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21화
260장 1차 반도체 전쟁 (5)
반도체 안보를 대하는 미 행정부와 의회의 방향성은 조금 차이가 있었다.
서진파운드리 공장을 미국에 유치해야 한다는 것은 의회만의 고집이다.
행정부는 하수영과 여러 비즈니스로 얽힌 관계이고, 특히 무선 핵융합 전기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그래서 무리해서 공장을 가져오자는 갑질 자체를 떠올리지 않는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확대할 수 있게 지원하자는 것은, 행정부와 의회 양측이 동일했다.
마이크론과 IBM이 가장 큰 지원을 받고 있었고, 윈텔과 ADM은 공장을 늘리라는 압박을 꿋꿋하게 무시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미국 공공기관에 들어가는 컴퓨터는 90% 이상 미국에서 생산된 칩을 써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서진파운드리, 1나노 반도체칩양산 시작!]
[8테라바이트 옵테인 메모리 출시!]
[낸드플래시의 신화, 무너지나?']
[아직도 SSD, HDD를 쓰십니까? 8테라 옵테인 메모리를 저장장치로 쓰면 겨우 300달러!]
[파격 1나노 공정, 반도체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SSD라는 무기를 잃은 마이크론의 운명은 이제 어디로 향하는가?]
[미국은 처음부터 어설프게 반도체 공장에 손을 대지 말아야 했다. 돈과 시간만 날려먹은 격.]
1나노 발표를 하자마자 옵테인 메모리가 즉시 수십 배 이상 용량이 뻥튀기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128기가짜리였던 물건이, 하루아침에 8테라로 늘어났다. 심지어 가격도 그대로였다.
반도체 업계는 마침내 눈보라가 덮쳤다는 것을 직감했다.
서진파운드리가 펼친 블리자드가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거센 눈바람이 세상을 향해 이렇게 비웃는 것만 같았다.
-이래도 반도체 공장 지을래?
"1나노 양산…… 이건 정말 답이 없습니다."
"미국은 애초에 그릇된 선택을 했어요. 반도체 자급률이니 뭐니 하면서 마이크론을 밀어주지 말아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미국 팹 확장에 지원한 답시고 지출한 예산만 1,000억 달러이상…… 차라리 그 돈을 서진파운드리에 갖다 바치고 미국 공장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게 나았을 겁니다."
"저쪽은 8테라짜리 옵테인 메모리를 저장장치로 쓰는데, 이쪽은 1테라짜리 SSD 메모리가 그 가격이에요. 이걸 과연 누가 삽니까?"
"누가 사긴요. 미국 공공기관에서 밀어내기 당해가면서 사주겠지요."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았어요. 기술 격차가 너무 납니다."
"마이크론은 지금 10나노 공정도 겨우 허덕이는 수준인데 무슨 재주로 1나노를 이깁니까."
"이쯤에서 미국도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데. 아니, F22로 화해한다 어쩐 다 하더니, 의회 놈들이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겁니까?"
화해하기로 해놓고는 의회가 미련이 남아서 질척거린다.
그런 비난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이 부분은 미 의회도 다소 억울한 면이 있었다.
서진파운드리를 더 이상 압박할 의도는 그들에게도 없었다.
다만 반도체 자생력만큼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에서, 공공기관에 90% 이상의 미국제 칩이 들어간 제품을 강제했을 뿐이다.
-이제 싸울 생각 없어. 그냥 자생력만이라도 지키려고 했을 뿐이야.
라고 아무리 외쳐 봐도, 분노에 눈이 뒤집어진 세상이 믿어주지 않는다.
반도체 업체들은 연일 워싱턴에 로비를 하며, 지금이라도 상황을 수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윈텔과 나노소프트가 부지런히 상하원 의원들을 만나고 다녔다.
"제품 성능은 우리가 이미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마이크론의 생산 능력은 아예 비교가 안 됩니다."
"하지만……."
"반도체 자생력? 중요하죠. 그런데 방향이 잘못됐습니다. 아무도 안사줄 저질의 제품 생산 라인을 억지로 유지한다고 해서 도움이 되겠습니까?"
"……."
"자, 보십시오."
윈텔 로비스트는 두 개의 M.2 카드를 각각 내밀어 보여주었다.
"이건 마이크론에서 출시하는 1테라짜리 스토리지입니다. 250달러에 팔죠. 생산 과정에서 수많은 탄소와 오염물질을 배출했습니다."
"……."
"이쪽은 우리 윈텔에서 서진파운드리에 위탁해서 생산한 8테라짜리 옵테인 메모리입니다. D램의 기능도 수행해서 추가로 램을 달 필요도 없죠. 가격은 300달러 정도이며, 무엇보다 생산 과정에서 일체의 환경오염이 없었습니다."
상원의원은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듣기만 했다.
로비스트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이건 돈과 시간이 해결해 줄수있는 기술 격차가 아닙니다. 앞으로도 더더욱 벌어지겠죠. 시장은 이미 마이크론의 제품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IBM 공장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야 우리도 알고는 있지만, 벌써 1,000억 달러가 넘는 돈이 투입됐습니다. 이제 와서……."
"1,000억 달러라고 해봐야 미 국방부 예산의 10%도 안 되는 돈입니다. 가장 손실이 적은 시점에서 손절할 수 있는 게 바로 지금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해가 더 커지기만 할 뿐입니다."
서진파운드리는 그 전까지는 상당히 봐줘 가면서 공장을 돌렸다.
그랬는데도 80% 이상의 시장을 먹어치웠다.
이제는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며, 진지하게 게임에 임한다.
"마이크론도 이제 와서는 공장을 접고 싶을 겁니다. 무공해 1나노 양산 앞에서 모든 게 무의미해졌어요."
"……귀하의 말뜻은 잘 이해했습니다. 나도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
"하루라도 빨리 접는 게 손실을 가장 줄이는 길입니다. 부디 기억해 주십시오, 의원님."
로비스트들은 그렇게 뻔질나게 상하원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워싱턴 정가는 이제 진지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반도체 자생력 유지는 포기해야 한다. 팔리지도 않을 제품을 고집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생력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F22 판매 및 기술이전, 라이선스생산 승인으로 화해까지 한 마당에 서진파운드리를 다시 압박할 수도 없다.
정말 놓을 때가 되었다.
잘 알고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아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괜히 의회가 헤어진 전 남친들처럼 질척거린다고 욕을 먹는 게 아니었다.
***
일본은 반도체 및 PC 시장에서 홀로 천대받고 있었다.
윈텔과 ADM 등은 일본에 들어가는 물량을 가장 먼저 잠가 버렸다.
서진파운드리가 줄인 생산량을 커버하기 위해서다.
서진파운드리에 규소 수출 제한을 건 원죄, 미 의회에 로비를 한 원죄만으로도, 일본은 그런 취급을 받기 충분했다.
덕분에 일본은 가전을 비롯한 전자 제품의 가격이 하늘을 찔렀다.
그마저도 생산이 부족해서 물량을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일본제 TV 하나를 구매하려고 해도, 예약을 걸고 반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전기차도 아니고 전기TV 하나 사는데 반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게 말이 돼요?"
"고객님, 지금 부품 수급 문제로 가전공장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다른 가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년 뒤에는 확실히 받을 수 있는 거죠, 그럼?"
"그건 장담을 드릴 수 없습니다. 반도체 대란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깟 반도체가 뭐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건가요?"
***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전 세계 PC 사용자들도 물량 부족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때문에 출고가는 저렴한데, 최종소비자는 오히려 더 높은 금액에 구매하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빚어졌다.
"이 상황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서진파운드리가 다 해처먹는 거야."
"그냥 서진파운드리가 혼자서 반도체 공장 했으면 좋겠다. 경쟁이고 뭐고 간에 다 필요 없어."
"아니, 1나노 양산을 완성시킨 회사를 밀어줘야지 독점해체니 뭐니 쌉선비 소리만 늘어놓고 있으면 뭐 하냐고."
"독점이 장기적으로 시장발전을 저해한다고? 지금 당장 시장이 망하고 있는 건 눈에 안 들어오고?"
"이건 미 의회가 나서서 서진파운드리를 설득해야 해. 제발 생산량 늘려달라고 말이야."
"F22 기술이전으로 완전히 화해한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나 보네."
"전투기는 전투기도, 반도체는 반도체지. 원래 덩치 큰 애들끼리 싸울 땐 계열사별, 부서별 상황 따라 입장이 달라."
누군가는 서진파운드리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누가 그 짐을 짊어져야 하는지, 워싱턴 정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서진파운드리 제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냈던 코시든 상원의원.
그는 주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탔다.
***
하수영은 코시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전과는 달리 모든 것을 내려놓은, 힘없는 백인 노년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준다.
이번 한미 1차 반도체 전쟁으로 인해 워싱턴에서 그의 입지는 바닥으로 내려왔으리라.
아마 다음 상원 재선에서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진파운드리가 생산량을 다시 늘렸으면 합니다. 지금 온 세상이 반도체 수급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흐음."
"저의 과오는 부디 저 하나에만 담아주시고,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위해서 용단을 내려 주십시오."
"사과는 받겠습니다. 그런데 파운드리 사업은 제가 아니라 전문경영자의 판단에 달린 일이라, 저도 장담은 드릴 수 없군요."
"그 부분 설득은 저희가 진행하겠습니다. 의원님께서는 약간의 마음만 베풀어주시면 됩니다."
"일단 가져온 거나 한 번 봅시다."
F22 전투기에서 미국은 통 큰 양보를 했지만, 그것은 서진파운드리와는 무관한 일.
"서진파운드리가 공장 확장을 할 경우, 일체의 비용을 지원하겠습니다."
"흐음, 장소는 제 마음대로?"
"물론입니다. 한국 남부 지역에 지으시든, 제주도에 지으시든, 러시아에 지으시든, 전적으로 간섭하거나 마음 쓰지 않겠습니다."
"근데 우리 공장이 생각보다 저렴하게 지을 수 있어서요. 별로 큰돈이 아닙니다."
"500억 달러 지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쓰시는지는 단 1달러도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매우 큰 돈이다.
하지만 미국 전체 예산 규모, 그리고 반도체 수급대란 안정화 비용이라 치면 그리 큰돈은 아니다.
국방비만 1조 달러를 쓰는 나라의 위엄이다.
"제 호주머니에 슬쩍 집어놓고 잡아떼도요?"
"그냥 호주머니에 넣어드리기 뭐해서 반도체 공장 지원금이라고 명분을 붙였을 뿐입니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코시든 의원님은 저와 좋은 친구입니다."
하수영이 활짝 웃으며 악수를 청하자 코시든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친구…… 입니까? 저는 일본의……."
"잽 머니를 받으셨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원래 전향자들이 더 지독하게 물어뜯는다는 것을 저는 잘 알아요."
"……."
"일본에서 쌀장사 좀 하려면 아무 래도 미국의 서포트가 있어야겠더라고요. 1억 3,000만 시장을 공략하려면 백인 맹장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수영은 지금 전향을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일본의 로비를 받지 말고, 칼을 거꾸로 들라고.
코시든의 표정이 점점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수영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정치적 부활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일본을 좋아한 것도 아니니 부담도 없다.
일본이 주는 돈을 좋아했을 뿐이지.
정치에는 돈이 많이 필요하니까.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당분간은 일본과 친하게 지낸 의원들을 규합해 주십시오."
"그 다음에는요?"
"일본이 규소 수출 제한으로 깔짝 딜 넣고 냅다 튀었잖아요? 잡아들여서 참교육해야죠."
하수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밝았다.
"전자제품 공장만큼은 다 무너뜨려 야겠어요."
여담이지만, 반도체는 4차 산업의 쌀이라고 불린다. 그러니 쌀장사란 말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