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095화 (1,095/1,270)

프랜차이즈 갓 1095화

255장 한파 그리고 봄 (4)

'네가 한국에서 무엇을 먹든, 무조건 수영농장의 입김이 닿아 있다.'

'설령 수입산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국내 식료품 유통업체들은 모두 수영농장의 하청업체나 마찬가지다.'

한국인이라면 공감하는 말이다.

거지부터 재벌 회장까지, 한국에서 끼니를 해결하려면 수영농장의 그늘을 절대로 피할 수 없다.

무엇을 먹어도, 어디를 가더라도, 반드시 수영농장의 손이 닿게 된다.

수영농장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은 기본적으로 중독성이 강하다.

마약이나 담배, 알콜 같은 해로운 종류의 중독성은 아니다.

한 번 무선전화를 쓰면 유선전화로 못 돌아가듯이.

한 번 스마트폰을 쓰면 피처폰으로 못 돌아가듯이.

한 번 100인치 티비를 쓰면 86인 치로 못 돌아가듯이.

상승된 품질을 누렸기에 그 밑의 품질로 돌아가면 적응하기 어려운, 그런 종류의 중독성이다.

즉,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맛의 역치가 아주 높이 올라가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참다랑어 참치캔, 라면, 신두, 기타 등등…….

그렇다 보니 해외여행을 나가면, 먹는 문제를 가지고 괴로움을 누리게 되었다.

"맛있어. 맛있긴 한데…… 뭔가 아쉬워."

"그냥 별로야. 역시 한국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거 같아."

"이상하다. 재작년에 왔을 땐 여기 음식이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우리가 수영농장 식품에 혀가 너무 길들어졌나?"

"수영농장 식품이 최고긴 하지. 다른 나라들은 절대로 못 따라와."

이렇다 보니 음식 때문에 해외 이민을 주저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해외로 장기출장을 나갈 때, 한국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나가는 풍습도 생겼다.

자식들을 유학 보낸 부유층은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자녀들을 위해서 식료품을 보내는 문제로 매번 골머리를 썩였다.

반찬류는 금지품목이나 제한품목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인이 많은 양을 보내려면 그만큼 비용과 수고가 많이 들어갔다.

이렇다 보니 끼니를 그냥 나노소프트 수영라면 매장에서 해결하는 유학생들도 늘어났다.

"한국에서 먹고 싸고 했을 땐 몰랐는데, 해외 나와 보니 한국 음식이, 아니 수영농장 식품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알게 되네."

"음식 때문에라도 외국에서는 도저히 못 살겠어. 그냥 수영농장이 여기 마트에도 진출하면 안 되나?"

"미국하고 일본은 그나마 낫지. 수영레스토랑이나 고리야마 스시로 가면 되잖아. 여기 영국은 답도 없어, 답도."

"맨날 수영농장 음식만 먹다가 영국 음식 먹으려면 더 격렬하게 힘들긴 하겠다."

해외 체류를 오래 하다 보면 결국 현지 음식에 익숙해지기는 한다.

하지만 인내심이 튼튼해지는 것만큼, 그리움은 더욱 깊어진다.

"먹고 싶다. 수영농장에서 수확한 쌀로 만든 밥에 수영농장 김치, 고추, 상추와 수영목장에서 만든 삼겹살을 구워서 쌈 싸서 먹고 싶다……."

***

리철만은 북한 토박이로서 평양과 함경도 음식에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식도락 패키지가 유명하다는 것은 알지만, 많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30첩 한정식을 받아 보시죠. 모두 우리 농장에서 수확한 농작물로 만들었습니다."

"오, 보기만 해도 아주 맛있어 보입니다."

처음으로 받은 메뉴는 정갈하면서도 다양한 반찬이 모인 한정식.

하나같이 다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리철만은 그중에서 유독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목살구이에 젓가락을 뻗었다.

"……!"

고기가 씹히며 혀 위에서 사정없이 터지는 맛의 폭발에 그는 순간 흠칫했다.

'이게 돼지고기라고?'

무언가 달랐다.

고향에서 먹어온 돼지고기와 기본 결만 같이할 뿐, 그 깊이와 농축성은 차원이 달랐다.

이게 진짜 돼지고기라고 부르르 떨리는 젓가락이 다음 음식을 집었다.

버섯, 가지, 양념불고기를 얇은 무로 둘러싼 쌈 반찬이었다.

오도독, 씹는 순간 좀 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깊이의 맛이 터져 나왔다.

씹어 먹을수록 거듭해서 맛의 육즙이 흘러나온다.

된장국은 또 어떤가.

구수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세련된 향미가 미묘하게 배여 있어, 삼킬수록 위장이 더욱 애타게 부르짖는다.

정신없이 식사를 끝마쳤다.

수십 가지가 넘는 반찬 그릇은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이 비어 있었다.

리철만은 자신이 이렇게 많이 먹었다는 것에 놀랐고.

먹는 내내 다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에 또 놀랐다.

외교관에게 있어 식사란 소통과 협상을 이어 나가는 배경 무대일 뿐이다.

그런데 자신은 임무를 도외시하고, 오로지 맛을 탐닉하는 데만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아…… 정말이지 놀라운 맛입니다! 제 본분을 잊고 정신없이 수저를 들기 바빴습니다. 참으로 민망합니다."

뒤늦게 체면을 이어 나가기 위해 리철만은 표정을 관리했다.

이왕 이리된 거, 하수영이 준비한 음식이 그만큼 기가 막혔다는 칭찬공세로 밀고 나가자.

"평소보다 '비료를 듬뿍'써서 기른 농작물로 만든 음식입니다. '향신료'도 아주 듬뿍 넣었지요."

"향신료 맛 같은 것은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연 그대로의 풍미를 살리면서도 적절한 자극으로 미각세포를 흥분시키는 맛이었습니다."

"엘릭서 고춧가루라고, 우리 농장특제 향신료가 있습니다. 무공해 고추를 갈아서 만든 것이니만큼 건강에는 아주 좋습니다."

리철만이 지금 받은 한정식 한 상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먹어보지 못한 '압축된 수영농장 맛'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작물한테 엘릭서도 정량보다 많이 처먹였고, 엘릭서 고춧가루도 듬뿍썼다.

소비자들이 접하는 맛이 1이라고 치면, 이것은 5 정도쯤은 되는 농축맛을 자랑한다.

'아슬아슬하게 죽지 않을 정도까지만 중독시켜 주지.'

맛이 좋다고 사람이 죽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엘릭서 식료품은 맛의 레벨을 올리는 것으로 치사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법의학자들 입장에서는 미치는 일이 된다.

독극물은 전혀 검출되지 않는데, 먹으면 사람이 죽어 나갈 테니.

'치사량 턱밑에 밀어 넣는 건 최후의 만찬으로 잡으면 되겠어.'

하수영은 사정없이 흔들리는 리철만의 동공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

'지금 반응을 보면 최후의 만찬까지 가기도 전에 굴종하겠네. 그래도 기왕 준비한 세리머니는 멋지게 터뜨려야지.'

"아무튼, 음식이 입에 맞으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최고의 요리였습니다. 미셸린 별 3개 레스토랑 따위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별 3개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죠. 별 3개 요리사들이 이 식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든다면, 더 좋은 맛이 나지 않을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점심 식사를 식도락 패키지 1차 코스로 대접받은 리철만은 머릿속이 깨끗하게 초기화되었다.

자신이 서울을 방문한 목적이 무엇인지, 식도락 패키지에서 하수영을 상대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모든 게 씻어 내려갔다.

그저 저녁에는 또 무슨 요리가 나올 것인지, 그런 두근거림만이 뇌주름 사이사이에 흘러넘치고 있을 뿐이었다.

***

고대하던 저녁이 되었다.

"오늘 석찬의 컨셉은 바다의 축복입니다."

식탁은 온통 생선요리로 가득 차 있었다.

어림잡아도 7할은 생선이요, 나머지 3할은 각종 나물이었다.

'난 생선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리철만은 생선요리를 선호하지 않는 입맛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생선 대란으로 평양 부유층이 뒤집혔어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테이블 중앙에 놓인 큼지막한 참돔구이가 형언할 수 없는 마력을 풍긴다.

예전에는 거북해했을 구운 생선 향기가 미치도록 향기롭게 자신을 잡아당긴다.

바삭하면서도 노릇노릇한 도미 껍질 속에 언뜻 비치는 속살이 이렇게 외치는 것만 같다.

이리 와. 날 먹어 줘. 그리고 미쳐버려.

리철만은 정신없이 젓가락을 뻗었다.

먹고, 먹고, 또 먹고, 그리고 삼켰다.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음식들을 입안으로 쓸어 넣었다. 주워 담았다. 위장으로 사정없이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고등어 한 마리 구하지 못해 난리인 평양 부유층 시민들이 이런 모습을 봤다면, 아마 부러워서 미치려고 했으리라.

하지만 지금 리철만의 머릿속에는 그런 속물스러운 우월감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혀끝으로 사정없이 맛을 폭격하는, 바다에서 온 선물들의 카리스마에 그저 굴종할 뿐.

"수영농장산 쌀로 빚은 소주도 즐겨 보시죠. 생선요리와 아주 잘 어울릴 겁니다."

평양소주, 개성고려인삼술, 백두산더덕들쭉술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천상의 맛이 혀에 묻었다.

잘게 씹힌 생선의 살점과 알코올이 섞이면서, 기절할 듯한 쾌락의 맛을 식도로 무자비하게 넘겨 버리기 시작한다.

'내가 왜 그따위 술들을 지금까지 최고라고 고집을 부렸을까?'

리철만은 정신없이 먹고, 마셨다.

어느덧 한 병이 다 비워진 순간, 리철만은 정신이 아주 조금 맑아지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공화국으로 돌아가면 이제 더는 이 음식들을 먹을 수 없겠지?'

리철만은 그런 생각을 떠올린 자신에게 깜짝 놀랐으며, 충성심이 흔들리는 거냐고 질책했고, 출국일이 머지않았다는 것에 급격히 우울해졌다.

"자자, 한 병 더 드시죠."

그 우울함을 잊기 위해 리철만은하수영이 따라주는 소주를 거침없이 마셨다.

달고, 달고, 미칠 듯이 달아서, 그래서 오히려 쓴맛이 속에 우러난다.

식도락 패키지는 1박 2일.

내일도 술을 먹을 순 없으니, 이 술은 오늘이 마지막이리라.

그런 예고된 상실감이 미친 듯한 쓴맛을 떠올리게 하며, 단맛을 오히려 더욱 증폭시키고 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들어간다.

마치 음식에 강력한 소화제라도 탄것처럼.

이미 말도 안 되는 양을 비웠는데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우리 수영목장이 자랑하는, 최고급 프리미엄 송아지 스테이크입니다. 단언하건대, 지금 이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는 지구상에서 가장 맛있는 소고기 스테이크일 겁니다."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흐릿한 눈빛이지만, 그저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생김새만으로도 저 스테이크는 사정없는 맛의 거대함을 담고 있었다.

아니, 저것은 스테이크의 모양을 한 핵폭탄이었다.

'우리 공화국의 보물, 불벼락폭탄…….'

리철만은 홀린 듯이 포크를 뻗어 스테이크를 쿡 찔러서 들어 올렸다.

잘게 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큼지막한 덩어리를 입으로 물어뜯었다.

"스테이크에는 포도주죠. 우리 수영농장 본장에서 극소량으로 키운 포도로 빚은 이 술이 잘 어울릴 겁니다."

아까의 소주와는 다른, 세련되면서도 우아한 맛의 폭격이 이어졌다.

스테이크가 핵폭탄이라면, 포도주는 지구 어디든 내리꽂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아스파라거스는 유도를 맡은 인공위성, 으깬 감자와 구운 양파는 공화국의 최종병기를 만드는 데 들어간 인민들의 피와 땀이리라.

그것들의 조합은 리철만의 입안을 사정없이 초토화시켰다.

모든 게 쓸려 나갔다. 깨끗하게 밀려 나갔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맛의 후폭풍이 다시금 밀려오며 그의 영혼을 무너뜨렸다.

바로 그때였다.

"귀순할래요?"

"네. 아, 아니. 실수입니다, 실수!"

"잘 버티네요. 보람이 있어요. 내일 최후의 만찬을 즐겨 봅시다."

엘릭서가 빚어낸 치사량에 근접한 맛의 폭격은, 리철만의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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