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25화
261장 제주도 올인 (3)
고난의 행군.
90년 대 6년에 걸쳐 약 100만 명이 굶어 죽은 북한의 대기근.
하지만 북한에서는 더 이상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지 않는다.
"지금 북한이 겪는 사태에 비하면 그것은 행군이 아니라, 가벼운 조깅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니까요."
유희준 차장이 쓴웃음을 곁들이며 설명했다.
"남아 있는 식량은 불과 2주에서 4주 치. 넉넉히 4주가 지나면 그때부터 2,500만 명 인구가 일제히 굶기 시작할 겁니다. 구황작물이랄것도 없이, 나뭇가지나 뜯어먹어야 하는 거죠. 그것도 운이 좋을 때 이야기입니다."
하물며 지금은 중국도 북한을 도와줄 만한 여력이 없다.
가뭄으로 싼샤댐의 수위가 낮아지고, 그로 인해 전기 발전량까지 줄어들어 농장 일대에는 전기가 제대로 공급조차 되지 않는 상황.
여기에 메뚜기떼가 장강 일대에 범람하며 곡물 생산량이 초토화되었다.
중국 역시 신두 1,000억 알을 다급히 구매해야 할 만큼 식량 사정이 안 좋다.
1,000억 알이면 10억 명이 약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물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밀값도 폭등했습니다. 중국과 미국은 유례없는 가뭄에 시달리고 있죠. 꿀벌 폐사는 북반구 전체를 한꺼번에 덮친 사태고요."
유희준의 목소리가 점점 어두워졌다.
"북한도 압니다. 수영농장 말고는 지금 자기들의 식량난을 도울 수 있는 집단이 없다는 것을요."
"미국이 참 골치 아프게 됐네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북한이 굶어 죽느니 다 죽겠다며 핵 터뜨리는 것도 막아야 하니까."
"비공식 외교 메시지도 들어왔습니다. 북한의 아사를 최대한 막는 데 협조하겠다고요. 수영농장이 신두를 팔겠다면 적극 거들겠다는 이야깁니다."
"저한테는 말 안 하던데."
"직접 대화하기에는 조심스러웠던 거겠죠. 우리 정부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나섰던 겁니다."
"좋습니다. 아무튼, 윤태호 차수라는 인물이 그럼 이제 북한의 새로운 지배자인가요?"
"그러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애매모호한 대답이지만, 하수영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았다.
"내전에 들어갔나 보군요."
"그걸 어떻게 대번에…… 하긴, 의원님이라면 충분히 눈치를 채시겠죠."
유희준 차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지금 북한은 평안북도와 함경도 일대를 차지한 김씨 정권과 그 외 남쪽 지역을 차지한 윤태호 차수, 이렇게 두 세력으로 나뉘었습니다."
"북한 안에 또 북북한과 북남한으로 갈린 겁니까?"
"그런 셈이죠. 그래도 평양과 그 아래는 윤태호 차수가 완전히 먹었습니다."
"핵은요?"
"아직 정확한 정보는 입수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윤태호 차수가 핵활성화 코드를 손에 넣지는 못하고, 핵탄두 일부는 차지한 거 같습니다."
하수영은 손가락을 툭툭 두드리다가 말했다.
"핵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이거로군요."
"그렇습니다. 윤태호 차수는 확실하게 핵 공격 능력이 없을 거고요."
"그럼 윤태호 차수의 거래를 받아들이면 김씨 정권이 열 받아서 핵공격 위협이 커지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그쪽을 달랠 만한 선물도 줘야죠. 평양을 차지한 이상, 해외자산에 대한 통제권은 윤태호 차수에게 넘어왔습니다. 이제 김가왕은 거기에 손 못 댑니다."
리철만이 일하던 해외자산관리부서.
윤태호가 그 부서를 완전히 장악했다는 의미였다.
권력욕보다는 이러다가 진짜 다 굶어 죽을 것 같아서 역성혁명을 일으킨 윤태호 차수.
나라 절반을 빼앗겼지만 반란 진압보다는 당장 식량부터 걱정해야 하는 김씨 왕조, 내전으로 나라가 분열됐지만, 정작 두 세력은 더 이상 전쟁을 이어나갈 체력이 없다.
병사들이 방아쇠를 당겨야 할 칼로리조차 아껴야 할 상황이니까.
"빨리 식량을 지원해야 합니다. 김가왕은 아마 단 며칠 버틸 식량조차도 없을 겁니다."
"그렇겠네요. 평양에 식량 대부분을 꿍쳐놨는데 거기를 뺏겼으니. 아, 그래서 윤 차수라는 친구가 평양을 쳤겠지만요."
"우스갯소리로 국정원에서 이런 말도 나돕니다. 역성혁명을 하려던 게 아니라 식량창고를 털려던 것뿐이었는데, 하다 보니 왕을 몰아낸 거 아닌가 하고요."
유희준 차장은 하하 웃으며 덧붙였다.
"말도 안 되는 농담이지요. 식량부족이 트리거가 된 건 사실이지만, 목적 자체는……."
"왜 말이 안 돼요? 충분히 개연성있는데."
"……?"
"배고픔에 눈 뒤집어져서 왕의 창고를 털었는데, 잠깐 배부르니까 이제 엿 됐구나 싶어서 어쩌지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다 뒤집어엎자, 이런 전개가 불가능할 거 같습니까? 전 그보다 더한 것도 많이 봐서 납득이 가는데요."
"……."
"저야 보증금만 확실하다면 못 할건 없죠. 놈들이 말 뒤집어도 100배이상 남겨 먹는 건데. 아, 오히려 제발 그래 줬으면 좋겠네."
"그럼 그렇게 의사타전을 해보겠습니다."
유희준 차장은 그 자리에서 본부에 연락을 취했다.
20분도 지나지 않아서 그는 본부에서 온 메시지를 받았다.
"윤태호 차수의 답신이 왔습니다. 해외자산의 모든 것을 즉시 넘기겠답니다."
"빠르네요."
"김가왕은 당장 이번 주부터 굶게 생겼지만, 윤 차수 역시 다음 달부터는 확실하게 굶습니다. 아주 급하죠."
유희준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신두 비축분은 충분하십니까?"
"남아도는 게 신두입니다. 볏짚 만들다 보니까 쌀이 너무 많이 남아돌아서 그냥 신두로 압축해서 보관하던 중이었거든요."
"물량이 대략적으로 얼마나 됩니까?"
"글쎄요. 일일이 세어보질 않아서. 중국에 판 것보다는 훨씬 많을 겁니다."
"……."
최소 천억 알 이상은 상시비축을 해두고 있다는 말에 유희준은 살짝 질렸다.
특별한 전략적 목적 없이, 그냥 소먹이로 볏짚을 만들면서 남아도는 찌꺼기(쌀) 처리를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
"수영농장의 생산량은 가히 질소비료를 개발한 빵과 죽음의 화학자 그 이상이군요. 전 세계가 식량 부족에 몸살이 중인데, 그 좁은 면적에서 터무니없는 양을……."
"비료가 좋아서 그래요. 저희는 질소비료 안 쓰거든요. 그런 레거시비료는 더 이상 메타가 아니에요."
"……하하."
유희준 차장과 면담을 마친 후, 하수영은 바로 귀순한 리철만을 불렀다.
같은 동네 주민이다 보니, 리철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나타냈다.
"부르셨습니까, 의원님."
"어, 그래. 앉아봐."
물 한 잔 마실 틈도 없이, 하수영은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네가 관리하던 비자금 32억 달러말고 또 얼마나 더 있었냐?"
"해외자산 총액은 250억에서 300억 달러쯤 될 겁니다. 확실하진 않고, 대략적으로 추정하는 겁니다."
"좀 더 강하게 확정한다면?"
리철만은 잠시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350억 달러는 절대 넘지 않을 겁니다."
"39호실이 제법 관리능력이 좋네. 미국과 유럽이 눈치 못 챈 게 그렇게 많다, 이거지?"
"대부분이 현금성 자산은 아닙니다. 명의세탁을 신중하게 여러 번 거쳤죠."
"좋아. 리스트 들어오면 네놈이 한번 확인해 봐라."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지시이지만 리철만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짧은 한마디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챈 것이다.
'북조선이 식량 때문에 결국 무릎을 꿇은 건가. 그럼 우리 수영장이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개성에 입장하겠군.'
아직 북한의 쿠데타와 내전 진입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순식간에 이정도를 추리해 낸 것만 해도 괜찮은 편이다.
***
윤태호 차수가 정말 급하긴 한 모양이었다.
보증금 입금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머슴(윤태호)이 원주인(김씨 왕조)으로부터 강탈한 해외 자산은 중개인(미국)의 보증을 통해 새 주인, 하수영을 맞이했다.
총평가액은 290억 달러.
대부분이 호화 별장, 부동산, 귀금속,호화요트,전용기, 호텔 따위였다.
특히 재산목록에 라스베이거스 호텔 카지노 하나가 끼어 있음을 알게 된 유희준이 이렇게 말했다.
"미국 NSA는 한바탕 뒤집어졌을 겁니다. 적국이 자기네 땅에 카지노를 버젓이 운영하던 것도 전혀 몰랐다고 말입니다."
"대북제재로 묶어놨는데도 버젓이 사치하고 그러던 게 다 뒷구멍이 있어서 그랬군요."
"어쩐지 금방 망할 것 같으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잘 버티더라니……."
"아무튼 보증금입니다. 신두 대금과는 별개예요. 알아두세요."
"……알겠습니다."
유희준의 표정을 보아하니, '보증금' 안에서 신두 값을 차감할 수 있을지 상부에서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기존에 팔았던 신두 60억 알값까지 소급해서 차감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어림도 없다.
"프리덤."
「예, 마스터.」
"농장 진출할 준비 해라. 그전에 신두 먼저 공급해야겠고. 당장 숨넘어가는 건 막아야지."
「알겠습니다. 초기 투자비용은 얼마에 맞출까요?」
"천억은 넘기지 마."
「투자한 것을 다 날려도 보증금에서 289 배는 남길 수 있겠군요.」
"소상농인이라면 이만큼 공짜로 남는 장사는 사양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농장 로봇을 최대한으로 투입해도 천억이 안 될 겁니다. 로봇이 요즘 많이 저렴해져서요.」
"잘됐네. 괜히 비실거리는 북한 주민 쓰지 말고 네가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다 관리해."
「알겠습니다. 패키지 세트는 어떻게 묶을까요?」
"기왕 하는 김에 성의는 보여야지. 농장, 양식장, 축사장, 종합패키지로 세팅해 줘. 쌀만 주구장창 먹일 순없잖아."
「양식장을 운영하려면 안드로이드프리덤이나 사람 인력이 필요합니다. 레거시 로봇으로는 양식장을 운영하지 못합니다.」
프리덤이 통제하는 로봇 중에서 사람 형태를 한 최신모델은 안드로이드, 그 외는 레거시 로봇으로 분류된다.
당연히 최신 안드로이드가 훨씬 비싸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농장관리 하나만 놓고 보면 레거시 로봇들이 훨씬 싸고 효율도 매우 높다.
"안드로이드는 좀 그렇네. 그래도 400만 달러나 하잖아."
장갑을 두른 것도 아니기에, 소총한 자루면 안드로이드를 손쉽게 파괴할 수 있다.
"양식장은 관리용 안드로이드 1, 2기만 보내고 북한 주민들 손으로 다루게 해. 축사장도 그렇게 하고. 농장만 레거시 로봇으로 갖춰."
「알겠습니다.」
먼저 신두 100억 알이 트레일러에 실려서 북한으로 출발했다.
판문점 도로를 거쳐서 트레일러들이 북한으로 올라가는 광경은 온나라에 생중계되었다.
국민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비난의 목소리도 적진 않았다.
-북한에 쌀 지원하면 그걸로 병사들 먹이고 체력 키워서 침공하는 거 아님? 수영농장은 나라를 망치려는 거임?
-바보 새꺄. 굶어 죽느니 핵 터뜨리고 다 같이 죽자고 나오는데 그럼 그걸 놔둬?
-상황 판단 안 되는 거니 놔둬. 핵경보 끝날 때까지 지하철에서 벌벌 떨어봐야 정신 차리지.
-신두 지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남쪽 북한에 수영농장이 아예 진출한다는 말이 있던데.
-근데 윤 차수 정권은 핵 공격 능력이 없다잖아. 함경도로 도망친 김가네만 핵이 있고.
-야, 이거 잘하면 남쪽 북한이 완충지대 되겠는데?
-좋은 소식 추가. 이제 김가네가 아무리 지랄발광을 해도 장사포가 서울까지 못 닿는다고.
-그러네. 윤 차수 정권은 핵 공격능력도 없고, 바로 위쪽에는 김가네가 이를 갈면서 벼르고 있으니, 꼼짝없이 우리 위해서 방패 역할 맡아야만 하네.
-옆 나라에 내전이 났는데 왜 우리나라 전쟁 위기가 더 감소하는 거냐?
-대신 핵 자폭 위기는 증가했지…….
-그건 어차피 내전하고 상관없이 식량위기 때문에 계속 증가하고 있었어.
신두 100억 알은 윤 차수 정권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중 30억 알은 은밀하게 쫓겨난 김씨 왕조 손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사전에 합의된 내용이었다.
궁지에 몰린 김씨 정권이 정말로 다 죽자고 남은 핵을 발사해 버릴지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신두 대금은 중국과 미국, 한국 정부가 힘을 합쳐서 지불했다.
-21세기에 삼한시대가 다시 열리는 걸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후삼국도 아니고, 후후삼국시대라고 해야 하나?
-언젠가는 통일이 될 줄 알았어. 근데 통일은커녕 삼국으로 삼등분이 돼 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