로 값싼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전기료 무서워서 여름에 에어컨 켤 때마다 덜덜 떨지 말자구요, 우리!

국민적인 호응이 크게 일어났고, 언론사들도 차마 이런 분위기에서 재래식 발전소를 옹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7위권 일간지에서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간 매몰 비용을 이유로 은근슬쩍 편을 들었다가 개같이 까이는 일이 발생했다.

그 뒤로 언론은 발전소 쿼터제 페지에 관해서 침묵을 지켰다.

"국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겠습니다."

정부는 국회에 대한 압박을 지그시 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 폐지 안은 법사위를 순식간에 통과해 본 회의에 올랐다.

그리고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으며, 발전소 쿼터제는 악법이란 불명예를 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

"간만에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맞이한 건가요?"

정서희가 어깨에 턱을 올려놓은 채 물었다.

하수영은 그녀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비비면서 대답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겠죠."

"아니라는 거예요?"

"박부성 대통령, 야망이 아주 큰 사람입니다. 민생을 위하는 대통령 감은 아니에요."

"어떻게 알아요? 뭐 좀 조사한 거 있어요?"

"군인 시절을 훑어봤죠. 출세욕이 아주 대단한 사람이더군요."

"근데 왜 중장까지만 달고 전역했어요? 혹시 진급에서 밀렸나요?"

"그게 더 놀라운 점이죠. 이 사람, 대장 진급하고 육참총장, 합참의장까지 얼마든지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중도 포기하고 중장으로 명예롭게 전역한 겁니다."

정서희는 아 하고 탄성을 냈다.

"여의도 진출을 생각하고 있었군요?"

"네. 그때 여의도 진출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걸 놓치지 않았어요."

"아아. 그랬군요."

"어쩌면 그때 이미 대통령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4성장군 출신 대통령은 아무래도 힘들 테니까요."

"원래 별 넷 달면 대통령 되기 힘들어요?"

"꼭 그런 건 아닌데, 아무래도 사람들 인식이라는 게 있죠. 군에서 최고 계급을 찍은 사람이 대통령까지 한다는 건 유권자 입장에서 조금 부담스럽죠. 재벌 회장한테 대통령 직까지 주지는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해가 되네요. 별 셋이면 대통령 도전하기에 적당하다?"

"국회의원으로 오래 활동하면서 군인 물까지 쫙 뺏으니, 국방 전문가라는 이미지도 살릴 수 있었고요."

"시기도 제대로 맞았네요. 전쟁이 일어나니 마니 말이 많았잖아요."

오죽하면 박부성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은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는 판이다.

그리고 2등 공신은 우크라이나와 일본이라는 말도 있었고.

"그럼 대통령이 순수한 마음에서 쿼터제를 폐지한 게 아니라는 거죠?"

"정치인, 그것도 대통령이 직권으로 행하는 일에 순수한 마음이라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 행동이죠."

"제가 말한 건 국민과 국가 발전을 위한 순수한 마음이요. 그런 건 일절 없이, 수영 씨한테 잘해줘서 뭔가를 얻어내려고 했다는 거죠?"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죠. 저한테 얻어내고 싶은 게 있는지, 아니면 그저 자기 방해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지."

"수영 씨가 대통령을 방해할 게 뭐 있나요? 지금까지도 청와대나 여의도에는 별다른 일 안 했잖아요? 로한을 국회로 보낸 거야 뭐 우주산업 때문에 그런 거고요."

"아무튼 보통 대통령은 아닙니다. 권력 야심이 대단해요."

"비리는 없어요?"

"없습니다. 적어도 쉽게 발견될 만한 비리는 찾아내지 못했어요. 본인과 가족, 주변의 재산 내역도 합리적인 수준이고요."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꽤 이상적인 대통령인데……."

"이유 없이 발전소 쿼터제를 폐지할 동기가 없죠."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핵융합 전기를 전격적으로 도입한다?

그렇다면 조금 더 적극적이고 다른 방법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행정부가 정당하게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챙겼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쿼터제를 폐지하는 것으로 행동을 종료했다.

하수영이 전력 시장에 진출하든 말든 그 뒤는 알아서 하라는 뜻인가?

심지어 하수영을 적극적으로 챙겨주면서 다른 대가를 요구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두고 보면 알겠죠. 저한테 뭘 바라는지."

***

발전소 쿼터제 폐지 이후, 새 정부는 전력 거래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 고쳤다.

이전에 추진하다가 중지한 전력시장 민간사유화(민영화)를 마저 진행했다.

이제는 누구든지 한국전력공사와 대등한 자격에서 전기를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전력공사는 경쟁자나 다름없는 민간전력회사의 전력 판매를 원활히 도울 의무마저 생겼다.

"우리가 호구도 아니고, 이게 말이 돼?"

"아니, 자유경쟁 시스템을 도입했으면 당연히 우리도 마음껏 경쟁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건 우리만 일방적으로 차포 떼고, 그리고 경쟁자 사업까지 도와줘 가면서 사업하란 소리잖아."

"농담 아니라 이러다가 진짜 몇 년 안에 폐업하겠네."

눈치 빠른 이들은 곧바로 뒤에 얽힌 의도를 알아차렸다.

"수영조명더러 얼른 이 판에 들어와서 싹 다 먹어치우라는 거네."

"이건 완전히 수영조명을 위해 크게 차린 한 상이네."

"대통령이 작정하고 수영그룹 밀어주기로 한 거 같은데. 뭐 받기로 한 거 아니야?"

"수영그룹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다 해줄 수 있지. 대한민국 경제지 표도 수영그룹에 달렸다. 진짜 작정하면 하루아침에 대한민국 경제도 박살 낼 수 있다."

"하수영 농민 회장님이 정경유착을 하실 분은 아닌데…… 이건 새 정부의 일방적인 구애로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사람들은 곧 전력시장에 수영조명이 점령군처럼 밀고 들어올 것이라고 단단히 각오했다.

전력회사들은 언제 발을 빼야 하나 하고 심각하게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영조명은 조용했다.

특별히 전력소비자를 모집하지도 않았고, 사업계획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전력사업에는 관심이 없다는 지금까지의 태도를 그대로 고수하듯이, 묵묵히 자기사업체에만 전력을 공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이 바닥에서 탈출해야 하는지 눈치만 보던 전력회사들은, 수영조명이 국내 시장에 진출할 의지가 별로 없다고 희망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

"그래요? 전력시장에 진출할 조짐이 아직도 없단 말입니까?"

대통령의 차분한 물음에 비서실장이 조금 쩔쩔매며 대답했다.

"예, 대통령님."

"흐음. 쿼터제가 없어지면 당연히 전력시장을 접수할 줄 알았는데요. 그게 우리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도 더 도움이 되고 말입니다."

"아무래도 수영그룹은 시장 독점지배자가 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거 같습니다. 이미 국내 식량에서 완전한 독점지배자 자리를 쥐었으니까요."

식량과 전기는 기초 에너지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식량은 사람을 움직이는 에너지이고, 전기는 문명 그 자체를 움직이는 에너지이다.

"이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닙니다. 핵융합 전기가 빨리 전국 전체에 퍼져야 해요. 석탄, 가스, 원전 따위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란 말입니다."

"장사할 의지가 없는 사람더러 억지로 상점을 내라는 요구를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특혜를 약속하면 어떻습니까?"

"특혜라면, 어떤……."

"하수영 의원이 면세를 그렇게 좋아한다죠?"

"면세를 몹시 좋아한다기보다는, 원래 세금 없던 식량에 세금을 붙이려는 것이 재벌들의 술수라는 것에 분개했던 것으로 압니다."

"비서실장님, 이 세상에 세금 깎아준다는 거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통령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비서실장은 저도 모르게 찔끔했다.

대통령은 전역한 지 오래됐지만, 가끔씩 현역 시절의 위압감을 뿜어 낼 때가 있다.

"한 번 세금 혜택을 줘봅시다. 아, 콕 집어서 주는 특혜라고 비치면 곤란합니다. 그럼 하수영 의원이 외부의 눈이 신경 쓰여서 오히려 더 다가오지 않을 거 아닙니까."

"어떤 세금 혜택을 생각하시는지요?"

"좋은 핑계는 많잖아요. 탄소 절감으로 인한 세제 우대, 환경오염 방지로 인한 세제 우대, 안전 확보로 인한 세재 우대, 그런 핑계 말입니다."

비서실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것들을 묶어서 전기에 붙는 할인 제도를 만들어 봅시다. 잘만 중첩되면 아예 세금이 0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부가세든, 법인세든, 환경세든 간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