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20화
260장 1차 반도체 전쟁 (4)
"1나노 양산 성공했습니다."
"설계도 받습니다. 뭐든지 설계도 대로 만들어드립니다."
"전자 간섭 현상 같은 것들은 전혀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 문제 없이 잘 작동한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같은 성능인데 반도체 크기가 훨씬 더 작아지니 원재룟값이 그만큼 줄어들겠죠? 당연히 자원 소모도 적어지고, 가격도 저렴해집니다."
"많은 연락 주십시오."
생방송을 본 반도체 기업들은 다들 뒤집어졌다.
1나노 양산에 성공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아마 최근에 성공한 건 아니고, 오래전에 이미 성공했지만 감춰두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회에서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하니까 맞서 싸우려고 숨겨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건가?"
"네,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하지 않겠습니까? 타이밍이 너무 정확합니다."
"젠장, 1나노라니…… 그럼 대체 크기가 얼마나 줄어드는 거지?"
"지금이 4나노 공정이니까 단순히 계산하면 저장 용량만 64배로 늘어나는 거죠."
"전기도, 가격도, 크게 줄어들겠어."
서진파운드리에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서진은 일부러 외부 전화를 받지 않고 방치했다.
모든 문의는 이메일이나 홈페이지 견적문의란을 통해서만 받았다.
***
IBM은 세계 최초로 2나노 공정기술을 개발했다.
원래는 서해전자나 다른 파운드리 업체에 맡길 계획이었으나, 양산은 계속 지연되기만 했다.
그래서 2나노 칩이 정말 나오기는 하는 거냐, 아직 양산은 불가능한 수준이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나왔었다.
IBM은 2나노 칩을 서진파운드리에 맡기고 싶어 했으나, 이미 물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터라 성사되지 않았다.
때문에 IBM 관계자들은 '만약 서 진파운드리가 일을 맡았으면, 2나노칩이 현실화되었을까?'라는 상상을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 중이다.
또 현재 반도체 나노공정 표시는 과장이 섞여 있다.
실제 회로폭은 5나노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큰데, '5나노급 성능칩'이라고 표시를 하는 것이다.
2D에서 3D로 공정 패러다임이 변화되며 생긴 잘못된 관행이다.
아무튼 현재 반도체 양산공정은 4나노칩의 벽에 부딪혀 있는 상태다.
TSMC와 서해전자는 나노 양산을 위해 사활을 걸었었지만, 그것도 이제 한때의 이야기.
서진파운드리가 반도체 생산 8, 90%를 먹어치우면서, 나노화 경쟁은 사실상 사라졌다.
독점이 경쟁과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증명된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 의회는 정부 기관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에 들어가는 칩은 90% 이상이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어야 한다는 법안을 준비했다.
그리고 서진파운드리는 기다렸다는듯이 맞불을 놓았다.
산불에 맞서는 정도가 아닌, 대륙자체를 통째로 삼켜 버릴 거대한 맞불을.
***
IBM은 긴급경영회의를 소집했다.
그들은 서진파운드리의 나노 양산발표를 허투루 생각하지 않았다.
"정서진 대표가 직접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내용도 두루뭉술하지 않고 정확한 것만을 담고 있습니다. 절대로 블러핑이 아닙니다."
"1나노 양산기술은 진작 완성해 두었다가 이제야 꺼내 든 게 분명합니다."
"우리가 개발한 나노 기술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차라리 다행 아닙니까? 비싼 돈 들여 2나노 공장을 지은 뒤였다면 어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그래도 오히려 시기적절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컸다.
IBM은 모든 공장을 정리한 지오래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미 정부의 권유로 다시금 팹 건설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물론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조건 아래에서.
"반도체 안보…… 정부가 뭘 중요 시하는지는 알겠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 체급이 비슷해야 따질 문제지."
"반도체 안보를 따지기에는 서진파 운드리가 모든 면에서 너무 우월합니다. 차라리 주한미군을 더 두텁게 배치해서 한국에 전운이 얼씬도 못하게 하는 게 나을 겁니다."
"애초에 서진파운드리에 정중히 부탁해서 미국에도 공장을 지어달라고 했어야지, 청문회 따위나 열다가 530명이 단 한 명한테 개처발렸으니."
"이쯤 되면 억지로 미국에 팹을 유지하는 게 오히려 큰 손해 아닙니까? 차라리 안락사를 선택하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그건 안 돼. 한국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전 세계 반도체 공급이 끊어져. 꼭 전쟁이 아니라 지진이나 산 사태, 홍수 같은 문제도 있지 않나?"
"그러고 보니 요즘 동아시아에는 유독 자연재해가 잦죠. 한반도 남쪽 지역도 얼마 전에 큰 태풍 피해를 입었고. "
"연방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든 미국 반도체 공장을 되살려서 연명시킬 걸세. 이건 타협이 안 되는 문제야. 국가 생존의 영역이라서."
하나같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반도체 공장은 어떻게든 다시 굴러갈 것이다.
하지만 성능과 가격 차이가 너무 심하다.
심지어 환경오염 문제에서는 비교조차 불가능하다.
'과연 우리가 팹을 제대로 굴릴 수 있을까?'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정부가 우리 물량 강제할당을 인정해 줄까?'
국가기관은 90% 이상 미국에서 생산된 반도체칩을 써야 한다는 법안은 통과될 것이다.
그러나 계속 벌어지는 성능 차이는 얼마까지 인내 될 수 있을 것인가?
1나노공정까지 나온 이상, 전 세계 민간업체는 무조건 서진파운드리에서 나온 반도체만을 사용하고자 할 것이다.
정부의 보조금 예산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공장을 너무 크게 지어선 안 됩니다. 딱 정부에 납품할 만큼의 물량만 뽑아낼 수 있는 사이즈로 맞춰야 합니다."
"의회에서 그걸 용납할지 모르겠군. 반도체 안보와는 어긋나는 방향이니 말일세."
"그래서 더 열심히 로비를 해야지요."
***
나노소프트, 윈텔, ADM 등 반도 체 업체 CEO들이 전용기를 타고 공항에 줄줄이 내렸다.
그들은 앞을 다투어 서진파운드리 청담동 사무소를 찾았다.
하수영의 상가 빌딩이지만, 한층을 서진파운드리가 임대해서 쓰고 있는 사무소였다.
사실상 서진파운드리의 사옥 역할을 하는 곳이다.
나노소프트는 반도체 설계를 하지 않지만, 대신 윈텔의 가장 큰 고객중 하나.
서진파운드리가 만든 윈텔칩은 나 노소프트에 납품되는 구조다.
때문에 나노소프트는 윈텔과 이번에 한 세트로 움직였다.
"1나노 공정은 옵테인 메모리에 즉각 반영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설계값만 다시 수정해서 주십시오."
"그건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칩의 크기를 줄이지는 않는다.
대신 회로 간격이 축소된 만큼, 내부의 집적도가 증가한다.
부품의 전체 크기는 변하지 않지만, 데이터 용량은 갑자기 수십 배로 증가한다.
1나노 공정으로 바뀌었다는 변수하나만으로 나노소프트와 윈텔 입장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래서야 서진파운드리가 납품 가격을 올린 게 전혀 의미가 없어졌군요. 체감하는 가격은 오히려 수십배 이상 싸져 버린 셈이니."
"지금 128기가짜리 소매가가 약 300달러인데, 8테라짜리를 같은 가격에 내놓을 수 있겠어요."
"이건 정말 혁명입니다, 혁명."
"아니, 이러면 HDD 시장은 완전히 죽어버리는 거 아닙니까?"
정서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기술만 완성하고,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HDD 업체들을 우리 서진파운드리 손으로 다 죽여 버리는 거 같아서요."
"그 마음 이해합니다. 수영그룹은 글로벌 업체치고는 신중할 정도로 소규모 업체들 공생에 신경 쓰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상황이 다르죠. 미 의회가 노골적으로 우리를 노리는 이상, 우리도 몸을 지키기 위해서 무기를 꺼내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윈텔 CEO는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무엇보다, 우리 옵테인 메모리가 이제 완벽하게 단독 스토리지 역할까지 해낼 수 있게 되었어요. 이게 정말 큽니다."
옵테인 메모리는 D램을 대체하며, 저장장치 역할까지 수행한다.
하지만 고용량 모델은 여전히 일반소비자에게는 부담이라, HDD와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게임 같은 프로그램은 옵테인 메모리에 설치해서 빠르게 가동하고, 대용량 파일들은 HDD에 따로 저장하는 식이다.
그러나 8테라짜리 모델을 300달러에 내놓을 수 있다면?
SSD고 HDD고 뭐고 간에 전부 다 죽어버린다.
서버용 자기테이프 저장장치 정도만 낮은 가격을 이유로 살아남을 것이다.
"그럼 생산은 언제부터 가능합니까?"
"언제든지. 지금 즉시도 가능합니다."
"지금 즉시요?"
"네, 그래서 기존 옵테인 메모리는 지금 일시적으로 생산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1나노 양산을 발표한 직후 자의적으로 멈췄습니다."
윈텔 CEO가 그 말에 반색했다.
"오! 그건 정말 잘하신 결정입니다! 지금 즉시 생산이 가능하다면 어서 서둘러 주십시오."
"네. 설계도 파일을 회사 메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보내겠습니다."
윈텔 CEO는 즉시 회사에 연락해서 암호화된 설계도 파일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시작했다는군요."
"아니, 이렇게 빨리 말입니까? 설계도를 방금 막 보냈는데?"
"우리 공장은 프리덤 인공지능으로 완전한 무인화가 되어 있습니다. 작업이 지체되는 일은 절대 없죠."
윈텔과 나노소프트는 오싹한 두려움마저 느꼈다.
의회 놈들은 이걸 알고 있을까?
설계도 파일을 받자마자 즉시 생산을 시작해버리는 서진파운드리 팹의 무서움을?
'다른 파운드리였으면 검토에 장비세팅에 적어도 몇 개월은 잡아먹고 양산을 시작할 텐데…….'
'의회 놈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회사와 척을 진 거지?'
'반도체 안보? 상대는 도로 깔고 집집마다 차가 있는데 우리는 그놈의 안보 때문에 마차나 계속 굴리겠다고?'
윈텔 CEO가 살짝 눈치를 보다가 말을 꺼냈다.
"그리고 위탁생산 물량 말입니다……."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노소프트에 납품할 물량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우리와 나노소프트는 사이 깊은 관계회사 아닙니까?"
"……."
윈텔은 나노소프트 외에도 다양한 회사에 부품을 판매한다.
쿠글 같은 대용량 데이터센터를 굴리는 회사, PC 제조업체, 그리고 개인 소비자에도 판매한다.
하지만 의회의 압박 때문에 서진파 운드리가 생산 물량을 30%나 줄여버렸다.
부족해진 만큼 다른 곳에서 끌어다 써야 한다.
그렇다고 쿠글 같은 회사에 들어갈 물량을 줄일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 PC 시장은 당분간버려야겠군.'
B2B 물량을 줄일 수는 없다.
결국 칼을 댈 만한 곳은 B2C, 일반 PC 시장이다.
PC 도매업체뿐만 아니라, PC 제조업체에 넣을 물량도 전부 빼야 한다.
그래야 미 의회의 삽질이 만든 구멍을 어떻게든 메울 수 있다.
'당분간 전 세계 게이머들은 새 PC 맞출 생각을 포기해야겠군.'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1나노 공정 발표로 PC 성능이 대폭 늘어나고 가격도 싸질 거라고 들떠 있을 텐데.
"어쩔 수 없이 개인 소비자 컴퓨터시장은 버려야 할 거 같습니다. 마이크론에 외주를 따로 주긴 하겠지만, 그놈들이 CPU를 잘 만들 거라고는 기대가 안 됩니다. 옵테인 메모리는 뭐, 손도 못대겠지요."
"한국 PC 시장은 특별히 신경을 써 주십시오. 유저들 불만이 회장님을 향하면 곤란하거든요."
"그건 염려 놓으십시오. 일본에 들어갈 물량을 다 뺐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