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45화
266장 혈통을 새긴다 (3)
검색하는 손이 덜덜 떨렸다.
폰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아예 아내에게 노트북을 가져와달라고 했다.
본격적인 검색을 하다 보니, 수영식품그룹이 식료품 시장에서 가지는 진정한 위상을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 수영식품그룹에서 만든 식재료를 먹고 있었다.
하다못해 편의점에서 파는 빵들도 모두 수영농장에서 기른 밀을 써서 구워낸 것들이었다.
제과, 한식, 양식, 중식, 분식, 고깃집 등등은 거의 대부분 수영식품그룹에서 파는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었다.
주식이 아닌, 소스류나 특수 작물, 첨가식품 정도만 수입되고 있을 뿐이었다.
과자에 들어가는 원재료도 전부 짜기라도 한 듯이 모두 국내산, 아니 수영농장산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수입산은 보이지 않는다.
겨우 찾아낸 것들은 주식과는 거리가 먼, 소스류 같은 것들.
그런 것들로는 배고픔을 달랠 수 없다.
권택상은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
하수영은 자신한테 아무 짓도 안했다.
그거 경고로 보이는 말을 읊었고,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의 말대로, 자신과 자식들은 수영농장과 관련된 식품에서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이런 현상은 불가능하지 않나?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대체, 대체 어떻게…….'
무슨 원리인지 짐작조차,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하지만 하수영의 말이 사실이라면, 먹을수록 배고픔이 더 심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음식을 소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100의 열량을 가진 음식을 10의 열량으로 분해해서 90의 열량을 얻고, 나머지 10은 대변에 잔류해서 배출되는 식.
그리하여 인체는 80의 열량을 이득 보게 되고, 그것으로 몸을 움직이거나 살을 찌운다.
하지만 음식이 들어가는 족족 소화작용에 에너지만 소모하고 얻는 게 전혀 없으니, 차라리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만 못한 것이다.
"여보…… 일본, 일본에 좀 다녀와."
"일본? 일본은 갑자기 왜?"
"일본 가서 최대한 음식을 많이 사와. 세관에서 문제 될 수 있으니까 대형 통조림 위주로 알았어?"
"가, 갑자기 일본 음식은 왜 그러는데?"
"설명할 기운 없어. 일단 지금 당장 가서 사와. 그거라면 왠지 먹고 힘을 차릴 수 있을 거 같아."
생선 통조림은 없겠지만, 다른 통조림은 분명히 잔뜩 있을 것이다.
굳이 일본을 선택한 이유는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너희들."
"……응, 아빠."
"지금부터 아무것도 먹지 마. 먹어 봤자 영양 흡수도 안 되는데 힘만 더 빠져."
"하, 하지만 배고픈데……."
"그러니까 참아! 외국 음식 가져오면 그거 먹고 기운 차려!"
그리하여 아내는 당일치기로 일본을 다녀왔다.
아내는 캐리어에 최대한 음식을 많이 담아왔고, 세 부자는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근데 왜 이거밖에 안 가져왔어? 내가 최대한 많이 사오라고 했잖아?"
"그게, 세관에서 압수하고 이것만 가져가라고 하더라고."
"망할 놈들. 우리가 보따리 장사라도 하는 줄 알아?"
음식을 먹고 나니 포만감이 밀려왔다.
신기하게도 이번의 포만감은 금방 꺼지지 않고 오래오래 유지되었다.
일정 시간이 흐르자 팔다리에도 기력이 돌아왔고, 머릿속이 맑아졌다.
두 아들도 신기해서 야단법석을 피워댔다.
"와! 진짜 일본 음식 먹으니까 힘이 팍팍 나네."
"역시 일본이 짱이야."
"대체 한국 식품 회사들은 음식을 뭘로 만들어서 이따위냐고."
배부른 두 아들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권택상은 비로소 차분해졌다.
동시에 암담한 절망과 혼란이 밀려 왔다.
'이럴 수가…… 정말 그게 사실이라고? 수영농장에서 파는 음식들은 소화, 아니, 영양 흡수를 못 한다고?'
며칠을 더 병원에서 머무르니 상태가 호전되었다.
병원에서는 일시적인 소화흡수 장애일 거라며, 유전자 검사를 해보자고 권했다.
"영양 흡수를 방해하는 유전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유전자 분석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시죠."
"……아니, 됐습니다."
권택상은 아들들을 데리고 퇴원했다.
그는 일본에서 사온 저장식품들을 아껴 먹어가면서 버텼다.
중간중간 국산식품이나 식당에 들러서 식사를 하며 비교를 해보았다.
그리고 그는 확신을 얻었다.
하수영의 말대로, 수영농장산 식재료에서 아무런 영양을 흡수할 수 없게 됐다고.
'이걸 대체 어떻게?'
절망은 깊어졌다.
아내는 오늘도 일본에서 파는 저장식품을 사려고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세관 문제 때문에 한 번에 반입할 수 있는 양은 세 부자가 며칠 정도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캐리어에 담을 수 있는, 육류 통조림 같은 저장 식품 위주로 사오다 보니 세관에서 의심스럽게 쳐다본다고 했다.
"아니, 자꾸 뭐 밀매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잖아. 내가 짜증 나서 진짜. 아, 우리 먹으려고 사오는 거라고 해도 잘 안 믿어!"
"여보, 그런데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싼 거야?"
"일본 지금 식품 가격 장난 아냐. 생선 가격 오르니까 다른 식품 가격들도 다 같이 껑충 뛰었어."
그마저도 해수어를 먹을 수 있는 곳은 고리야마 초밥 가맹점 정도였다.
그 외에는 생선이 들어가는 식품이나 요리는 구경조차 할 수 없다고.
교통비 등을 생각하면 세 부자는 하루 식비로 거의 오십만 원씩 지출하는 셈이었다.
그마저도 한계에 부딪혔다.
-여보! 나 지금 공항인데 세관에서 저장식품 모두 압수했어!
"뭐야?"
-그동안 너무 많이 샀나 봐! 내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나 뭐라나. 아, 이제 어떡해?
"젠장! 젠장!"
다행히 셋이 아껴 먹으면 사흘은 더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그는 직원에게 곧바로 전화해서 심부름을 시켰다.
"김 대리, 지금 바로 일본 좀 다녀올 수 있나? 내가 시킬 게 좀 있는데."
-아이고, 그럼요. 부국장님이 다녀오라면 다녀와야지요.
"출장은 아니고 개인적인 부탁인데……."
-출장이 아니라고요? 그럼 제가 연차 내고 가야 하는 겁니까?
"어, 그렇지. 부탁좀 하자고."
-……아, 생각을 해보니 제가 여권을 잃어버려서 다시 신청을 해야 합니다.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습니다.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이었다.
권택상은 이마를 꾹꾹 눌렀다.
부하가 얄미웠으나, 부하 입장에서는 자신이 갑질하는 상사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출장 지시도 아니고 개인적인 심부 름으로 연차 내고 일본을 다녀오라니.
"내가 교통비 주고, 따로 30만원 수고비로 챙겨줄 테니 당일치기로 좀 다녀올 수 없겠나?"
-아, 그럼 제가 여권을 찾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샅샅이 뒤져보겠습니다.
"꼭 좀 부탁하지."
약 30분 뒤 부하는 여권을 찾았다고 연락했고, 일본으로 심부름을 떠났다.
일단 간신히 해결을 했지만, 출혈이 너무 컸다.
안 그래도 비싼 일본 식품에, 비행기 티켓 등 교통비에 수고비 30만 원까지.
언제까지 매 끼니를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업체, 유통업체를 찾아보자……."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해외식품을 들여오는 수입업체는 없었다.
식료품 유통업계를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그는 거대한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수영농장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국내 유일의 편의점 브랜드인 CD1은 수영마트 자회사였고.
양대 대형마트인 뉴월드마트와 하우스플러스 또한 수영마트의 자회사였다.
국내에서 기르는 모든 가축들은 전부 수영사료를 먹고 있었고.
양식장 역시 수영사료에서 파는 사료만을 쓰고 있었다.
노숙자부터 재벌 회장까지, 모두 공평하게 수영농장산 식품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일본 이민을 준비했다.
"일본 이민을?"
"당신도 알잖아. 한국 음식은 나와 아이들한테 안 맞는 거."
"그러니까 그게 이상하잖아. 여보, 난 너무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
유전자 검사인지 뭔지 한 번 받아보면 안 돼?"
"받아도 소용없어."
"당신…… 뭐 알고 있어?"
말을 해야 하는지 망설임 끝에 권택상은 입을 꾹 닫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아내가 미쳤냐고 반응할 게 뻔했다.
다행히 아내는 일본 이민을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한국 지겨웠는데 잘됐다. 애들 교육에도 좋을 테고. 아, 이민 갈 거면 애들 좀 더 어렸을 때 결정하지."
"…… 그땐 사정이 달랐으니까."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데, 과연 괜찮을까?
권택상은 불안했지만 그래도 이게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지사로 발령이 나면 안정적인 직장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이민을 준비하던 중에 그는 급히 턴을 해야 했다.
"일본 이민을 안 간다고? 아니, 갑자기 또 왜?"
"생각해 보니 일본은 방사능 때문에 안 되겠어. 태풍 지진도 계속 심해지고 있고."
"그건 그래."
"안전을 위해서라도 미국으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그가 급하게 일본 이민을 포기한 이유는 바로(주)히사타로농업을 수영농장에서 운영한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심지어 히사타로농업은 현재 일본에서 쌀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미국에도 수영농장이 진출해 있는데…… 그래도 미국은 워낙 농업시장이 크니까 수영농장산 걸 피해서 먹으면 되겠지.'
그는 회사에 미국지사 발령 신청을냈다.
다행히 그동안 쌓아놓은 인맥 덕분에 해외지사 발령은 어렵지 않게 승인이 났다.
심지어 몇 년 뒤에는 지사장 승진도 노려볼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미국 지사가 작고 초라한 규모라는 뜻이다.
지사라기보다는 거의 출장소 규모나 마찬가지였으니.
한국 생활은 아내가 빠르게 정리하기로 했고, 그가 먼저 출발해서 주택 등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출발하기 전날, 하수영이 갑자기 오라고 통보했다.
말 그대로 통보였고, 권택상은 고민 끝에 청담동으로 찾아갔다.
***
"미국 가면 피할 수 있을 거 같냐?"
보란 듯이 짓는 조소 앞에서, 권택상은 뱀 앞의 개구리처럼 굳어버렸다.
따지고 싶은 말이 산더미였으나, 이상하게 혀가 뻣뻣하다.
그냥 그의 시선에서 도망쳐 버리고 싶다.
하수영은 그의 뺨을 툭툭 치면서 조롱하듯이 말을 이었다.
"짧으면 5년, 길면 10년이다."
"……무…… 슨……."
"뭐긴 뭐야. 내 농장이 전 세계 식품시장 집어삼키는 시간이지."
"……!"
권택상은 눈을 부릅떴다.
손끝에서부터 어깨까지 파르르 떨렸다.
다리에 힘이 풀어지며, 서서히 무릎이 굽혀졌다.
꿇으려고 한 게 아닌데, 힘이 빠지면서 저절로 꿇려 버렸다.
'농사…… 배워야 하나? 자영농이라도 되어야 하나?'
"직접 농사지어봤자 소용없다. 시간 지나면 알게 될 거다."
"회장……님…… 제가……잘못……."
"그래,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지."
이상기후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대형 농업법인이 아닌, 개인 자영농은 이제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온다.
국내 농어촌처럼, 수영농장에 의존하지 않으면 가혹해지는 기후환경에서 농사를 못 짓는다.
권택상은 서서히 조여오는 방사능 구역의 중심에 자식들과 함께 갇혀버린 셈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방사능 구역은 조금씩 커지며 그가 살 수 있는 곳을 갉아먹는다.
그가 먹을 수 있는, 아니, 영양 흡수할 수 있는 먹거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고, 종래에는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펜으로 악의를 마음껏 휘둘러 다양한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자살까지 몰아넣고, 종래에는 장효주까지 건드린 인물이다.
그에게 내린 벌은 바로 핏줄과 연대하는 굶주림. 그리고 확정된 아사.
다가오는 굶주림의 고통에 몇 년 동안 두려움에 떨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끝을 맞이하게 된다.
하수영은 그의 등을 지그시 발로 밟았다.
그는 저항하지 못하고 바닥에 개구리처럼 엎어져서 바르르 떨었다.
"이런 식으로 굶겨 죽이는 건 처음이라서, 네 최후가 어떨지 나도 기대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