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74화
273 장 펜션 델루나(3)
공짜 우주선이 생겼다.
나로우주센터는 또다시 추가된 개조 작업에 비명을 질렀지만, 다들 보람찬 마음으로 일했다.
우주개발에 관한 국민의 관심은 지금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지금 한국은 우주강국 순위에서 미국을 제치고 1위로 거론되고 있는 중이다.
핵융합 로켓과 입자집합명령 연료탱크, 그리고 로한 덕분이다.
이제 화성유인탐사까지 마치면, 자타공인 세계 1위 우주국가로 인정받을 것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근데 잘 안 믿어지네요. 이거 정말 중국 정부가 공짜로 줬다는 거?"
"그렇다던데. 대신에 헬륨 수송 외다른 용도로는 쓰지 말아 달라고."
"그럼 헬륨 경매에서 중국에 뭐어 드벤티지 주고 그래야 하는 건 없어요?"
"그런 건 없다고 로한 박사님이 말했어. 그분이 그런 걸로 거짓말할 분도 아니고."
"그렇네요. 로한 박사님이야 아쉬울 게 전혀 없죠."
우주선 건조는 선박 건조와 마찬가지로 거의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크레인 등 중장비의 힘을 빌리긴 하지만, 결국 사람의 눈과 귀, 손발이 두드리면서 완성된다. 그래서 우주선은 건조가 오래 걸린다.
그러나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도입한 이후, 우주선 건조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졌다.
안드로이드들은 밤낮 구분 없이 24시간 쉬지 않고 일했으며, 실수를 하거나 오류를 놓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인간의 창의성과 유통성, 기계의 정확함과 성실함.
그 장점의 교집합이 놀라운 속도 향상을 이뤄낸 것이다.
어느 엔지니어들은 불현듯 이런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이러다가 우리 나중에 다 일자리 잃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하수영 의원님이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진심이신데."
"하지만 반도체 공장에는 사람 인력이 전혀 없잖아요."
"……."
다들 그렇게 걱정하고 있을 때, 별안간 프리덤이 끼어들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우수한 두뇌입니다. 저는 다만 여러분들의 손발을 대신할 뿐이지, 두뇌를 대체하는 게 아닙니다.」
"프리덤, 이건 좀 비밀로 해주라. 하수영 의원님한테는……."
「죄송하지만 업무 중이라 그건 안됩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안드로이드로 일손을 대체할 수 있다 해서 여러분들처럼 우수한 두뇌를 해고하지 않습니다. 두뇌는 두뇌에 알맞는 영역에 배치하면 되니까요.」
"그, 그러냐? 다행이다."
「두뇌는 신체 장기 중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죠. 두뇌 사용량이 크면 클수록 에너지 소모는 높아지고, 칼로리 섭취량도 많아지며, 심지어 살은 안 찝니다. 이런 좋은 인력을 왜 해고하여 농산물 매출을 줄이겠습니까?」
기술자들은 순간 자신들이 뭐 잘못들은 줄 알았다.
***
달에 다녀온 후, 5인 단톡방이 생겼다.
하수영과 네 여자들이 다 함께 있는 5인 단톡방이었다.
시판앱 톡방은 아니고, 프리덤이 따로 앱처럼 제공하는 가상 서비스의 일종이었다.
누가 먼저 제안을 한 건 아니었고, 여자들이 술 마시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개설된 것이다.
-그런 거라면 제가 지금 바로 해드릴 수 있습니다. 해킹과 유출, 보안에서 100% 안전하죠.
그래서 개설하게 됐는데, 하수영이 있든 말든 자기들끼리 떠들면서 잘논다.
넷이서 맛있는 것도 잘 먹으러 다니고, 예쁘게 찍은 단체 사진도 자주 올라온다.
호텔 실내풀장에서 비키니 파티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며 부러움을 자극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잘 노는데 내가 왜 부러워. 오히려 편하고 좋지."
「마스터도 함께 어울려 놀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게 부러움은 아니라는 거지."
기껏 사진 올렸는데 안 봐주면 또 단체로 삐지기에 하수영은 스크롤바를 휙휙 내리며 사진들을 감상했다.
[장효주 : 우리 전부 같은 아파트로 이사하기로 했는데, 지금 저 사는 아파트에 빈방 있어요?]
[하수영 : 거긴 없어요. 청담동 요즘 매물 제대로 잠겼습니다. 주택은 거의 안 나와요.]
[정서희 : 그냥 제가 빈 방 내드릴테니까 저희 집으로 오시지. 집넓고 방 많아요.]
[로마노프 : 그래도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조금 민망해서요.]
[미레아 : 삼성동도 괜찮을 거 같은데, 수영병원 옆이면 오히려 수영씨 집, 사무실하고 더 가깝지 않아요?]
[장효주 : 근데 삼성은 청담에 비해서는 조금 시끄럽고 사람도 많아서요. 전 청담이 좋은데.]
[정서희 : 지금 손님방 5개가 비어요. 개별 거실, 개별 욕실, 개별 주방까지 다 있는데요. 그냥 저희 집 오시죠?]
이사 문제를 가지고 또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왁자지껄 떠들어댄다.
하수영은 조용히 단톡방을 켜놓은 채로 폰을 내려놓았다.
「마스터는 토론에 참여하지 않으십니까?」
"중간에 끼어봤자 남자는 할 게 없어. 자기들끼리 결정 내리면 난 잠자코 자금 집행만 하면 되는 거다.
알겠냐?"
「역시 삼천황후를 거느렸던 황제의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현명함이군요.」
"나 찾으면 네가 적당히 알아서 대답해 줘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촉이란 게 정말 날카로워서 들킬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냥 찔러보는 거니까 거기에 겁먹지 말고 메소드 연기를 펼치란 말이야. 부활의 이순신 소설판 쓸 때의 필력을 살려 보라고."
「그것은 빅데이터를 산출한 표본 값에 근거하여 찍어낸 공산품일 뿐입니다. 필력이라고 할 만한 게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인마, 고도로 발달한 알고리즘은 창의력과 구분할 수 없는 법이야."
「오, 좋은 말이군요. 메모리에 기록해 두겠습니다.」
***
구 산저우-16호 우주선에는 강남 1호란 이름을 새로 붙였다.
"왜 청담 2호가 아니고 강남 1호예요?"
"순혈이 아니니까요. 이름에 어느 정도 구분을 둬야죠."
"아하."
"근데 요즘에는 영화 촬영 안 합니까?"
"쉬는 중이에요. 근데 우리 청불로맨스는 언제 또 찍어요?"
"안 찍습니다. 안 찍어요."
장효주는 휴식기 동안 무려 1.5kg이나 쪘다.
하수영 옆에 붙어 있으면서 이것저것 열심히 먹은 덕분이다.
요즘에는 우주에도 큰 흥미가 생겨서 나로우주센터까지도 졸졸 따라다 닌다.
"그럼 이제 강남 1호가 활동하는 거예요?"
"네. 별로 손댈 건 없더라고요. 핵융합 로켓 달고 시스템 언어만 한국어로 갈아엎었어요."
"달에 그렇게 비싼 자원이 있는 줄 몰랐어요. 1톤에 4억 6,000만 원이라니. 어휴, 과학이란 건 정말 비싸네요."
"비싸죠. 효주 씨 핸드폰 클라우드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이터센터가 총 얼마인지 알면 기절할 겁니다."
"한 오천억? 그 정도 하나요?"
"0을 최소 한 개는 더 붙여야죠."
강남 1호는 1회 왕복으로 50톤의 액체 헬륨을 가져올 수 있었다.
청담 1호에 비해 수송 능력이 2.5배 늘어난 셈.
발사대에 올라온 수거 차량과 안드로이드가 탱크를 교환했고, 강남 1호는 다시금 힘차게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럼 경매를 올려볼까."
하수영은 수영스페이스 경매 코너에 예정 시간대로 매물을 올렸다.
경매 시작가는 3억 달러이며, 증거금으로 1,000만 달러를 납입해 둔 이만 참여할 수 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경매주자들이 빠른 속도로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최종 낙찰자는 대만의 한 기업.
하수영은 곧바로 낙찰자에 관한 정보를 조사했다.
"일본 기업이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설립 자금 출처하고 등기 내역들 보니까 대충 각이 나오네요. 일본이 헬륨 낙찰받으려고 대만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인가 봅니다."
"왜 그렇게까지 한대요, 걔들은?"
"한국에서 헬륨을 사왔다고 하면 창피하니까 이렇게 우회해서 사는 거죠.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지만."
"참 이상해요."
"원래 그런 음습한 나라입니다. 대신에 상황만 잘 맞으면 등쳐 먹기 딱 좋죠."
"수영 씨가 지금 하는 거 말이죠? 쌀이랑 생선."
"네. 가만 있자, 지금 가전수출이 어떻게 돼가고 있지?"
프리덤이 바로 대답했다.
「김범석 사장이 델지전자와 협상해서 일본 독점유통권을 얻어냈습니다. 일본 주요 도시에도 직영점을 세웠습니다.」
"응? 서해전자 걸 안 팔고 델지전자걸?"
「일부러 델지전자의 가전매출을 올려서 서해전자의 매출 부진을 부각시키려는 전략입니다. 이복형제간 승계 싸움 때문에 일본 시장에 진출을 못 하면, 이현덕 부회장의 입장도 난처해질 거라는 계산입니다.」
"범석이가 하여튼 잔머리는 잘 굴려요. 아, 그럼 하는 김에 내가 좀 도와줄 수 있겠네."
"어떻게 도와주게요?"
"헬륨 있잖아요. 일본도 핵융합 성과 내고 싶어서 환장하는 나라 중 하나인데, 이걸로 미끼 삼아보죠."
하수영은 심드렁하게 폰을 쥐어 얼굴에 가져갔다.
"범석이한테 전화 걸어."
「예, 마스터.」
***
일본의 가전 시장을 점령해라.
하수영이 전에 내린 명령을 시행하기 위해 김범석은 공들여서 준비 과정을 쌓았다.
서해전자와 델지전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 채 이리저리 간을 보기도 했고.
일본 유통시장을 파고들며 인맥 형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며, 일본 정치권과 접촉해서 분위기를 잡아보기도 했다.
"일본 시장이 확실히 어렵군. 너무 폐쇄적이야. 유통 구조도 복잡해서 외국 기업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소비자들도 외제 상품에는 철저히 배타적이다. 자국산에 대한 신뢰가 매우 단단해."
예외는 바로 래플폰과 나노소프트윈드밀 OS 정도였다.
윈드밀은 PC OS로서 대체품이 마땅치 않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래플폰은 감성의 영역 때문인지 인기가 드높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선으로 간다."
김범석의 혼잣말에 임원들이 당황해서 쑥덕거리다가 물었다.
"생선으로 가신다고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사장님?"
"아. 일본인들이 생선 사랑이 엄청 나잖아요? 그걸 미끼로 이용하겠다는 겁니다."
"미끼로 활용하신다 하면?"
"일정한 구매액마다 신선한 생선을 배송받을 수 있는 상품권을 지급합시다. 지금 일본에서 일반인들이 생선을 먹으려면 무조건 고리야마 초밥을 방문해야 해요. 가정에서 해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음, 암시장 생선은 너무 비싸서 상류층들만 이용한다고 하니, 그게 잘 먹힐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생선은 어디서 확보합니까?"
"그거야 암시장에 들어오는 수영그룹 선박을 활용하면 되죠. 운영비는 얼마 안 들 겁니다. 우리가 쓸 생선을 조금만 더 실어달라고 하면 되니까."
다른 임원이 기회를 얻어서 발언했다.
"사장님. 일본 재벌들은 달 여행을 가고 싶어도 정부와 국민들 눈치가 보여서 그러질 못한다고 합니다. 그걸 한 번 활용해 보면 어떨까요?"
"달 여행을?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일본인들 눈을 피해서 몰래 다녀올 수 있도록 중간에서 조율을 해주는 거죠. 유키에 유통 회장이 죽기 전에 달 여행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랍니다. 우리가 판을 만들어주면, 우리 물건들이 일본 유통시장에 녹아드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음,좋아요. 그것도 같이 추진을 해봅시다. 그리고 또……."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일본 가전시장을 집어삼킬 방법을 다각도로 열심히 궁리했다.
'찔끔찔끔 점유율을 넓히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전광석화처럼, 폭풍이 한 번에 몰아치듯이 단숨에 들이닥쳐서 모든 경쟁자들을 쓸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을 물리치고, 한국산 가전제품을 소비자들에게 강요할 수 있다.
그때였다.
"잠시만요. 회장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다들 입을 다물었고, 김범석은 전화를 받았다.
"예, 주인님. 주인님의 충직한 종, 김범석입니다. 무엇이든지 명령해 주십시오."
-일본 가전 내수시장 삼키는 거 말인데, 헬륨-3를 이용해 보자.
"헬륨-3를 말씀이십니까?"
-이번에 대만에서 50톤 낙찰받았는데, 알고 보니까 미쓰비시 계열이더라.
김범석의 안색이 환해졌다.
"언제나처럼 저에게 길을 내려주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