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55화
268장 너의 미국은 Your America (4)
냉정하게 따지면, 이 조약으로 인해 미국이 당장 잃을 것은 없다.
오히려 입집명 연료탱크, 핵융합로켓의 지원으로 인해 우주진출의 패권을 한층 더 공고히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하수영과 미국은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경제적 운명공동체였다.
하수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미국은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튼 실리적으로는 미국이 압도적인 이익을 취하게 되었다.
"이미 우리는 중러북이 전쟁을 일으키면 무제한으로 맞서 싸워 물리 칠 각오를 했습니다. 여기에 하수영회장이 다른 나라 하나 더 침공해서 식민지로 만든다 해서 편들어주지 못할 게 뭡니까."
비공개 만찬에서 상하원의원들은 얼큰하게 취한 채 하수영과 교류를 쌓기 위해 노력했다.
하수영은 아예 와인병 여러 개를 든 서빙 직원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병나발을 불었다.
"그런 사람들이 왜 저번에 청문회에서는 절 그렇게 몰아붙였습니까?"
"커흠, 흠.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라고 여겨주시면…… 그때 이후로 우리들도 참 반성 많이 했습니다."
반도체 패권주의를 지키려 한 의회가 하수영을 청문회장으로 불렀고, 500명이 넘는 의원들이 한 명의 무제한 발언을 체력적으로 감당하지 못해서 모조리 쓰러졌던 일.
이제는 웃고 떠들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너무 큰 염려하지 마세요. 저는 연속성을 중시합시다. 사람이 하던 대로 해야지, 갑자기 안 하던 짓을 이리저리 해대면서 주변을 놀라게 하면 안 돼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더 그래야 합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하하."
"Your America! Oh, my America!"
상하원 가릴 것 없이 전부 다 하수영한테 청문회에서 털린 경험이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다면, 그것도 아주 큰 힘을 가진 존재라면, 세상없이 든든한 법.
비공개 만찬은 내내 뜨겁고, 유쾌 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
하수영이 미국에 있는 동안 미레아가 전담해서 에스코트했다.
그녀는 밝은 천연 금 주근깨없는 맑은 흰 피부, 그리고 선이 얇은 이목구비를 가졌다.
한국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꼽는 금발 백인 미인상이었다.
"로마노프가 청담동 카지노에 취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청담동은 아니고 삼성동입니다. 서로 붙어 있긴 하지만요."
"아무튼 부럽네요."
"그럼 미레아 씨도 올래요?"
"불러주시면 가죠. 그런데 제가 CIA 요원이라."
"그건 제가 말 한 마디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국장한테 전화해서 바꿔줘요."
미레아는 '하메리카 조약'의 존재를 모르지만, 하수영이 그 정도 힘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군말 없이 전화를 바꿔주자 국장의 목소리가 대번에 공손해졌다.
"미레아 요원을 한국에 파견해 줬으면 해요. 근무지는 청담이나 삼성으로 해줬으면 좋겠고요. 안가가 없으면 새로 만들 수 있죠?"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이번에 귀국할 때 같이 들어갈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CIA 국장은, 정치인들을 제외하고 '하메리카 조약'의 내용을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인물이었다.
하수영의 부탁은 곧 백악관의 명령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와우, 역시 수영 씨 입김은 정말 대단해요."
"미인 친구는 가까이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그런 것치고는 여자를 멀리하시는거 같던데?"
"친구로는 얼마든지 많아도 부족한 게 미인이죠."
라스베이거스 수영 카지노에서 게임을 즐기며, 그녀로부터 미국 사정을 들었다.
"콜롬보 패밀리가 몰락하고 뉴욕은 쭉 4대 마피아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요. 남은 가족들은 4대 마피아에서 조금씩 생계를 도와주나 봐요."
"원래 무법자들이 작은 것에서는 또 체면을 엄청 챙기는 척하죠."
"콜롬보 패밀리는 감옥에서 수영씨가 또 뭐 일거리 줄 거 없나 하고 기대하는 눈친가 봐요. 그자들에겐 그게 휴가니까요."
"나중에 써먹을 데가 있겠죠. 콜롬비아 청소용으로 괜찮으려나?"
"그러고 보니 콜롬비아에 농장 있었죠? 3,000제곱킬로미터 정도 됐었나요?"
***
오랜 파트너이자 축산재벌 비프스캘론도 라스베이거스로 찾아왔다.
"메탄 수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어요. 모두 하수영 회장 덕분입니다. 유럽 놈들,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을 어찌 끌지 편안히 지켜봅시다."
유럽은 꾸준히 탄소세를 붙이면서 환경정책을 장려해 왔다.
그러나 러-우 전쟁으로 인해 물가와 경제가 불안정해지자, 탄소세는 오히려 유럽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왔다.
오랜 온실가스 빌런이었던 미국은 모든 축산 농가에 메탄 포집 안테나를 설치하면서, 육류에 붙는 탄소세만큼은 확실하게 잡았다.
게다가 4억 달러짜리 보잉 747-8을 1,000 기나 새로 만들어서 안테나로 잡아내지 못하는 메탄까지도 모두 포집하려 하고 있다.
"우리 캘론 그룹 입장에서 걱정인건 딱 하나입니다. 농산물 작황량이 꾸준히 줄고 있어요. 작년에도 변종 곰팡이병이 퍼지는 바람에 밀과 옥수수가 작살 났습니다. 거기다가 오대호에 큰 가뭄까지 들고. 세상이 정말 어찌 되려나 모르겠어요."
"사료 조달이 걱정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수출을 좀 해드릴까요?"
"수출보다는 수영농장이 농장 진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밀과 대두, 옥수수 정도만이라도 미국에서 농사를 지었으면 합니다."
"흐음. 행정부는 문제가 안 되는데 다른 곡물 기업들이 심장마비로 죽을까 봐 걱정이네요. 고려해 보겠습니다."
비프스 캘론은 드넓은 농지를 경영하지만, 그 목적은 축산업에 필요한 사료 조달 때문이었다.
그가 생산하는 옥수수와 대두는 대부분 가축 사료 원료로 가공된다.
치솟은 육류값 덕에 축산업은 땅짚고 헤엄치는 수준이지만, 작황 저하로 인해 사료 조달은 오히려 힘들어졌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일단 소소하게 밀 농장부터 세팅해보죠."
"이거 이제야 안심이 되는군요."
"저도 캘리포니아에 목장이 있잖아요. 어차피 사료 조달을 할 거면 미국에 농장을 짓는 게 낫습니다."
밀 농사를 지으면 밀짚 밀겨울, 밀겨 등 가축 사료 부산물을 얻을 수 있다.
사람 먹을 밀도 팔고, 가축 먹을 사료도 팔 수 있는 셈.
"그래요, 이제 미국에 농장 진출할 때도 됐죠."
"이번 방미 일정에서 무언가 빅딜이 있었나 보군요."
"하하, 저야 말씀드려도 상관없는 데, 워싱턴 입장이 좀 난감해집니다."
"저도 듣지 않으렵니다. 실수로라도 흘리지 말아 주십시오."
"미레아 씨, 근데 짐은 어떻게 할 거예요?"
"아, 집에 들르긴 해야겠네요."
"나중에 가족에게 싸서 보내라고 하면 안 되나? 필요한 건 내가 사줄게요."
"전부 다 사줄 거예요?"
"네. 필요한 건 뭐든지. 근데 그 전에 멕시코 좀 잠깐 들릴 겁니다."
미레아와 비프스 캘론 둘 다 의아해졌다.
"멕시코는 왜요?"
"판다 좀 사려고요."
"판다? 그 곰 판다 말하는 거예요?"
"네. 멕시코에 중국 소유물이 아닌 판다가 몇 마리 있던데 한국에 데려 오려고 합니다. 멸종위기종이니까 제가 잘 먹이고 케어해서 수 좀 불려 보렵니다."
***
하수영은 정말로 멕시코를 들러서 판다를 구매했다.
즉흥적인 일정이 아니었는지, 전세기 화물칸에는 판다를 수용할 수 있는 설비를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심지어 사육사도 함께였다.
판다를 판매한 이는 멕시코에서 알아주는 마피아 보스였다.
수컷 두 마리와 암컷 세 마리였다.
"갑자기 판다에 꽂히기라도 했어요?"
"예전에 자주 기르던…… 아무튼 희귀종은 있어서 나쁠 게 없죠. 당분간은 동물원에 위탁해서 기를 겁니다. 시설도 다 갖춰 놨어요."
531세대의 재건축 아파트단지를 인수해서 짓는 청담동 수영아트센터가 조만간 완공된다.
수영아트센터는 주상복합쇼핑문화센터로, 아쿠라리움과 극장, 쇼핑, 그리고 희귀동물원도 들어갈 예정이다.
"그런 곳에 판다가 빠지면 안 되죠."
"음, 근데 중국이 도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요?"
"당연히 그럴 의도도 있죠."
"……."
"두고 보세요. 제가 순식간에 번식 시켜서 1만 판다를 양성할 겁니다."
"지금 전체 숫자가 2천 마리 조금 넘을 텐데, 그걸 어떻게 1만 마리까지…… 근데 수영 씨라면 가능할 거 같네요."
"소화 잘되고 건강에 좋은 수영농장산 특제 대나무를 먹여서 키울 겁니다."
판다의 중국의 자존심이자 외교 무기, 해외에 있는 판다는 99% 임대로 반출된 것이며, 한국에 몇 마리 남은 판다도 소유권은 중국에 있다.
새끼를 낳아도 여전히 중국의 소유.
그런데 중국의 소유권이 아닌 판다를 멕시코에서 데려와서 숫자를 늘린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체면이 상할 것이다.
***
하수영이 멕시코를 경유해서 판다 다섯 마리를 데리고 귀국했다.
판다에 관심을 보이는 언론은 별로 없었다.
그보다는 로한이 화성유인탐사선을 공표한 이 민감한 시기에, 하수영이 무엇 때문에 미국을 방문했는지에 다들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수영이 운영하는 F1 레이싱 커뮤니티, 스페이스 포뮬러 자유게시판은 한창 떡밥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미국이 입집명 우주선 연료탱크 때문에 부른 것은 확실한 거 같은데요.
-하수영 회장님이 직접 미국까지 간 걸 보니까 보통 큰 선물을 약속한 게 아닌 모양입니다.
-이제 그만 로한 데리고 미국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전한 게 아닐까요?ㅠㅠ
-아…… 하수영 회장님 미국 가시면 우리나라 진짜 낙동강 오리 알되는 건데요.
-저만 판다 귀엽나요? 왜 다들 판다 이야기는 안 하나요?
-저도 귀여워요. 판다 이야기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그래도 다행인 건 화성탐사선은 항우연과 함께 건조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겁니다.
-그거야 미국의 힘이면 얼마든지 위약금 주고 물릴 수도 있는 거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국제사회는 무조건 힘이 법이에요.
-정부는 겨우 천억 주고 화성탐사선에 숟가락을 올리려고 하다니. 너무 양심이 없는 거 아닌가요?
-진짜 입집명 기술 미국에 주면 안 되는데…….
정·재계, 학계에서도 바짝 긴장해서 하수영의 입을 주시했다.
공항에서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 대며 질문을 쏟아냈지만, 하수영은 무시하고 지나쳤다.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연락이 빗발쳤다.
미국에서 무슨 거래를 했는지 다들 알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반응이었다.
정말 미국으로 넘어가기로 약속이라도 했을까?
입집명 기술의 무한한 가능성이 미국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한 것일까?
그런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이, 수영식품그룹 공고에서 나왔다.
[수영농장, 미국에서 밀 재배전용 농지를 구입하기로 결정.]
수영농장은 캘리포니아에 목장을 샀지만, 농장은 아직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미국에서 직접 농사를 짓겠다는 발표를 해버렸다.
하필 이런 시기이다 보니, 하수영의 방미 목적과 결합해서 온갖 음모론과 망상을 낳았다.
한국의 증시는 무섭도록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영그룹이 미국으로 기반을 옮길 거라는 공포감이 주가를 짓눌렀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정식 발표를 내놓았다.
-로한 교수는 우리 항우연과의 화성탐사선 합동건조를 위해, 수영코스모스를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나사는 보유한 모든 우주 관련기술 및 노하우를 무제한으로, 수영코스모스에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떨어졌던 증시가 다시 회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