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05화
257장 넘치는 금속들 (3)
발전소에 왜 금 2,700톤을 써가며 탑을 만들어놓은 걸까?
"금은 전도율이 높잖아요. 아마도 변압중계의 어떤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시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다른 발전소에는 저렇게 금 듬뿍 써서 탑 같은 걸 만들어놓지 않잖아요."
"핵융합 발전소는 재래식 발전방식과 다른 특별한 설비가 필요한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물 끓이는 것만 핵융합 열로 하는 거지, 터빈 돌리는 것부터는 다 똑같지 않아요?"
"……."
"저 순금탑은 진짜 대체 왜 있는 거죠?"
핵융합 발전소를 찾는 견학자들이 늘 떨치지 못하는 궁금증이었다.
대체 발전소에 순금탑이 왜 필요할까?
"저거 보면 꼭 무슨 안테나 같지 않아요?"
"그러게. 위성 안테나라도 되나?"
"근데 위성 안테나는 큰 원형 반사판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잖아?"
"혹시 수신 안테나가 아니라 송신 안테나인 건 아닐까? 그럼 반사판이 없는 게 말이 되는데."
"송신 안테나라고 쳐. 그럼 대체 뭘 송신하는 걸까?"
"글쎄……."
비를 맞지 말라고 넓은 슬레이트지붕이 설치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순금탑의 위치는 발전소 울타리 밖에서도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재료가 금.
유구한 인류 역사상, 인간의 마음을 언제나 사로잡아 왔던 보편적인 보물.
그런 금이 자그마치 2,700톤이나 투입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니 사람이라면 한 번쯤 구경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순금탑을 찾은 사람들은 용도에 관해서 고민했다.
"그냥 금 비축한 거 자랑하려고 세워놓은 게 아닐까?"
"농사 로봇 군단을 통제하기 위한 전파를 송신하는 안테나 장치가 틀림없어."
"비자금이야. 하수영의 정치 비자금을 저기에 숨겨놓은 거라고."
"비자금을 저렇게 대놓고 보라고 세워두는 경우가 세상 어디에 있냐?"
***
정영술 과학수석은 관광객 무리에 끼어 순금탑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에서 순금탑을 가지고 수군거릴 때마다 입이 간지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무선 전기라고, 무선 전기! 저 순금탑은 무선 전기를 내보내는 송전탑이라고!'
라고 외치고 싶어서 말이다.
직접 와서 본 순금탑은 실로 눈이 부셨다.
2,700톤의 순금으로 만든 탑 안테나라니.
저 하중을 받치기 위해 시공을 어떻게 했을까를 잠시 생각하던 정영술은 인파에 밀려날 뻔하다가 다시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같이 온 한전 임원도 땀을 뻘뻘흘리면서 가장 앞까지 밀고 나갔다.
"휴, 정수석, 이거 여간 힘든 게 아니군그래. 평일인데 사람이 뭐 이리 많이 모였어?"
"금이잖아, 금. 수만 년이 넘도록 인간을 홀린 보물. 그게 2,700톤이나 모여 있으니 당연히 이렇게 모여들 만하지."
"하긴, 평범한 사람이 저 많은 금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걸 어디서 보겠어. 영화에서나 보겠지."
"영화에 나오는 금은 엄밀히 말해서 가짜 소품이지. 진짜 금이 이렇게 잔뜩 모여서 보란 듯이 공개돼있는 건 여기뿐일 거야."
"휴, 그나저나 날씨가 정말 미쳤어. 3월인데 무슨 한여름처럼 푹푹 찌는군."
임원은 휴대용 선풍기를 꺼내서 목에 대고 바람을 쐬었다.
정영술도 선풍기를 꺼내서 땀을 날리며, 순금탑을 훑었다.
"근데 왜 하필 금을 썼을까? 전도 율 1, 2위를 놔두고 말이야."
"은은 변질이 너무 심하고, 구리도 합금이 아닌 이상 저렇게 노출되면 녹이 슬 텐데? 안테나가 바깥공기에 상시 노출될 필요가 있어서 금으로 만든 게 아닐까?"
"음, 그럴듯한데."
"가만히 보면 무선 전기가 절대로 값싼 인프라는 아닌 거 같아. 금을 계속 조달하는 걸 보면, 송전 출력이 안테나 금의 양에 비례하는 거 같애."
"뭐, 알루미늄 합금 송전선도 케이블이 굵을수록 더 많은 전기를 보낼 수 있지 않나. 무선 전기라고 해서다르진 않겠지."
"그나저나 대한민국을 커버하는 데 금이 2,700톤이나 필요한 걸까? 이래서야 무선 전기를 도입하고 싶어도 겁이 나서 못 하겠는데?"
"에이, 그래도 금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꾸준히 남아 있으니까. 적어도 소모성 투자나 지출은 아니지 않나."
한전 임원은 손부채질까지 곁들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만 커버하는 건 아닐 거야. 줌왈트 구축함의 작전 반경이 일본 동쪽 해역까지라는군."
"그래?"
"얼핏 작전 동선을 봤는데, 강릉발전소에서 대충 2,700km까지 떨어져서 작전을 펼치는 거 같더군."
"2,700㎞라…… 이거 공교롭게도 맞아떨어지는 거 같은데?"
"1㎞를 커버하는 데 1톤의 금안테나가 필요한 걸지도 모르지."
애초에 무선 전기에 금은 무관하다.
하수영이 무선 전기의 인프라 비용을 인위적으로 높여 부르기 위해서 금을 위장으로 썼을 뿐.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정영술과 한전 임원은 자기들 나름대로 열심히 추론을 굴렸다.
"미국은 무선 전기를 알고 있겠지?"
"우리 한전에서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미국이 모를 리가 없지. 미정부가 보유하던 금괴 2,000톤을 보냈다는 말이 있어."
"농장 금광에서 600톤을 파냈고, 시중에서 100톤을 구매했고, 미국에서 2,000톤을 보냈다? 그럼 대충 금괴 양은 설명이 되는군."
"중국, 일본하고 러시아는 모르는 분위기인데."
"러시아는 몰라도 중국, 일본은 모르는 게 확실해. 알았다면 난리가 났어도 벌써 났을 거야."
"근데 그 나라들이 알아도 무선 전기를 도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반경 1㎞ 보내는 데 1톤의 금이 필요한데, 과연 감당이 될까?"
둘의 머릿속에서 어느덧 '1톤=반경 1'는 이미 공식으로 굳어져 버렸다.
"금값은 확실히 오르겠군."
"난 그래서 진작 금에 투자했어."
한전 임원의 말에 정영술은 미간을 찡그린 채 투덜거렸다.
"젠장, 나도 오늘부터 당장 금에 투자해야지. 왜 여태껏 그 생각을 못 했지?"
"지금 수영발전소 발전용량이 우리 나라 소모량의 30%까지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 있던데."
"휘유, 겨우 발전소 하나로 전체의 3할이면 정말 엄청난 건데."
"열량은 충분한데 터빈이 모자라는 상황이니까. 그래서 지금도 터빈을 계속 늘리고 있고."
"그나저나 발전소 위치가 하필 강릉이라서 좀 불안한데 여차하면 북한이 무력화할 수 있는 위치 아닌가?"
"사실 나라 생각하면 울산 쪽에도 핵융합 발전소 하나 더 짓는 게 맞긴 한데……."
"……."
둘 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끝을 흐렸다.
발전소 쿼터제가 시행되는 동안, 전력 카르텔은 최대한 많이 이익을 남겨 먹어야 한다.
정부에서도 무선 전기를 쉬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대중에 알려졌다가는 당장 무선 전기를 도입하라는 반발이 감당이 안될 것 같으니까 그렇지.
"한전은 진짜 수영그룹이 전기 장사 할 마음이 없다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해."
정영술의 말에 한전 임원이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말했다.
"내가 한전에 오래 뼈를 묻긴 했지만, 차라리 수영그룹이 전기 장사할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그냥 전력 시장을 싹쓸이했으면 좋겠어."
"자네, 직장에서 그런 말 잘못했다가는 큰일 나겠는데?"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내가 언론에 투서하고 싶네. 그냥 핵융합 전기가 아니라고, 무선으로 보내는 핵융합전기라고."
"……."
"기존 발전소 죄다 철거해버리고 수영 발전소로 대동단결해야 이 나라가 발전한다고. 아니, 자동차가 양산되고 있는 상황에 무슨 말이고 마차에 보조금을 주는 건가? 이게 말이 되나?"
정영술은 열변을 토하는 친구를 물끄러미 보다가 탄성을 냈다.
"아, 맞다. 자네 이번에 전기차로 바꿨지?"
"매번 충전하는 게 귀찮고 골치 아파 죽겠어. 무선 전기 보급되면 더 이상 그런 걱정 안 해도 되잖나."
"그러게 왜 백두자동차 일반 모델을 샀다. 그냥 수영모터스 엔진 들어간 모델을 사지."
"수영모터스 나오기 전에 미리 예약 걸어둔 거라서 어쩔 수 없었네. 이 새끼들이 다른 모델로 바꿔주지도 않았어."
"재수 없게 재고떨이 정리에 걸렸군."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속이라도 편하겠는데, 차 볼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나. 수영 엔진 들어간 모델이면 이렇게 열 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
"그냥 저 안테나는 무선 송전 안테나다, 라고 누가 언론에 투서라도 해줬으면 좋겠군."
"미국이 그냥 확 공개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럴 일은 없겠지?"
"미국도 조용히 금 모으는 거 봐서는 당분간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아."
***
청동기 유물 발굴 작업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을 보이고 있었다.
유물이 발굴하기 편하게 가지런하게 모여 있었던 덕분이다.
진주시에서는 벌써부터 전용 박물관을 짓는답시고 야단법석이었고, 프라임건설그룹에서 여기에 당당하게 입찰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프라임건설이 입찰에 나서자, 다른 재벌 건설사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찰을 포기한 것이다.
때문에 진주시에서는 건설사 간담합이 아니냐고 의심했지만, 프라임건설 입찰 담당자의 태도는 당당했다.
"담합이라니요. 저희는 그런 식으로 치졸하고 탈법적으로 사업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귀사에서 입찰했다고 다른 회사들이 모두 포기를 하는 것은……."
"그냥 다른 건설사들은 우리 회사와 맞붙는 것을 꺼려 하는 겁니다."
"어째서입니까?"
"우리 그룹 자회사에서 철근 자재들을 저렴하게 생산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강릉 발전소에서 값싼 핵융합 전기를 마음껏 쓰고 있으니까요. 경쟁 자체가 안 되죠."
"설마 자재 납품을 가지고 압박이라도 하신 겁니까? 입찰을 포기하도록?"
"그럴 리가요. 그냥 그 친구들이 지레 알아서 겁을 먹고 입찰을 포기한 걸 어떡합니까?"
"……."
"박물관이라고 해봐야 10대 건설사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큰 메리트가 있는 사업은 아닙니다. 괜히 우리와 맞붙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낫죠."
진주시는 결국 담합을 하지 않았다는 프라임건설의 주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프라임건설에서 응찰한 가격과 조건 등은 진주시가 보기에도 매우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우리 회장님 땅에서 나온 유물들을 영구적으로 전시하는 박물관을 짓는 사업입니다. 회장님의 체면이 달려 있는데, 우리가 돈 몇 푼 아끼고자 허술하게 하겠어요?"
"과연, 듣고 보니 납득이 됩니다."
"이거 멋들어지게 준공하지 않으면 건설 회장님부터 줄줄이 시말서 쓰고 징계감입니다."
박물관 건설은 이익보다는 하수영의 체면이 걸린 사업이다.
진주시는 그런 입장에 매우 만족했고, 프라임건설은 이견 없이 박물관건설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유물 발굴 작업은 모두 끝났고, 각종 탐지 작업에도 더 이상 잔존 유물이 없다고 결론이 났다.
그제야 프라임건설은 착공을 위한 땅 다지기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첫 삽을 뜨는 날, 문화재보존국장이 현장에 찾아와서 책임자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이미 샅샅이 발굴했지만, 혹시라도 추가로 뭐가 나오면 절대 묻지 마시고 저희에게 알려 주십시오. 가급적 빠르게 발굴하고, 문화재 보상액도 합리적으로 책정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현장에 가까이 오시면 안 됩니다. 비관계자는 들어올 수 없단 말입니다."
"문화재청 국장이 비관계자라고는 할 수 없죠. 저도 지켜보고 싶습니다."
국장씩이나 되는 양반이 이 먼 진주까지 내려와서 며칠째 머무르는 게 가상하긴 했다.
그렇게 땅을 다지는 공사가 시작되었고…….
"전무님! 또 나왔습니다!"
"뭐야? 이번엔 또 뭐가 나왔어? 야! 문화재 국장 여기 못 오게 막아! 그 사람 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
"상관없을 거 같은데요? 문화재가 아닙니다. 규소 광맥이에요!"
"규소? 실리콘? 반도체 재료 그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