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82화
275장 긴급 대선 (2)
선거의 부정과 불법성을 떠나서, 소란으로만 치면 건국 이후 가장 시끄럽고 난잡한 대선이었을 것이다.
통상 대선은 결국 1위와 2위의 싸움이다.
간혹 3위가 단일화를 통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기호 3번의 당선을 기대하는 이는 없다.
심지어 기호 3번 캠프조차도.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무려 7명이나 되는 후보자들이 한 자릿수 이 내의 지지율 차이에서 보합을 벌이고 있었다.
"보합은 무슨. 그냥 길거리 시장바닥 난장판이지."
"정치인은 뭐 잘났다고 그걸 또 곱상하게 표현을 해준대?"
민주적 선거 중 이번 선거만큼 국민들이 극도의 혼란과 피로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도대체 7명 중에서 누굴 뽑아야 하냐?
-여야는 경선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정 너무 빡빡한데.
-선관위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일정을 빡빡하게 잡은 거야?
-이건 뭐 경선이 그냥 곧 대선일듯.
여당과 야당에서 나선 '유력 후보'만 7명.
유력하지 않은 후보까지 합치면 모두 15명이고, 그 외 당까지 합치면 20명이며, 무소속도 따로 6명이나 되었다.
-하수영 계파에서 이서환 부산시의원 내보내면 그냥 게임 끝나는 거 아니냐?
-그러네. 이서환 시의원이 있었어.
-로한 의원은 나이가 안 되지만 이서환 시의원은 나이가 되잖아.
하지만 이서환은 대선에 나가지 않았다.
하수영이 권유하지도 않았지만, 본인도 아직 대선에 나갈 만한 그릇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대선에 나가서 당선이 되어봐야 그냥 서명 셔틀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근차근 옷에 걸맞은 몸을 만들고 싶었다.
***
유력 후보들은 포기하지 않고 로한을 끌어들이려 애썼다.
동시에 그들은 하수영을 찾아가 갖가지 혜택을 약속하며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하수영은 웃음으로 모두 퇴치했다.
"제가 중립을 지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후보자님, 6/7의 확률에 베팅을 하시겠어요?"
1/7의 초대박을 기대하다가 6/7의 확률로 조져지는 걸 바라느냐는 물음에는, 기가 센 후보자들도 찔끔했다.
'청담동의 지지만 얻어내면 완벽한데.'
'무조건 대통령이 될 수 있는데.'
'아이고, 진작 좀 친해질 걸 그랬나.'
재벌과 언론 등 기득권들이 청담동을 워낙 싫어하기에 정치권도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 왔다.
후보자들은 이제 와서 그 점이 새삼 뼈아프게 느껴졌다.
남들이 모두 눈치만 보고 있을 때 크게 용기를 내었더라면, 기꺼이 세계 제일의 미녀를 쟁취할 수 있었을 텐데.
***
온갖 스캔들이 터지고, 서로에 대한 비난이 오고 가고, 국민들의 정치적 피로가 극에 달하다 못해 폭발해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을 즈음.
야당의 경선 후보 등록 마지막 날, 갑작스럽게 새로운 플레이어가 끼어들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전 세계의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북한은 호시탐탐 중한을 노리고 있으며, 이 외에도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중장 출신의 국회의원.
하수영이 훈련소에 들어가기도 전에 군복을 벗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던, 국방 전문가.
박부성 후보자가 입구 문이 닫히기 전에 레이스판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지금 세계는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습니다. 모두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가보지 못했던 길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한반도 전쟁의 위협은 그 어느 때보다 높지만, 다행히 우리 군은 하수영 해군원수님의 지원을 업고 어느 때보다 눈부신 군 전력 증강을 꾀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그는 전쟁 발발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국민들이 어렴풋하게 품고 있는 불안을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저는 오랫동안 국방전력관리 분야에서 일해왔습니다. 또한 현직 국방위 소속이기도 합니다. 다른 어떤 후보보다도 대한민국의 국방력 강화체계를 바로잡고,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박부성! 박부성! 박부성!"
"국민 여러분, 저를 밀어주십시오! 이 박부성이가 어떤 외세의 위협에도 꿈쩍 않는 단단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내겠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느 때보다 안보 전문가가 필요한 때입니다!"
러우 전쟁으로 인한 국제적 불안감.
평화헌법 개정으로 군대를 갖추려는 일본.
하는 것 없이 식량을 뜯어가지만, 끝까지 핵탄두를 손에서 놓지 않는 북한.
그 불안함을, 박부성은 제대로 건드렸다.
"러우 전쟁이 종료되는 순간 북한은 중한을 침공할 것이 분명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느 때보다도 강해져야 합니다! 단단해져야 합니다!"
"박부성! 대통령! 박부성! 대통령!"
"박부성을 청와대로! 박부성을 청와대로!"
다른 후보자들도 하수영이나 수영그룹의 이름을 열심히 팔았다.
하지만 전직 장성 출신의 국회의원, 그것도 로한과 같은 국방위 소속이 '해군원수'를 언급한 것은 전혀 차원이 달랐다.
전 세계가 경제와 식량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지만 한국은 그 흐름에서 비껴간 편이었고, 국민들은 정말 한국전쟁이 반복되는지에 가장 큰 신경을 썼다.
-쓰리스타 출신 국회의원. 그것도 국방위 소속.
-박 후보자는 해군원수님, 로한과 깊은 사전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
-대놓고 밀어주면 앞으로도 계속 달라붙는 정치인들 때문에 피곤해질 테니까, 이런 식으로 지지 의사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설령 그게 아니라고 쳐. 그래도 지금은 박부성이 무조건 옳다.
-맞다. 지금 우리나라는 강군을 육성하고 전쟁을 수행할 줄 아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전쟁이 안 일어난다고? 중러가 하는 꼴 봐라. 러우 전쟁 끝나는 즉시 북한은 중한으로 밀고 내려올 거야.
-중한이 짓밟히면 우리나라는 어쩔 수 없이 자동 참전이다. 중러는 뒤에서 북한을 지원만 할 거. 국제사회에 호소해도 놈들은 시치미만 뗀다.
-강한 힘이 필요하다. 강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뒤늦게 일어난 안보 돌풍은 매섭게 전국을 휩쓸기 시작했다.
박부성은 야당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표를 쓸어 담으며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당원 지지율 71%, 일반 국민 지지 율 68%를 받은 그는 야당 대선 후보자로서 전국을 순례하며 선거 운동을 벌였다.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그는 어디를 가든지 폭풍처럼 추종자들을 몰고 다녔다.
모두가 그의 이름을 환호했고, 언제 어디서든 그의 추종자를 볼 수 있었다.
-근데 육군은 지금 해군과 어느 때보다 사이가 나쁘지 않나?
-그게 무슨 말임?
-몰랐냐? 박부성 후보는 육군 중장 출신이야.
-어 그랬어? 난 해군인 줄 알았는데. 왜 육군 출신이란 말은 안했지?
-은근슬쩍 해군 출신이란 오해에 묻어가려는 게 마음에 걸려…….
몇몇 이들이 불안감을 드러냈지만, 캠프에서 동원한 정치 댓글공작 부대에 사정없이 짓밟혔다.
프리덤이라면 모를까, 개개인이 수백 명의 정직원이 수만 개가 넘는 ID를 총동원해서 티키타카 물량 공격으로 나오는 여론 화력전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근거 있는 소리?
-응, 너 고소. 박부성 캠프에 싹전달함 ㅅㄱ
-형, 내 생각에도 그냥 글 내리는 게 좋을 거 같애. 이거 선거법에 걸릴 수 있음.
박부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늪에 빠진 토끼처럼, 지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깊이 잠겼다.
***
「마스터. 이대로면 박부성이 당선 됩니다. 개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왜? 그 후보,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박부성은 육군 출신입니다. 그리고 육군은 지금 말은 못 하고 끙끙 앓고만 있지만, 마스터에 대한 불만이 큽니다.」
"박부성도 그러냐?"
「아닙니다. 박부성은 마스터에 대한 불만을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항상 마스터를 존경하고 해군력 증강 사업을 칭찬해 왔습니다.」
"진심으로는 보이고?"
「거짓으로 판단할 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하수영은 피식 웃었다.
"박부성의 그 태도가 진심이라면 대통령이 돼도 내가 편해질 거고. 독니를 감춘 거라면 아주 많이 재밌어지겠는데? 어느 쪽이든 손해는 없다."
「마스터는 저와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군요. 아직도 제가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만 변수를 조정하면 그게 대체 무슨 재미냐. 그냥 흘러가는 대로 놔둬야지. 그래야 재밌는 돌발 이벤트도 생기는 거고."
「알겠습니다. 저 혼자 괜한 걱정을 했던 거군요.」
"이 나라 아직 군주제 아니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놔둬. 내가 중앙정치 할 거였으면 진작했지."
「예, 마스터.」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다?"
「농사입니다.」
"농사에 방해되는 것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마라. 방해해 오면 뭐 더 좋고."
***
돌풍의 끝에 기적이나 변수는 없었다.
박부성은 71%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보이며 당당히 대통령이 되었다.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여당 후보자는 즉시 패배 선언을 하고, 곧바로 박부성을 찾아가 포옹을 하며 축하를 건넸다.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들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최경준 후보자님은 법조인 출신으로서 내치행정에 누구보다 유능한 분입니다. 저는 비록 경쟁자이지만, 최경준 후보자님을 책임총리로서 모시고 싶습니다."
그리고 박부성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최경준을 국무총리로 지명하겠다고 밝히며 전 국민을 놀라게 만들었다.
전 대통령 사망 직후에는 온갖 흙탕물이 난무하며 피로감이 높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야의 경 종료 이후 본선까지는 모든 흐름이 탄탄했다.
일사천리였고, 깔끔했으며, 국민들의 피로감을 깨끗이 해소해 주었다.
-군인 출신이라고 해서 딱딱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해였네.
-뭔가 부드럽고 젠틀한 이미지가 강함.
-대통령이라면 저래야지.
-자기 헐뜯고 비난한 경쟁 후보까지도 품에 안는 저 너그러움이라니.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게 맞다고 본다.
-이제 끝났다. 더 이상의 위협은 없음. 중국이든 러시아든 북한이든다 쳐들어오라고 그래!
-우리는 핵융합폭탄도 있다구!
-쉿! 그 이야기는 함부로 하면 안돼!
박부성은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당선증을 수령하고, 곧바로 대통령으로서 업무를 개시했다.
그는 조촐하면서도 규모가 큰 취임식을 열어 정·재계를 막론하지 않고 저명한 인사들을 다양하게 초대했다.
일반 국민을 위한 자리도 한껏 크게 만들어 취임식을 축제처럼 만들었다.
국회의원들은 71% 라는 강력한 지지율을 쥔 정권의 허니문 기간 중 눈밖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
취임식에 참석한 로한은 자신을 찾는다는 대통령실 비서의 말에 움직였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던 박부성 대통령이 그를 보고 환히 웃으며 두 팔을 벌려 환영했다.
"어서 오세요, 로한 의원님."
"축하드립니다, 대통령님, 그나저나 이제 국방위 한 자리가 비었네요."
"하하, 혹시 원하는 인물이 있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습니다. 아니면 로한 의원님이 아예 국방위원장을 맡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는 중재보다는 실제로 경기에서 뛰는 게 좋습니다. 국방위 말고도 할게 많고요."
"아, 그렇죠. 지금 화성 탐사를 한 창 준비 중이죠? 그래요, 어떻습니까? 언제쯤 화성에 갈 수 있을 거 같습니까?"
구김 없는 표정과 미소는 로한에게 끝없는 신뢰를 보내는 듯이 보였다.
로한은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아주 잘 풀리면, 올해에는 출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좋은 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