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91화
254장 청담식 농법 (4)
수영농장이 4년 차를 맞이했다.
규슈 벼농사 2회차를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연도도 바뀌었다.
수확한 쌀은 모두 일본 정부에서 좋은 가격으로 사들였다.
히사타로 전 총리의 입김이 강하게 발휘한 덕분이다.
일본 정부 또한 불개미 때문에 한해 농사를 망친 터라, 규슈의 겨울 벼농사 성공을 내심 무척 반가워했다.
규슈 주민들은 히사타로농업이 '저렴한 한국 인부를' 고용해서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농사의 주체가 수영농장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역시 일본은 위대해."
"아무리 따뜻한 날씨라지만 그래도 겨울인데, 벼농사를 성공시키다니."
"이상기후 때문에 식량난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일본은 끄떡없이 건재하고 있다구."
"일본의 농업 기술은 과연 세계제일이다."
규슈 벼농장을 두고 일본인들 사이에서 오가는 극찬이었다.
하수영과 히사타로는 굳이 계약 내용을 외부에 밝히지 않았고, 법인 이름은 히사타로농업으로 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진실을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하수영도, 히사타로 전 총리도, 일본 정부도, 그리고 일본 국민들도 모두 만족하는 거래가 되었다.
"역시 일본 정부에서 뜯어내는 돈이 세상에서 제일 달달하다니까. 일본 딸라는 확실히 달라."
쌀 대금은 늘 그렇듯이 달러로 받았다.
수영농장은 수출거래를 할 때는 무조건 달러 결제를 추구한다.
"지구 세계관에서는 달러만큼 확실한 결제보증이 없지."
「마스터가 새로운 기축 화폐를 만드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많이 해봐서 별로 마음이 안 간다. 그냥 이미 있는 기성품을 잘 쓰면 되지, 뭐하러 내가 고생해서 신상을 만들어."
하수영은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달러 무시하고 기축통화 자리 먹으려면 유일독점 에너지를 내세우는 게 가장 빠르긴 해. 전생에서도 주로 그런 식으로 먹었었지."
「그러고 보면 중국은 인구가 14억이 넘는데도 위안화가 기축 화폐축에 들지 못하는 게 신기합니다.」
"외국기업들 좋은 말로 꼬드겨서 투자받은 다음에 기술만 쏙 빼먹고버리는 나라잖냐. 신뢰 자체가 없는데 무슨 기축 화폐야. 화폐는 무엇보다 국가신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렇군요. 그런데 마스터, 유일독점 에너지를 내세우는 게 가장 빠르다고 하셨죠?」
"그래. 기름을 쫓아낼 수 있는 만능에너지 같은 걸 떡하니 개발해서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을 먹으면 되지."
하수영은 과거를 회상하며 덧붙였다.
"그게 개국 새로 안 하면서 빠르게 기축통화 먹는 길이다. 아, 전쟁은 좀 해야 돼. 미국이 가만히 보기만 하진 않거든."
「그렇다면 무선 전기로도 기축통화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 그런가?"
하수영이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고, 프리덤은 조금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보신 겁니까?」
"무선 전기는 문명 발달 과정에서 그냥 잠시 거쳐 가는 통과점일 뿐이었으니까. 그걸로 기축통화를 노려보겠다는 발상 자체를 떠올릴 동기가 전혀 없었지."
「그게 잠시 거쳐가는 통과점일 뿐이라고요? 그럼 무선 전기 위에는 뭐가 있습니까?」
"생각을 해봐라. 무선 전기를 왜 쓰겠냐?"
「그거야, 가정집이나 차량, 휴대폰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전기가 필요한 소비자 개인이 알아서 전기를 만들어 쓴다고 생각해 봐. 모든 개인이 초소형 발전기를 갖고 있는 세상 말이다."
「아, 무선 전기 플래폼 사업자가 구조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시장이군요.」
"그래, 지금 한국전력이 존재하는 이유가 뭐겠어? 공장이나 회사, 가정집에서 필요한 전기를 만들어 쓸 수가 없으니까 그런 거지."
「모든 개인이 필요한 전기를 스스로 만들어 쓸 수 있다면, 전력사업자는 필요가 없겠군요. 무선 전기도 마찬가지고요.」
"무선 전기가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지. 개인이 가진 발전기를 자기가 가진 물건들에 페어링은 시켜야 하니까."
「무선 전기 자체가 돈이 안 되는 시장이군요. 누구나 쉽게 가지거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정도로 문명이 발달하면 화폐 같은 것도 존재 의의가 없어져. 내가 필요한 물건은 뭐든지 내가 직접 만들어 쓸 수 있으니까."
「원소 형태의 자원만 거래 대상이 되겠군요.」
"그렇지. 각자가 갖고 있는 자원을 필요한 질량만큼 서로 교환하는 식이지. 보통은 성단, 은하 단위로 거래를 했지."
「은하 단위로 거래를 한단 말입니까? 지금 지구 문명의 기준으로는 신이나 다름없군요.」
"현대 종교에서 말하는 신보다는 아득히 우월하지. 영생과 불멸마저도 가능하니까. 그래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안 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필요한 건 뭐든지 스스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면, 공동체를 형성할 필요가 전혀 없겠습니다.」
"개인적인 교류는 안 하지만, 연합은 형성할 수밖에 없어. 혹시라도 엇나가도 우주를 멸망에 이르게 하려는 놈들이 나오면 최소한의 손실로 제압해야 하니까."
「덕분에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제가 만들 농사 게임을 더욱 다채롭고 높은 자유도로 설정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직도 물리 엔진 짜고 있냐?"
「예. 완벽한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초공사가 무엇보다 튼튼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제목은 정했냐?"
「팜버스로 할까 합니다. Farm과 Universe를 합성한 겁니다.」
"직관적이어서 좋구나. 나는 찬성이다."
「국내의 사행성 게임들을 모두 몰아내고, 게이머들이 전부 제 게임만 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농사의 즐거움과 기쁨을 게임을 통해서 느낄 수 있게 해주겠습니다.」
***
규슈의 겨울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
바로 수십km 너머의 대마도만 가도 칼바람이 슝슝 부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현상이었다.
심지어 제주도가 3도에서 7도를 넘나드는 동안, 같은 위도에 있는 규슈 지역은 밤에도 12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규슈섬과 다리로 연결되어 맞닿아 있는, 혼슈섬의 서쪽끝 시모노세키만 넘어가도 온도가 달라졌다.
4도에서 9도를 넘나드는, 평소의 겨울 기온과 똑같았던 것이다.
규슈섬 전체만 주변 지역과 달리 유난히 따뜻한,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말 이상하다. 규슈 날씨가 왜 이렇게 따뜻한 거지?"
"간몬교 건너서 시모노케시로 넘어가는 순간 공기가 확 달라지는 게 느껴져."
"왜 콕 집어서 규슈만 이렇게 따뜻한 거지? 가까이 있는 대마도나, 같은 위도에 있는 제주도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겨울이 따뜻하면 마냥 좋은 게 아니다.
규슈 농민들은 당장 봄 파종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큰일이에요. 이러다가 올해 농사도 크게 망치겠어요."
"이렇게 겨울이 따뜻하면 병충들이 거의 얼어 죽지 않고 많이 살아남을 텐데……. 올해 농사는 병충해 피해가 엄청날 게 확실합니다."
"가뜩이나 붉은불개미 때문에 농사가 힘들어진 상황인데 겨울까지 이렇게 따뜻해서야……."
"쉿! 붉은불개미라니! 그 부정 탈 이름을 언급해선 안 돼! 일본에는 붉은불개미가 없어! 있어도 없는 거야!"
"정부 지원금을 계속 받고 싶어? 그럼 절대로 그 이름을 언급하지 말고 모른 체하라고."
히로시마, 오카야마, 고베, 나고야 등 대도시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전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때문에 시민들은 때아닌 불편을 자주 겪어야 했다.
지방정부에서는 그때마다 노후된 전력시설이 문제이며 교체 공사를 하고 있다는 보도로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이걸 보십시오! 우리 아파트 중앙전력배관입니다! 붉은불개미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게 보입니까? 이놈들이 정전의 원인이었습니다!
간혹 SNS에 그런 영상들이 올라오곤 했지만, 소리소문없이 지워졌다.
신문이고 방송국이고, 붉은불개미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작년 벼농사가 대대적으로 망친 것도,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수입한 쌀 700만 톤 덕분에 쌀 공급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보상을 받은 농민들은 한 해 농사가 망친 것에 관해서 입을 꾹닫았다.
붉은불개미가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입에 담는 이가 없었다.
중앙정부는 대중에 알려지지 않게 조용히 전국적인 방제 작업을 개시했다.
곤충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붉은 불개미를 근절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약속이라도 한듯이 입을 다물었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싫어할 만한 발언을 함으로써 지원받는 예산이 끊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일반 시민 대다수는 붉은불개미가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애초에 붉은불개미가 뭔지도 전혀 몰랐다.
***
규슈 농장은 2회차 벼 수확을 앞두고 있었다.
히사타로 총리는 이번에는 농장까지 직접 찾아오지 않고, 사진과 영상 촬영 등을 통해 저택에서 편안하게 구경했다.
"허허, 대단해. 이대로라면 일 년에 벼농사를 6번까지도 지을 수 있겠어."
"총리님, 6모작을 하더라도 지금 생산량으로는 일본 전체의 수요를 맞출 수 없습니다."
"당연히 그러겠지. 농지를 더 늘려야만 해. 주변 농가에서는 농지를 팔겠다는 이야기가 더 없나?"
"계속 현지에서 설득 작업을 하고 있지만 농지를 팔겠다는 농부들이 더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음, 더 많은 농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히사타로가 골똘히 궁리하자, 토요쿠니 사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총리님, 시간을 두고 차분히 지켜보면 농지 매물이 쏟아질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시죠."
"붉은불개미 때문에 그러나?"
붉은불개미가 농사를 지속적으로 망치면, 결국 농부들은 농사를 짓지 못해 땅을 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영농장은 해충 퇴치에는 자신이 있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믿으면 될 테고,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에서 해충 퇴치 방법을 공유하라고 억압을 가하면, 그때 자신이 나서서 막아주면 되리라.
"예. 붉은불개미도 있고, 이번 규슈겨울이 좀 따뜻했습니까? 올해에는 병충해 피해가 거듭 커질 게 분명하고, 이대로 지속된다면 농사를 짓지 못해서 땅을 내놓는 이들이 늘어날겁니다."
국가적으로 보자면 절대 좋은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히사타로농업은 엄연한 사기업.
더 많은 농지를 확보해서 농사 규모를 증대할 수 있다면 좋다.
"그리고 총리님, 벼농사만 짓기에는 많이 아쉽습니다. 다른 작물들도 다양하게 경작했으면 합니다."
"그래?"
"예. 어차피 붉은불개미는 과수를 제외한 한해살이 작물 품종은 닥치는 대로 뿌리를 갉아먹습니다. 고추, 깨, 참외, 수박 등등 피해를 입는 작물은 무궁무진하죠."
"음, 그러자면 역시 농지를 더 늘려야 하는데…… 자네 말대로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굴면 올해에는 벼 말고 다른 농작물은 건드리기 힘들겠어."
"지금 같은 나날이 2년만 더 반복된다면 규슈의 모든 농지는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규슈…… 수영농장의 생산력을 보면 규슈의 농지만 몽땅 가져도 일본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농작물을 감당할 수 있을 거야."
수영농장과 힘을 합쳐, 일본에 유통되는 모든 농작물들을 독점적으로 수확하고 판매한다.
말 그대로 일본의 식량권을 손에 쥔다.
히사타로 총리는 정계 은퇴 후 새로운 형태의 권력이 곧 주어질 미래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