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77화
274장 선악과 (1)
8,000억 원에 구입한 14호기 휴민트타워는 시가 1조 원이 훌쩍 넘은 상태다.
1층의 절반은 하수영이 의원사무실로 쓰고 있으며, 로비에는 훈민정음 창제일지가 전시되어 있다.
"이게 그 중국 수집가가 10조 원을 불렀는데도 안 팔았다는 창제일지라는 거지?"
"문화재청에서도 대여 좀 해달라고 맨날 애걸복걸한다던데."
"그거 썰 있잖아. 하수영 회장님께서 '박물관이 기증받은 문화재도 횡령하는 시대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렇게 일갈하시니까 꼬리 내리고 깨갱했다고 하더라."
"그냥 농민 회장님이 소장하시는 게 낫지. 다른 재벌들처럼 수장고에 꽁꽁 싸매두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상시 전시도 하잖아."
"10조 원짜리 문화재라……. 이건 정말 귀하네요."
창제일지 구경을 위해 찾은 방문객들은 1층 로비 한쪽에 새로 마련된 책 전시 코너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이거 뭐야?"
"표지에 죄다 농민 회장님 얼굴 박혀 있는데?"
"얼굴을 뭐 이렇게 험상궂게 표현해놨지? 누가 이딴 식으로 사진을 출력했어?"
"일본어 할 줄 아는 사람 없어?"
"……이거 타이틀하고 소개글만 대충 읽어보면 농민 회장님 혐오 서적인데?"
"뭐?"
"이 버러지들은 이제는 하다하다 혐한을 넘어서 혐하까지 하는 거냐? 진짜 관음의 나라답다."
"근데 농민 회장님은 이 혐오 서적들을 왜 본인 빌딩에 전시해 놓으신 거지?"
권수도 많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수백 권은 훨씬 넘어 보였다.
"박제가 아닐까?"
"박제? 아, 그럴 수도 있겠네."
관람객 한 명이 이해했다는 듯 손뼉을 가볍게 쳤다.
"이렇게 박제해 놓으면 이거 쓴 놈들 나중에 빼도 박도 못하겠네. 두고두고 이름 남는 거 아냐."
"수영그룹 블랙리스트에는 이미 등재됐을 거 같다. 프리덤이 일본에 출시해도 아마 구독 못 할 거 같은데."
"일본도 지금 프리덤 빨리 출시해 달라고 재촉하지 않아? 이런 식이면 아무리 돈 많이 벌 수 있어도 일본에는 출시하기 싫겠다."
"어허, 농민 회장님은 비즈니스에 절대 사적인 감정을 섞지 않으셔. 돈만 된다면 원수에게도 웃으면서 곡물을 팔 수 있는 분이라고."
"원수의 돈을 빼앗고 억지로 곡물로 대신 채워 넣으시지 않을까?"
'혐하 서적 코너' 한쪽에 설치된 커다란 키오스크에서는 서적 저자들의 사진과 이력 등이 슬라이드쇼처럼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간단한 터치 몇 번으로 그들의 오피셜 약력을 볼 수 있었다.
"이거 뭐야. 무서워. 진짜 제대로 박제해 놓으셨네."
"내가 이것들이라면 당장 자진해서 책 전부 수거한다."
***
한국 가전의 일본 점유율은 날이 갈수록 점점 높아져만 갔다.
일본 기업들은 다양한 판촉과 광고, 출혈 경쟁으로 이에 맞섰다.
그러나 달 여행 경품 추천과 생선 상품권은 그들이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판촉이었다.
가전 전체 점유율은 어느덧 30%를 넘어섰고, 아직도 무서운 속도로 오르고 있었다.
초강경 극우 네티즌들이 SNS와 커뮤니티에서 매일같이 불안감을 살포했다.
-조센징이 일본에 독을 풀었다!
-조선의 가전제품이 일본 시장을 침식하고 있다. 내각은 어째서 두고만 보고 있는가?
-조선의 열도 침공을 당장 막아내야만 한다!
-놈들이 생선에 이어서 이제는 가전 완제품 시장까지 집어삼키려고 한다!
-자민당은 조센징한테 일본을 팔아넘길 셈인가?
-당장 조선과 단교하라! 우리에게는 조선이 전혀 필요 없다!
-조선은 다케시마를 반환하라!
극우들은 몰랐다.
자신들이 먹는 히사타로농업의 쌀이 전부 규슈의 수영장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다면 밥을 먹을 때마다 한국에 돈을 준다는 분통에 혈압이 치솟았을 것이다.
가전시장 점유율이 갉아 먹힐수록, 혐한 서적과 혐하 서적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집안 가전을 한국산으로 갈아치운 가정에서 혐하 서전을 쉽게 찾아볼수 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조센징이 일본에서 대놓고 가전장사하는 거 너무 X같다. 그냥 매장에 전부 다 불질러 버렸으면 좋겠다. 으아아악!
***
어느 날, 프리덤은 신형 테라리움농장에서 기이한 걸 발견했다.
「이건 무엇이지?」
사과나무에서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사과 한 개가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프리덤의 손발인 농장 로봇이 즉시 사과를 따서 분석에 들어갔다.
「껍질이 순수한 황금색에 가깝다. 인간의 육안으로 얼핏 보면 금으로 도금을 했다고 충분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색만 황금색일 뿐, 강도와 당도는 여느 사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재배할 가치가 있다.」
프리덤은 즉시 사과를 흙에 심고, 엘릭서 비료를 뿌렸다.
즉시 싹이 돋아나고 순식간에 쭉쭉자라나며, 금방 한 그루의 사과나무 성체가 자리 잡았다.
신기한 것은 잎파리가 황금색을 띤다는 것이다.
또한 꽃은 순수한 은색을 띠고 있었다.
「이럴 수가. 자가수분을 하고 있다.」
본래 사과는 자기 꽃가루로는 수정이 되지 않는 타가수정작물.
하지만 놀랍게도 이 황금사과나무는 스스로 자가 수분을 하고 있었다.
「엘릭서에 장기간 노출되어 특이한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프리덤은 계속 관찰하고, 실험을 거듭했다.
일부러 농장 밖의 들판에도 엘릭서 비료를 뿌려서 심어 보았다.
하지만 그 경우, 성장 속도가 빠르긴 했으나 평범한 사과가 열렸다.
「테라리움 내부는 고농도의 엘릭서가 장기간 유지되는 생태계다. 이 돌연변이는 이 엘릭서 생태계 안에서만 발동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평범한 사과나무로 자라나는 것 같다.」
프리덤은 즉시 황금사과를 연구소에 보내서 성분 조사를 의뢰했다.
정말 예쁜 사과라고 호들갑을 떨며 사과를 챙겨간 연구원들은 얼마 후 조사 결과를 보내왔다.
[유해 성분 없음.]
[일반적인 사과보다 당도가 다소 높지만, 과다한 차이는 아님.]
[시중 유통 가능]
특별히 이상한 점은 나오지 않았다. 또한 특별히 대단한 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엘릭서가 작물에 부여하는 권능은 현대 과학으로는 증명이나 검출이 불가능하다.
이미 엘릭서 드링크는 종합적인 질병 저항력 및 치유력을 키워주는 게, 귀납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비교대조 실험을 통해, 엘릭서 드링크를 꾸준히 복용한 환자는 비슷한 상태의 환자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회복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통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성분 조사에서는 특별한 게 없으니, 제약회사는 지금도 미친 듯이 엘릭서 드링크를 파헤치는 중이다.
「이 황금사과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효능일까?」
모든 작물이 특별효능을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송이버섯(엘릭서 드링크 원료), 고추, 밀과 벼, 콩처럼 일부 작물에만 특별효능이 나타났다.
그 외는 그저 성장 속도가 빠르고 영양분이 듬뿍 함유되는 것으로 그쳤다.
「효능을 먼저 알아봐야겠군.」
프리덤은 이제 숙련된 농사꾼이다.
예전처럼 일단 팔아치우고 보자, 라는 마인드로 농장을 운영하지 않는다.
이 황금사과에 만약 고도의 상품성을 부여할 수 있는 특별효능이 있다면, 당연히 그에 따라 가격을 조절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과는 주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싸게 팔 수 있다면 비싸게 파는 게 오히려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일수 있다.」
쌀이나 밀, 고기와 생선 따위는 널리 인간들을 살찌울 수 있도록 싸고 대량으로 공급한다.
하지만 주식이 아닌 부식의 경우는 적당히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오히려 프리미엄 가치를 부여할 수 있으리라.
프리덤은 그룹 사내에서 100명의 시식 대상군을 선정했다. 그들을 상대로 일정 기간 사과를 먹이고, 효능을 검토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수영을 찾았다.
「마스터. 이 황금사과를 봐주십시오.」
"오, 이거 뭐냐? 누가 보면 진짜 금으로 만든 줄 알겠네."
「엘릭서 생태계에서만 나오는 돌연변이 황금사과입니다.」
"그럼 이 사과를 다른 데 심어도 똑같은 사과는 안 나온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테라리움 안에서만 이런 사과를 맺는 나무로 자라납니다. 나무의 형태도 다른 사과나무와 다릅니다.」
황금색 잎사귀와 진은빛을 띤 사과 꽃을 본 하수영이 끄덕거렸다.
"종묘가 유출될 일은 없겠네."
「그리고 굉장히 독특하고 재미있는 효능이 있습니다.」
"뭔데?"
「사과를 섭취하면 번식 욕구가 일시정지합니다.」
"일시정지?"
없어지는 것과 일시정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네. 1알을 먹으면 4일 정도 번식 욕구가 일시정지합니다.」
"일시정지한다는 걸 정확히 설명해 봐. 한두 가지 형태가 아니잖아. 뭐, 고자가 되는 거냐?"
「아닙니다. 아무리 매력적인 이성을 보거나 신체 접촉을 해도 성적 흥분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남성의 경우 생식기에 물리적 자극을 주면 반응해서 발기하지만, 삽입 욕구 등 번식 욕구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성 보기를 동성 보듯이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4일 내내 현자타임이 유지된다는 거네? 남녀 안 가리고?"
「네, 그렇습니다. 역시 마스터는 가볍게 정리를 해버리시는군요.」
"무슨 선악과도 아니고. 아무튼 신기하긴 하네."
「제 생각에는 군납용으로 최적의상품인 거 같습니다.」
"군납?"
「네. 성욕을 억눌러야 할 필요가 있는 환경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경쟁성을 가진 작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이 전면전 중이면 이거 보급을 하겠는데 평시인데 보급하기에는 좀 그렇다."
「효능을 알리고 자율배식을 권하시죠.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낀 병사만 먹으라고 말입니다.」
"흐음. 근데 이러면 꼭 똥별들이 내 말뜻을 곡해해서 강제배식을 시킨단 말이지."
「해군은 괜찮습니다. 제가 병영내에서 모든 병사와 24시간 함께 하고 있으니, 그런 짓을 하면 실시간으로 걸립니다.」
"해군에만 주면 분명히 육공군에서도 달라고 지랄을 할 텐데. 안 준다고 윽박지르기도 내가 좀 미안하고."
「그 대신 강제취식이 문제 되니 해군처럼 제가 24시간 병사 개개인의 인권을 후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 됩니다. 그럼 육공군에서는 달란 말을 더 이상 안 할 겁니다.」
"오, 그렇군. 괜찮다."
「육공군이 개개인 후견 조치를 취한다면 그때는 정말 공급해도 문제가 없고요. 그리고 해외 수출도 고려해 보시죠.」
"글쎄, 미군은 마초니즘이 워낙 쎄서 이런 건 죄다 질색할걸?"
「아, 그럴까요?」
"이런 건 인권 문제가 있어서 완전한 자율급식에 맡겨야 돼. 안 그럼 내 농장 이미지만 나빠진다. 근데 미군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먹을 거라고는 생각이 안 되는데?"
「조금 아쉽습니다.」
"일단 해군납품부터 준비해야겠다. 정서희 씨 연결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정서희와 통화 연결이 되었다.
현재 국군 군납은 그녀가 반쯤 도맡아서 하고 있기에 알려줘야 하수영이 편하다.
"……이러니까 해군에 일단 납품을 해주세요. 육공군이 나중에 요구하면 그건 제가 별도로 가이드 잡고 알려드릴게요. 이게 인권침해 문제가 좀 있어서."
정서희의 목소리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와, 이거 진짜 대박인데요?
"대박이라뇨.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강제 현자타임 때문에 시중에 막 팔 수가 없어요."
-생각해 봐요. 이거 수험생들한테 딱인데요? 머릿속에서 이성에 대한 잡념을 없애주니까, 맑은 정신으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잖아요.
"어?"
-입시생, 공시생, 고시생! 아무튼 수요가 엄청날 거예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