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35화
264장 새 학기 (1)
코시든은 요즘 바빴다.
원래 배신자가 더 열렬히 충성심을 증명하려 하고, 전향자가 누구보다 더 용감하게 나가 싸우는 법이다.
반도체 안보로 하수영을 적대했었다가 전향한 코시든은 워싱턴 정가를 열심히 휘젓고 다녔다.
하수영과 정답게 찍은 사진은 그가 극적인 화해를 이뤘다는 증거였고, 그를 떠났던 사람들은 다시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잽머니-일본의 로비를 받아온 의원들이라면 상하원,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끌어모았다.
서진파운드리의 활동을 제한할 목적으로 입법되었던 법안들은 모조리 청소되었고, 코시든은 서진파운드리가 언제든지 안심하고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법안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공정 과정에서 오염물질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허가 취득 의무를 감면해 주는 식이다.
일부러 특허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공정기술 보호에 민감한 서진파운드리가 강제로 기술을 공개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끔 배려한 법안이다.
"이 법안을 준비하는 건 서진파운 드리에 미국 공장 유치를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코시든은 오해가 없도록, 자신이 모은 의원들한테 언제나 그 점을 강조했다.
"혹시 언제든 서진파운드리의 마음이 바뀌어 미국에 공장을 짓고 싶어졌을 때, 법적인 장애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오."
요컨대 귀빈이 언제든 맘 편히 이사올 수 있도록 청소는 깨끗이 해둔다.
하지만 초대장을 먼저 보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초청을 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손님에게 부담을 줄 수 있으니까.
이미 한 번 이사를 강요했다가 틀어진 전적이 있는 만큼, 코시든은 그 점을 항상 조심히 다뤘다.
그는 자신의 전향을 받아들이던 날, 하수영이 했던 선포를 선명하게 기억했다.
-일본이 규소 수출 제한으로 깔짝딜 넣고 냅다 튀었잖아요? 잡아들여서 참교육해야죠.
-전자제품 공장만큼은 다 무너뜨려야겠어요.
'일본의 가전 시장을 차지할 셈인가?'
일본의 가전 시장은 고립되어 있다. 흔히 갈라파고스라고 비꼬기도 한다.
기업들은 내향적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국민들도 자국 기업이 생산한 제품 위주로 소비한다.
점유율이 절반 가까이 되는 래플폰이 매우 이례적인 셈이다.
심지어 전압도 세계적 추세에 뒤처지는 100V를 사용하고, 한 나라 안에서 주파수도 서로 다른 것을 쓴다.
래플폰을 제외하면, 어떤 외국 전 자기업도 그런 일본의 블록화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심지어 수영그룹에는 가전회사도 없지 않은가.
'일본 가전 시장을 어떻게 차지할 셈이지?'
일본과 친한 의원들을 규합하라는 것은, 일본의 로비 공작을 원천봉쇄하겠다는 뜻이리라.
코시든은 하수영이 일본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조감도는 머지않아 볼 수 있었다.
***
하수영은 윈텔, ADM 등 반도체 고객사들에게 전부 연락을 돌렸다.
권한 있는 경영진들은 긴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청담동을 찾았다.
그들은 순차적으로 하수영을 만나 은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처럼 계속 일본에 반도체 공급을 하지 말란 말씀이십니까?"
"네, 그래요. 대신 그만큼 납품가를 깎아주고, 물량도 제가 받아줄게요. 일본에 반도체를 팔지 못해도 손해는 없을 겁니다."
하수영은 돈을 받고 생산만 해줄 뿐, 반도체에 대한 권리는 고객사에 있다.
윈텔 부사장은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다.
1차 반도체 대란이 종결된 이상, 이제 일본에도 천천히 반도체를 공급하면서 매출을 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수영은 여기서 끝낼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미국과 다투는 와중에 소재 수출제한으로 뒤에서 몰래 깔짝 딜 넣고 갔는데, 이걸 그냥 용서해 줄 순 없죠."
"음, 그 부분은 확실히 일본이 지나친 무리수를 두었습니다."
"진주만 때와 일본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항상 기습에 뒤통수, 배신. 수천 년간 지들끼리 치고 받고 싸워 와서 그런지 아주 유전자에 본능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진주만……."
윈텔 부사장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의 부친은 2차대전 참전 용사였고, 진주만을 들먹이며 평생 일본을 저주했다.
일본 여행은 질색을 했고, 일본제 품은 평생 거부하며 살았다.
한참 젊은 하수영이 이미 돌아가신 부친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한 대 슬쩍 때렸으면, 백 대로 얻어맞는다는 걸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반도체 수출 제한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수출 제한이라뇨. 수출 금지입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던 윈텔 부사장은 흠칫했다.
'이거 설마…….'
"앞으로 일본은 자동차, 노트북은 커녕 전기밥솥 하나도 못 만들 겁니다."
모든 전자제품에는 당연하지만 반도체가 들어간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반도체는 서 진파운드리가 생산을 맡고 있으며.
고객사들은 슈퍼을인 서진파운드리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정 반도체를 원한다면 중국이 한창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반도체 공단에서나 사와야 할 것이다.
"지들이 직접 반도체를 만들든가, 아니면 가전 완제품을 수입해서 쓰든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할 겁니다."
가전제조시장을 완전히 포기하든지.
반도체를 하나부터 백까지 전부 만들어서 사용하며 더욱더 갈라파고스화되든지.
일본의 선택은 둘 중 한 가지다.
'아니, 한 가지가 아니야.'
부사장은 속으로 신음했다.
그 순간 코시든이 일본의 잽 머니를 받은 의원들을 한창 규합하고 있다는 게 생각났다.
'앞으로 일본은 반도체를 직접 만들지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허락이 없이는 그 누구도 반도체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에 관련된 대부분의 주요 원천 기술은 모두 미국이 개발했고, 특허를 쥐고 있다.
일본이 반도체 관련해서 제아무리 많은 파생특허를 냈어도, 미국의 원천특허를 피해서는 장비 하나도 만들 수 없다.
반도체를 직접 만들 수도, 수입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건 기회다!'
부사장의 눈이 번쩍 빛났다.
"납품가를 깎아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도 이 작전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하수영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일본의 제조시장을 무너뜨리면 그 거대한 파이를 나눠 먹을 수 있는거 아닙니까? 우리 윈텔도 흑기사로 적극 참전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동맹군은 많을수록 좋죠. 알겠습니다."
"다른 반도체 회사에도 같은 제안을 하실 거죠?"
"네. 거절은 거절할 겁니다."
"흐, 흐…… 서진파운드리가 기획한 일본 침공에 감히 훼방을 놓을 수 있는 회사는 없을 겁니다. 시장에서 퇴출되기 싫다면 말이죠."
무공해 공정기술.
저렴한 비용과 놀라운 성능 및 수율.
그리고 1나노 공정.
반도체 회사들한테 서진파운드리의 공장은 이제 옵션이 아니라, 필수이자 전부였다.
"일본 가전 시장, 우리 한 번 손잡고 다 같이 찢어 먹어 봅시다."
"가전으로 끝날 거 같지 않은데요. 반도체가 없으면 자동차 시장, 그 외 다른 제조시장도 함께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일단 가전 완제품 시장은 제가 먹겠습니다."
***
하수영은 김범석을 불러 일본 가전시장 침공 계획을 설명했다.
탈모(진) 중년남은 영특하게도 한번만 듣고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찾아냈다.
"서해전자가 다시 한번 일본의 가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미리 자리를 다져놔야 할 거다."
"일본 가전 시장의 60%만 먹어도 서해그룹의 후계자 자리는 제가 따놓은 당상이 되겠습니다. 그럼 주인님께 더욱 열렬히 충성을 바칠 수도 있고 말입니다."
"기특한 녀석 같으니."
"오히려 제가 주인님의 은혜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주인님이 몸소 마련해주신 이 기회, 절대로 놓치지 않겠습니다."
"그래, 잘해봐라."
현재 김범석은 배다른 형제인 이현덕 부회장과 한창 그룹 승계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창영 회장은 진작 일선에서 물러나서 평화로운 말년을 누리고 있었고.
굴러온 돌이다 보니 승계 싸움에서 처음에는 매우 불리했었다.
하지만 하수영의 후광 덕분에 그런 불리함은 이제 사라졌다.
그룹의 가장 중요한 사업인 반도체가 서진파운드리에 단단히 목줄이 잡혀 있는 상황이니.
여기에 김범석이 주도해서 일본 가전 시장을 집어삼킨다면, 그룹 총수로 그가 한 발짝 성큼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님, 가전 시장 장악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 너 하고 싶은 대로 한번 원 없이 날뛰어 봐."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범석의 눈동자는 충성을 증명하고 칭찬을 받을 욕심에 이글이글 빛나고 있었다.
***
김범석은 서해그룹에서 자신을 따르는 임원들을 모아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 시장은 지나치게 폐쇄적입니다. 저희 그룹도 오랫동안 그 벽을 뚫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15년 전 가전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 바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국산제품이 없으면 지들이 어쩔 겁니까? 외산제품이라도 써야지요."
"그게 무슨……."
김범석은 반도체의 수입, 자체 생산까지도 아예 끊어버린다는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반도체 없이 지들이 무슨 재주로 가전을 만들겠습니까? 일본 기업들의 전자사업부는 결국 쫄딱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
입을 벌리며 놀라워하던 중 임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런데 일본 정부에서 가만히 두고 보기만 하지는 않을 텐데요."
"일본 정부라고 해서 없는 반도체를 뽑아낼 순 없죠. 지들이 어디서 훔쳐오기라도 할 겁니까?"
"하지만 우리를 견제하거나 괴롭힐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특히나 일본 정부가 그런 음습한 짓은 아주 잘합니다."
"그 정도는 극복해야지요. 너무 걱정만 하지 마십시오. 일본 기업 중에는 강력한 우군도 있습니다."
"강력한 우군이요?"
"네, (주)히사타로농업입니다."
"아, 그 수영농장이 관리하는……."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히사타로농업을 모르는 임원들은 눈치껏 작게 물어보거나,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고 있었다.
"히사타로농업은 히사타로 전 총리가 설립한 농업기업입니다. 막후에서 일본 정계를 지배하는 노요괴, 아니, 실력자죠."
"하지만 그 사람이 우리를 돕겠습니까?"
"그 사람은 전자산업 쪽에는 거의 발을 담그고 있지 않아서 우리 편을 들어줄 겁니다. 수영농장 덕분에 곡물 장사로 제법 짭짭하게 돈을 만지고 있으니까요."
"음, 일본 정부의 방해공작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다는 거군요."
"애초에 일본은 반도체 외에도 우리 수영그룹에 잡혀 있는 게 더 있었습니다. 곡물 외에도 생선이 있지요."
일본의 상류층은 값비싼 생선을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것을 당연한 특권으로 생각한다.
서민들은 고리야마초밥에 줄을 서서 들어가야 겨우, 그것도 초밥 메뉴로만 먹을 수 있는 생선을 집에서 마음대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것.
"비집고 들어갈 틈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루빨리 수출회사를 다시 세워야겠습니다. 이거 가전사업부가 당분간 바빠지겠는데요."
김범석이 손깍지를 끼며 다시 말했다.
"가전만 수출하지 않습니다. PC 완제품 시장과 자동차 시장도 함께 공략합니다."
"자동차? 하지만 우리 그룹은 이제 자동차를 만들지 않습니다만……."
"우리가 굳이 만들어서 팔 필요는 없죠. 백두자동차를 사다가 유통하면 되니까요. 수입차 대기업 딜러가 되는 겁니다."
"백두그룹이 직접 핸들링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반도체 공급받기 싫으면 그렇게 하겠죠. 그 부분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김범석의 믿음직한 말에 다들 정말 그렇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김범석이 임원 한 명을 힐끔 거리다가 말했다.
"그런데 정 상무님, 왜 프리덤폰을 쓰지 않고 겔드폰을 쓰시는 겁니까?"
"예? 아! 죄송합니다! 프리덤폰이 고장 나서 지금 수리 중이라 예전에 쓰던 겔드폰을 잠시 쓰고 있었습니다."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서 프리덤폰을 반드시 상시 지참하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고장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서브폰도 프리덤폰으로 쓰세요."
"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