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97화
255장 한파 그리고 봄 (6)
"효과 괜찮네."
「놀라운 정도가 아니라 경이롭습니다. 범죄조직이 마약 중독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군요.」
범죄조직은 일부러 마약에 대상을 중독시켜 종속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마약에 중독된 피해자들은 약을 얻기 위해 조직에 매달리게 된다.
약을 위해서 매춘, 절도, 강도, 사기, 살인 같은 범죄를 마다하지 않는다.
오로지 약만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광인으로 몰락해서, 마지막까지 쥐어 짜이다가 결국 고통스럽게 죽는다.
그러나 엘릭서 풀코스로 중독시키는 것은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마약 중독처럼 몸과 정신이 파괴되지 않으니까.
그저 매순간 그 중독적인 맛만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게 될 뿐이다.
"희석 비율은 어떻게 했지?"
「시중판매 농작물을 기르는 데 들어가는 것보다 10배만큼 희석된 엘릭서 비료를 사용했습니다. 그 이상은 맛이 너무 강해서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처음에 희석 비율을 기가 막 히게 잡았다니까. 그냥 딱 '어 이거 이상하게 맛있네?'라고만 느낄 정도로 말이지."
「예. 그리고 기준치 농작물을 한꺼번에 과다섭취한다고 해서 중독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비자금은 들어왔어?"
「네,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독재군 주의 해외 비자금치고는 양이 너무 적군요.」
"북한이니까. 이것저것 경제제재를 받는데 해외 비자금을 만들어봐야 얼마나 만들겠냐."
「중국 초고위직 인사들은 개인이 해외에 수백억, 수천억 달러씩 숨겨 두는데 말입니다. 너무 검소하고 초라해서 놀랐습니다.」
"비자금 날아가서 이제 해외 사치품 못 사게 됐으니 김가네는 지금 난리 났을 거야. 아직 들려오는 소식은 없지?"
「예. 무척이나 조용합니다. 원체 폐쇄적인 국가니까요.」
큰 난리가 났을 테지만, 당장 한국에서 그 사실을 알 방법은 없다.
그만큼 북한은 철저히 성벽 안에 고립되어 있으니까.
「마스터, 그런데 리철만 오토가 정치 활동을 시작하면 북한에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마스터가 회유했다는 것을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당장 식량이 없어서 신두 공급에 의존하는 녀석들이 무슨 배짱으로? 무시해도 돼."
「비자금을 가지고 마스터한테 시비를 걸까 봐 우려됩니다.」
"리철만이가 혼자 꿀꺽했거나 한국정부와 딜했다고 생각하겠지. 놈들도 생각 있으면 리철만이한테 함부로 손은 못 댈 거다. 그래도 호위는 필요하니 안드로이드 몇 기 붙여 줘."
「네, 알겠습니다. 여차하면 저격을 대신 맞아줄 방패는 있어야죠.」
감시능력, 동체시력, 반응 속도가 매우 빠른 안드로이드 프리덤은 그 자체로 방패나 마찬가지다.
암살범이 갑자기 총격을 가하더라도 미리 반응해서 총탄을 대신 맞아 줌으로써 대상을 지킬 수 있다.
그나마 암살 가능성을 높이려면 수백 미터 이상의 고층 건물에 은폐해서 저격해야 하는데, 북한 공작원이 서울 한복판에서 그러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특정 안드로이드 프리덤의 카메라 안구의 해상도와 판독 능력을 경호 수준으로 설정하면, 수백미터 밖에서 저격 총구가 노출되는 순간 바로 감지할 수 있다.
「그럼 북한 농업 진출은 결국 무산되는 겁니까?」
"왜, 아쉽냐?"
「북한 주민들에게도 제가 키운 농작물을 먹이고 싶었습니다…….」
"거기는 농장 지어봤자 로봇 못써. 중국농장처럼 100% 사람으로만 써야 된다. 그럼 결국 네가 기른 농작물은 아닌 셈이지."
「그래도 간접적으로는 제가 관리하는 농장이니, 제가 키운 농작물이 맞습니다.」
"뭐, 북한에서 개성 사업권이니 이 딴 헛소리 말고 좋은 카드를 제시하면 진출할 순 있지. 동결된 해외비자금을 나한테 전부 보증금으로 지급한다든가 말이야."
북한에서 수백억 달러의 보증금을 건다면 하수영은 기꺼이 개성이든 농장이든 들어갈 마음이 있었다.
로봇 등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투자비용은 1억 달러도 안 될 테니까.
북한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도, 이쪽은 보증금 수백억 달러를 챙길 수 있으니 이익이다.
"근데 놈들이 그렇게 하진 않겠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국정원에서 중년 남자가 다시 찾아왔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직위를 밝혔다.
"해외 2파트 제1국 소속 유희준 차장입니다. 유 차장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이제야 이름과 직급을 밝혀주시네요. 근데 그것도 대외용이겠죠?"
"……하하. 보안에 유지해야 하는 입장을 이해해 주십시오."
유희준 차장이 가져온 것은 북한의 메시지였다.
"신두 60억 알은 고맙게 잘 받았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게 말했어요? 북한은 자존심이 너무 세서 고맙다는 말은 절대로 안 할 텐데?"
"보십시오. 문자 그대로 고맙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표현이면 충분히 고맙다는 뜻으로 번역을 해도 됩니다."
[본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불만족스러움을 어느 정도 걷어낼 수 있는 신속한 처리 속도에는 심심한 만족을 표하시었다.]
"이게 어떻게 번역하면 고맙다는 뜻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북한은 원래 이러니까 그렇다 치죠."
"하하…… 이 정도면 충분히 고맙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요. 60억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신두를 공짜로 받았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안하면 사람이 아니죠."
"글쎄요. 사람이라면 국가를 그런 식으로 운영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
"……."
"아무튼 찾아오신 걸 보면 북한에서 또 뭐라고 징징거림을 줬나 보네요?"
유희준 차장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 북한은 여전히 수영농장이 북쪽에 진출했으면 합니다."
"흠, 리철만 씨가 그 부분은 확실하게 전달을 하고 탈북했을 텐데요."
"탈북을 해버렸기 때문에 그 친구가 협상을 대충 했으리라고 오인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리철만 씨가 한국에 와 있는 것을 모르니까요."
리철만이 청담동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하면 북한도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한국에 있다는 걸 모르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우리 정부도 여전히 제가 북한에 진출을 하길 바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리철만 씨가 너무 빨리 탈출을 해버려서 제가 전한 메시지를 신뢰지 못하게 됐다라……."
"혹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셨습니까?"
"해외 동결 비자금을 보증금으로 수영사채에 입금하라고 했습니다."
"……."
"그럼 북한이 원하는 규모만큼 농장과 목축지를 운영해 주겠다고요. 인부도 듬뿍 고용하고요."
유희준의 표정에 낭패감이 어렸다.
북한 입장에서는 수백억 달러를 보증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만큼, 받아 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으리라.
그런데 메시지를 들고 온 리철만이 탈북을 해버렸으니, 대충 협상을 한 거라 판단하고 다시 찔러보는 것일테고,
"북한에서 농축산업 크게 벌려봐야 1억 달러가 훨씬 안 됩니다. 로봇 같은 비싼 농기구는 안 넣을 거니까요. 이 정도 안전장치는 해놔야 북한이 갑자기 변덕을 부려서 농장을 몰수한다거나 폐쇄한다고 해도 제가 손해 볼 일이 없죠."
"음,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로군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냥 지금처럼 주민들 굶어 죽을 거 같으면 신두나 사가라고 하세요. 주제에 농장은 무슨 농장이래요?"
"……."
"아니면 우리 정부에서 보증금 대납 해주실? 저야 손해 볼 거 없으니 좋습니다."
"……일단 북한에 조건은 전달하겠습니다."
북한이 오케이를 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동결한 자산을 쥐고 있는 미국, 유럽 등의 나라에서 승인을 받고 양도 받아야 하니까.
금지물자 거래에 엮인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질 것이고, 그것들을 해명해야 한다.
미국은 친하니까 흔쾌히 넘겨주겠지만, 수영그룹을 견제하는 경향이 있는 유럽은 까다롭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국정원에서는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마침내 연락이 왔다.
-북한에 메시지는 전달했는데, 그 뒤로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침묵 역시 대답이죠. 거절이란 대답."
-거절보다는 무기한 보류를 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모양입니다.
"무기한 보류가 결국 거절이잖아요."
-…….
"뭐, 신두 60 알이면 2,500만이 3개월은 버틸 수 있겠네요. 3개월이 지나면 또 뭔가 반응이 있을 겁니다."
-3개월 뒤에 북한은 무조건 또다시 추가 식량을 구매해야 합니다. 저희는 북한에 신두 외에 남은 식량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당 고위 간부와 가족들이 먹을 식량은 충분히 쌓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북한 전체로 볼 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봄에 파종을 해도 올해 9월 추수기까지는 버텨야 할 테니까요.
"제 의지는 굳건합니다. 해외비자금을 보증금으로 주는 겁니다. 누가 주든 상관은 없고요."
-……확실히 인지했습니다. 정부에서 리스크를 짊어질 순 없으니, 북한 농업 진출은 어렵겠군요.
수영농장의 진출을 통해 북한에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한다는 시나리오가 못내 안타까운 모양이다.
아무튼 북한과의 거래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신두 60억 알 판매, 리철만의 귀순, 농사 보증금의 무기한 보류로…….
***
한파가 끝나고, 갑자기 온도가 25도 이상으로 올라갔다.
아직 봄이 되려면 멀었지만, 식물들은 봄이 일찍 찾아온 줄 알고 부랴부랴 개화를 시작했다.
여의도에서는 늦겨울 벚꽃이 활짝피었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꿀벌들이 부지런하게 꽃들 사이를 누비며 꿀을 모았다.
"날씨가 진짜 미치긴 했나 봐. 아니, 3월 4월도 아닌데 무슨 벌써 벚꽃이 피어?"
"25도 넘는 기온이 며칠씩 이어지니까 식물들도 봄이구나 하고 깨어난 거지."
"올여름은 아주 길겠네. 우리나라에 이제 봄 같은 건 없잖아. 이거 3월부터 바로 여름이 시작되는 거 아니야?"
"끔찍하다. 에어컨 트려면 전기세 엄청 나오겠네."
"안 그래도 한전이 미쳐서 전기세자꾸 올린다고 해서 힘든데."
시민들은 부랴부랴 이른 벚꽃놀이를 즐기는 한편, 여름이 길어지면 전기세 때문에 고통이 커질 것을 염려했다.
그러나…….
「또다시 한파 예보입니다! 오늘 저녁 이후 최저 영하 8도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시 짧은 한파가 찾아왔다.
기껏 피었던 꽃들 입장에서는 며칠도 안 돼서 날벼락을 맞은 셈.
봄이 온 줄 알고 활짝 피어났던 꽃들은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떨어져 버렸다.
일주일 내내 이어진 한파는 모든 꽃들이 시들고 나서야 겨우 물러갔다.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한 해번식이 모조리 무위로 돌아가 버린 셈이다.
그리고 다시 봄 날씨가 시작되었지만, 어디에서도 봄꽃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번 꽃이 졌던 식물들은 더 이상 개화하지 않았다.
대신 소극적으로 잎사귀를 피워내며, 본 개체가 살기 위한 광합성에만 집중했다.
난리가 난 것은 꿀벌들이었다.
[전국의 양봉농가에서 속속들이 꿀벌의 떼죽음이 발발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꿀과 꽃가루를 채취하지 못해 벌들이 죽은 것인데요.]
-굶어 죽은 건 아니에요. 설탕물과 화분떡이 벌들의 먹이가 됩니다. 그냥 기온이 너무 왔다 갔다 하니까 이놈들이 온도 차이를 못 이기고 면역력이 약해져서 병들어 죽은 거예요.
[한편 기상청에서는 3월 초부터 낮기온이 30도 이상을 찍을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예측을 내놓고 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