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175화 (1,175/1,270)

프랜차이즈 갓 1175화

273장 펜션 델루나(4)

김범석은 하나뿐인 주인이 왜 일본을 그리 말려 죽이려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놈들은 감히 주인님의 신성한 농경 생활을 훼방했다.'

서진파운드리는 농기구(로봇)에 필요한 부품(반도체)를 원활히 조달하기 위해 만든 자회사.

하지만 놈들은 감히 반도체 원료및 소재 수출 제한으로 비겁한 기습을 가하고, 워싱턴에 로비를 하면서 비열한 후속타를 가했다.

'그래서 주인님은 입자집합명령 기술을 공개하시고, 일본의 쌀과 생선을 장악하셨으며, 가전시장까지 박살을 내시려는 거다. 놈들은 주인님의 분노를 받아 마땅한 죄를 지었다.'

일본의 가전사업은 1억 3천만 명이라는 내수시장을 튼튼한 기반 위에 서 있다.

시대와 트렌드에 뒤처진 가전제품을 찍어내도 애국심에 취한 자국민들이 돈을 아끼지 않고 사준다.

그 내수시장을 집어삼킨다면, 일본의 제조업은 버티지 못한다.

게다가 지금은 윈텔 등 반도체 회사들이 주인님의 눈치를 보느라 일본에 반도체나 PC 등을 일체 수출하지 않고 있다.

어느 때보다 가장 취약한 상황인 것이다.

'주인님이 살려주신 이 기회, 반드시 놓치지 않겠다.'

김범석은 뜨겁게 혼을 불태웠다.

***

미쓰비시솔라퓨전.

일본 3대 재벌 기업집단인 미쓰비시 그룹에서 야심 차게 투자하는 핵융합연구 회사다.

미쓰비시솔라퓨전은 수영스페이스의 헬륨 경매 1차와 2차 모두 참여 했었지만, 다른 기관들처럼 중국의 대륙 머니에 패배했다.

하지만 3차에서는 중국이 여유가 생겼는지 입찰 레이스를 거칠게 달리지 않았다.

덕분에 대만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간신히 헬륨 100kg을 낙찰받을 수 있었다.

"조금 더 낙찰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게 한계였나?"

"그럼 운용 자금이 너무 커져서 외부의 주목을 받습니다. 대만의 작은 핵융합 기관이 100kg을 낙찰받은 것만 해도 이미 과합니다."

"주목을 받는 게 뭐가 문제인가?"

"회장님 지시입니다. 수영그룹이 반도체 문제로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으므로, 웬만해서는 눈에 띄지 말라는……."

"아버님이? 그럼 어쩔 수 없지."

고바야시 히로타마는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수송은 어떻게 할 건가?"

"옙. 소형 화물선을 따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제주도 남쪽 공해상에서 우리 측 선박과 접선 후 헬륨 탱크만 건네받고, 화물선은 그대로 대만으로 입항할 예정입니다."

"좋아. 그럼 의심을 사지는 않겠군."

헬륨-3는 핵융합 연구개발에 매우 중요하지만, 지구에서는 희귀해서 구하기가 어렵다. 돈이 있어도 못구한다.

그간 미쓰비시솔라퓨전은 헬륨-3가 부족해서 연구 속도가 매우 더뎠다.

하지만 이제 100kg이나 확보했으니,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으리라.

"헬륨 경매는 꾸준히 참가하도록. 낙찰을 받지 못하더라도 항상 최선을 다하란 말이야. 외부에서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낙찰받은 헬륨 탱크를 실은 대만 국적 화물선이 접선 장소로 향했다.

일본 선박에 헬륨 탱크를 넘겨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해군이다. 귀 선박들이 마약 밀수 중이라는 제보를 입수했다. 지금부터 귀 선박들을 검문하겠다.

***

장강필 대령은 로봇다리와 생체다리로 늠름하게 선 채 팔짱을 끼고 두 척의 화물선을 주시했다.

체급은 작다. 둘 다 수백 톤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인다.

고성능 카메라를 통해, 저들의 선교에서 당황해하는 선장 및 승무원들의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이놈들, 우리가 감시하고 있다는 전혀 몰랐던 모양이군."

"겨우 화물선 레이더가 무슨 재주로 우리 줌왈트를 탐지하겠습니까? 100미터 안으로 들어와도 레이더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을 겁니다."

"철저히 수색해."

공해상이지만 마약 밀수 수색이라는 핑계를 댔으니 배들을 수색할 명분이 있었다.

줌왈트에 합류해 있던 해병대가 둘로 나누어서 각각 배에 탔다.

승무원들은 마약 밀수라는 말에 새파랗게 질려서 두 손을 번쩍 든 채 순순히 수색에 응했다.

"찾았습니다!"

일본 선박으로 넘어간 헬륨 탱크를 찾아낸 대원이 급히 보고했다.

험상궂은 해병대 대위가 선장을 향해 으르렁거리듯이 물었다.

"이렇게 많은 마약을 밀수해서 어디로 운반하려던 참이었지?"

프리덤이 일본어로 번역을 해줬고, 선장은 새파랗게 질린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모릅니다, 몰라요. 난 그냥 그 물건을 받아서 일본으로 들여오면 된다고 들었을 뿐입니다. 그게 마약인지 뭔지도 몰라요. 거기 보세요. 헬륨 탱크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일본은 헬륨을 낙찰받은 적이 없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 몰래 들이려던 마약 재료가 아닌가?"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어쨌든 이건 우리가 압류하겠다."

"그, 그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소명해라. 왜 일본 선박에 헬륨이 실려 있었나?"

"그건……."

선장은 할 말이 없어서 입안에서 침묵만 계속 맴돌았다.

있을 수 없는 헬륨 탱크가 있으니, 헬륨으로 위장한 불법적인 물질이라고 오해를 받은 상황.

"귀선들도 우리와 함께 가줘야겠다. 한국에 마약 원료를 밀수하려던 정황이니 협조 바란다."

"……알겠습니다."

하필 제주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해라는 게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두 선박은 결국 줌왈트를 따라 꼼짝없이 제주도해군기지에 입항해야만 했다.

***

"마약 밀수라고?"

미쓰비시는 발칵 뒤집어졌다.

"네! 헬륨 탱크를 위장 마약으로 오인한 한국 해군이 화물선 두 척을 끌고 제주도 해군기지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어떡합니까?"

"젠장! 젠장!"

마약이 아니니까 그 점은 걱정할게 없다.

하지만 일본이 대만의 페이퍼컴퍼니를 내세워서 몰래 헬륨을 샀다는 게 드러나 버린다.

이게 범죄는 아니지만, 두고두고 개망신을 뒤집어쓰게 생겼다.

'차라리 부정을 해야 하나?'

그럼 공개적으로 망신살이 뻗치는 건 피할 수 있다.

물론 하수영은 전말을 알고 있으니, 뒤에서 미쓰비시를 실컷 비웃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쪽팔림이 장내에서부터 역류하는 것만 같았다.

'돈이 얼만데!'

헬륨-3 100kg을 낙찰받는 데 자그마치 5,000만 달러나 들었다.

미쓰비시솔라퓨전 입장에서도 적은 돈이 아니다. 매우 큰 돈이다.

망신이냐, 헬륨이냐.

어느 쪽을 고를 수도 없는 갑갑한 상황이 숨을 막히게 했다.

고바야시 히로타마는 식은땀을 흘렸다.

"사장님! 한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서해그룹 김범석 사장입니다!"

"……그게 누구지?"

서해그룹은 물론 안다. 하지만 김범석이 누군지는 모른다.

"서해그룹 이창영 회장의 혼외자로 지금 이현덕 부회장과 승계 싸움 중인 막내입니다. 하수영 회장의 오른팔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수영 회장의 오른팔? 연결해."

"예!"

그렇게 통역을 사이에 두고, 두 사장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적당한 공치사 후, 김범석이 바로 잽을 날렸다.

-제가 매우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소식을 들어서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헬륨 100kg을 낙찰받은 대만 기업이 알고 보니 미쓰비시솔라 퓨전이 내세운 페이퍼컴퍼니라고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재미있군요. 저는 듣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아니, 천하의 미쓰비시 그룹이 뭐가 아쉬워서 바지회사를 내세워서 헬륨을 구매한단 말인가요? 그냥 '히사타로 총리 각하'께 한마디만 부탁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을요.

"……!"

고바야사 히로타마는 이를 악물었다.

총리 각하라고 일부러 깍듯하게 칭하는 걸 보니, 분명히 도발하는 거다.

-하도 말 같지도 않은 소문이 돌고 있어서 미쓰비시솔라퓨전에서도 혹시 알고 계신지, 모르신다면 대비하시라는 뜻에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감사…… 합니다."

-뭘요. 미쓰비시 그룹은 우리 한국과 의미 깊은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과 생체 실험 등으로 조선의 고혈을 착취한 것을 비꼬는 말이지만, 왜곡된 역사를 배운 고바야시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이대로 끝나면 헬륨은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가 쏟아부은 5,000만 달러는?'

그냥 5,000만 달러가 아니다.

세간의 눈을 피하기 위해 조세회피처를 거치며 몇 번이고 세탁을 거친 자금이다.

고바야시 히로타마는 눈앞이 캄캄해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여의도를 움직여야 하나?'

현직 국회의원의 상당수는 어렸을 때부터 일본 정계의 후원을 받고 자라난 장학생들.

그들이 나선다면, 이 판을 해결할 수 있을까?

'수영그룹에 맞서는 일이라면 놈들이 대가를 크게 부를 텐데.'

어쩌다가 이런 난감한 상황에 처했는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제주도에서 가까운 공해에서 헬륨을 인도하다가 걸렸는지, 욕이라도 실컷 내뱉고 싶었다.

그나마 희망이라면, 상대가 아직 전화를 끊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미쓰비시 가전사업은 요즘 좀 어떻습니까?

"그건 제 소관이 아니라 잘 모릅니다만, 잘 나가고 있지 않겠습니까."

-아, 그런가요. 나중에 미쓰비시회장이 되실 분이라 전자사업부에도 지대한 신경을 쓰실 줄 알았는데요. 제가 잘못 짚었군요.

갑자기 가전사업 이야기는 왜 꺼내지?

고바야시는 머리를 열심히 팽팽 돌리다가 불이 번쩍 켜졌다.

"승계 분쟁 중이라 하셨지요? 혹시 서해전자 가전사업부를 차지하신 겁니까?"

-정해진 건 없지요. 이왕이면 서해 전자를 통째로 차지하고 싶은 욕심입니다. 사업부 몇 개 쪼개서 가져오는 것은 성에 차질 않아서요.

걸렸구나!

"서해전자의 가전은 그 성능과 품질, 가격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지요. 일본산 가전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에이, 그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가전은 사실 델지가 더 낫죠.

겉과 속이 다른 문화적 특징을 가진 고바야시조차도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이게 서해그룹 승계 분쟁 중인 자가 할 말인가?

확실한 것은, 김범석이 헬륨과 대만 회사에 얽힌 비밀을 다 알고 전화했으리라는 의심이었다.

고바야시는 승부수를 던졌다.

"서해전자를 가져오시려면 언제든 핸들링할 수 있는 실적이 있는 게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음, 감이 잡히지 않는군요. 핵융합연구회사가 어떻게 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겁니까?

"미쓰비시의 가전은 일본에서도 으뜸으로 쳐줍니다. 유통망 역시 단단히 두 손에 움켜쥐고 있지요."

고바야시는 평소보다는 덜 돌려서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약간의 정적 후, 김범석이 드디어 반응했다.

-제주도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필요한 시간이 지나면 순리대로 흘러갈 겁니다.

고바야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받을 거 받고 나면 헬륨을 조용히 돌려주겠다는 거로군.'

몇 달 정도 늦게 받아도 상관은 없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큰 소란 없이 조용히 돌려받을 수만 있으면 그만이다.

'처음부터 기획한 걸까? 아니면 선박 압류 소식을 듣고 파헤치다가 알게 된 걸까?'

그런 의구심이 잠시 들었지만 곧 치워 버렸다.

거래를 하기로 한 이상, 그런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

김범석은 미쓰비시 그룹과 가전유통공급계약을 맺었다.

소식이 알려지자 델지전자, 그리고 수많은 중소 가전회사들이 김범석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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