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10화
258장 이제는 농장도 모바일 시대 (3)
한때 일본은 반도체 시장의 강자였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을 좌지우지하며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휘어잡았다.
이에 일본의 독주를 우려한 미국은 원천특허, 무역제재 등을 이용해 일본 반도체 기업들을 사정없이 찍어 눌렀다.
일본의 반도체 시장은 그렇게 무너졌고, 그 틈을 타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했다.
한국의 반도체 신화는 이처럼 미국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신 미국은 한국에 모든 것을 나눠주지 않았다.
일본에 반도체 장비와 소재 가공을 남겨두어 리스크를 분산했던 것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장비에 반도체가 들어가는 지금, 반도체는 전자 문명을 먹여 살리는 유일한 쌀이었다.
일본은 반도체 생산권을 잃었지만, 대신 반도체 장비와 소재 등에서 막대한 이익을 본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가격 경쟁등으로 출혈을 감수할 때, 일본 기업들은 소재와 장비를 팔아서 이익을 챙긴다.
그랬던 구도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갑자기 뒤틀어졌다.
"4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
반도체 전공정 장비 분야에서 세계 2위를 차지하는 도쿄일렉트론 회장은 결산표를 보며 신음했다.
도쿄일렉트론은 서해전자, 윈텔, TSMC 등을 고객사로 둔, 반도체 설비 투자와 유지보수로 매년 40억달러의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였다.
"이게 모두 서진파운드리 때문입니다. 그 회사 때문에 서해전자와 TSMC가 팹을 정리하면서 우리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서해전자와 TSMC가 팹을 완전히 정리하면서, 도쿄일렉트론은 우수한 VIP 고객사 두 곳을 한꺼번에 잃었다.
윈텔은 팹을 완전히 정리하진 않았으나, 해외 공장은 모조리 정리하고 자국 내 공장만 남겨두고 있었다.
유사시를 대비한다는 미 행정부의 권고와 보조금이 아니었더라면, 윈텔은 자국의 팹마저도 모조리 정리 해 버렸을 것이다.
"서진파운드리가 생길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는데."
회장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시 일본의 반도체 장비 제조 기업들은 다 같은 생각을 했다.
서해전자가 강력한 경쟁자를 맞이 했으니, 당분간 설비 투자 비용이 더 커지겠구나.
우리가 팔아먹을 게 더 많아지겠구나.
서해전자, TSMC, 서진파운드리가 박 터지게 싸우는 거 재미있게 보면서 매출만 잘 챙기면 되겠구나.
삼국시대의 난전이 지속되던 천하일통이 되던, 설비 투자는 어차피 필요하다.
그래서 도쿄일렉트론도 재미있게 지켜봤다.
하지만 상황이 이상하게 변했다.
서진파운드리는 반도체 설비를 일절 수입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반일 감정 때문에 값비싼 미국 설비로 100% 세팅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알아보니 미국 설비 업체들도 수출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파고든 끝에 도달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서진파운드리는 자체 설비로 반도체공정을 하는 것으로 사료됨.
-반도체 팹 로봇들은 반도체 전후 공정과는 관계없으며, 포장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짐.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존의 전후공정 방식과는 다른 원리의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보임.
미국의 반도체 특허를 모조리 뒤졌으나,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공정기술은 없었다.
불순물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대량의 순수한 물이 무조건 필요했고, 여기에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서진파운드리는 물 없이 반도체를 무서운 속도로 찍어낸다.
제 아무리 어려운 설계라도 서진파운드리는 저렴한 비용으로 값싸게 찍어냈다.
윈텔의 옵테인 메모리가 D램을 퇴출시킬 기세로 쏟아지는 것도, 서진 파운드리의 생산비용이 저렴한 덕분이다.
-그런 설비 기술을, 왜 특허를 내지 않는 거지?
-도용이나 유출될 염려가 전혀 없다고 자신하는 건가?
-산업스파이한테 공장이 뚫리기라도 하면 끝장일 텐데.
일본 반도체 장비 기업들은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서진파운드리는 국제 파운드리 시장의 대부분을 먹어치웠다.
지금까지 유지되는 팹은 대부분 자사 제품 생산 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보험이 대부분이었다.
CPU와 그래픽카드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ADM은 물량 전체를 서진 파운드리에 맡겼다.
일본의 반도체 장비 기업들의 고객사는 이제 규모가 축소된 마이크론, 윈텔 등 소수의 반도체 제조회사가 전부였다.
-중국 설비 투자 수출길이 열려야 우리가 산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 반도체 기술의 성장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의 허락이 있어야 설비를 내다팔 수 있을 텐데…….
-젠장. 어차피 서진파운드리 공정기술을 중국이 따라잡지도 못할 텐데, 우리 제품을 좀 내다 팔게 해주면 안 되나?
대 한국 설비 수출 물량이 뚝 끊어진 지금.
그나마 반도체 원재료는 꾸준히 수출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식각, 세정 공정에 사용되는 불화수소 같은, 원재료가 아니라 공정 과정에 소모되는 재료는 전혀 팔리지 않았다.
서진파운드리는 딱 반도체에 들어가는 원재료만 콕 집어서 수입을 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원리로 반도체를 제조하는지, 설비 회사들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이대로는 반도체 설비 회사들은 모조리 망하고 만다. 방법을 찾아야 해, 방법을……."
서진파운드리의 기술을 빼내든, 중국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든, 탈출구를 찾아야 했다.
소재 회사들이라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규소 같은 원재료가 아닌, 소모성공정 소재들은 한국과 대만에 전혀 팔리지 않고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티타늄과 구리 광맥이 한국에 발견되었으니, 도쿄일렉트론 회장은 더욱 더 속이 쓰라렸다.
그것들은 반도체와는 크게 관계가 없지만, 원재료의 99%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는 한국의 제조업에 듬직한 백기사가 되어줄 것이다.
[속보! 한국 진주에서 대량의 순수한 규소(Si) 광맥이 발견돼.]
[한국, 더 이상 규소 광석을 해외에서 수입할 필요가 없어지다.]
그리고 고순도의 규소 광맥까지 땅에서 나오자, 일본은 마침내 인내심과 평정심을 잃었다.
***
반도체 업계 경영자들은 도쿄의 특급호텔에서 긴급 비밀회동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치명적인 비수를 휘둘러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지금이 적기는 아니지만, 지금 찌르지 않으면 앞으로는 영영 그럴 기회조차 없을 거요."
"맞습니다. 지금이라도 한국에 고통을 주어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그래야 후일을 도모할 수가 있습니다."
"너무 늦은 건 사실이지만, 더 늦어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말지. 나도 한국을 공격하는 것에 찬성하오."
"서진파운드리가 규소 광물 제련시설을 갖추고 본격 채굴을 개시하는 데는 적어도 1년의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 안에 전광석화처럼 모든 것을 해치워야 합니다."
"먼저 규소를 포함해서 일체의 소재 수출을 중단시킵시다. 그러면 서 진파운드리가 기겁을 해서 협상을 하려고 사람을 보낼 겁니다. 그때 더 크게 흔들 기회가 생길 겁니다."
"한국은 일본산 고품질 반도체 소재에 많이 의지하고 있으니까요. 협상을 안 할 수가 없겠죠."
"그리고 미국을 움직여야 합니다. 수영그룹이 미 행정부와 친하다고는 하지만, 상하원에는 수영그룹을 안좋은 눈으로 보는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북미 외식시장으로 막대한 국부가 유출되고 있는 점을 우려하는 정치 인들이 상당하지요. 그들에게 로비를 하면 분명 통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건방지게 민간인 주제에 포드 항모 2척과 F35B에 이어 F22 까지 가져가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F22는 이스라엘을 포함해 그 어떤 나라에도 판매하지 않은, 미국의 자존심 그 자체니까요. 졸부가 황금으로 독수리의 자존심을 쓸어 담았다는 것을 불쾌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대전략은 간단했다.
규소 광맥이 궤도에 오르기 전에 기습 공격으로 치명타를 안긴다.
단 하루만 공장이 멈춰도 놈들이 물어야 할 위약금은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분명히 애걸복걸을 위해 일본으로 달려올 테고, 그때 이것저것 후려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낸다.
동시에 대미 로비를 통해 두 번, 세 번 놈들의 뒤통수를 후려칠 준비를 갖춘다.
***
로비를 맡은 도쿄일렉트론 전무는 워싱턴의 거물, 코시든 상원의원을 찾아가서 긴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시가를 진하게 빨아들인 뒤 연기를 내뿜으며 코시든이 입을 열었다.
"한때 일본은 반도체의 바이블이었지. 독주를 염려한 미국이 무너뜨리기 전까지는. 그리고 이제는 한국이 너무나도 커져 버렸소."
"반도체 공정 생태계에서 완전하게 독립되었으니까요. 이제 소재마저 독립성을 갖추고 나면, 미국도 제어 할 수 없는 반도체 괴물이 되고 말겁니다."
"나 역시 워싱턴이 무슨 생각으로 서진파운드리를 가만히 놔두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참이오. 기존 공정기술에 전혀 로열티를 내지 않는 획기적인 공정, 저렴한 비용, 여기에 이제 자체적인 소재 수급망까지 갖춘다면, 그걸 무슨 재주로 제어를 하려는지."
"백악관은 수영그룹의 길들이기에 당한 겁니다."
그 말에 코시든 상원의원의 얼굴이 가볍게 일그러졌다.
"포드항모 2척, 경항모 1척, 퀸 스텔리온, F35B 300기, 이제는 F22프로젝트까지 부활시켜가며 먹이를 주고 있지……."
"그 모든 게 경제적 치적으로 전환되고 있으니, 백악관은 알면서도 먹이를 삼킬 수밖에 없습니다. 의원님."
"그렇다면 의회에서 제동을 걸어줘야겠지."
"감사합니다, 의원님."
도쿄일렉트론 회장의 안색이 밝아지자, 코시든은 조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들 일본이 예뻐서가 아니니 인사는 접어두시오. 난 단지 반도체 헤게모니를 우리 미국이 영구적으로 쥐고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서일 뿐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반도체를 탄생시킨 것은 미국입니다. 수많은 천재들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무수한 특허들을 만들었고, 원천기술을 밑에서부터 쌓아 올렸습니다."
"서진파운드리는 반도체 생태계를 지나치게 부정했소. 적어도 일부분이라도 편입되고자 노력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코시든은 서진파운드리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놈들은 미국의 공정 기술에 대한 특허료를 단 1센트도 내지 않는다.
지금의 구도는 매우 위험하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서진파운 드리라는 슈퍼을에 끌려가는 형태가 아닌가.
미 정부의 마이크론 팹 운영을 지원하는 등의 방식은 칭찬할 만하지만, 너무 소극적이다.
'더 적극적으로, 더 강력한 경고와 조치가 필요한데…….'
하지만 F22 대량 수출을 앞둔 미정부는 그런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수영그룹에서 꾸준히 사가는 값비싼 로봇 부품들도 약점이 되는 상황.
의회에서 행정부를 압박하고, 밀어야 한다.
'반도체 패권을 잃을 수는 없지. 절대로.'
소재 수급망까지 확보한 서진파운 드리가 과연 언제까지 파운드리로 남아 있으려 할까?
생산 점유율 100%를 달성한 뒤, 그들이 스스로 반도체를 설계하기 시작하면, 윈텔이나 ADM 같은 반도체 회사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코시든 상원의원이 일본의 요구를 수락하기로 한 진짜 이유였다.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반도체 패권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
성공적인 로비를 마친 일본은 마침내 규소 및 원재료 수출 중지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이제 혼비백산한 서진파운드리가 달려오면, 이중삼중으로 준비한 덫으로…….
[서진파운드리, "진주 광산에서 채굴한 규소가 이미 공장에 투입되는 중이다. 일본의 수출 중단은 아무 문제 없다."]
["규소 매입 비용이 저렴해져서 앞으로 고객사에 대한 납품가를 그만큼 더 낮출 예정이다. 우리는 이익을 고객사와 함께 나눈다."]
미국 출장까지 갔다 온 도쿄일렉트론 회장은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