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16화
259장 위약금은 넣어둬 (6)
외부에서 보면 엄연히 서진파운드리가 피해자다.
미 의회는 전원이 졸도해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서진파운드리를 몰아붙이고, 현재의 독점 체제를 비난한 것이다.
물론 눈치 빠른 이들은 하영이 생산량 감소를 빌미로 의회를 협박했다고 꿰뚫어보고는 있었다.
윈텔, ADM, 헤슬라자동차 등은 여기에 속했다.
다만 이들도 정확한 진실까지는 닿지 못했다.
하수영은 정말로 생산량을 줄여 버리는 게 목적이라는 것을.
-역시 반도체는 농사에 필요한 만큼만 손대는 게 맞았다니까. 이거 봐. 괜히 시끄러워졌잖아.
라는 하수영의 속마음까지는 꿰뚫어 보지 못했다.
자본 입장에서는 돈벌이가 되는 반도체 산업에서 굳이 30%가 넘는 점유율을 포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열 걸음 전진을 위한 세 걸음 후퇴, 그렇게 해석하는 게 가장 타당했으니.
"서진파운드리, 아니, 수영그룹이 미 의회와 한 번 제대로 붙어볼 생각인 거 같습니다."
"F22 700대 일시 포기를 보면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거기에 들어갈 값비싼 군사용 반도체……. 의회는 대체 일자리 몇 개를 날려 버린 것인지."
"백악관에서도 서진파운드리 압박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는 의회가 너무 나섰습니다."
"아니, 막말로 지들이 행정부도 아니고 입법부인데 지나치게 경제에 간섭하는 거 아닙니까?"
"독점이라면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키는 건 알겠는데, 서진파운드리가 불법적이고 공격적인 수단으로 독점자가 된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정당한 기술력 승부에서 자연스럽게 독점공급자가 된 건데 말입니다."
"이건 처음부터 의회에 명분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워싱턴 놈들은 그냥 서진파운드리를 쪼갬으로써 자기들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겁니다."
반도체 업체들은 서진파운드리가 아닌, 의회에 불만과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애초에 의회가 들쑤시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게 의회 탓이었다.
-의회 경고가 너무 강하다.
-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해해 달라.
-대신 위약금은 확실히 치르겠다.
때문에 서진파운드리가 저렇게 저 자세로 나오자 반도체 회사들은 오히려 기겁했다.
계약대로라면 위약금을 받아야 하지만, 면책 조항에 해당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서진파운드리는 면책 조항을 주장하지 않고, 그냥 위약금을 주겠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알았다고 낼름 위약금을 받아먹으면?
앞으로 서진파운드리한테 더 이상 VVIP 고객사 취급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경영자라면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움직여야 한다.
"위약금은 상관없습니다. 이건 귀사의 귀책사유가 절대로 아닙니다."
"모든 게 의회 탓입니다. 그러니 위약금은 넣어 두십시오."
"어떻게, 의회가 본격적인 제재를 가하기 전에 물량 확장 계약을 맺으면 안 되겠습니까?"
윈텔 등 반도체 회사들은 그렇게 매달려 보았다.
하지만 정서진은 정말로, 몹시 미안한 반응을 보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지금 시점에 계약을 조정하면 미 의회의 경고를 무시한 게 돼버립니다. 그럼 유엔 차원에서 본격적인 제재가 들어오겠죠. 저 북한처럼 말입니다."
"아니, 핵을 만든 것도 아닌데 무슨 대북 수준의 제재가 들어오겠습니까?"
"가장 무서운 게 괘씸죄입니다. 괘씸죄로 경제를 두드리기 시작하면 우리 한국 같은 조그마한 나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한국 정부 차원에서 나서서 미국 대신 손봐주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는……."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미 의회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공급 량 확대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
남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신세지만, 유독 나노소프트만큼은 느긋했다.
정서진 CEO가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보내온 덕분이다.
"한국 본사는 역시 살뜰하게 가맹점을 챙기는군. 청문회 보고 불안했었는데, 정말 다행이야."
"근데 대체 언제부터 서진파운드리가 우리 본사였습니까?"
"아, 대충 넘어가지. 우리가 수영레스토랑 가맹점인 건 사실 아닌가."
"그건 클라우드 사업하고는 전혀 상관없는데요."
"뭐 어때. 올해만 데이터센터 100개를 지을 예정이었는데, 서버 대란은 피했으니 됐어."
나노소프트 'IT사업부'의 주력사업은 OS나 하드웨어가 아닌, 기업 대상 클라우드 서비스다.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엄청난 서버와 전자장비가 필요하고, 당연히 반도체 수급이 가장 중요하다.
청문회 때만 해도 눈앞이 캄캄했는 데, 정서진이 은밀히 귀띔해 준 덕분에 느긋하게 사태를 관망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우리한테 줄 물량은 안 건드리는 거라면…… 윈텔 말고는 살아날 회사가 거의 없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데이터센터 서버에 옵테인 메모리를 채택하기로 했으니, 아무 래도 30% 넘게 점유율을 깎으려면 다른 데서 칼질을 제법 해야겠지."
"윈텔은 옵테인 메모리 개발한 걸 정말 다행으로 여겨야겠군요."
"그 비싸기만 한 골칫덩어리가 이렇게 보물상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사실 옵테인 부활도 서진파운드리가 혼자서 다 했죠."
성능은 좋지만, 너무 비싸서 가성비가 안 맞았던 옵테인 메모리.
지금은 D램과 SSD를 밀어내고, 컴퓨터 시장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D램과 SSD를 살 돈에 조금 더 보태서 차라리 옵테인 메모리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 모든 게 서진파운드리가 파격적으로 생산가를 떨어뜨린 덕분이다.
서진파운드리가 아니었으면, 옵테인이 D램을 퇴출시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SSD는 HDD 나 자기테이프 보다는 빠른 용량저장장치로서 살아남았지만, D램은 이제 마이크론 외에는 생산하는 곳이 거의 없다.
"쿠글, 헤슬라자동차, ADM은 이제 정말 진짜 큰일이로군요."
"그래도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곳은 정해져 있지 않나?"
"일본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일본, 점유율을 깎을 거면 일본에 들어가는 반도체부터 칼질당할 거 같은데 말이지."
"일본은 가장 먼저 일을 저지른 원죄가 있으니까요."
***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서진파운드리에 생산위탁을 하지 않는다.
내각의 눈치도 보였거니와, 한일대립 관계에서 오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위탁을 줄 수 없었다.
자신들의 반도체 제조기술이 한국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니까.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은 오히려 이상황을 기쁘게 반겼다.
"서진파운드리가 스스로 점유율을 떨어뜨리면, 우리 일본 반도체가 국제시장에서 더욱더 기를 펼 수 있겠군."
"재계에서 로비로 미 의회를 움직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시 일본의 대미 로비력은 아주 막강합니다."
"당연하지. 재팬 머니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워싱턴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일본 반도체장비 업체들 역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과는 조금 달랐지만, 어쨌든 서진파운드리에 타격을 주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일본은 반도체제조, 반도체 장비제조 업계 모두 이익을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장님, 윈텔에서 CPU와 옵테인 메모리 수출 물량이 없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서진파운드리가 생산 물량을 팍줄여 버린 탓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일본에 단 1개도 풀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CPU 등 전자부품 일본유통업체들이 발칵 뒤집어졌다.
포문을 연 것은 윈텔이었다.
'당분간 일본에는 물량을 많이 주지 못할 것 같다. 생산량 감소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매우 유감이다.'
물량을 줄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당장 일본에 들어와야 할 CPU, 옵테인 메모리 같은 부품들이 하루아침에 뚝 끊어졌다.
당분간은 일본에 미리 들어온 재고 유통으로만 장사를 해야 할 판이었다.
윈텔은 시작이었다.
ADM에서도 물량을 끊어버렸고, 대만의 메인보드 제조사들도 수출을 끊었다.
"지금 컴퓨터 제조사들이 반도체가 모자란 만큼 일본 물량을 줄여서 충당하고 있습니다. 다 작정을 했습니다."
"아니, 왜 하필 우리 일본만 노리는 거지?"
"모르셨습니까? 일본 반도체장비회사들이 워싱턴에 로비해서 이 사달이 난 거잖아요."
"……그러니까 괘씸죄다?"
"반도체 회사들 입장에서는 일본이 가장 두들기기 만만한 거겠죠."
"망할! 반도체장비 놈들 때문에 우리가 왜 이 손해를 봐야 해!"
CPU가 없으면 컴퓨터고 서버고 간에 만들 수가 없다.
그런데 양대 CPU 제조사인 윈텔과 ADM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물량을 끊었다.
반도체 제조사, 반도체장비 제조사들은 이익을 봤는데, 컴퓨터 제조및 유통업체들은 오히려 핵폭탄을 얻어맞은 셈이다.
***
하수영은 자신의 말을 칼같이 지켰다.
정서진은 즉시 반도체 생산량을 줄여 버렸다.
위약금 지불을 불사하면서까지 생산량 감소를 칼같이 줄여 버렸다.
딱 국제시장 생산 점유율이 50%까지 내려올 만큼.
반도체 제조사들은 어쩔 수 없이 가장 먼저 일본 수출 물량을 줄였다.
원인을 제공했으니 당연히 일본부터 잘라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서진파운드리 역시 일본이 좋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 일본부터 자르는 게 맞지 않은가?'
덕분에 일본 반도체 제조업계는 살아났지만, 반대로 컴퓨터 등 전자제품 제조시장이 죽어버렸다.
윈텔과 ADM의 CPU 없이는 컴퓨터, 서버 등을 일체 만들 수 없었으니.
일본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큰 손해로 돌아온 셈이었다.
이에 일본 전자제품 업계는 부랴부랴 윈텔과 ADM을 찾아가 읍소했다.
하지만 자신들도 서진파운드리한테 밉보일 수 없다는 거절에는 어쩔 수 없었다.
생산량 감소는 서진파운드리가 결정했는데, 가장 큰 피해는 일본 전 자제품 제조시장이 떠안게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웃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마이크론이었다.
D램 시장은 죽었지만, SSD 낸드플래시 시장은 오히려 활성화되는 중이었고, 서진파운드리의 방침 이후로 주문량이 높이 치솟았으니.
서진파운드리가 입장 철회를 하기 힘들 거라 여긴 컴퓨터 제조사들은 이크론에 대량으로 주문을 넣어 선점하려고 했다.
-워싱턴이 당장은 당황하겠지만, 결국 서진파운드리에 대한 견제를 단단하게 굳힐 것이다.
-의회는 서진파운드리 미국 공장을 원한다. 하지만 서진파운드리는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 결국 필연적으로 반도체 수급 곤란은 장기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당장 일본 물량을 잘라내더라도, 서진파운드리의 생산력을 마이크론이 따라잡지 못한다.
-이 와중에 중국은 소리 없이 웃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 1,00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입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잘하면 내년에는 중국산 CPU가 시장에 유통될지도 모른다. 정말로 대환장의 유니버스다.
-일본 반도체장비 회사들이 워싱턴에 날린 날갯짓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정말 화가 난다. 앞으로 윈텔과 ADM은 한동안 일본에 반도체를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헤슬라자동차도 반도체 물량이 모자라서 차량 인도가 늦어지게 생겼다. 일본이 최우선적으로 패싱 당할 모양이다.
-서진파운드리 VS 미국, 이 반도체 전쟁은 절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거다.
-각자도생의 시대가 왔다. 당분간 컴퓨터, 아니, 전자제품 값은 폭등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반도체 수입 끊김.
마이크론의 부상.
시스템 반도체 시장 데뷔를 노리는 중국의 부지런한 투자.
전자제품 제조사들의 비명.
시중에서 씨가 마른 CPU, 옵테인 메모리, 그리고 그래픽카드.
커다란 신음이 세계 여기저기서 아우성인 가운데, 쓸쓸히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회사가 있었다.
대중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잊혀진 비운의 회사, 바로 록히드마틴이었다.
"F22 700대는…… 정말로 날아간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