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84화
276장 긴급 대선(4)
"하수영 의원님."
"하수영 의원님."
"하수영 회장님."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하수영은 삽시간에 주목을 받았다.
정치인, 기업인, 학자, 언론인을 가리지 않고 주변에 몰려들 기세로 눈을 훑는다.
하수영은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친한 이들이 거의 없다.
큰 이익을 가지고 서로 반목하는 관계이다 보니 그렇다.
한국이라는 한정된 경제 파이에서, 하수영이 엄청난 지분을 먹어치우고 눌러앉았으니까.
이들 중에서 하수영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은 이는 없다.
그것이 적극적 손해든, 소극적 손해든지 말이다.
'미운 새끼…….'
'세상에서 제일 그지 같은 놈…….'
그러나 미워하는 마음과 별개로, 눈앞에서만큼은 잘 보여야 한다.
혹여 직접적인 원한을 사게 되면 일가가 박살 날 수도 있으니까.
호랑이 혼자서 양 떼를 전부 몰살하긴 어렵지만, 튀는 몇 마리만 반드시 죽이겠다고 나서면 충분히 가능하니까.
다들 그렇게 튀어나온 돌이 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다.
"의원님, 오셨습니까."
한 60대 남자가 굽실거리듯이 다가왔다.
현 국무조정실장으로서, 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 자리가 내정된 사람이라고 했던가.
현 기재부장관이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람 인생이라는 게 이렇다.
그도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가버릴 줄 몰랐을 테니까.
지금 청와대는 물론이고 내각 고위공직자들은 언제든지 방을 빼기 위해서 짐을 싼 채 대기 중이라는 말이 있었다.
"네, 부총리님."
하수영이 부총리라고 불러주자 남자, 황석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아이고, 부총리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제 직책은 국무조정실장입니다. 황 실장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래도 경제부총리 임명이 거의 확실하다고 들었습니다. 아닌가요?"
"절대로 아닙니다. 현재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갈 테니, 다들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겸허하게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황석윤은 주변을 의식해서인지 말을 매우 조심히 아꼈다.
대통령으로부터 경제부총리 자리를 약속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고만장해서 나댄다는 말이 나돌면 곤란하다.
괜한 구설수에 휩쓸리게 되면 대통령도 난처해서 내정한 바를 철회해야 할 수도 있다.
혹은 불쾌감에 마음이 변할 수도 있고.
하수영이 황석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자 하나둘씩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뭉치지 않기 위해 서로 적당히 눈치를 보고 견제하는 광경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언론 재벌들이 하나둘씩 하수영 앞에 나타나서 악수를 청했다.
"회장님 덕분에 우리나라가 우주산업이 크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저도 요즘 우주 관련 기사 보는 재미로 삽니다, 허허."
늙은 언론 재벌은 호탕한 듯 웃지만, 말에는 뼈가 있었다.
메이저 신문사들은 하수영에 관련해서 좋은 기사를 잘 써주지 않는다.
처음에는 대놓고 조작이나 선동을 하면서 깠다면, 요즘에는 진실에 거짓을 섞어서 같은 편인 척 교묘하게 돌려까기를 하는 식으로 보도한다.
하수영은 늙은 언론 재벌과 악수를 잡은 채,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기에 다른 이들도 뭔가 좋은 말을 하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늙은 언론 재벌도 하수영이 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무슨 은밀한 말을 하려는지, 은근히 기대되었다.
"내가 잊고 있었는데, 얼굴 보니까 생각났어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지요?"
늙은 언론 재벌은 괜히 긴장이 되었다.
드디어 하수영이 스피커의 힘을 인정하고, 화합을 하자고 나오는 것인가…….
"악플 좀 적당히 싸지르고 다니시라고."
"……!"
순간 늙은 재벌 회장은 눈만 깜빡일 뿐,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지나치게 상상을 벗어난 말이라서, 혹시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여전히 하수영은 친절한 미소를 밝게 머금고 있었기에, 더욱더 현실 같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번 걸리기만 해봐요. 내가 이거저거 바쁘고 할 게 많아서 늙은 왜구 악플러 따위 잊고 사는 거지, 한 번 발동 걸리면 씨를 말려요."
"이, 이게 무슨……!"
"난 고소 같은 거 안 합니다. 3년, 5년 걸릴 거 3시간 안에 후딱 끝내는 게 좋거든요."
사근사근한 목소리.
하지만 늙은 언론 재벌은 설명할 수 없는 소름이 끼쳤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벌벌 떨리고 있었다.
하수영은 여전히 주변이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춘 채로, 활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꼭 임계점 넘어 봐요. 내가 귀찮은 거 다 떨치고 족칠 수밖에 없다고 마음먹게 알았죠?"
그리고 하수영은 하하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다들 1위 언론사 회장이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내심 궁금하게 여겼다.
"인망 높으신 중원일보 회장님을 뵈니 반가운 마음이 너무 강했네요. 저에 관한 기사는 언제나 잘 읽고 있습니다."
사실 전혀 읽어보지도 않고, 무슨 내용이 있는지도 모른다.
기사를 읽고 수집하는 것은 프리덤의 역할.
그리고 사람들은 지금 하수영이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차렸다.
묘하게 식은땀을 흘리는 중원일보회장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사실 제가 중원일보 애독자거든요. UCC 포털도 구독했어요. 중원일보 근무하는 임원과 기자 여러분은 가족 사항까지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로 열성 팬입니다, 하하."
평소에는 부하 직원 기자들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펜의 뒤에 흐뭇하게 숨어 있던 중원일보 회장은, 하수영 앞에서 늑대 앞의 개구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 계셨군요, 하수영 원수님. 몹시 찾았습니다."
그때 대통령이 나타났다.
***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하수영을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연회장을 떠난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대화를 들을 수 없도록 구석으로 거리를 벌린 것이다.
대통령은 특별히 무리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저 앞으로 자신이 펼쳐 나갈 국정의 방향성을, 국민들에게 어필하듯이 적극적으로 늘어놓았다.
"첫 번째도 국방, 두 번째도 국방, 세 번째도 국방입니다. 국방이 안되는 국가의 미래는 없습니다. "
호칭에는 힘 또는 의도가 담긴다.
그리고 박부성 대통령은 하수영을 지금 '원수'라 불렀다. 또한 열심히 국방 강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염려 마십시오, 대통령님. 지금 대한민국 해군의 전력은 막강합니다. 일본 정도는 하루아침에 전투 능력을 상실시키고, 사흘이면 항복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흐음, 줌왈트가 대단한 것은 알지만 아직 F35와 F22 가 다 들어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원수님 말씀은 해군 전투기 전력이 다 갖춰졌을 때 이야기가 아닙니까?"
"해군엔 지금 22기의 F35B가 있습니다. 그 정도면 일본 공중 전력을 상대하는 건 충분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일본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지금으로써는 중국, 러시아, 북한이 더 위험한 거 아닙니까?"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님, 일본은 수천 년 동안 호시탐탐 한반도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게 불과 100년도 안 됐습니다."
대통령의 눈빛이 신중하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일본은 독도를 가지고 도발하거나, 반도체를 가지고 무역 전쟁을 걸거나, 한국을 괴롭히는 업무를 수행하는 관공부처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조금 충격이군요."
"원래 그런 나라거든요. 일본이 한국에 뿌린 해악이 한둘이 아닙니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죠."
"원수님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많이 안 좋으신가 봅니다."
"역사상 한 번이라도 전쟁을 벌인 나라라면, 그 나라와 우리나라 어느 한쪽이 소멸하기 전까지는 계속 경계해야 합니다. 천년이든 만년이든. 그게 안보입니다."
"안보라."
대통령은 풀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중국보다 일본이 더 위험하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중국은 대놓고 돌팔매질을 하는 못된 이웃이고, 일본은 밤에 슬쩍 쓰레기를 투척하고는 안 그런 척 시치미를 떼는 음험한 이웃입니다."
"흐음……."
"대응 방식이 달라질 뿐, 둘 다 믿을 수 없는 나라입니다."
고개를 끄덕거리던 대통령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원수님은 중국과 일본 내에서 크게 농업을 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나쁜 놈의 지갑에서 달러를 캐오는 일이니 뿌듯한 마음으로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어, 그게…… 믿을 수 없는 나라인데 괜찮은 겁니까?"
"그러니 확실한 보험이 없이는 안들어갑니다. 중국 황비버섯 농장은 이미 10년치 수익을 땡겨 받았습니다. 돈도 중국이 아니라 미국 환계좌에 있고요."
"그럼 전쟁 나서 중국 농장이 압류돼도 손해는 없으신 건가요?"
"네."
"중국이 황비버섯 비법을 훔칠 가능성은요?"
"없습니다."
"일본 쌀농사와 생선유통도 비슷하게 안전장치를 들어뒀겠군요."
"네. 그리고 일본은 중국에 비해 만만해서 여차하면 줌왈트 보내서 패면 됩니다. 일본은 몰래 쓰레기버리고 가는 걸 조심해야지, 제대로 붙으면 무서울 거 하나도 없습니다."
"반도체 생산은 어떻습니까? 중국과 일본의 자원이나 소재 수입 없이 지금처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습니까?"
"수영그룹은 어느 날 갑자기 두 나라가 사라져도 물건 만들어서 파는데 아무 지장 없습니다."
대통령은 그 뒤에도 이것저것 수영그룹의 사업 현황과 비전에 관해서 물었다.
하수영은 '말해줘도 괜찮은' 오피셜 정보 중에서 간단하게 축약해서 알려주었다.
대통령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핵융합 전기 말인데요. 제가 조금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전 정권에서 원전 카르텔의 로비를 받고 심한 견제를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발전소 쿼터제가 산업종사자들과 그 가족의 생계 보호가 아니라, 수영발전소가 시장을 접수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탕 해먹기 위한 최후의 발악이었다고요."
대통령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지고 있고 말입니다.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요."
"……."
"만약 발전소 쿼터제를 폐기하고, 수영그룹이 제약 없이 전력 시장에 뛰어든다면 이 나라의 전기시장 미래는 어떻게 됩니까?"
"전기 요금이 비약적으로 싸지진 않을 겁니다. 저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요."
"자본주의국가에서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뭐, 제가 핵피아들보다는 양심이 있어서 저렴하게 받겠죠. 중요한 건 요금이 아니라 환경과 안전, 편리성이죠."
"환경, 안전, 편리성."
"화력 발전소가 뿜어내는 오염물질이 전부 사라지죠. 핵폐기물을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고, 원전이 폭파하거나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수영발전소는 마라도섬까지 전선 없이 무선으로 전기를 보낸다는데, 사실입니까?"
갑작스러운 질문,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바이기도 했다.
"네, 사실입니다."
대통령은 신중하게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발전소 쿼터제를 빠른 시일 내에 폐기해드리겠습니다. 법안 폐지든, 신법 의결이든, 위헌 심판이든 뭐든 해서요."
하수영은 놀란 표정을 일부러 보여주었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파격적으로 나오는데, 이런 반응이라도 보여주는 게 립서비스겠지.
"대신 일 년…… 아니, 반년 안에 한국의 모든 전력 시장을 접수해 주십시오. 이 나라의 전력 시장 체질을 바닥부터 싹 바꾸겠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입니까, 저를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대통령님 본인을 위해서입니까?"
"셋 모두를 위해서입니다."
다른 이들과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대통령을 보며, 하수영은 혼자 중얼거렸다.
"보통 아닌데. 제법이야."
사적 욕심 없이, 자기 것도 아닌 큰 선물을 자기 것처럼 선뜻 먼저 건네주는 정치가는 없다.
수많은 무한 전생에서 단 한 번도 틀려본 적 없는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