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37화
264장 새 학기 (3)
하수영은 입자집합명령 장치를 과감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물론 자세한 원리 등은 알리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이런 쩔어주는 기술도 있었거든!
-진작 이걸로 반도체를 만들고 있었거든!
-이제는 인공투석 장비로도 활용 할 수 있거든!
-개부럽지?
라는 불순한 의도가 듬뿍 담긴 선물포장 벗기기였으니까.
"이게 뭐냐면요. 그러니까 입자 하나하나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초초초초정밀 3D 프린터 같은 거라고 하네요. 우리 로한 박사, 대단하지 않나요?"
로한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하수영의 신나는 자랑이 이어졌다.
"무형의 동력을 초미시적인 영역에서 구동하는 원리라서 만들 수 있는 크기는 아주 작대요. 최대 출력 사이즈가 너무 작지만, 대신 미립자 이하의 단위까지 세밀하게 조절해서 원자를 결합하거나 해제할 수 있죠."
의대 교수들은 눈썹만 꿈틀거리며,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반도체나 오토매틱 손목시계 같은 작고 정밀하며 고가가치를 지닌 상품을 만드는 데 아주 최적화된 기술이라고만 알고 있었죠!"
혹시 본인이 개발했나 싶을 정도로 열렬한 자랑이요, 설명이었다.
아니, 애초에 본인이 전생에서 기억나는 것 중 대충 신어 권능을 이용해 꺼내온 것이지만…….
"그런데 아차차! 생각을 해보니까 혈액투석 장비로도 활용할 수가 있겠더란 겁니다! 신장의 크기는 성인 주먹만 하죠! 그 정도로 작은 범위 내에서 일하는 거름작용 같은 것은 얼마든지 대신 구현해 줄 수 있겠더란 생각이 딱 들었지 뭡니까?"
그 뒤로도 하수영은 한참이나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교수들과 다큐팀은 생소한 기술에 한동안 얼어붙어 있었지만, 이내 상상의 날개가 펼쳐지며 기술의 활용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좁은, 일정한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들의 움직임과 결합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3D 프린터 같은 거다, 이 말씀입니까?"
"바로 그겁니다!"
"전자기력도 완전히 무시하고요?"
"그렇지요!"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입자들을 떨어뜨리고, 배치하고, 결합시키고, 그 모든 게 완벽하게 가능하다고요?"
"맞습니다!"
기술의 정체를 깨달으며, 의대 교수들의 안색이 점점 파리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원리로 투석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인지, 그리고 다른 분야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도 완벽하게 깨달았다.
"그럼 저 벨트를 차고 있기만 해도 저절로 투석이 이뤄지는 거군요?"
"그렇죠. 전자기력을 무시하고 입자 단위로 이동시켜서 요관으로 보내버린 다음 다시 일정한 크기의 분자로 재결합하니까요."
"그럼 신장결석, 요로결석이 발생해도 체외충격파 쇄석술 대신 결석을 안전하게 파괴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흥분한 신장내과 교수가 물었고, 하수영은 '어?' 하며 갸웃거렸다.
"아, 그렇게도 활용할 수 있겠네요?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
"암조직도 파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다른 기관으로 퍼진 작은 암세포까지 모두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위치와 크기가 특정된 암 종양은 칼을 대지 않고도 파괴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우와, 그렇게도 응용할 수 있군요. 역시 레거시 의학의 꼼수는 위대하네요. 아니, 어떻게 입자집합명령 기술을 그런 식으로 응용할 생각을……."
이 기술이 존재하던 문명에서는 단 한 번도 저런 식으로 활용할 생각을 못해봤다.
애초에 평생에 걸쳐 암세포나 결석따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의학기술이 마련되어 있기에.
"모든 심근경색 환자들을 구원할 꿈의 기술입니다! 막힌 관상동맥에 어렵게 카테터를 넣어 스텐트를 할 필요 없이, 그냥 혈관을 막고 있는 찌꺼기들을 입자 단위로 분해해 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이야, 그렇게도 활용이 되는 건가요?"
이것 역시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이 기술이 존재한 문명에서는 관상동맥이 혈관 내 찌꺼기로 막힐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경악할 것이다.
"수술을 할 수 없는 곳에 생긴 악성 뇌종양 같은 것도 이제는 적출, 아니 파괴할 수 있는 거군요. 그것도 아주 안전하게 뇌종양 조직만 골라서 말입니다."
"몸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으니, 눈에 띄는 큰 조직은 이 기술로 모두 제거하고 그 뒤에 항암치료를 병행한다면…… 말기 암 환자들의 생존율도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겠어요!"
"혹시 부분적으로 세포 수복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사장님?"
"아, 그건 어렵습니다. 프린팅 구축이 유전자 단위까지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요. 폭 1나 노미터짜리 회로선을 길게 만들어 이어붙일 수 있는 정도라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활용 가능성이 너무 무궁무진합니다! 체내에 존재하는 해로운 세포나 조직, 물질을 파괴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거 아닙니까?"
0.01 마이크로미터짜리 세포를 파괴하는 것과 창조하는 것은 전혀 난이도가 다른 일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치료기술을 월등히 끌어올릴 수 있다.
몸속에 깊이 혹은 넓게 자리 잡은 해로운 것들을 정상 세포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닌가.
응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나노미터 단위로 절개가 가능한 초미세 외과 메스로군요."
"아! 그 말이 딱 맞는 표현이군요! 나노 메스!"
"해로운 조직이나 이물질은 모조리, 안전하게 파괴할 수 있다니. 이건 정말 혁신이야……."
의대 교수들은 흥분에 겨워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들은 앞으로 이 기술이 전 세계 의학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상상하며, 벅찬 감동을 억누르는 데 바빴다.
어느덧 로한은 사라지고 하수영만 남아 있었지만, 아무도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의식하지를 못했다.
그때 어느 교수가 또다시 아 하고 탄성을 냈다.
"로한 교수님! 아니, 어디 가셨지?
아무튼 그러면 이사장님!"
"네, 말씀하세요. 제가 개발자는 아니지만 기술의 스펙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귀에 피나도록 달달 들었거든요."
귀에 피나도록 달달 들은 게 본인이 아니라 로한이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어쨌든 완벽한 비침습성 나노 메스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제조업에서는 완벽한 반도체 3D 프린팅 장치고요?"
"그렇죠."
"혹시 당뇨에도 활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원하는 췌장 조직을 파괴할 수는 있겠지만 당뇨 치료 자체는 안될 거 같은데……. 개복 수술을 건너뛰고 췌장암세포조직 파괴 정도만 가능할 거 같습니다만."
"제 말은 그게 아닙니다. 바늘로 찌르지 않고도 혈당 측정이 상시적으로 가능하지 않나, 하는 말씀입니다."
"……어?"
"기존 혈당기는 너무 괴롭습니다. 어쨌거나 매번 바늘로 찔러 핏방울을 채취해야 하죠. 복부 센서 부착방식도 불편하긴 매한가지입니다. 하지만 이건……."
"래플워치처럼 만들어서 차고 다니면 상식적으로 혈당, 콜레스테롤, 혈중 알콜, 아무튼 웬만한 건 다 체크할 수 있겠네요."
정확한 파괴를 위해서는, 파괴 대상의 위치와 크기, 그리고 형태를 정확하게 특정하는 것이 먼저 시행된다.
하수영은 교수의 말을 듣고 그런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것이 레거시 문명의 처절한 응용……!?
다시 말하지만, 입자집합명령 기술이 있는 문명에서는 굳이 이처럼 불편하게 건강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애초에 질병이 생긴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대체 왜 병이 발생하게 하는 거야?
그냥 처음부터 그런 게 안 생기게 하면 되잖아?
라며 입을 틀어막고 흐느꼈을 것이다.
'사람이 절실하니까 이런 말도 안되는 응용법도 쥐어짜 낼 수 있는 거구나. 놀라워. 역시 야만적인 문명이라고 해서 지혜까지 없는 건 아니야.'
이쯤 되니 다큐팀도 대화의 흐름을 이해했다.
이미 촬영은 뒷전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카메라는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훌륭한 프로의식이었다.
다큐팀은 이 놀라운 기술이 의료시장을 초토화시킬 미래를 상상하고, 흥분에 떨었다.
먼 미래의 일도 아니었다.
기술은 이미 완성되어 있고, 마음만 먹으면 몇 달 안에 막힌 뇌혈관도 뚫고, 췌장암도 파괴하고, 결석따위는 감기 수준이고, 등등…….
"이거…… 로한 박사가 만든 게 그냥 편리한 휴대용 투석 장비가 아니잖아요?"
"그냥 만능 메스라고 해야겠는데."
"만능 메스! 아, 그거 좋다! 확 와 닿아요!"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 몸 어디든 해로운 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만능메스.
반론도 나왔다.
"투석이야 뭐 메스의 영역이라고 쳐요. 파괴하는 거니까. 하지만 혈당측정은요? 콜레스테롤 측정은요? 이건 메스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 않나요?"
"어, 그게 또 그러네. 그럼 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만능 메스&혈액검사기라고 하죠."
"이야…… 이거 진짜 전 세계 의료장비 시장 개박살 나겠는데요?"
"일단 항응고제 시장은 박살 날 거고."
"수술 도구 시장도 모조리 부서질 거고."
"투석 전문 개인병원들은 그 비싼투석 장비 구매했는데 거리에 나앉게 생겼네요."
"이거…… 진짜 큰일이다. 이 기술 시장에 적용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업자 되고 자살하고 그럴지 상상이 안 가."
"그렇다고 당장 목숨이 걸렸고 투석 때문에 힘들어하는 환자들 있는데 유예를 할 수도 없죠."
"……."
"……."
"양날의 검이네. 양날의 검이야."
환자만 생각하면 즉시 시장에 풀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지거나, 하루라도 목숨을 연장할 수 있다. 불편함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 푸는 즉시 의료기기나 제약 시장이 박살 난다.
항암제 같은 시장은 오히려 수혜를 누리겠지만, 항응고제 사업이나 투석 장비 제조사업 같은 것은 요단강 루트가 확정이다.
정부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욕을 먹게 되어 있다.
선택을 머뭇거리기만 해도 욕을 먹게 되어 있다.
어쨌든 욕을 먹게 되어 있다.
"와, 씨. 이거 진짜 큰일이네요. 뭘해도 무조건 맨홀에 빠지는 거네."
"안 할 순 없어. 당장 오늘내일하는 환자들이 의료산업자 밥줄을 신경 쓸 팔자야? 이건 무조건 즉시 도입해야 돼."
"즉시 도입하는 게 가장 덜 욕을 먹고, 피해도 죽일 수 있는 수단이 죠. 의료산업자들도 차마 환자들 상대로는 아무 말도 못 할 거 아니에요?"
"우리가 돈 벌어야 하니까 너희가 좀 힘들어해라, 죽어도 어쩔 수 없고, 이런 말은 때려 죽어도 못하지."
"휴대용 투석 장비라고만 해도 엄청난 특종이다! 라고 생각했거든요. 우리 고모도 일주일에 3번씩 투석받으러 다니는 거 너무 힘들어하셔서. 근데 알고 보니 뷔페 만찬장에서 수박 한 조각 맛본 거였네."
그때였다.
피디가 갑자기 크큭거리며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촬영팀원들이 저 양반 왜 저래, 라는 눈으로 바라봤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한참을 그렇게 웃어댔다.
눈물까지 찔끔 흘려가며 신나게 웃던 피디가 이윽고 배를 잡고 몸을 가다듬었다.
"야, 일본하고 중국은 이제 어쩌냐?"
"예? 두 나라가 갑자기 왜요? 전 세계 의료산업이 다 같이 사이좋게 엿 되는 건데요."
"일본은 서진파운드리가 반도체 공급 안 해줘서 이 악물고 반도체 팹만들려고 하고, 중국은 미국 반도체 수출 견제 때문에 수백조 원 넘게 퍼부어가면서 반도체 내수시장 만드는 중이잖아. 근데 다 엿 된 거야, 이제."
"……양가죽 벗겨서 죽어라 양피지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알고 보니 경쟁자는 인쇄공단을 갖고 있었다?
뭐 이런 상황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