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09화
258장 이제는 농장도 모바일 시대 (3)
한두철 상무는 깊이 고민하는 척했다.
백진택 사장의 질문은 그의 시나리오 범위였다.
하지만 물어보자마자 곧바로 대답하면 전혀 고민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니, 일부러 시간을 끌며 뜸을 들였다.
이쯤 되면 백진택이 지쳐서 재촉을 할 때쯤, 한두철은 선수를 치듯이 입을 열었다.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유는?"
"전장 4km, 전폭 2m의 거대 화물선…… 배수톤으로는 최소 1억 톤에서부터 시작할 겁니다."
"1억 톤이라."
"역사상 그런 배는 존재한 적도 없고, 시도조차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반수성 모듈을 해상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라 해도…… 우리 조선소의 역량으로는 20년 이상은 걸릴 대공사입니다."
"못 할 건 없다, 이건가?"
"프라임건설그룹에서 적극적으로 보조한다면, 그리고 시간과 예산이 충분하다면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한두철은 반대라는 카드를 최대한 감춘 채, 객관적으로 보이는 의견들을 제시했다.
오너 일가 앞에서 말을 흐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언행이지만, 백진 택은 지금 그런 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조선소 건설이 확정되었습니다. 수영그룹에서 외주로 맡기지 않고,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가 분명한 상황입니다."
"음……. 우리가 무슨 제안을 하더라도 이제는 받아줄 수 없는 상황이라, 이건가?"
"예. 사장님."
"허……. 차라리 한 번쯤은 물어봐줬으면 고민이라도 깊이 해봤을 텐데, 아무 언질도 없이 이렇게 조선 소부터 차려 버리다니."
희미한 원망기가 묻어나는 말이다.
한두철은 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심정은 이해하지만, 하수영이 그렇게 해줘야 할 의리는 없지 않은가.
본인이 원하는 화물선을 도크까지 만들어 가면서 직접 만들겠다는데, 수주사에 미리 알려줄 도의적 의무같은 것은 없다.
"그런데 그런 큰 배를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 거지? 움직이는 해상공원이라도 만들려는 건가?"
"확실히 선박이라기보다는 해상도시에 가까운 형태가 될지 모릅니다."
"배수톤 1억이 넘어가는 배를 움직이는 게 가능하긴 한가?"
"충분한 개수의 프로펠러 스크류를 장착한다면 아주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다만 조타가 아주 힘이 들 겁니다."
가속력을 붙이는 것도 문제지만, 관성이 붙은 배를 정확하게 멈추게 하는 것도 어렵다.
전 세계 항구 입장에서는 웬 섬하나가 자신들을 부수려고 다가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동력은 어떻게 해결을 할 셈이지?"
"선체에 핵융합 발전소를 달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아! 그럼 추진기 샤프트도 전기로 돌리는 방식을 택하겠군."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백두중 공업에서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인다.
VVIP와의 끈을 어떻게든 놓고 싶지 않은데, 이대로 영영 바이바이하게 생겼다.
***
"문제는 동력이야."
하수영의 진지한 말에 프리덤이 반문했다.
「정확히 어떤 의미입니까?」
"배수톤이 억에서 왔다 갔다 하는 놈이야. 프로펠러 스크류로는 속도 조절에 한계가 있지."
이론상 거대 프로펠러를 충분히 달면 움직일 수야 있다.
하지만 속력을 얻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멈추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예인선단으로 미세 조절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겠군요.」
"예인선으로는 택도 없지. 그 큰걸 무슨 재주로 끌겠냐?"
「결국 예인선 도움 없이 해상농장의 자체적인 동력으로 접안까지 조절해야 하는군요.」
대형 선박들은 항구에 접안하거나 출항할 때 예인선의 도움을 받는다.
너무 큰 배는 스스로 항구에 접하려다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파손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펠러만으로는 미세 조절이 안되지. 그 부분을 손봐야 되는데."
「예인선 없이도 해상농장이 스스로 이접안을 할 수 있도록 하시려는 거군요.」
"바로 그거다."
「그런데 해상농장이 이접안이 가능한 시설을 갖춘 항구는 없습니다.」
"아쉬우면 그 나라에서 미리미리 만들어 둘 거다. 아니면 최외곽 방파제에 이접안을 하면 되고. 아무튼 예인선 없이 혼자서 이접안이 가능해야 된다."
「어차피 해상농장을 예인할 수 있는 예인선도 없을 겁니다.」
"개미가 소를 끌고 가려는 꼴이니까. 체급이 너무 안 맞잖아."
죽은 소를 분해해서 살점을 작게 찢어서 움직이는 거라면 몰라도.
살아 있는 소를 분해하지 않고 끌고 가는 건, 개미들에게는 불가능하다.
「마스터, 그런데 수영모터는 반중력을 이용해서 회전동력을 얻지 않습니까? 아예 회전력으로 전환하지 않고 반중력 그 자체를 동력으로 활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전환손실 에너지가 없으니까 오히려 동력이 더 커져 버릴 텐데."
「대신 물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직접 해상농장을 움직이는 것이니만큼 정교한 조타가 오히려 가능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흠, 그런 반중력 장치도 너무 옛날 기술이라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다. 한 번 시뮬레이션은 돌려 봐라."
「네, 계산해 보겠습니다.」
***
프라임건설 회장 이도공이 공식기자회견에서 제주도 조선소 건설은 사실이라고 확답을 밝혔다.
제주도청에서 무리하게 설레발을 치는 건 아니냐는 의문은 덕분에 쏙 들어갔다.
대신에 고용률 증가에 대한 기대감이 대중 사이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방살이는 별로지만 제주도는 다르지 않나? 섬 전체가 관광지잖아.
-아직 멀었다. 일단 도크부터 지어야 조선소 가동하는데, 조감도 보니까 도크 짓는 것도 몇 년은 걸릴 대공사다.
-반수성 모듈을 무시하지 말라고. 해상교량 짓는 거 못 봤냐? 진짜 금방금방 짓는다.
-이러면 제주도 2공항은 서귀포시 쪽에 지어야 하는 거 아님?
-근데 거기 해군기지 있어서 공항을 짓는 건 좀 힘들지 않나.
-사이즈 보니까 정직원 3만 명 각이다. 미리미리 캐리어 싸놔야겠네.
-뭐야, 3만 명밖에 안 됨?
-3만 명밖에라니. 3만 명씩이나 되는 거지. 가족까지 생각하면 제주도 입장에서는 갑자기 인구가 10%이상 증가하는 거라고.
-평일에는 도크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제주도 관광하고, 이거 생각보다 신선놀음 각인데?
-육지에서 내려온 제주도민인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야. 제주도 여자 만나서 10년째 여기서 영업하면서 살고 있는데, 이제는 서울 도심의 빌딩숲이 너무나 그립다…….
-그래도 사모님 사랑하시죠?
제주도 조선소에 대한 기대감이 들끓는 사이에도, 프라임건설은 차근차근 모듈을 만들어 바다에 띄우고 있었다.
줄줄이 연결된 모듈들이 예인선에 매달린 채 제주도로 이동하는 모습은 매일같이 TV에 보도되었다.
전국의 구직자들과 제주도민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희망에 부풀었다.
한편, 환경단체들이 더 이상의 제 주도 해안 훼손을 용납할 수 없다며 프라임건설 본사를 찾아와서 진을 치고 시위를 벌였다.
또 서귀포 공사현장에 내려가서 진을 치고 공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제주도지사가 환경단체를 설득하러 갔다가 그들에게 부상을 당해서 응급실에 실려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는 때리지 않았어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도지사가 지멋대로 쓰러지더니 지멋대로 구급차를 불렀다구요!
환경단체 회원들이 억울해서 외쳤으나, 누구도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폭력혐의가 적용되자 경찰이 나서서 강제로 진압을 해버렸고, 그 뒤에는 해군들이 군사훈련을 핑계로 외곽에 진을 쳤다.
내부로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도크 공사 인력들뿐이었다.
훈련을 핑계로 공사 현장 주변에 진을 설치한 수병들이 수군거렸다.
"그런데 도지사가 진짜 맞은 게 사실입니까?"
"사진 못 봤냐? 실려 가다가 은근슬쩍 담요 걷는 거. 꾀병이야, 꾀병."
"환경단체만 엿 먹은 거군요. 어쨌든 도지사를 폭행했으니."
"걔들은 엿 좀 먹어도 돼. 자연훼손 진짜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공사하는 건데도 무조건 안 된다고 빽빽거리면서 알박기했으니까."
"어디 감히 우리 원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토를 단단 말입니까. 그 환경단체 놈들, 원수님 아니면 진작 굶어 죽었을 것들이."
"원수님 하는 일에 발목 잡고 늘어지면서 생선 반찬은 맛있게 얌얌할 겁니다."
병사들은 보편적으로 간부나 장교를 싫어하지만, 하수영은 예외였다.
특히 해군 수병들 입장에서 하수영은 우상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어? 지금 들어오는 저 차들 뭐냐?"
"뷔페차입니다. 원수님께서 우리 고생하신다고 특별히 보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오오, 오늘 저녁은 뷔페냐?"
순식간에 주둔지에 호텔 뷔페가 세팅되었다.
말년병장의 입맛도 부활시킬 만큼 향기롭고 맛있는 냄새가 가득 흘렀다.
정신없이 식사를 마친 병사들은 교대 시간이 되자 기지로 복귀했고, 동기들한테 오늘 먹은 만찬 자랑을 늘어놓았다.
"사진은? 사진 찍어왔냐?"
"어, 잔뜩 찍어왔다."
"그럼 빨리 해군 커뮤니티에 올려야지! 육군 녀석들 보고 뒤집어지게!"
"안 그래도 지금 올리는 중이다. 생활관 와이파이 근데 너무 느리네."
해군 커뮤니티에 오늘 먹은 만찬자랑 사진이 줄줄이 올라갔다.
다른 해군 수병들이 앞을 다투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며 부러 워했다.
중간중간 자랑 좀 그만하라고 열폭하는 댓글도 종종 보였다.
그런 댓글에는 여지없이 반박글이 달렸다.
-너 새끼, 육군이지?
-땅개 새끼가 어디 범고래들 노니 는데 겁도 없이 끼어 들어! 한 입에 먹히고 싶냐!
-응, 땅개 사절.
원래 해군은 육군에 비해서 배식의 질이 좋았다.
여기에 하수영이 고급 식재료를 따로 더 챙겨주면서, 이제는 김밥집과 미쉐린 스타 정도의 차이가 벌어져 버렸다.
육군이 몇 백 원짜리 컵라면이 부식으로 나올 때, 해군은 수영레스토랑 라면이 부식으로 나오곤 했으니.
심지어 이런 부식에는 감히 부패한 부사관들이 손을 댈 수도 없었다.
-원수님이 사비를 털어 내려주신 부식을 횡령한다고? 살고 싶지 않은 거지.
-걸렸다가는 바로 불명예전역에 횡령으로 교도소행이다.
아무튼 해군은 육군 놀리는 맛에 살고 있었다.
***
조선소 건설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육지 연결축을 올리고, 도크 시작점을 붙여서 작업 공간을 확보했다.
제철소에서 만들어진 모듈 부품을 실은 트레일러들이 쉬지 않고 서귀포까지 운송했다.
해상철도는 아직 미개통이지만, 해상도로는 운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근데 철도는 왜 아직도 개통 안하는 거야? 공사는 다 끝난 걸로 아는데."
"코레일하고 SRT하고 3자협의가다 안 끝났다는 거 같은데. 통행세 말이야."
"SRT 놈들이 또 공짜로 해처먹으려고 숟가락 들이밀었겠지. 뻔해."
이제 더 이상 조립 모듈을 해상으로 수송하지 않고, 부품들을 트레일러에 실어서 바로 현장으로 보낸다.
그럼 공사현장에서 부품과 자재들을 결합하여 모듈을 만들고, 물에 띄워 바로 연결을 해서 도크를 키워 나간다.
도크가 조금씩 넓어질 때마다, 수영모바일에서는 차근차근 직원을 늘려나갔다.
주변의 호텔과 모텔, 민박도 공실비율이 점점 줄어들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이는 그때, 일본에서 예기지 못한 기습이 들어왔다.
[속보! 일본, 정제 규소 수출 중지]
[서진파운드리, 당장 2개월 치 규소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