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96화
255 장 한파 그리고 봄 (5)
그날 밤, 리철만은 악몽을 꾸었다.
북쪽 고향으로 돌아가서 나날이 앙상해져 가는 꿈이었다.
밥을 먹어도, 고기를 삼켜도, 모조리 토해내기만 했다.
혀가 북쪽에서 난 것들의 맛을 철저히 거부했다.
마치 펜타닐에 중독된 마약 환자가 약 없이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것처럼.
온몸에 남겨진 끔찍한 중독의 고통이 그를 비쩍 마른 앙상한 인간으로 만들어 나갔다.
아무것도 먹을 수도, 삼킬 수도, 소화할 수도 없는 몸이 돼버린 채 죽어가는 꿈을 꾸었다.
"흐어어억!"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난 리철만은 여기가 아직 한국이라는 것을, 해운대 펜션이라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말도 안 되는 꿈이라니……."
혀끝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것만 같다.
리철만은 얼른 옆에 놓인 물통을 들고 병째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북경기도 잣잎을 풀어서 만든 수영조리용수가 달콤한 촉촉함을 위장으로 넘긴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귀순할래요?
하수영의 그 말에 무심코 '네'라고 대답했다가 얼른 철회한 자신을 떠올렸다.
알고 있다.
그것은 진짜 실수가 아니라, 본심이 무심코 튀어나온 것임을.
본심을 철저히 닫아두지 못한 것을 실수라 할 수 있으리라.
오늘 하루 종일 먹었던 음식들의 맛을 떠올렸다.
마약을 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독한 끈적거림으로 자신을 사로잡았던 그 맛.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제 공화국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이 맛을 겪지 못하겠지.'
그것은 차라리 끔찍한 지옥이었다.
앞으로 평생을 상실감의 고통 속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배신할 수는 없다.
당의 충성스러운 간부가 겨우 음식 때문에 나라를 저버리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아침이 되자마자, 하수영은 지금까지는 밑준비에 불과했다는 듯이 거대한 시험을 준비했다.
"아침 식사로 청담동 풀코스를 준비했습니다."
"이, 이것은……!"
"이 테이블에, 우리 수영농장의 모든 맛이 담겨 있습니다."
길이가 10미터는 족히 넘는 직사각형 테이블 위에는 수많은 요리들이 놓여 있었다.
본래는 수십 명이 동시에 식사를 하기 위한 테이블.
하지만 지금은 오롯이 리철만 한 명만을 위해 음식을 올렸다.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식재료는 전부 빠짐없이 올라온 듯한 풍경이다.
식욕이 원활하지 않은 아침부터 대하기에는 부담스러운 풍경.
그러나 중독된 혀와 위장은, 만찬테이블을 시각에 담자마자 파블로프의 개처럼 군침을 흘려 버리기 시작한다.
리철만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샐러드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어제 먹었던 식재료들보다 더 많은 엘릭서를 듬뿍 친, 맛의 펜타닐이 미각세포를 사정없이 함락시키기 시작했다.
신의 권능인 엘릭서를 인간 치사량근처까지 아슬아슬하게 첨가해서 기른 식재료로 빚어낸 맛의 향연.
리철만의 영혼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어느덧 그는 정신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모든 음식을 조금씩이라도 먹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맛봤다.
접시 몇 개만 다 비워 버리면 다른 음식들은 맛조차 볼 수 없으니까.
모든 음식을 조금씩 맛봤고, 위장이 터질 때까지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배가 불러서 터질 것 같다.
식도로 음식물이 넘쳐서 역류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리철만은 식사를 멈출 수 없었다.
눈은 풀려 있고, 손끝은 벌벌 떨린다.
전형적인 중독자의 특징.
마약수사관이 지금 그를 봤다면, 음식에 정말 마약이 섞인 게 아닌지 의심했으리라.
"끄…… 억……!"
더 먹고 싶은데, 정말 더 먹고 싶은데, 더 이상 위장에 음식이 들어가지 않는다.
작디작은 위장이 원망스럽다.
차라리 폐 하나를 들어내고 그 공백만큼 위장을 늘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을 믿지 않지만, 지금은 신에게 절실히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배가 불러서 더 못 먹는군요. 그렇죠?"
그때, 천상에서 내려온 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 수영콜라가 소화를 도와줄 겁니다."
"……."
리철만은 흐릿한 정신으로 콜라를 받았다.
손에 쥐어지는 컵의 차가움이, 기묘한 끌림을 안겨준다.
"시판되지 않는, 지금 같은 특별한 만찬 자리에서 식음하기 위해 만든 콜라입니다."
다른 콜라보다 엘릭서의 농축성을 한껏 높인 특제 콜라.
"로마 귀족들은 맛을 계속 탐하기 위해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죠. 하지만 그런 천박하고 수고로운 짓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칼로리를 버리는 것은 죄악이죠."
리철만은 성수를 대하듯이 정중하게 콜라를 마셨다.
차가운 느낌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조금 전까지 위장을 차지하던 거북함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불룩한 배가 살짝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계속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충만하게 차올랐다.
기쁨이 넘쳐났고, 그는 다시 음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수영콜라를 중간중간 벌컥벌컥 마셔가며 음식을 탐하길 몇 시간.
기어이 리철만은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을 몽땅 먹고야 말았다.
"청담동 풀코스를 시식한 것은 리철만 씨가 처음입니다. 어땠나요?"
"제가…… 처음이었습니까?"
"그래요. 아직 누구에게도 대접하지 않은 청담동 풀코스입니다."
마약이나 다름없는 만찬.
상대를 아예 노예로 귀속시킬 게 아닌 이상, 지인에게 대접할 만한 음식이 못 된다.
빈 테이블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던 리철만은, 더 이상 공화국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졌다.
가족들을 모조리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대로 한국에 눌러앉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자신에게 깜짝놀라 혐오감을 느꼈다가도, 방금까지 몇 시간 동안 위장에 집어넣은 맛을 생각하면 다시금 행복해진다.
'내가 미쳤나. 미쳤어. 말도 안 돼. 어떻게 음식에 이런 힘이…….'
혹시 정말 마약을 넣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토록 선명한 정신은 무엇이란 말인가?
단지 자신은 수영농장의 맛에 사랑에 빠졌을 뿐, 절대로 미치거나 지능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철만아."
"예, 의원님."
갑작스러운 반말이지만, 리철만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어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기까지 한 느낌이다.
"복스럽게 참 잘 먹는구나."
"감사합니다."
"개성사업권 같은 개소리 때문에 첫인상은 좀 그랬는데, 사실 그게 로동당 뜻이지 네 뜻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달라진다."
"제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억지였습니다. 왜 의원님께 그런 허접한 카드를 제시하는지, 저도 이해가 안갔습니다."
"역시. 너도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구나?"
"개성공단 무단폐지로 이미 크게 신뢰를 잃었는데, 제가 의원님이라도 다시 들어오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귀순할래?"
리철만은 곧바로 '네'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가족들이 눈에 밟혔다.
마음은 이미 한국에 뿌리를 내린 상황이지만, 그럼 가족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금수만도 못한 여생에 시달려야 한다.
'나는, 나는……!'
미칠 듯한 양심의 가책을 천천히 비웃으며 무너뜨릴 정도로, 청담동풀코스가 주는 중독성은 강력했다.
마약에 미치면 가족이고 본인이고 간에 다 무너뜨리고 마는 것처럼.
이것은 리철만이 사악해서도 아니고, 나약해서도 아니다.
엘릭서 식재료가 빚어낸 맛의 중독성이 너무나 강력했을 뿐이다.
"일단 북한으로 돌아가서, 가족들 데리고 조용히 빠져나와라. 그럼 받아주고, 보호도 해주마."
"예?"
순간 리철만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하수영을 바라봤다.
인자하기 그지없는 미소는 그저 한없이 눈부시기만 했다.
"내려오면 내 지역구에서 정치나 해, 이제 슬슬 시의회나 여의도에도 사람 좀 꽂으려고 하는데, 쓸 만한 사람이 없다."
"제가 정치를 말입니까?"
39호실에서 비자금만 굴려봤던 리철만은 다소 당황했다.
"공화국 출신이 어떻게 귀순해서 정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밀어주면 할 수 있어. 내 지역구 지지자들은 내 말이라면 무조건 따른다."
***
리철만은 모든 일정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일주일 후, 리철만은 가족들을 데리고 중국을 거쳐 밀항선을 통해 다시 한국으로 조용히 귀순했다.
한국에서는 리철만의 귀순을 비밀에 부쳤다.
이미 하수영과 사전교감이 있었던 때문이었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리철만은 한국땅을 밟자마자 곧바로 음식부터 찾았다.
중독 환자가 마약을 탐닉하듯이, 그는 정신없이 수영농장 음식을 먹어치우고서야 겨우 평온을 되찾았다.
"의원님, 지시하신 대로 제가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잘 왔다. 일단 네 처소를 준비해 놨다. 거기로 가자고."
리철만과 가족들은 보안이 철저한 청담동 고급빌라 한 채를 거주지로 받았다.
"세는 받지 않으마. 너와 네 배우자 모두가 죽을 때까지 머물러도 좋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좋은 집을 내주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짜식. 내가 책임진다고 했잖냐."
한참 어린 그가 하대를 하는 것에 조금도 불편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리철만은 이미 하수영을 평생 모셔야 할 주인이자 주군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가족들 또한 하수영을 그렇게 인지했다.
"의원님, 약소하지만 제가 빈손으로 내려오기는 뭣해서 가벼운 선물을 하나 진상하고자 들고 왔습니다만……."
"뭔데?"
"제가 관리하던 김씨일가 해외 비자금입니다. 전부 다 들고 왔으니, 지금쯤 39호실은 난리가 났을 겁니다."
난리가 난 정도가 아니라, 39호실 자체가 없어졌을 수도 있다.
독재군주의 분노를 풀어야 할 테니 대대적인 숙청도 뒤따랐으리라.
하지만 하수영은 그 점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얼마나 되지?"
"32억 달러입니다. 미국과 유엔도 아직까지 눈치채지 못한 비밀비자금입니다."
"정말 얼마 안 되는구나."
"전액 안전한 조세회피처 페이퍼컴퍼니에 분산돼서 들어 있습니다. 의원님께 바치겠습니다. 받아주십시오."
"나는 조세회피처 같은 건 안 쓰니까, 들키지 않게 천천히 수영사채에 입금해라."
"예, 알겠습니다."
물론 리철만이 개인적으로 꿀꺽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큰돈을 지킬 힘이 없었다.
정당하게 벌어들인 자신의 돈이라면 상관없겠으나, 전 주인이자 독재자의 비밀재산 아닌가.
분노한 김씨 왕조에서 암살조를 보내 자신과 가족들을 죽이려 할 수도 있으니, 하수영에게 미리 바치고 보호를 받아야 한다.
***
국정원으로서는 입이 떡 벌어지는 일이었다.
하수영은 리철만과 분명히 처음 만났다.
하지만 식도락 패키지에서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리철만이 가족들까지 몽땅 데리고 귀순을 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미국도 찾아내지 못한 김씨왕조의 해외 비자금까지 찾아들고서.
"의원님, 대체 어떻게 그자를 회유하신 겁니까?"
"어떻게 회유했냐뇨. 그건 숨 쉬는 것보다 더 쉬운 건데요. 그보다는 왜 회유했냐고 먼저 묻는 게 더 생산성이 있을 텐데요."
"그럼…… 왜 회유를 하신 겁니까?"
"처음에는 중독만 시키고 돌려보내서 고통스럽게 살게 하려고 했는데, 참 복스럽게 먹는 모습 보니까 갑자기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그리고 39호실 출신이니까 꽤 쓸만할 거고요. 그래서 회유했습니다."
"회유는 그럼 어떻게……."
"밥에 약 좀 탔어요. 말 잘 듣게 하는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