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22화
260장 1차 반도체 전쟁 (6)
미국은 반도체 자생력 지원 정책을 완전히 포기했다.
마이크론과 IBM은 건설 중이거나 가동 중이던 반도체 공장을 정리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윈텔도 보험용으로 운영하던 미국공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나노 양산 시작으로 인해, 보험용으로도 공장을 굴리는 의미는 이제 사라졌다.
이제는 서진파운드리 외의 모든 공정은 '레거시 공정'으로 묶여서 취급되었다.
5나노든, 4나노든 간에.
그리고 서진파운드리는 신공장 건설을 깜짝 천명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만 담지 말라 했습니다. 서진파운드리는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을 홀로 담당하는 세계의 공장입니다. 생산 라인이 한 곳에만 뭉쳐 있으면 유사시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생깁니다."
"제2공장은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지어질 예정입니다. 정확한 장소는 아직 미정입니다."
이에 지자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서진파운드리는 고용효과는 0이다.
직원이라고는 정서진과 4명의 수행 비서가 전부일 뿐이었으니.
공장은 완벽한 무인체제로 돌아간다.
하지만 벌어들이는 돈이 막대하다.
따라서 지자체에 납세하는 지방소득세도 엄청난 규모다.
일례로 윈텔이 옵테인 메모리 1만 달러어치를 팔면, 그중 약 2,000달러를 수익으로 가져간다.
1,000달러는 인건비, 운송비, 마케팅 등 일체의 비용으로 빠지고.
나머지 7,000달러를 서진파운드리가 먹는다.
그런데 서진파운드리는 공장 세팅비용 등 투자비용은 진작 회수했고.
이제는 주요 원재료마저도 진주 규소 광산에서 값싸게 캐낸다.
그래서 매출에서 부가세를 제하고, 이익률은 90% 이상이다.
설계는 윈텔이 하지만, 생산자인 서진파운드리가 가장 큰 파이를 먹는 구조였다.
그렇다 보니 본사가 있는 경기도에 내는 법인 지방소득세가 엄청나다.
작년 경기도 예산이 44조 원인데, 그중 11조 원이 서진파운드리가 낸 지방소득세였다.
***
경기도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제2공장 발표를 듣자마자 경기도지 사가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정서진이 있는 청담동 사무소로 달려갔다.
(정서진은 원활한 바이어 접객을 위해 청담동에 사무소를 차렸다.)
"지사님, 어서 오십시오."
"정 대표님, 혹시 제가 뭐 서운하게 한 거라도 있습니까?"
"서운한 일이라니요.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발표는 뭡니까? 설마 남부 지역으로 본사를 이전하려는 겁니까?"
서진파운드리는 작년에만 법인소득세 국세로 110조 원을, 지방세로 11조 원을 냈다.
본사 등록지가 바뀌면, 지방세를 내는 지자체도 바뀐다.
정부야 가난한 지자체 재원이 저절로 확보되니 서진파운드리가 어디에 공장을 짓든 꽃놀이패를 쥔 셈이지만.
경기도는 재정의 1/4이 날아가게 생긴 셈이다.
"본사 이전이라니요. 그냥 제2공장을 멀찍이 떨어뜨려 지으려는 것뿐입니다."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냥 뭉쳐서 한데 짓는 게 낫지 않겠어요?"
"하하, 대만 TSMC가 어떻게 망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중국의 핀포인트 폭격에 공장이 죄다 날아갔고, 그로 인해 몰락했습니다."
"어떤 미친 나라가 우리나라 경기도에 미사일 폭격을 하겠어요?"
"그거야 모를 일이죠. 러시아가 섣불리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긴 힘들 거라 했지만, 보십시오. 세상사가 어디 전문가들의 뜻대로만 돌아갑니까?"
"만에 하나라도 저희 공장이 멈추면 전 세계 제조업이 마비됩니다. 그래서 똑같은 공장을 추가로 더 지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본사를 옮기는 건 아니라는 말이죠?"
"네. 지금 멀쩡히 잘 돌아가는 공장을 왜 옮깁니까. 새로 하나 더 추가하는 것뿐입니다."
도지사는 눈알을 굴리다가 물었다.
"그럼 공장만 지방에 지을 뿐이고, 소유 주체는 여전히 서진파운드리가 되는 겁니까?"
도지사의 얼굴에서 기대감이 묻어났다.
대표이사 출장사무소가 청담동에 있지만 본사 등록지는 경기도이듯이, 제2공장도 그렇게 되는 것인가?
"아, 그건 아닙니다. 서진파운드리 밑으로 자회사를 설립해서 별개로 관리할 겁니다."
"아니, 그렇게 번거롭게 관리를 할 필요가 있는 겁니까?"
"아무래도 공장 자체가 곧 완전한 회사나 마찬가지이다 보니, 별개 자회사로 관리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도지사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제2공장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고스란히 그 지자체 수익으로 잡힐게 아닌가?
지방소득세가 둘로 나뉘고 만다.
"정 대표님, 그러지 마시고 한 번 더 생각을 해주세요. 경기도는 아주 넓습니다. 평택이나 안성 쪽은 어떻습니까? 세종시와 접근성도 좋아서 인재 영입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저희 공장은 100% 무인체제라서 직원을 고용하지 않는데요……."
"그래도 혹시 압니까? 앞으로는 사람 직원이 필요할 수도 있을지. 남쪽이면 혹시 부산이나 울산 쪽을 생각하는 건가요?"
"네. 거기도 고려 대상이긴 합니다. 특히 부산은 태풍으로 초토화돼서 좋은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하기 좋으니까요."
"그 좋은 조건, 내가 협상을 해줄 게요. 평택? 안성? 아니면 여주시 쪽은 어때요?"
도지사는 한참이나 어르고 달래봤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제는 정치력이 성장한 정서진은 진지하게 조건을 따져 묻고, 받아낼 수 있는 것을 가늠한 후, 생각해 보겠다는 정중한 말로 돌려보냈다.
경기도지사는 시작이었다.
지자체장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청담동 대표사무소를 드나들었다.
서울시장, 인천시장도 열정적으로 달려들었다.
"안보 문제 때문이라면 서울에 짓는 게 낫지 않겠어요? 인구밀집 지역이니까 그만큼 적국이 쉽사리 폭격을 하기 어려울 겁니다."
"인천으로 오십시오. 모든 지원을 다 해드리겠습니다. 지방세도 5년간 완벽한 면제! 어떻습니까?"
지방소득세 11조 원을 둘로 나누면 약 5.5조 원이 된다.
제2공장을 성공적으로 유치하면 연간 5.5조 원짜리 캐시카우가 생기는셈.
가장 부유한 지자체인 서울조차도 눈이 뒤집어질 매물이었다.
그러니 인구 감소로 신음하는 가난한 남쪽 지자체들은 어떻겠는가.
"전라북도로 와주십시오."
"충청도가 문을 활짝 열고 환영합니다."
"경북은 수영그룹을 언제나 벗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는 지금 경기도 공장과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이니, 가장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규소 광산이 있는 우리 경남으로 와주세요."
"우리 부산은 태풍 때문에 대대적인 도시정비를 할 예정입니다. 부산의 리빌딩에 부디 함께해 주십시오."
지자체장들이 앞을 다투어 서진파 운드리 청담동 사무소를 찾았다.
광역시장급 이상의 지자체장 중에서 정서진을 찾아오지 않은 곳은 강원도지사, 그리고 제주도지사뿐이었다.
제주도지사는 어차피 안 될 거라는 점, 해상농장 조선소라는 큰 선물을 이미 받은 점 때문에 욕심을 내지 않았고, 강원도지사는 핵융합 발전소 및 해상교량 유치, 그리고 북한과 바로 붙어 있는 지역이라는 점 때문에 포기했다.
[전남, 지리적으로 가장 멀어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무시할 수 없어.]
[경북, 울산 대규모 공단지역에서 큰 수혜 기대할 수 있어.]
[경남, 규소 광산이 있는 지역이라 원재료 수송에 유리해.]
[부산, 도시 리빌딩 과정에서 반도 체 공장에 많은 이점을 몰아줄 수 있다는 강점 있어.]
언론에서는 서진파운드리가 과연 어디로 갈 건지를 놓고 매일같이 자극적인 논조를 쏟아냈다.
전남, 경북, 경남, 부산, 이렇게 네 지역이 엎치락뒤치락 보합세를 벌였다.
서울과 인천도 여기에 뒤지지 않고, 수도권이라는 강점을 내세워 서 진파운드리 설득에 나섰다.
[서진파운드리, 작년에 낸 지방세만 11조 원에 달해.]
[5.5조 원의 지방세 파이를 차지하게 될 행운의 지자체는 어디?]
[청와대, 꽃놀이패를 쥔 채 그저 관망. 제2공장이 어디에 가든 가장 웃게 될 것.]
***
미국에서 500억 달러가 조용히 입금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수영사채를 통해 입금을 받았기에, 수영사채나 기재부가 먼저 정보를 흘리지 않는 한 기자들이 알아내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지금 온 나라는 제2공장을 어느 지자체가 유치하느냐를 놓고 온 나라가 월드컵 우승전을 치르듯 싸우고, 관망하느라 바빴다.
정서진은 하수영을 찾았다.
"회장님, 이제 슬슬 결정을 해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괜히 잘못 찍었다가는 문화재청만 좋은 일 시켜줄까 봐 그러죠."
"그럼 지자체만 찍어 주십시오. 그 다음에는 제가 알아서 지역을 선정하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전국팔도에 하나씩 다 짓고 싶은데……."
"그럼 그렇게 하시는 것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어차피 공장 하나 짓는데 다른 반도체 공장에 비하면 훨씬 쌉니다."
공장 건설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돈은 공장 건물을 짓고, 로봇 부품을 수입하는 데 들어갔다.
수천억 원씩 하는 EUV 장비 따위가 일절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반도체 공정기술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니, 특허료로 나가는 돈도 없다.
"500억 달러, 50조 원이면 전국팔도에 하나씩 다 짓고도 남을 겁니다. 요즘 안드로이드 부품값도 많이 저렴해졌고요."
"그러고 싶은데, 그러면 지방세가 너무 분산돼서 큰소리치는 맛이 떨어집니다. 지금도 보세요. 경기도지사가 헐레벌떡 놀라서 달려오잖아요."
"아, 확실히 11조 원이 1/8로 분산되면 지자체에 대한 영향력이 그만큼 줄어들겠네요."
"네, 역시 한둘에 몰아주는 게 나아요. 엔빵보단 몰빵이죠."
정서진은 끄덕이며 납득했다.
"혹시 지역차별을 한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신경 쓰시나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건 아니었군요."
"설마요."
하수영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청담동 빼면 어차피 다 똑같이 평등한 시골인데.역삼동이나, 수영리나 거기서 거기죠."
"……."
"제2공장 지으면 그 지역은 지방세로 일 년에 추가로 5.5조 원은 먹을 거 아닙니까? 그 돈을 어느 지자체에 줘야 보람이 있을지 고민이 돼서요."
"아예 울릉도에 지으시는 건? 거기는 회장님 계파원들이 꽉 잡고 있지 않습니까?"
"울릉도는 안 그래도 좁아서 안 돼요. 반도체 공장 따위를 짓기에는 너무 아깝죠."
"그렇군요. 줌왈트 구축함이 상시경비하고 있어서 오히려 안전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그럼 통영은요?"
"통영은 요즘 예산 굴리는 거 보니까 너무 졸부가 됐어요. 마음 같아서는 통영 군의원들 싹 갈아치우고 싶을 정도입니다."
"양식장에서 내는 세금이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과연 제2공장을 어디에 짓는 게 좋을까.
5.5조 원을 어디에 실어주는 게 과연 기초정치판에서 정치질을 하는데 가장 보람찬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던 하수영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리 된 거, 그냥 제주도로 갑시다."
"예? 제주도요?"
정서진은 당황했다.
제주도와 강원도는 지금 거론조차 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심지어 제주도는 해상농장 조선소라는 아주 큰 선물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제주도를 고른다고?
"다리 연결됐으니 이제 육지나 마찬가지잖아요. 최근에 조선소로 크게 한 번 밀어줬고, 이왕 밀어준 거 몰빵해서 밀어주자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제2공장은 제주도로 내정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