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93화
255장 한파 그리고 봄 (2)
래플식 마진.
설명대로라면 되는 데까지 쥐어짜내서 마진을 붙이겠다는 뜻이 아닌가.
그럼 문제다.
지금 신두의 시중거래 가격은 대단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가격으로 이런 칼로리를?'
이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으니.
여기에 섭취와 보관, 유통의 편의 성, 간편성 등까지 고려하면, 신두판매 가격은 진짜 매우 싼 것이다.
국정원 직원과 동행한 중앙정부 공무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의원님. 그렇다면 한 알당가격을 얼마나 하시겠다는 뜻인지……."
"1,000l짜리를 기준으로 한 알에 9,500원은 받아야겠습니다."
"헉, 9,500원이나요!"
소매가가 3,000원인 물건이 순식간에 세 배 이상으로 뛰어버렸다.
"간편하게 한 끼가 해결되는 식료품인데 9,500원은 매우 싼 거죠. 솔직히 지금 파는 가격도 제가 밑지다시피 해서 파는 겁니다. 한 알에 3,000원 받아봐야 얼마 남지도 않아요. 한 알 팔 때마다 한 200원이나 남으려나 모르겠네."
"거래 목적을 공개하지 않으면 마진을 듬뿍 붙이겠다는 뜻입니까?"
국정원 요원이 굳은 얼굴로 물었고,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뭔가 찝찝한 거래에 휘말릴 거 같으니, 최대한 마진을 땅겨야 하지 않겠어요? 저, 이래 봬도 장사치입니다."
"……."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전 뭐 그까짓 60억 알쯤 안 팔아도 돼요."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국정원 중년 남자가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북한으로 넘어갈 물량입니다."
"역시. 그런데 대북 제재…… 아, 어차피 먹을 거니까 상관은 없겠네요."
"네, 괜찮습니다."
"그렇다 치고, 그럼 결제는 누가 하는 건가요?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
"……."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둘 다 말이 없자 하수영은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후불거래? 북한에들어가는 건데?"
"……."
"설마 외상거래인 건 아니겠죠? 물건은 지금 주고 돈은 나중에 한참 뒤에 받는?"
"……."
"잠깐만. 혹시 돈 내는 게 국정원이나 정부가 아니고, 북한인가요? 북한에서 나중에 돈 줄 테니 신두부터 달라고 한 겁니까?"
그러자 국정원 중년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요즘 북한이 미사일 발사가 잦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뻥카 한두 번 치는 거 아니잖아요. 그 친구들."
"이번엔 뻥카가 아니라 심각하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은 지금 극도의 궁지에 몰려 있어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강도입니다."
"개미가 철책 넘어간 거 터지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부터 죽는소리…… 아니, 이건 됐고요."
"예?"
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지만, 하수영은 넘어가자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근데 원래 대북지원이라면 질색을 하지 않았어요?"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걸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북한 정권은 정말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당장 식량이 조달되지 않으면 나라 자체가 붕괴할 지경입니다."
국정원 중년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럼 북한은 절대로 혼자 죽지 않으려 할 겁니다."
"흐음."
"저희가 우려하는 것은 이판사판 궁지에 몰린 북한에서 남한으로 핵미사일과 생화학 미사일을 일제히 발사하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설마…… 아니지. 원래 설마가 역사를 잡고 혹시가 변곡점을 비트는 법이죠. 나라가 망해 버리면 뭐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어요."
아직까지 북한은 한 번도 나라가 '진짜 망하는' 상황에 처한 적이 없다.
가난하고, 위태롭긴 했어도 어찌어찌 체제는 꾸려갔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정말 북한이 당장 붕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것은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추진하는 일이 아닙니다. 북한의 '묻지마 핵범죄'를 막기 위해 중국과 미국도 적극적으로 협의를 거친 사항입니다."
"중국과 미국까지?"
"네, 그러니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한 정보를 공개한 탓인지, 국정원 중년 남자의 얼굴에 거북한 긴장감이 떠올라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한·미·중 3국이 힘을 합쳐서 북한의 미드오픈핵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거로군요."
순간 둘은 미드오픈핵이 뭔가 싶었지만, 대화 문맥상 어림짐작하고 넘어갔다.
하수영이 좀 더 진지한 자세로 물었다.
"다시 아까로 돌아가서, 그럼 결제는 누가, 어떻게 하는 겁니까?"
"북한의 소유로 의심되는 해외 동결 자산을 압류하여 차감하는 식으로 결제하는 방안이 처음에 거론되었습니다만……."
"북한이 거품을 물었나 보군요."
"네. 동결이 아니라 아예 압류를 해버리면 자본주의 질서를 미국 스스로 어기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 방법은 일단 뒤로 밀려났습니다."
범죄자의 자산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뺏으면 당장은 속이 시원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박수를 쳤던 사람들조차 나중에는 찜찜해져서 멀리하게 된다.
어느 국가가 국가부채를 갚는다는 이유로 국민들의 예금을 일방적으로 압류한 뒤, 저금에 대한 신뢰도가 비가역적으로 바닥을 친 것처럼.
미국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리스크다.
동결만 해놔도 충분한데, 뭐하러?
"금액의 50%는 한·미·중 3개국이 공동 각출하여 먼저 지급할 겁니다. 나머지 50%는……."
"북한이 내려고 하지는 않을 테고, 나중에 한·미·중 상황 좋아지면 준다는 건가요?"
누구나 떠올릴 상식적인 판단.
하지만 국정원 중년 남자의 표정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닙니다. 북한이 지불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북한이?"
'북한이?'도 아니고 '그 북한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북한의 지불 능력을 절대로 신뢰할 수 없다는 의미다.
"걔들이 달러가 남아나진 않을 테고, 무역 제재 때문에 거래할 만한 현물도 없을 테고, 대체 뭐로 지불을요? 설마 북한산 송이 같은 걸 준다는 건 아닐 테죠?"
"설마 수영농장 오너한테 농작물로 대금을 치르려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 뭐로 지불을 한다는 거죠?"
"개성입니다."
국정원 중년 남자는 천하의 하수영도 소스라치게 놀란 모습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했다.
상부에서 북한이 이런 딜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신도 엄청나게 놀랐었으니까.
그런데…….
"아, 개성공단이 지금 멈춰 있으니까 나더러 들어오라는 거? 주변에 목축지나 땅도 줄 테니까 곡물과 고기 생산해서 식료품 가공업체를 만들어서 수출하면 대북제재하고도 상관없으니 서로가 좋은 거 아니겠냐, 뭐 그런?"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개성이라고 하면 줄 만한 게 그런 것뿐이잖아요. 아무튼."
갑자기 하수영이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요원님 같으면 한 번 폐쇄했던 공단 지역에 다시 들어가겠어요? 포탄 낙하 지점도 아니고, 한 번 문 닫았으면 열 번 스무 번 닫는 것은 더 쉬울 텐데?"
포탄이 한 번 떨어진 지점에 다시 떨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
그래서 2차대전 포격전이나 참호전에서는 포탄이 만든 크레이터로 급히 이동을 하곤 했다.
현대 화력전에서는 의미가 없어졌지만, 하수영은 그걸 들어서 비꼬는 것이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한·미·중이 공동으로 보증을 설 겁니다. 북한의 묻지마 핵범죄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게 3개국의 확고한 의사입니다."
"혼자 죽기 외로우니 다 죽자고 핵…… 충분히 그럴 친구들이긴 하죠."
"수영농장 입장에서도 결코 남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에 가진 자산이 많으시니만큼 남들보다 훨씬 치명적이죠."
"누가 그래요? 제가 한국에 자산이 많다고?"
"자산의 대부분이 한국에 있으니만큼……."
"청담동부터 시작해서 부동산 다 합쳐봐야 얼마 안 됩니다. 수영사채 예금이요? 그거 죄다 달러라서 실제로는 미국 환계좌에 들어있어요."
"반도체 공장이……."
"그거야 설비 다시 찍어내서 공장돌리면 그만이니 별 상관없는데. 기술 자체가 가치 있는 거지 공장은 복붙하면 그만입니다."
"농장에 있는 그 많은 로봇들이……."
"농장이야 새로 만들면 되고, 로봇도 부품 죄다 미국에서 사와서 조립하는 거라 또 만들면 돼요. 한국에 핵 맞아도 1년이면 그 이상으로 미국에서 사업체 모두 복구할 수 있어요."
"……."
국정원 중년 남자는 더 이상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 어떤 자산가들이 한국에 핵 떨어지는 상황에 저리 태연할 수 있을까.
자산의 기반이 한국이기에, 누구보다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수영은 한국 자산 잃는 게 별거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다.
"제가 우리나라 핵 맞아도 된다, 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래 봬도 나름 애국자입니다."
"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핵 맞으면 너도 큰 손해 보지 않느냐, 라는 건 이야기가 다르죠. 그건 저한테 아무 감흥이 없거든요."
"무슨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하수영은 턱을 잠시 매만지다가 특던지듯이 말했다.
"사실 제 입장에서 북한은 어찌 되든 알 바 아닌 곳입니다."
중앙기관 공무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만 명이 넘는 아사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인데, 조금이라도 마음이 쓰이지 않으신 겁니까? 아, 절대로 비난하거나 트집을 잡을 의도는 없습니다."
중앙정부 공무원이 무심코 질문을 하다가 얼른 변명처럼 덧붙였다.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하고 상관없는 나라인데요. 저는 제 직원, 제 이웃, 수백만 농어 민, 제 부하들과 그 가족들을 챙기는 것만 해도 바쁜 사람입니다."
"……."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충분히 처지가 안 좋은 사람들을 많이 챙긴다고 자부하고 있는데요. 개인 자격으로 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케어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또 있나요?"
"죄송합니다. 절대로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두 메신저는 결국 하수영이 확실한 결제를 요구한다고 판단했다.
"저희가 거래 목적을 공개했으니, 그럼 당연히 가격은……."
"1,000짜리 1알에 9,500원, 개성카드 따위를 생각하면서 헤벌쭉 웃어댔을 로동당 배불뚝이들한테 그 정도는 받아야겠어요."
"의, 의원님!"
"570억 달러밖에 안 되는데 한·미·중 세 나라가 삼시일반하면 설마 그 돈 하나 못 만들겠어요? 285억 달러 먼저 주고, 나머지는 반년 안으로 주셔도 괜찮아요."
사실 한국 정부가 가장 원했던 전개는 수영농장이 북한이 진출하고, 개성공단을 식료품 공단으로 개조해서 풀가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북한의 '다죽자 핵공격'을 확실하게 막을 수 있다고 봤다.
이제 예전처럼 돈 적당히 주면 국지전 시늉 일으켜주던 북한이 아니었다.
북한의 식량난은 고난의 행군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했고, '다죽자 핵공격'은 실체적인 위협으로 다가왔으니.
'미국은 그냥 돈 주고 끝내자고 했다는데. 차라리 처음부터 그렇게 제안했으면 돈이라도 아낄 수 있었을까?'
미리 준비했던 수십 가지의 전개와 시나리오, 변명들이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쓰레기통에 처박히게 생겼다.
그런데 하수영이 톤을 바꿔 다시 말했다.
"지금 북한 특사 와 있나요? 한번 직접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