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03화
257장 넘치는 금속들 (1)
-수영그룹에서 직접 항공기를 만든대!
-수영그룹에서 항공기 사업에 진출한대!
-에릭 로한 박사가 칼을 갈고 6세대 전투기를 만들었대! 말이 6세대지, 성능 차이로 보면 한 20세대 쯤은 될 거래!
-수영그룹에서 전투기, 민항기 시장을 전부 다 먹어치울 거래!
불길한 소문이 미국 정가를 강타했다.
하수영이 보라매 전투기 사업에 참가한 업체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정보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공군본부까지 뻔질나게 드나들며 국산 전투기 사업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가 봐도 전투기 제조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양상이라, 미국은 덜컥난리가 났다.
보잉과 록히드마틴에서 워싱턴을 찾아 의원들 설득에 나섰다.
"수영그룹은 항공기 시장의 큰 고객입니다. 수영그룹을 잃는다는 것은, 미국에서 100만 개의 실업자가 양산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주문한 F35C 300기 중 생산에 들어가지 않은 물량을 취소하기라도 하면, 그 여파가 장난이 아닐 겁니다."
"의회에서 중재를 해주셔야 합니다. 아! 그렇다고 수영그룹을 압박하거나 윽박질러서는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소중한 고객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큰 고객이 물품 구매에 만족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그 사업에 뛰어 들겠다고 나섰다.
가장 큰 고객이 가장 큰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그냥 돈만 많은 고객이라면 웃고 넘어가겠는데, 수영그룹에는 불세출의 천재 과학자 에릭 로한이 있었다.
프리덤, 핵융합, 반수성 금속, 차세대 반도체 공정기술을 만든 그가 전 투기 제조에서 또 어떤 마술을 부릴지, 다들 걱정이 태산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은 의회도 인정했다.
"이거 앞뒤가 완전히 막혔군요."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게, 최대한 부드러운 방법으로 전투기 제조사업에서 손을 떼게 만들어야 하다니……."
백악관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특사를 보내기로 했다.
처음에는 코즈펠트 이사가 후보에 올랐으나, 그가 프랑스 수영농장 관리인이라는 점 때문에 선택지에서 밀려났다.
그리하여 부통령이 직접 한국을 찾아왔다.
나름 잔뜩 각오를 하고, 많은 준비를 한 부통령은 하수영의 첫 마디에서부터 맥이 탁 풀렸다.
"그냥 DIY인데요."
Do It Yourself.
돈 주고 맡기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배워서 처리하는 것.
"99% 이상은 위탁생산을 맡길 겁니다. 반도체 파운드리처럼요. 내입맛에 맞는 농사용 비행기를 만들어서 쓰는 게 목적입니다."
"그럼 애초에 항공기 시장 진출은 고려하지 않으신 겁니까?"
"네. 수익성은 고려를 안 한 가성비 나쁜 모델만 뽑아낼 테니까요."
"농사용 항공기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기종들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글쎄요. 전술수송기를 닮은 형태가 되겠죠. 주목적은 작물 수송이나 기상관측보조가 될 겁니다."
"그런데 항공기로 작물을 수송하는 것은 너무 과다한 비용 낭비가 되지 않겠습니까?"
"음, 만약을 대비한 겁니다."
부통령은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이시라면……?"
"예를 들어 재해나 전쟁 같은 이유로 화물선이나 열차가 못 들어가는 지역이 있다고 칩시다. 거기에 식량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그럴 때 긴급 수송을 하려면 역시 항공기 말고는 답이 없지 않겠습니까?"
하수영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덧붙였다.
"냉전 시대 봉쇄된 베를린에 식량과 물자를 실어 날랐던 미 공군처럼 말입니다."
"……!"
"이제 해상 운송 능력은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있으면 대형 화물선이 100척이 되니까요. 하지만 공중운송능력은 지금 전혀 없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작물수송용 항공기를 직접 DIY하시겠다는……?"
"네. 물론 설계만 하고, 생산은 외부에 맡길 겁니다."
부통령은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수영은 항공기 시장에 진출할 마음이 없다.
여전히 그는 큰손이자 VIP 소비자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다만 일부 구매 형태에 살짝 변화를 준 것이다.
기성품이 아닌,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달라고 직접 주문을 넣는.
"농사라는 게 그냥 작물만 열심히 잘 기른다고 전부가 아니에요. 소비자들이 있는 곳까지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운송능력도 갖춰야 합니다."
"보통은 유통사에 넘기고 거기서 끝냅니다만, 의원님은 확실히 다르십니다."
"단 한 명의 고객이 있는 지역이라도, 그깟 운송비 때문에 외면하고 싶지 않습니다. 널리 인간을 살찌게 하는 게 우리 농장의 소명이니까요."
"단 한 명의 고객도 외면하지 않겠다……."
"언젠가는 고립된 남극기지에 식량을 수송하러 가야 하는 날도 있지 않겠습니까?"
부통령이 보기에도 하수영은 신이 난 것처럼 느껴졌다.
"종합 중장비농기계제조회사, 오래 전부터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직 제 취향을 반영한 중장비 농기계만을 생산하는 회사죠. 항공기든, 트랙터든, 콤바인이든 말입니다."
"그런데 수영농장은 트랙터와 콤바인이 별로 필요 없지 않습니까?"
"해외에선 실내농법을 고집할 수 없으니까요. 일본 농지도 개활지고, 남미에 사놓은 농지도 개활지입니다. 트랙터와 콤바인은 여전히 필요 합니다."
"아, 그렇군요. 확실히 치안이 안정되지 않은 해외 농장에 값비싼 무인 로봇들을 투입하기는 곤란하겠지요."
"농업용 항공기는 시작이죠. 앞으로 무인 트랙터, 무인 콤바인 같은 것도 제 취향대로 만들어서 해외 농장에서 굴릴 겁니다."
부통령은 보잉과 록히드마틴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워싱턴은 호들갑을 떨칠 수 있으리라.
수영그룹이 중장비제조업에 뛰어들자 국내 재계도 처음에는 긴장했다.
그들도 미국처럼 하수영이 방위산업에 발을 뻗으려는 것이라고 오인했다.
하지만 수영그룹에서 쏟아지는 위탁생산 발주서를 접하고는 이내 안심했다.
"농업용 항공기?"
"작물 수송기로도 쓰고, 농약 비료살포기로도 쓸 거라는데. 아무튼 몇 십 기 정도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굴리려나 봐."
"트랙터, 콤바인도 직접 커스터마이징한 무인장비로 만든다는데."
"아무래도 실내농장 로봇들을 남미농장에 바로 투입하기는 그렇지. 테러나 절취당할 때마다 손해가 얼마야."
"웬만한 부품은 국산화하고, 부족한 것은 보잉이나 록히드마틴에서 사 와서 조립할 듯한데……."
"최종 조립은 어느 업체에 맡기려나?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하겠지?"
그렇게 가칭 '수영중공업'은 처음의 우려를 벗어버리고, 재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보라매 전투기 사업에 참가한 방산업체들과 협업을 하려면 국방부의 승인은 필수다.
국방부 전력기획실은 하수영의 발주서를 받아보고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미친! 항공기 외관을 통짜 티타늄합금으로 만든다고?"
"이러면 대체 비행기 한 대 값이 얼마야!"
"아무리 티타늄 광산이 터졌어도, 이건 좀 너무 심한데. 이거 비용이 감당이 되나?"
국방부는 하영이 비행기 장사를 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말 그대로 가성비가 극악이기 때문이었다.
"진짜 자기 농장에서 혼자 쓰려고 항공기 만들려나 본데."
"기본 프레임은 전략전술수송기로 갈 모양이네요."
"소형, 중형, 대형까지 골고루 다 있네."
"근데 우리 방산업체들은 이런 항공기 형태는 설계해 본 적이 없을 텐데………."
"미국에서 준 설계라니까 그대로 규격 맞춰서 프레임만 찍어내면 되겠지."
기획안을 검토하던 중 어느 직원 한 명이 이상한 걸 발견했다.
"이거 설계가 좀 이상한데요? 연료탱크가 없어요."
"뭐? 그럼 연료를 어디에 저장하려고?"
"동체부터 날개까지 다 뒤졌는데 연료탱크가 안 보여요."
"설계 미스 아니야? 첨삭해서 반려 해."
그러나 반려하자마자 즉각 답문이 돌아왔다.
설계에는 문제가 없으니, 그대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이상하네. 설계에 없는 외부탱크라도 달려는 거야, 뭐야?"
"아니, 100% 외부연료탱크만 쓴다고 해도 그게 설계에는 반영이 되어야지. 이건 그냥 연료탱크 없이 가겠다는 거 아냐?"
"말도 안 돼요. 연료 없이 가는 비행기가 어딨어요?"
이상한 점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참여업체 리스트 중에 이상한 이름이 하나 끼어 있었던 것이다.
"수영모터 전기차 모터 만드는 회사가 왜 항공기 프로젝트에 끼어 있어?"
3D 가상 모델링 화면에는 프로펠러 전술수송기가 떠올라 있었다.
수영농장 작물수송기의 기본 골격이 되는 형태다.
본래는 4개의 대형 프로펠러를 양날개에 달아서 추진력을 얻는 모델이지만, 그 대신 터보팬 엔진을 달았다.
그리고 전방의 대형팬을 모터로 돌려서 바이패스 에어를 발생시켜 대부분의 추력을 감당한다는 방식이었다.
모터는 당연히 무선전기를 쓰므로, 이론상 체공시간은 무한이 된다.
연료 보급이 전혀 필요 없는 최초의 항공기가 되는 셈이다.
동체 제작에도 티타늄 합금을 아낌없이 써서, 내구성을 한껏 끌어올릴 작정이다.
트랙터와 콤바인도 마찬가지.
일본을 제외한 남미 등 해외농장에서 주로 사용할 예정이기에, 티타늄합금으로 튼튼하게 동체를 만들 예정이다.
동력 역시 무선전기 모터를 사용함으로 주유 없이 무한정 가동할 수 있으며, 프리덤이 원격으로 통제한다.
"재래식 트랙터에 통짜 티타늄 합금을 썼는데도 로봇이 수십 배는 더 비싸구나. 역시 레거시도 다 쓸모가 있다니까."
「남미는 위험천만한 동네이므로 제 값비싼 귀염둥이 로봇들을 투입할 순 없겠지요.」
"거기는 수틀리면 대전차로켓 날리고 튀는 동네라서 싸고 튼튼한 농기계를 투입해야 돼. 보험도 안 들어 주잖아."
「남미농장에서는 비료와 농약 살포가 문제입니다. 항공기를 한 번 띄울 때마다 정부와 카르텔에 뇌물을 바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남미에 갔으면 남미 법을 따라야지. 돈 안 되면 접는 거고. 근데 땅이 워낙 넓어서 돈이 안 되진 않을 거다."
농기계 중장비 사업은 차근차근 흐름을 타고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업체들은 제안에 흥미를 보였으며, 국방부도 적극적으로 협력을 해주고 있다.
특히 무선전기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최초의 전기항공기가 과연 실사용에서 어떤 효과를 낼지 기대하고 있었다.
「트랙터, 콤바인, 파종기는 각각 20대씩만 만들어도 남미 농장은 충분히 커버할 겁니다. 다만 수송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럼 하는 김에 한 500기 만들지. 그래도 F35C보다는 싸지 않나?"
「500기 만들어봐야 F35C 100기 값도 안 됩니다. 더 만들어도 됩니다.」
"전투기가 확실히 비싸긴 비싸네."
「아무래도 900억 원 가까이 하는 전투기를 수송기와 비교할 수는 없겠죠.」
"그나저나 미국에도 농장 진출을 해야 하나?"
「작게라도 진출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소박하게 10,000제곱킬로 미터 정도로만 시작을 해보시죠?」
실내농장 테라리움은 해외에 진출하지 않는다.
국내에서야 상식을 벗어난 생산력을 가지고 문제 삼는 사람이 없지만, 해외에서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외 진출은 레거시 농장형태로만 취하고 있었다.
그때 JS건설 사장이 전화를 했다.
"네, 하수영입니다."
「의원님. 저 지금 진주에 내려와 있습니다.」
"아, 농장 부지 보러 가셨구나. 부지는 다 확보하셨나요?"
「확보를 하려고 지금 지주들과 협상 중인데요……」
"왜 그러시죠? 무슨 문제라도 생기셨나요?"
「문화재청 직원들이 일대를 수색하고 있습니다.」
"하하, 내가 그렇게 헐레벌떡 설레발치면서 달려올 줄 알았다니까요. 실컷 보고 다니라고 놔두세요. 어차피 거기서 나올 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