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24화
261장 제주도 올인 (2)
일찍, 그리고 일제히 핀 전국의 아카시아 꽃들이 모조리 져버렸다.
꿀벌을 잃은 양봉농가는 결국 아카시아 꿀을 조금도 채취하지 못했다.
평년보다 개화 시기도 너무 빨랐고, 너무 더웠으며, 급격한 환경변화를 이기지 못한 꿀벌들이 집단 폐사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앞을 다퉈서 위급하다는 신호를 쏟아냈다.
-전국의 꿀벌 개체 수는 작년의 30%에도 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양봉농가와 야생 꿀벌의 개체 수를 모두 합쳐서 추정한 수치다.
-올해 같은 현상이 한두 번만 더 반복된다면, 아마 꿀벌들은 멸종할 수도 있다.
-양봉농가는 시기상으로 이제 밤꿀, 잡화꿀, 싸리꿀 채밀 정도만 기대할 수 있다. 그것도 충분한 벌통을 확보했을 때 이야기다.
-올해 밤 농사는 처참할 것으로 예상. 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과수원 농가에 꽃가루 살포용 드론 지원을 확대해야 함.
-정부는 시급히 양봉농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작물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날은 더욱 무더워졌다.
양봉농가는 하영이 지원한 이동식 차양막 차량의 도움을 받아가며 여의도에 죽치고 앉아서 시위를 계속했다.
하지만 정부나 국회라고 특별히 뭘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돈으로 손실 보전을 해줄 순 있지만, 잃어버린 꿀벌을 만들어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시중에는 말 그대로 꿀벌이 씨가 말라 버렸으니.
해외에서 꿀벌을 수입하려 했지만, 다른 나라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양봉농가가 이상기 후로 인해 처참히 박살 난 상태였던 것이다.
***
농식품부는 연일 비상이 이어졌다.
"유럽에서 꿀벌을 수입해 오면 안되나? 원래 양봉농가 꿀벌들도 토종꿀벌이 아니고 수입해 온 종이라면서?"
"지금 유럽 양봉농가들도 벌들이 집단 폐사해서 해외 수입을 하니 마니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수입을 해옵니까?"
"젠장, 그럼 미국은?"
"미국이라고 사정이 좋은 건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나 유럽보다는 좀 낫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지금 꿀벌을 수출금지품목으로 지정해 버렸습니다."
"뭐야? 꿀벌을 수출금지 때렸다고?"
"네. 거의 준전략자원으로 관리하려는 낌새가 보입니다."
아시아 장수말벌의 습격으로 꿀벌대란을 혹독하게 겪은 미 정부는, 꿀벌의 귀중함을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깨닫고 움직이고 있었다.
미국도 다른 나라보다는 조금 낫다는 정도이지, 겨울 말 이상기온으로 인한 꿀벌 집단 폐사 피해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어디 농가에서 분봉 난 꿀벌 집이라도 찾아내야 하는 거 아닌가?"
"벌들도 당장 자기들 죽어 나가는 마당에 무슨 분봉입니까? 분봉도 잘나가고 규모가 커질 때나 하는 거지, 허리띠 졸라맬 때는 이 악물고 버틴다고요."
"그런가? 그럼 대체 이 상황을 어떡하지? 오늘도 장관님이 조인트 까이고 오셨다는데.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야 해."
"남아 있는 벌통이라도 잘 관리해서 차근차근 세력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상주 파견인들은 어떤가? 벌통 관리는 잘하고 있나?"
지금 양봉농가에는 얼마 남지 않은 벌통 관리를 위해서 농식품부 파견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남은 거라도 잘 관리해서 꿀벌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함이다.
벌통을 에어컨이 설치된 실내하우스로 옮겨서 35도 미만의 적절한 온도를 유지해 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 벌통을 상온에 그냥 놔두면, 그늘진 곳이라 해도 너무 더워서 죽어버린다.
낮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긴 지가 오래였으니.
"네, 실내하우스 에어컨이 아니었으면 남은 벌들도 다 죽었을 거랍니다. 날이 더워도 정말이지 너무 덥습니다. 밤에는 또 지나치게 떨어지고요."
조금 과장해서, 여름과 겨울이 하루 동안 반복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수영농장은? 거기에서도 양봉을 치지 않나?"
"수영농장에는 직원 파견을 안 했습니다. 의원님이 알아서 잘하실 수 있다면서, 그럴 인력이 있으면 다른 농가에나 지원을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수영농장이라고 해도 별수 없을 텐데. 꿀벌과 작물은다르잖나."
"네, 아마 수영농장도 양봉 피해를 꽤나 입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기는 애초에 양봉농가가 주력이 아니다 보니, 크게 개의치 않을 겁니다."
양봉농가에 꿀벌 폐사 사태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지만, 수영농장은 심심풀이로 하는 자그마한 농사 아이템 중 하나일 뿐이다.
수영농장의 주력 상품은 어디까지나 버섯, 쌀, 밀, 콩 등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이거 벌꿀 가격이 폭등하겠는데."
"올해 벌꿀 소출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꿀벌 개체 수가 이렇게 줄어서야, 밤꿀도 얻기는 글렀습니다."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직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말했다.
"국장님, 아카시아꿀 말인데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수영농장에서 아카시아꿀 판매를 시작했는데요. 총판에 나온 물량이 1.9만 톤입니다."
"뭐? 1.9만 톤? 아니, 그럼 작년 일년치 아카시아꿀 생산량 아닌가?"
"네, 맞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수영농장도 꿀벌들 피해를 봤을 테니 그만큼 채밀하는 건 불가능할 텐데?"
"수영농장은 꿀벌 관리를 잘해서 피해를 별로 안 봤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농식품부에서 한번 답사를 나가는 게 어떨까 해서요."
국내 생산량에 달하는 꿀을 총판에 내놓았다?
그렇다면 꿀벌 통의 규모가 어마어 마하게 크다는 뜻이 된다.
"양봉농협에서도 수매량에 놀라서 현장답사를 나가고 싶어 하는데, 단독으로 움직이기에는 부담스러운 모양입니다."
"우리 농식품부 차원에서 움직여줬으면 한다는 거로군."
일개 양봉농협 입장에서 수영농장의 위엄은 너무 거대하다.
일개 연대장이 합참본부 의장실을 방문하는 것 이상으로 부담스럽다.
"좋아. 자리는 내가 만들어볼 테니, 양봉협회에서도 사람 몇 명 보내라고 해."
"알겠습니다."
***
그리하여 20여 명으로 구성된 농식품부 및 양봉농협 직원들이 경기도 서락산 수영농장 신 테라리움으로 향했다.
농장단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온다.
"우와……. 정말 먼 미래에 온거같습니다. 저 원통 빌딩들이 전부 다 실내농장이라니, 믿어지지 않네요."
"겉모습만 보면 농장이 아니라 첨단연구개발소 같습니다."
넓고 높은, 거대한 원통 건물이 여러 채가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농장단지가 아니라 무슨 군사기지처럼 느낄 정도다.
"항공사진으로 보면 핵 사일로처럼 보인다는 말이 절대 과장된 게 아니었습니다."
"그나저나 직원이……."
최이섭 국장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안드로이드 프리덤 1기가 다가왔다.
안드로이드는 헤드디스플레이에 웃는 표정을 만들어 보이며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수영농장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저는 테라리움을 관리하는 프리덤입니다. 그냥 프리덤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아…… 그냥 프리덤이라고 부르면 되나?"
「네.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사용하시는 프리덤 비서 AI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도 프리덤과 똑같았다.
그래서인지 평소 각자의 프리덤을 대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편해졌다.
「차량을 준비했습니다.」
작은 셔틀버스 한 대가 조용히 나타났다.
배기가스 배출구가 없고 소음을 보니, 전기버스가 틀림없었다.
프리덤의 인솔하에 버스를 타던 일행들은 깜짝 놀랐다.
"프리덤? 운전기사가 없는데?"
「제가 통제하는 자율운행 버스입니다. 안심하십시오.」
"그런데 왜 운전석에 앉지 않는 건데?"
「내장된 자율주행시스템으로 운전하기 때문에 굳이 운전석에 안드로이드를 앉힐 필요가 없습니다. 겨우 버스 한 대 움직이자고 400만 달러짜리 안드로이드를 앉히는 게 더 낭비죠.」
"……."
버스는 부드럽게 주행을 시작했고, 다들 살짝 기가 눌린 채 입을 다물었다.
어느덧 버스는 한 원통 빌딩 농장앞에 섰다.
정문이 열리고, 프리덤이 안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1층에 끝없이 펼쳐진 아카시아와 꽃들의 향연에 순간적으로 숨이 막 힐 듯한 아찔함을 느꼈다.
"꾸, 꿀벌이다."
"세상에. 꿀벌이 이렇게나 많다니……."
어마어마하게 많은 꿀벌이 쉬지 않고 날아다니며 꽃꿀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한쪽에 블록처럼 끝없이 넓게, 그리고 높게 쌓인 벌통 군단을.
질서 정연하고 반듯한 벌통들은 높이 4미터에 달하는 기둥에 다닥다닥 고정되어 있었다.
높아봤자 1미터도 안 되는 통상 양봉가의 벌통과는 차원이 다른 관리였다.
높이 6미터까지 팔을 뻗을 수 있는 로봇들이 쉼 없이 돌아다니며 벌통을 세심하게 관리한다.
'저 비싼 로봇들로 벌통을 관리한다고?'
'벌꿀을 백 년을 팔아도 로봇 가격이나 회수할 수 있을까?'
'미쳤다 미쳤어…….'
다들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 프리덤이 말했다.
「꿀벌 폐사 사태 이후, 우리 농장에서는 벌통의 규모를 늘리는 데 집중적으로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현재 피해를 입은 양봉농가들이 80%까지 벌통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개체 수를 늘렸습니다.」
꿀은 많고, 온도도 쾌적하며, 천적도 없다.
여기에 하수영의 신어, 그리고 프리덤의 세심한 관리 덕분에 벌들은 부지런히 세력을 키웠다.
그중 어느 것 하나만 빠져도 이만큼 세력을 확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벌통 1개당 30만 원의 가격으로 양봉농가에 제공하겠습니다. 물론 돈은 양봉농가가 아니라 농식품부와 농협으로부터 받겠습니다.」
"그, 정말인가? 이 벌통들을 판매할 수 있다고?"
「그러기 위해서 개체 수를 늘린 거니까요. 벌들과 의사소통하느라 좀 힘들었습니다.」
벌통 복구가 된다면 어디 돈이 문제겠는가.
특히 양봉농협 사람들은 한순간에 시름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벌통 지원에 소득피해보상금까지 나오면, 시위 중인 양봉농가들도 다시 생업으로 돌아갈 것이다.
「벌통 배달 역시 저희 농장에서 책임지고 진행할 테니, 농식품부는 돈만 준비하시면 됩니다. 청구서는 공문으로 발송했습니다.」
"어, 그래. 알았다. 그런데 의원님은?"
「지금 국정원과 면담이 있으셔서요. 바쁘십니다.」
"국정원?"
***
해외 2파트 제1국 소속 유희준 차장.
북한에 신두 60억 알 판매를 중개한 인물이 하수영과 마주 앉아 있었다.
"3개월은 갈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 더 일찍 신두가 떨어진 모양이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북한의 식량 사정이 심각한 모양입니다."
신두 60억 알.
인구 2,500만 명이 아껴 먹으면 3개월은 버틸 수 있는 물량.
하지만 북한은 그보다 더 일찍,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하수영은 저번 거래에서 손해 본건 없었다.
신두 대금은 미·중·한이 연대보증으로 지불해 줬으니까.
아사에 몰린 북한이 핵탄두로 자폭하는 미래는, 어느 나라도 원하지 않는다.
"저희는 현재 북한에 최소 2주, 최대 4주 치의 식량이 남아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다 떨어지기 전에 채워 넣어야 하니까 그게 얼추 맞겠죠. 그래서 또 신두 좀 달래요?"
"네. 그리고 다시 한번 수영농장의 개성 진출을 강하게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거야 해외자산을 모조리 보증금으로 입금하면 언제든지 해준다고 했는데."
저번에 그 제안을 거절한 것은 다름 아닌 북한이었고.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뭐라고요?"
"동결된 해외자산을 모조리 보증금으로 걸 테니, 농장 진출을 해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라인입니다. 윤태호 차수라는 인물입니다. 원래는 좌천당했었죠."
"어, 이거 왠지……."
"쿠데타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
하수영은 별로 놀랍지 않다는 듯이 끄덕거렸다.
"이제 뒤집힐 때가 됐죠. 다 굶어 죽게 생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