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106화 (1,106/1,270)

프랜차이즈 갓 1106화

257장 넘치는 금속들 (4)

규소는 반도체 원재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소이지만,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모래에서 추출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한국은 반도체 제조를 목적으로 규소를 생산하는 업체가 없었다.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을 해서 웨이 퍼를 만드는 게 훨씬 쌌기 때문이다.

한때 업계 1위였던 서해전자조차도 예전에는 가공된 규소를 전량 수입해서 웨이퍼 제조에 사용했다.

그 때문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과 일본이 소재를 가지고 장난을 칠 때마다 큰 몸살을 앓곤 했었다.

그리고 규소 광맥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문화재청은 대놓고 실망을 표했다.

"아니, 나와도 왜 하필 규소 같은 게……."

"솔직히 우리나라에 규소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채산성 안 맞아서 생산을 안 하는 것뿐인데."

"당장 바닥부터 규소 생산라인 만드는 것보다는 중국, 일본에서 돈주고 사 오는 게 훨씬 낫지."

"차라리 금맥이나 하나 더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네요."

"그나저나 광맥 나온 거 보니 이제 유물은 더 이상 안 나올 모양입니다."

"그럴게요. 나와야 할 것들은 이제 어지간히 다 나온 모양입니다."

국내에 규산염 광물이 희귀한 것도 아니니, 규소 광맥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반도체 종사자들 역시 '차라리 리튬, 텅스텐 같은 게 나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며 혀를 차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규소 함유량이 94% 이상입니다. 이건 규산염 광물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규소와 산소가 결합을 한 상태가 아니라, 그냥 규소 덩어리에 흙 같은 이물질이 조금 섞여 있는 정도?"

"이 정도면 약간의 정제 작업만 거치면 바로 반도체 공장에서 쓸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해외 수입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돼요."

경제성이 매우 높다는 게 밝혀지면서, 반도체 업계의 관심이 확 쏠렸다.

서진파운드리 CEO 정서진도 현장을 찾았고, 업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직접 규소 광맥을 손으로 훑은 그의 눈가가 몹시 떨렸다.

「주인님, 이 정도면 굳이 따로 정제 작업을 할 것도 없이 그냥 삽으로 퍼서 팩토리에 집어넣으면 됩니다.」

"그래?"

「입자집합명령 장치가 어차피 규소와 그 외의 불순물을 알아서 걸러주니까요. 1톤의 규소를 생산할 때마다 60kg의 불순물이 나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좋아. 따로 정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단 말이지."

「입자집합명령 장치를 사용하는 우리 입장에선 그렇습니다. 다른 반도체 팹들은 정제 작업을 거치긴 해야겠죠.」

서해전자도 공장을 포기하고, 모든 반도체 생산을 서진파운드리에 위탁하는 상황이다. TSMC도 하청업체로 합류했다.

국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반도체 생산 회사 중에서 서진파운드리에 견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우리가 고순도의 규소 재료를 사용했던 것은 생산되는 불순물, 산업쓰레기의 처리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서였죠. 이 규소 덩어리를 사용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좋아. 그럼 더 이상 해외 규소 공급량 출렁이는 거 때문에 눈치 볼필요는 없겠어."

「다만 견제가 들어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겠지. 우리가 소화해 주는 규소량이 어디 보통이냐고."

자타공인 세계 1위의 파운드리업체이다 보니, 규소를 삼키는 양도 무시무시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주문량을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덩치가 큰 만큼, 중국과 일본의 원재료 공급 장난에 취약한 구조이긴 했지만.

「중국은 우리가 수입량을 줄여도 타격이 적고, 또 얽힌 게 많아서 함부로 보복은 못 합니다. 일본은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을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한때 한국은 반도체 원료와 장비의 대일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원료와 장비의 상당수는 일본에서 가공된 것을 들여와야 했고, 최종적으로는 미국의 통제하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서진파운드리가 시장을 휘어잡으면서 사정이 변했다.

입자집합명령 장치는 대당 수천억원이 넘어가는 반도체 장비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완전히 독립적이고 완벽한 반도체 생산장비였다.

장비나 부품은 전혀 필요 없이, 그저 주원료만 있으면 되었다.

다른 팹처럼 부식, 삭각, 세척 등에 필요한 온갖 화학재료도 필요하지 않았다.

서진파운드리는 그동안 규소 광석등 원재료만 수입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수입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게르마늄 갈륨비소 등의 다른 원재료 수입만 신경 쓰면 된다.

중국과 일본 입장에서는 절대 달갑지 않은 일.

특히 반도체 장비 매출이 감소된 일본은 더욱 안 좋은 눈으로 바라볼것이다.

"국내 다른 팹들이 타격을 입겠는 데, 우리야 별 상관없지만."

서해전자조차 팹을 포기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팹을 운영하는 국내회사들이 있었다.

수급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인 이유로 해외 회사들이 물량을 주기 때문이다.

서진파운드리는 너무 큰 슈퍼을이 되었지만, 이런 상황이 영구적으로 고착되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우리 팹은 기존 반도체 제조 생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으니까요. 고순도 규소 광맥까지 나온 것을 반길 나라는 없을 겁니다.」

"그래, 파트너 기업 입장과, 그 국가의 입장은 또 다를 테니까……."

미국만 해도 그렇다.

마이크론이 팹을 포기하려 하자 미연방정부는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퍼부어 팹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도 서진파운드리가 전 세계 반도체 과반을 훌쩍 넘는 양을 생산하는 중인데, 다른 팹들이 죽어버리면 막을 수 없는 서진파운드리의 독주체제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예방적 견제조치가 실행될 수 있습니다. 스타트는 일본이 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과 유럽은 은근히 부추길 테고, 미국은 방관할 겁니다.」

하수영이 현재 미국에 많은 고급 인맥을 갖고 있지만, 미국 전체가 하수영을 좋아하거나 반기지는 않으므로.

정서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만약을 생각해서 대비는 해둬야겠군."

유물에 이어 규소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하수영은 잠시 굳어 있다가 말했다.

"그럼 내 멀티 농장은 어디다가 짓지?"

「일단 진주 땅은 포기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서진파운드리에서 광업권을 확보하고 광석을 캐기로 했습니다.」

"엄한 놈 좋은 일 안 시켜줘서 다행인 건지, 멀티농장 못 짓게 돼서 망한 건지……."

「기존 유물 발굴이 끝난 지역을 골라서 농장을 올리는 건 어떻습니까? 이미 예전에 발굴을 마쳤으니만큼 추가로 유물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코발트, 텅스텐 광산이 튀어나올지 어떻게 아냐. 이거 안 되겠다."

「다른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그냥 바다에 지어야겠어. 어차피 반수성 금속도 있잖아."

「오, 드디어 해상농장 테크트리를 올리는 겁니까? 언제 결심을 굳히실지 지금까지 쫄깃쫄깃한 오버히트로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아주 큰 바지선처럼 지어서 거기에서 하우스 농사를 해야겠어."

「마스터, 제가 미리 만들어놓은 설계가 있습니다. 드디어 그것을 꺼내 보일 때가 왔군요. 한번 봐주십시오.」

"이 자식, 엄청 기다렸나 보네. 한번 재생해 봐."

곧 태블릿 화면에 프리덤이 설계한 해상농장 3D 조감도가 표시되었다.

"럭비공처럼 생겼네?"

「원래는 사방에서 가해지는 파도 압력을 분산하기 위해 원 형태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해상농장은 유사시 이동할 수 있어야 그 로망을 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기동력은 로망이지."

「그래서 앞뒤로 끝이 뾰족한 럭비공 형태로 만들어봤습니다. 이러면 전진과 후진이 용이해서 쉽게 먼 바다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뾰족한 선미와 후미의 전장 길이는 무려 4m나 되었다.

포드항모 열 척을 나란히 연결한 것에 맞먹는 길이다.

수면 위 높이가 200m에 달하지만, 전장과 전폭이 워낙 길어서 무게중심은 안정적이다.

실내 팜구간 층 높이는 1m에서 10m까지 다양하게 이뤄져 있었다.

작물의 크기에 따라 나눠서 재배할 수 있게 층 높이를 다양화한 것이다.

「감자부터 개량종 작은 잣나무까지, 모든 작물과 과일,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컨셉으로 설계해 봤습니다.」

"그런데 너무 작은 거 같은데? 어차피 반수성 금속 모듈로 조립하면 공사도 쉬우니까 하는 김에 전장 10m 정도…… 아니다. 그냥 이사이즈를 표준으로 해서 여러 대를 만들어서 분산하는 게 더 낫겠구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하나에만 올인하면 제한 없이 크게 만들어야겠지만, 여러 개를 만들어서 위험을 분산한다면 이 정도 사이즈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엄청 큰 거 하나 만드는 것보다는 작은 거 여러 개 만드는 게 더 빠르고. 근데 수면 아래 이것들은 뭐냐?"

하수영은 수면 아래로 깊이 내려간 구조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양식장입니다.」

"양식장?"

「네. 어차피 이동하는 해상농장인데, 아래쪽에는 금속제 가두리를 만들어서 물고기를 양식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어, 이건 나도 상상을 못 했는 데……."

「그렇습니까? 마스터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니, 왠지 뿌듯합니다.」

프리덤은 한껏 자부심을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수면 아래 금속 가두리는 반수성이 아닌 무거운 일반 금속으로 만들어서 무게중심을 맞추겠습니다. 여기에 물고기를 양식하고, 또 수면 위에서 재배한 곡물을 바로 사료로 만들어서 먹이면 됩니다.」

"농사와 양식이 한 큐에 해결되네. 그리고 보급은………."

「무선 전기를 쓸 거니까 외부 보급은 거의 필요 없죠. 농사 안드로이드의 고장이나 손실만 항공이나 해상 수송으로 채워주면 됩니다.」

"수송선이 항상 따라다녀야겠는데. 작물을 보관할 곳이 없어서 재배를 멈춰야 되는 경우가 많겠어."

「제주도 남쪽으로 해상교량을 하나 연결해서 거기에 농장을 접안하면 됩니다. 평시에는 작물을 생산하는 족족 차량으로 나르면 되죠. 이제 제주도가 한반도와 연결되었으니, 육지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접안을 풀고 항해 시에는 수송선들이 따라붙게 만들고?"

「그렇습니다. 따라서 수송선에 바로 곡물과 생선을 실을 수 있는 장치도 달아야 합니다. 당연히 설계에 반영했습니다.」

"흠, 근데 항해를 해야 할 경우가 있을까?"

「전쟁, 기근으로 먼 지역에 국가 적 식량결핍 상태가 일어나면 농장이 직접 현지로 이동해서 공급하는 게 가장 빠르겠지요.」

"하긴, 여기서 배로 실어 보내는 것보다 직접 농장을 그쪽으로 보내는 게 더 효율이 좋지."

「농사, 양식, 이동까지 고려하면 엄청난 전기를 잡아먹을 겁니다. 단일 구조물 중에서는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놈이 될 겁니다.」

"알겠다. 지금 발전소 용량으로는 부족하다, 이거지?"

「예, 발전용량을 더 증설해야 합니다. 아니면 발전소를 하나 더 지으시든가요.」

"차라리 원전 하나 뺏어서, 아니, 사가지고 개조하는 게 더 빠르겠는데."

「아무튼 청담의 움직이는 농장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지금 발전용량가지고는 안 됩니다.」

"청담의 움직이는 농장…… 그래. 원래 농장은 움직이는 거지."

하수영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특히 요즘은 모바일이 대세니까."

「모바일팜이라…… 제 정류회로를 방전시킬 만큼 멋진 알파벳 조합이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