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31화
262장 뉴 밀레니엄 삼한시대 (6)
중한의 금융과 화폐 경제는 괴멸상태였다.
그러나 재건하는 입장에서는 차라리 깔끔하게 무너졌으니, 오히려 새로 쌓아 올리면 된다는 이점이 있다.
중한은 화폐로 원화 체계를 도입하기로 했고, 이는 중한이 한국을 배신하지 못하게 하는 원천봉쇄 역할을 해줄 것이다.
250조 원의 차관.
50조 원어치에 달하는 압류 귀중품.
매해 17조 원의 무상지원.
중한은 (300조+1조/년)이라는 기초 자금을 안고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수영사채가 공화국의 모든 금융서비스를 책임지겠습니다. 모든 걸 우리 수영사채에 맡기시면 됩니다.
"믿고 맡기겠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방법은 어떻게 됩네까?"
-100% 전자화폐체제를 도입하겠습니다. 실물 화폐는 일절 들이지 않는 겁니다.
"100% 전자화폐?"
-모든 주민들에게 프리덤폰을 지급하고 개인계좌를 개설하여 거래를 하겠습니다. 기관, 법인,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상필의 안색이 더욱 창백하게 변했다.
100% 전자화폐라니.
이렇게 되면 검은돈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진다.
차후에 중한에 진출하는 대기업이나 자본가들 입장에서 어마어마한 불편을 겪게 된다.
추적이 안 되는 현금 기름칠이 불가능해지니까.
-프리덤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돈을 쉽게 주고받을 수 있으니, 현물 화폐를 굳이 들일 필요가 없어지는 겁니다.
"으음……. 부정부패가 끼어들 요소도 줄어들겠군요."
-프리덤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현금을 추적하니 부정부패가 개입할 수가 없을 겁니다. 새로 시작하는 공화국은 과거 독재왕조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될 겁니다.
최섭곡은 여기에서 조금 고민했다.
수영사채는 말 그대로 중한의 모든 금융 상태를 앉은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며 추적이 가능하게 된다.
상대에게 심장을 쥐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보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어차피 식량과 전기도 이미 수영그룹이 쥐고 있다. 명줄 하나를 더 추가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겠나.'
"잘 부탁드리겠습네다."
-그럼 프리덤폰을 오늘부터 바로 배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허어, 혹시 이미 가져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따로 컨테이너를 가져왔습니다.
중한의 인구는 약 1,000만 명.
프리덤폰은 뜯지도 않은 새 제품이 아직 5,000만 개나 여유가 있었다.
***
프리덤폰을 배급받은 북한 주민들은 하나같이 감격하고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거이 남조선에서 3,000달러에 팔린다는 손전화기네? 어이구야, 비싸다."
"이런 비싼 초고가 제품을 덥석덥석 나눠주시다니, 수영그룹 회장님은 대체 얼마나 부자이고 또 너그러우신 것일까?"
"자네 남조선 말투 너무 어색하니까 좀 적당히 하라우. 책 읽는 것도 아니고 웨인가."
주민들은 프리덤폰을 통해 곧바로 수영사채에 계좌를 개설했다.
모든 건 프리덤이 주도적으로 이끌며 진행했기에 일사천리로 끝났다.
윤태호 차수 개인도 프리덤폰을 받았고, 그는 개인계좌 외에 국가중앙계좌도 별도로 접근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의문점이 생겼다.
"그런데 내 뒤를 이은 국가통치권자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국가돈을 횡령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정상적이지 않은 예산집행 지시는 제가 판단해서 거부합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은행으로서 안전장치는 완벽하다는 거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어떤 협박이나 회유, 편법도 통하지 않는 완벽하게 공정한 인공지 능 은행장이라니.
「국가계좌는 지금 0원이지만 한국의 차관이 집행되는 대로 돈이 들어올 겁니다.」
"우리 공화국 인민들끼리는 숫자만 서로 주고받을 뿐, 실제 돈은 수영사채 안에 있는 셈이로군."
「그만큼 오히려 자산을 지키기 안전하지요. 협박이나 전쟁, 강도짓으로 타인의 돈을 뺏는 건 불가능합니다.」
돈거래를 할 때에는 주민 중 한 명만 프리덤폰을 가지고 있어도 된다.
프리덤이 모든 주민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비서이지만, 동시에 모두의 비서이기도 한 셈이니.
「대한민국에서도 이미 일부 사용자들은 저를 통해서 즉석 현금거래를 편리하게 하고 있습니다.」
"식량과 전기, 그리고 금융. 우리는 신뢰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다 보여줬다."
발가벗은 것으로도 모자라 뱃살을 흔들며 꼴 보기 싫은 어설픈 춤까지 추며 넙죽 엎드린 셈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스터는 신뢰에는 더 큰 신뢰로 보답하는 인물입니다.」
"마스터라면 하수영 회장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내가방한을 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겠지?"
「마스터만 결정을 한다면 얼마든지, 어디서든 가능합니다.」
윤태호는 사진과 영상으로 봤던 하수영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만약 공화국에 태어났더라면, 지금 공화국의 모습은 어땠을까?
상념의 끝에는 항상 부질없는 상상이라는 자조만 남는다.
'김씨네 독재 체제하에서는 어떤 걸물도 살아남을 수 없지. 오히려 진작 숙청되었을 거다.'
「차수님. 단독 인터뷰 한 번 하시겠습니까?」
"단독 인터뷰?"
「사절단 중에는 울릉군민일보 기자도 있습니다. 단독 인터뷰를 통해 차수님의 국가경영 비전을 흘리는 게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겁니다.」
"이유는?"
「울릉군민일보는 하수영 회장님이 직접 후원하고 있는 신문사죠. 하수영 회장님의 스피커나 마찬가지입니다.」
윤태호는 두말 않고 결정했다.
"그럼 해야지. 기자를 불러."
「예.」
이윽고 젊은 기자 한 명이 대포같은 카메라와 노트북을 들고 들어왔다.
윤태호 차수와 고위직 측근들 가운데 홀로 있음에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저것이 용을 등에 업은 토끼의 자신감인가, 하고 윤태호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인터뷰는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윤태호는 젊은 기자가 쏟아내는 질문에 덤덤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대답했다.
따로 녹음은 하지 않고, 대신 기자가 인터뷰 내용을 빠른 속도로 타이핑하며 기록했다.
"다음 질문입니다. 차수님께서는 권력욕이 아니라 그저 아사를 면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 거라고 하셨습니다."
인터뷰는 어느새 30분을 훌쩍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국정 안정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권력 체계화 작업이 개시되지 않겠습니까? 그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이제 배곯던 시절은 지났으니까 슬슬 다른 생각이 들 때가 아니 냐는 뜻인가?"
"환경이 변하면 생각도 그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이제부터는 권력을 추구해야겠지. 안 그렇겠나? 하지만 나는 김씨놈의 전철을 따를 마음이 없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이미 내가 몸소 겪지 않았는가."
윤태호는 필연적으로 하영에게 전달될 답변을 열심히 가다듬었다.
"권력의 자리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면 모두 물러나야 할 것이다. 설령 그게 나라고 해도. 그게 내 생각이다."
"좋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농부 하수영에게 꼭 전했으면 하는 말이 있으십니까?"
"……바로 전해지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으음……."
윤태호는 다시금 고심에 빠졌고, 측근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깃들었다.
이윽고 윤태호가 눈을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고,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 공화국은 수영그룹이란 방파제가 없으면 밀물에 금방 무너져 버리는 모래성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고 있다."
"네,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자 윤태호는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는 걸 느꼈다.
"그런데 자네도 대단하군. 젊은 기자가 혼자서 전혀 위축되지도 않고 말이야."
"칭찬 감사합니다."
"하수영 의원께 말을 잘 전해주시게. 우리 공화국은 이제 더 잃을 것도 없고, 의지할 만한 곳도 없네. 내 마음은 진심이야."
"알고 있습니다. 역시 직접 올라오길 잘했군요."
"그게 무슨……."
바로 그 순간, 젊은 기자가 턱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얼굴 피부를 벗겨냈다.
아니, 그것은 피부가 아니라 피부로 위장한 정교한 실리콘 가면이었다.
가면 아래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나자 윤태호와 측근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쿵! 쿵! 쿵!
윤태호가 몸에 밴 듯한 동작으로 군례를 했고, 다른 장교들도 그를 따라 일제히 군례했다.
그것은 지독하게 몸에 밴, 공화국고위군인으로서의 떨칠 수 없는 습관이었다.
하수영은 천천히 일어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이 든 장성, 장교들이 움찔움찔 미세한 경련을 일으킨다.
"차수님의 진심, 잘 봤습니다."
"……."
"테스트는 통과하셨으니, 이제 진짜 인터뷰를 해볼까요?"
윤태호는 더듬더듬 물었다.
"테스트 통과…… 그게 무슨 의미요?"
어려도 너무 어리다.
하지만 공화국의 목줄을 쥐고 있는 남조선의 자본가 윤태호는 한없이 몸이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신분을 몰랐을 때와 달리, 지금은 손끝이 요란하게 떨린다.
"앞으로 인류 식량 문제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
하수영의 질문에 윤태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식량이나 기후 문제에 관해 그가 아는 것은 피상적인 단면이었다.
당장 나라가 망하고, 굶어 죽게 생긴 판이었으니.
식량이 결핍된 것은 자신의 조국, 그리고 못 사는 아프리카 같은 나라에 지나지 않으며, 선진국들은 식량이 부족할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
'그런데 지금 단지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유감스럽지만, 공화국의 힘으로는 식량을 자급할 수 없습니다. 식량확보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져 버렸거든요."
"……."
"작년 수확이 처참했죠? 기껏 심은 작물들이 거의 다 시들었고 말입니다. 원인은 알고 있습니까?"
"가뭄과 비료 부족, 그리고 기후 문제가 아니오?"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붉은불개미입니다. 붉은불개미가 땅속에서 작물을 못 쓰게 만들어버렸어요. 그런데 전대 정권은 그런 상황을 파악할 역량이 전혀 없었죠."
"……."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미 때문에 벼농사가 죄다 망했어요. 앞으로도 망할 거고요."
다만 규슈에 진출한 수영장이 벼를 수확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농사 난이도는 앞으로도 계속 올라갑니다. 이대로 가면 5년 안에 고기는 부유층만 먹는 전유물이 될 겁니다."
실제로 지금 생선이 그렇게 되었다.
돈 많은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최고급 식재료.
북한은 당장 먹을 쌀도 없는 처지라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을뿐.
"중국은 작년에만 신두 1,000억 알을 구매했습니다. 내년에는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의 농사 상황이…… 그렇게나 심각하오?"
"중국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그렇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워낙 굶주림이 당연해서 오히려 외부의 그런 사정 인식이 늦었던 겁니다."
"……."
"북쪽의 평안함경 세력을 상대하기에 좋은 정보가 될 겁니다. 중국은 김씨 정권에 식량 지원 못 합니다. 자기들 먹을 것도 부족한 판인데요."
윤태호는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하고 자문했다.
그리고 금방 깨달았다.
'앞으로 계속 허튼생각 하지 말라는 경고다. '
사람은 배부르고 등이 따뜻해지면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공화국은 이제 한국의 차관도 얻고, 식량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환경이 좋아지고 그게 지속되면, 거기에 익숙해진 대중은 본래부터 자기들이 이룩한 것이라고 착각을 할 수 있으리라.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처신을 잘 하라는 경고였던 것이다.
모든 혜택을 회수당하고 뒤늦게 후회하지 말라고.
자신은 애초에 딴생각을 품을 마음이 없었지만, 밑의 사람들까지 전부 한결같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다들 잘 들으셨습니까? 김씨 정권이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진 못합니다."
하수영이 부하들을 차분히 둘러보는 모습에서, 윤태호는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김씨 왕조와 몰래 소통하는 배신자가, 이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