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51화
267장 청담이 마음으로 낳은 대스타 (5)
로한이 취미로 우주선 설계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나사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위기감은 우주선의 정확한 스펙이 밝혀지며 공포가 되었다.
말이 입집명 압축연료탱크지, 기존우주기술로 보면 '무한연료탱크'나 마찬가지 수준이었다.
연료 걱정 없이 우주선을 펑펑 쏘아 올리고 신나게 탐사한 다음에 돌아올 수 있는데, 무한이 어디 별거겠는가?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무한동력이요, 무한지갑이다.
물론 탱크에 들어갈 연료를 생산하는 건 그대로지만, 어디 연료비용이 문제겠는가.
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나사가 존폐의 위기에 설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사국장이 손수 여의도까지 와서 로한을 영접했다.
"음, 괜찮습니다. 나사가 피해를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정말입니까?"
나사 국장은 화색이 되어 얼굴을 들었다.
하지만 로한의 말은 이제 시작이었다.
"어차피 입자집합명령 기술은 외부에 제공하지 않는, 그룹 내에서만 사용하는 기술입니다. 앞으로도 쭉, 계속 말입니다."
"그, 그것은……."
나사 국장은 당황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핵융합로켓과 입집명 연료탱크를 제공받는 것이었다.
기술 공유는 안 해줘도 된다.
그냥 물건만 팔아달라는 것.
베끼거나 뜯어볼 마음도 없고, 그게 가능하다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개발도상국 왕족이 페라리 수집에 관심이 있지, 페라리 제조 기술에는 눈을 안 주는 것처럼.
"부디 핵융합 로켓과 입자집합명령 장치를 팔아주십시오. 절대로 기술 분석시도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저 제품 사용만 원합니다."
"하하하, 국장님. 기술이라는 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품을 손에 넣으면 일단 뜯어서 보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 어떤 천문학적인 배상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위약금은 필요 없어요. 저는 제 지적 재산을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어떤 위험 가능성도 감수하지 않을 겁니다."
"로한 박사님."
"그리고 사실 저는 박사가 아닙니다."
로한은 정식 학위가 없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가리켜 교수, 박사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교수, 박사가 아니라면 그 많은 과학자들은 죄다 유치원 졸업장취급을 받아야 한다.
"대신 나사가 원하는 발사체를 우리 우주선이나 로켓에 실어서 대신 발사해 줄 수는 있습니다. 합리적인 비용만 낸다면요."
"그건……."
"이 정도가 마지노선입니다. 기술 제공은 물론이고 완제품 판매도 할 수 없습니다."
원래 까마득한 미래의 기술을 하수영이 신어를 통해 구현한 것이다.
신어의 도움 없이도 구현이 가능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의 산업기술 인프라를 크게 발달시켜야 한다.
그래서 하수영은 딱 필요한 중간과정만 신어로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전생의 지식을 무분별하게 세상에 풀어놓지 않기 위해서다.
'이런…….'
나사 국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핵융합로와 입자집합명령 연료탱크.
나사는 그 두 가지를 무조건 손에 넣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까지 혈세를 퍼부어가며 축적한 우주기술이 모두 무용지물이 돼버리기 직전이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만약 제가 나타나기 전 항우연에서 어떤 대가든 치를 테니 나사의 모든 제품을 공유해달라고 한다면, 나사는 들어줬을까요?"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걱정 마세요."
로한은 느긋하게 덧붙였다.
"실물은 팔진 않지만 서비스는 팝니다. 발사 비용과 절차는 크게 아낄 수 있을 겁니다. 화성도 7개월이 아니라 1개월이면 도착할 수 있고요."
"……."
화학로켓 대신 핵융합 로켓을 쓰면 화성 편도 1개월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손을 잡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사의 우주진출은 이제 수영그룹의 통제하에 묶이게 된다.
미 정부가 과연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까지 미 정부는 현실적으로 수영그룹과 많은 타협을 했고, 양보도 했다.
미국이 선도하는 첨단기술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경쟁자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지만, 수영그룹만큼은 예외로 쳤다.
아니, 예외로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주진출기술까지 그렇게 하려고 할까?
우주진출기술은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우주선은 언제든 타국을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공격할 수 있는 전략적 위협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라서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 협조 요청도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이야기로군요."
"원래 하수영 교관님 혼자 쓰기 위해서 나온 기술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에 핵융합 발전소를 설치해드렸습니다."
사실 미국 핵융합 발전소는 위장이다.
정확히는 강릉 발전소에서 무선으로 전기를 보내고, 미국은 송신 안테나 제작을 위해 국고를 털어 금 2,000톤을 보냈다.
하지만 나사 국장은 그 기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점은 저 역시 미국 시민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입자집합명령 장치와 핵융합 로켓은 어떤 식으로든 제공이 불가능합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
나사 국장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백악관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을 압박하다시피 설득했다.
"핵융합추진 로켓과 입집명 연료탱크는 우주 시대를 지배하게 될 겁니다. 등유로 방을 밝히는 시대에서 현대 발전소가 갑자기 도입된 겁니다. 절대로 상대가 안 됩니다."
"각하, 앞으로 수영그룹의 허락 없이는 우주를 진출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으로 중국과 러시아는 더욱더 한반도 침공 결심을 굳히게 될 겁니다. 러-우 전쟁이 끝나고 두 나라가 재정비를 갖추는 순간, 한반도는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중러가 손을 잡고 북한이 앞장서서 중한을 침공함으로써 '삼한' 시대에 전쟁이 열린다는 시나리오는 점점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수십억 인구가 관람객이자, 무대 속의 배우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로한 박사만큼은 미국으로 반드시 데려와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두 우주선 기술을 공유받아야 합니다. 적어도 완제품만이라도 얻을 수 있는 계약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은 우주시장의 2위가 되어선 안 됩니다. 적어도 공동 1위는 유지 해야 합니다."
"각하."
"각하."
"결심을 내려 주십시오."
대통령은 한참 동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내가 내일 당장 한국으로 가겠습니다."
"각하, 바로 일정을 잡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이지만,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갖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민간 비즈니스주선.
대통령의 활약에 따라서 그 나라 기업들은 해외 수출로가 열리고, 닫히고 하는 것이다.
***
미 대통령이 방한했다.
심지어 정상회담 일정은 간략하게 정리하고, 곧바로 청담동으로 향했다.
원래 미 대통령이 방문하는 곳은 철저한 사전 수색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하수영의원사무실이 있는 휴민트타워를 감히 보안수색하겠다고 나설 수 없었다.
지금은 미국이 절대적으로 아쉬워서 찾아온 입장이었으니까.
"무엇이든 좋습니다.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그저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로한이 나사 국장에게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만."
"압니다. 하지만 아실 겁니다. 우리는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너무 절박합니다."
미 대통령은 간절함을 담아서 말했다.
"우리는 친구가 아니었습니까?"
"친구죠. 하지만 이건 가족의 영역인데……."
"그럼 가족이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가족이란 말을 올리자 하수영이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지금 이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하수영과 미 대통령, 단둘만이 독대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온 대화는 두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가족이라. 가족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얼마를 부르든지 미국은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명예 시민권이든 뭐든 드릴 수 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미국의 절반을 뚝 떼어서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불가능한 말씀을 하시네요. 유권자들이 허락하지 않을 텐데요."
"설득은 정부의 몫이겠죠."
정말 미국을 반으로 뚝 떼어서 줄순 없다.
어디까지나 립서비스, 하지만 그만큼 진지하다는 각오를 내보이는 것이다.
두 개의 우주 진출 기술은 그만큼 미국으로서 절실한 것이었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말 그대로 생존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하수영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말했다.
"핵융합 로켓과 연료탱크, 그 두개만입니다. 기술 공개나 전수는 불가, 하지만 상품 제공은 수영그룹과 동등한 수준으로 해드립니다. 가격역시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미 대통령의 얼굴에 화색이 피었다.
메뉴를 확인했으니, 이제는 가격표를 볼 차례다.
과연 상대가 보여준 한정품의 가격표에는 0이 몇 개나 붙어 있을까?
"미국과 동일한 권리 제공을 원합니다."
"써? 정확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내용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미 대통령은 저 문장에서 파생될 수 있는 온갖 관계 설정과 비즈니스를 다양하게 떠올렸다.
"미국은 앞으로 저를 또 하나의 미국이라 생각하고 대우해 주십시오. 의무가 아닌, 권리에서 말입니다."
"그 말씀은……."
"제가 핵을 달라고 하면 줘야 합니다. 왜냐? 저는 미국이니까."
미국인이 아닌 '미국'.
그 문구가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제가 법을 바꿔 달라고 하면 해줘야 합니다. 왜냐, 미국이니까. 미국이 쓰는 모든 무기나 기술을 원하면 뭐든지 따지지 않고 줘야 합니다. 왜냐, 미국이니까. 미군에 제가 전쟁을 요청하면 이행해 줘야 합니다. 왜냐, 미국이니까."
"의원님."
"미국이 가진 모든 기밀은 당연히 열람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3자에게 공개하거나 제공하겠다면 해줘야 합니다. 왜냐, 미국이니까."
또 하나의 미국으로 대우해 달라.
그 말이 가진 의미, 하수영이 보여준 요금표에는 숫자가 없었다.
∞, 말 그대로 '무한'의 가격.
"제가 미국인을 죽인다면 국가행정범죄로서 미국 정부가 배상하는 걸로 끝내야 합니다. 왜냐, 미국이 한 짓이니까."
"……."
"저의 가족이 되겠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그래도 가족이 되고 싶으십니까?"
"……."
어제의 미국이 한 짓을 내일의 미국이 부정하는 것은, 자기반성에서 그쳐야 한다.
미국이 하려는 짓을 미국이 부정하거나, 처벌하거나, 방해하거나, 지원을 주저할 순 없다.
자신을 미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대통령은 속으로 그만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이런 사람인 줄 모르고…… 미국시민으로 끌어들이니 마니 그런 이야기나 실컷 떠들어댔으니…… 될 리가 있겠는가…….'
미국의 구성원이나 일부가 아니라, 분신이자 진신 그 자체가 되는 것.
완벽한 미국으로서 대우해 주는 것.
말도 안 되는 요구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실제 가격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하수영이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넉넉하게 100년을 산다고 가정해 보자.
기한 100년짜리 '상원 백악관'이 생긴다고 여기면 되는 것이다. 지금의 백악관은 하원이 되는 것이고.
하수영이 터무니없는 세계전쟁 따위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그만한 각오를 보여줘야 가족으로 맞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가 세계전쟁을 결심했을 때에는 '미국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간주하고, 백악관도 그렇게 움직여야 한다.
"미국의 세계 대전략을 기본부터 바꿔 버려야 하는군요. 가격이 꽤 센데요. 휴우."
"그게 바로 가족이 된다는 거죠."
그리고 가족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은 미국이다.
"천천히 준비하셔도 됩니다. 거절하셔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아주 큰 숙제를 안았으니, 귀국하는 길이 몹시 무거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