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29화
262 장 뉴 밀레니엄 삼한시대 (4)
박상필 총리가 얼떨결에 끌려가 보안유지서약을 하는 동안, 하수영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대포 같은 렌즈를 단 카메라는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비싸 보였다.
"저기, 울릉군민 기자님."
"저요?"
"뭐 하나 좀 물어봅시다."
30대 초중반의 마른 체격의 남성기자가 슬쩍 다가왔다.
"요즘 울릉군민일보는 어때요?"
"뭐가 어떠냐는 말씀이신지?"
"월급이라던가, 근무조건이라던가, 입사 자격이라던가. 그런 것들요. 나도 이직을 알아보고 있어서요."
"조건이야 뭐 먹고살 만한 정도죠"
"……그런가요?"
먹고살 만한 정도라는 말에 기자의 얼굴이 조금 시무룩해졌다.
"입사 자격은 뭐 따로 없습니까?"
"별로? 구라 기사, 베낀 기사 이력만 없으면 안 따집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그런 기자가 몇 명이나 되겠어요?"
"그런 거라면 자신 있는데, 월급이 먹고살 만한 정도라니, 조금……."
"자신 있으면 한 번 지원해 봐요. 그래도 지금 다니는 신문사보다는 나을 겁니다."
"먹고살 만한 수준이라면서요?"
"지금 다니는 신문사는 입에 풀칠하는 수준으로 주지 않아요?"
"……."
그제야 말을 건 기자는 눈앞의 젊은 기자의 금전 감각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헛기침을 한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
"전 홍문일간 주성환 기자입니다."
"울릉군민 한 달 차 신입 신성웅기자입니다."
하수영은 전생 중 썼던 이름 중 하나를 사용했다.
주성환이 가볍게 칭찬했다.
"이름이 좋네요. 뭔가 신성한 영웅, 그런 말을 줄인 거 같습니다. 부모님이 멋진 이름을 지어주셨군요."
"널리 세계평화를 위해 한 몸을 바치고 인간애를 품으라는 뜻으로 지어주신 이름이죠."
"아하, 나중에라도 제가 이직에 성공하게 되면 술 한 잔 같이합시다. 지금 회사는 도저히 못 해먹겠어서. 근데 그 카메라 얼마 주고 샀어요?"
"2억 조금 안 했던 거 같은데요."
"어이구. 울릉군민일보가 요즘 정말 잘나가긴 하나 봅니다. 그런 값비싼 카메라도 아무렇지 않게 신입기자들한테 장비로 지급하다니."
"이거는 제 건데요? 여사친이 사준 겁니다."
"……여사친이 그런 걸 사줘요?"
혹시 취미로 기자 생활을 하는 재벌가 자식이라도 되나?
수영그룹과 우호를 쌓기 위해 울릉군민일보에 입사한 마케팅이나 언론사의 후계자?
재벌들은 지들끼리 만나니까, 여사친이 저런 걸 사줬다는 말에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자기 좀 예쁘게 찍어달라고 사줬어요."
"혹시 연예인이라도 됩니까?"
"연기하죠."
"아하. 그렇군요."
주성환은 재벌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B급 연예인만 돼도 저런 카메라는 충분히 살 수 있을 테니까.
그걸 선뜻 남사친한테 선물로 준다는 건 조금 이해가 안 가지만…….
'썸이라도 있나 보네.'
주성환이 '신성웅 기자'한테 관심을 준 이유는 별거 없었다.
다른 기자들보다 더 왕성하게 돌아다니면서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프로 정신 때문에 눈길이 갔던 것이다.
거기에 눈에 띄는 커다란 비싼 카메라까지 들고 있으니.
주성환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신성웅 기자'를 계속 따라다녔다.
"북한, 아니지, 중한이 한국에 정말 붙어먹으려는 모양이네요. 태도가 너무 절실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에 붙을 순 없으니까요. 애초에 배고파서 들고 일어난 죽창 부대고."
"윤태호 차수 접견이 기대되는데. 이번에 휴전선 넘는 거 때문에 너무 설레서 어제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하수영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도 윤차수 얼굴 한 번 꼭 보려고 이번에 자원했습니다."
"역사적인 인물이니까요. 저도 그 마음 이해합니다. 지금 윤태호 차수는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지 않습니까?"
"갈림길?"
"아, 역사의 대역죄인이 되느냐, 민족 통합을 이뤄내느냐, 딱 그 앞에서 있잖아요."
***
수영개성농장은 즉시 쌀을 생산할 수 있을 준비를 갖췄지만, 일부러 파종하지 않고 기다렸다.
적어도 첫 출하량만큼은 몇 달 후로 잡아야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농장을 세우고 일주일도 안 돼서 쌀을 출하하면 너무 대놓고 티를 내는 셈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수영그룹의 트럭트레일러는 쉬지 않고 드나들며 냉동 컨테이너를 쌓아두고 있었다.
사절단은 산더미처럼 늘어만 가는 컨테이너 무덤을 보고 기가 질렸다.
"도대체 저게 다 얼마야?"
"지금 고깃값 폭등해서 만만치 않을 텐데. 저 고기들 해외에 내다 팔면 정말 떼돈을 받을 텐데."
"저게 다 무상지원이라지?"
"우리 정부가 그렇게 돈이 남았나? 중한개간산업 예산을 그렇게 많이 짜뒀나?"
"저건 수영농장 단독으로 하는 무상지원이라고 하던데."
"할 땐 정말 확실하게, 화끈하게 하는구나."
하수영을 따라다니는 주성환 기자도 컨테이너 더미를 보고 한마디 했다.
"저건 냉동 컨테이너 값만 해도 엄청날 텐데. 나중에 돌려받을 순 있으려나요?"
"그럼요. 걱정 마세요. 중한 정부는 저거 함부로 손 못 댑니다."
"아, 하긴. 식량 목줄이 잡혀 있으니."
이틀째 되는 날, 드디어 사절단은 윤태호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윤태호는 군복이 아닌, 반듯한 정장 차림으로 사절단 총책임자인 국무총리를 맞이했다.
군인 느낌을 완전히 제거한 젠틀한 이미지에 기자들도 수군거렸다.
"정말, 확실하게 제대로 개방을 하려는 모양입니다."
"최 대장 눈물 못 봤어? 그건 정말 찐이었다고."
"사람이 굶어 죽지 않으려면 뭔들 못 하겠어?"
"이거 잘하면 10년 안에 중한이 우리 한국에 흡수될 수도 있겠는데요?"
"글쎄요, 재벌들이 과연 통일을 바랄까요? 그냥 호구 옆나라로 남겨두고 자기들끼리 빼먹는 게 훨씬 나을 텐데."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도 플래시는 쉴 새 없이 터졌다.
윤태호와 국무총리가 정식으로 서로 만나서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고, 공개 회담을 개시했다.
공개 회담은 포괄적인 평화와 번영, 동맹의 기치에 대한 주제를 주로 다뤘다.
하수영과 주성환도 기자석에서 카메라를 조준한 채 셔터를 계속 눌러 댔다.
"상당히 말랐네요. 얼굴 살이 없어요. 정말 식량난이 심각하긴 했나 봅니다."
"식량 문제는 이제 해결될 겁니다. 수영농장이 나섰으니까요."
"과연, 오늘 회담에서 어떤 합의가 나려나……."
윤태호는 이제 사실상 국가의 수장이다.
원래라면 대통령이 직접 상대해야 격에 맞다.
하지만 중한과 한국의 국력 차이는 현저하고, 또 혁명으로 일부 영토를 차지했다는 정통성 결여 문제가 있다.
그래서 국무총리를 책임자로 한 사절단을 보내고, 윤태호는 첫날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이런 식으로 균형을 맞춘 것이다.
하수영은 렌즈를 통해 윤태호를 바라보다가, 눈을 슬쩍 들어 나안으로 다시 응시했다.
"사나운 사냥개……."
그의 중얼거림에 주성환 기자가 의아해서 물었다.
"네?"
"성질 더러운 사냥개를 솥에 삶든가, 먹이를 풍족하게 주든가, 둘 중 어느 하나도 못 했으니 이 꼴이 났네요."
"무슨 말이에요, 신성웅 기자?"
"김씨왕의 실수를 복기해 봤어요."
하수영은 다시금 렌즈에 눈을 갖다 대며 읊조렸다.
"밥만 잘 주면 말은 잘 들을 상이 네요."
"이야, 관상 같은 거 볼 줄 알아요? 그럼 밥 제대로 안 주면 어떻게 됩니까? 막 주인을 물어뜯나요?"
"나약한 주인이라면 물어뜯기겠지만, 힘을 갖춘 주인이라면 그냥 묶인 채로 굶어 죽이게 놔둘 수 있죠."
"하긴, 중한이 핵을 가진 것도 아닌데 우리 한국을 상대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납작 엎드려서 살려달라고 빌어야지. 선진국들도 식량 부족해서 빌빌거리는 판에, 쌀나올 데가 수영농장밖에 더 있어요?"
하수영은 들리지 않게 피식거렸다.
"암행 메인 미션은 달성했네."
***
최섭곡이 어제 언급한 조건들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휴전선 제거.
확보한 핵탄두 인도.
이산가족 상시 자유만남 주선.
모든 군사정보 제공. 상시 군무관파견.
모든 군사력 북상.
DMZ 100% 한국군 관리.
원화 도입.
등등의 조건들을 골자로 한 조약초안이 윤태호와 총리 간에 합의를 맺었다.
총리는 나선 김에 동맹까지 과감하게 맺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 부분은 대통령의 치적을 위해서 남겨놓아야 했다.
그리고 회담에는 특이하게도 안드로이드 프리덤이 참여했다.
인간도 아닌 로봇이, 자기 주인을 대리해서 회담에 당당히 앉은 것이다.
SF매니아,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이미 황홀경에 빠져서 자기들끼리 야단법석을 벌이고 있으리라.
인류 역사상 굉장한 의미가 담긴 장면이기에, 셔터음은 쉬지 않고 정신없이 울렸다.
"앞으로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정의, 번영을 만들어 나갑시다."
그렇게 1차 회담이 끝났다.
하지만 진짜 회담은 이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윤태호 정권이 가장 절실한 것은 수영농장이 생산할 식량이었고, 수영농장은 대통령도 컨트롤할 수 없는 민간집단이었다.
윤태호는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따로 불러서 독대를 가졌다.
「프리덤이라 불러 주십시오. 편하게 하대하시면 됩니다. 저는 인간이 아니니까요.」
"그럼 그렇게 하지."
윤태호는 표정을 꾸미지 않은 채 덤덤히 대화를 이어 나갔다.
"우리는 식량이 가장 급하고, 그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것들 투성이다. 수영그룹이 지원을 해줄 수 있는가?"
「정부에서 지원을 해줄 겁니다. 수영그룹은 농장 진출을 한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습니다.」
"변방에 오랫동안 좌천돼 있었지만, 수영그룹의 위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한국 정부를 뒤에서 자유로이 주무르는, 대한민국의 진짜 주인이라고 하던데."
「오해이십니다. 수영그룹은 그저 건실한 민간농업자본일 뿐입니다.」
"수영그룹이 한국 정부를 움직일 힘이 없다는 의미인가?"
「힘은 있습니다. 다만 휘두르지 않습니다.」
"그 정도면 진짜 주인이 맞는 게 아닌가?"
윤태호는 가볍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럼 식량 외의 다른 지원은 한국정부와 이야기를 하면 되나?"
「그렇습니다. 토지 개발은 식량플랜트 구축이 끝날 때까지 중지해 두십시오.」
"물론이다. 한국 자본가들에게 토지개발권을 섣불리 내어줄 순 없지. 그들이 땅에 가진 탐욕은 하늘을 찌른다고 알고 있다."
「감사합니다.」
"다만 전기 문제만큼은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 송전선을 연결하든 발전소가 들어오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전력 가동률이 얼마나 됩니까?」
"가동률? 그런 건 의미가 없다. 나도 관저에서 저녁이 되면 촛불을 켠다."
「심각하군요.」
"수영그룹에서 남아도는 수소발전기라도 여러 곳에 설치해 줬으면 좋겠다."
「전기 문제는 바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안드로이드 프리덤은 커다란 금속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안에는 커다란 금속박스가 들어 있었다.
금속박스를 열어 내부를 보여주자, 윤태호가 턱을 쓰다듬었다.
"누전차단기인가? 이걸 왜……."
「중앙전기장치입니다. 당연히 누전차단 기능도 포함돼 있습니다.」
윤태호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자, 안드로이드 프리덤은 중앙전기 장치를 눈앞에 있는 개성공단 통제소 변전장치에 장착했다.
「통제소 건물의 모든 스위치를 켜보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이게 무슨……?"
「명령해 주십시오.」
윤태호는 반신반의하면서 명령을 내렸고, 곧 건물 전체에 불이 켜졌다.
심지어 수십 기의 실외기까지 우렁차게 돌아가며, 잠자고 있던 건물이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건물의 모든 등에 불이 켜지고, 모든 에어컨에서 시원한 바람이 쏟아지자, 윤태호 수행원들은 크게 기뻐하며 얼싸안았다.
초봄을 강타한 이상기후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던 윤태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초소형 핵융합 발전기라도 되는 건가?"
「무선 전기 수신 커넥터가 안에 들어 있을 뿐입니다.」
"무선 전기?"
「강릉 수영발전소에서 내보내는 전기입니다.」
무선 전기라는 개념에 윤태호는 큰 충격에 빠져서 한참 동안 굳어 있었다.
여전히 동공이 흔들리던 그가 어렵게 물었다.
"이런 게 몇 개나 있는가?"
「일단 컨테이너 50개에 가득 채워 왔습니다.」
"나중에 추가할 수 있는 물량은 얼마나 되지?"
「돈이 많이 드는 상품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습니다.」
"……모든 가정과 설비에 한꺼번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겠군. 이 중앙전기장치를 달기만 하면 말이야……."
전기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송전탑이니, 발전소 건설이니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사라진다.
하지만 수영장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중한 전체를 셧다운해 버릴 수 있게 된다.
식량과 전기
수영장이 사냥개를 위해 준비한 두 가지 목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