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90화
254장 청담식 농법 (3)
'이게 꿈인가?'
토요쿠니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하지만 황금빛 풍경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지금 내가 정신이 나갔나? 눈에 이상이 생겼나? 뭘 잘못 보고 있는 건가?'
토요쿠니는 이번에는 얼굴을 짝짝때리고는 눈앞을 다시 보았다.
황금빛으로 물든 논…… 아니, 밭이라고 해야 할까??
이따금씩 자라난 겨울고목의 앙상한 나뭇가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요로운 가을을 상징하는 황금빛이 끝없이 뻗어 있다.
누렇게 물든 볏줄기 끝에는 보기만 해도 무거울 듯한 이삭이 줄줄이 맺힌 채, 고개를 한껏 푹 숙이고 있다.
겨울에 피어난 겸손함의 한껏 미덕.
그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건……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동행한 히사타로농업 임원들도 더듬거리며 당황함을 표현했다.
"두 달,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입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우리가 지금 모두 꿈을 꾸는 것은 아니겠지요? 단체로 미쳐 버린 것은 아니겠지요?"
"한겨울에, 그것도 두 달 만에 벼가 자라나고 쌀알을 맺는 게 말이 되는 겁니까?"
잡초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아무리 따뜻하다고는 하나 엄연한 겨울인데, 잡초들도 생각이 있으면 이 시기에 싹을 틔우지 않을 것이다.
눈앞에는 잘 익은 이삭을 매달고 있는 벼가 끝없이 뻗어 있었다.
겨우 두 달 만에 일어난 기적이다.
멍하니 보고 있는데, 토요쿠니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토요쿠니는 사색이 돼서 얼른 전화를 받으며 땅에 무릎을 꿇었다.
"하잇! 토요쿠니입니다!"
발신자는 바로 그의 주인, 히사타로 전 총리였던 것이다.
-들었네. 오늘 수확을 한다지?
"하잇, 그렇습니다."
-사진을 봤네만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서. 정말 벼들이 다 익었던가?
"하잇, 그렇습니다! 저도 지금 눈으로 보고 있지만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허어. 안 되겠어. 내 눈으로 직접 봐야지 속이 풀릴 거 같아. 지금 바로 가겠네.
"하잇,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나자 분위기가 분주해졌다.
임원들도 높은 주인인 히사타로 전 총리가 온다는 소식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때 우렁찬 엔진음이 울리며, 콤바인이 줄을 지어 이동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토요쿠니는 사색이 돼서 콤바인 행렬 앞으로 뛰어나가 가로막았다.
"아, 안 됩니다!"
선탑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프리덤통역을 통해 대화를 시작했다.
"무슨 일입니까? 왜 앞을 막고 있어요?"
"지금 수확을 해선 안 됩니다!"
"아니, 왜요? 지금 벼가 다 익은 거 안 보여요? 빨리 수확하고 바로 트랙터 돌려야 한단 말입니다."
"지금 히사타로 총리님이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그분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수확을 개시해서는 안 됩니다!"
"뭐요? 총리님이?"
그제야 인부들의 표정도 달라졌다.
히사타로는 이 농장의 공동주인.
땅은 100% 하수영 소유이지만, 농업법인의 지분 50%는 히사타로의 것이다.
그리고 15년 전 일본의 총리로서 명예롭게 정계를 은퇴한 거물.
"할 수 없지. 알았어요. 이대로 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뭘요. 대주주께서 첫 수확물을 직접 보러 오신다는데, 잠시 기다리는 것 정도야 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더욱 더 고맙습니다."
약 2시간 뒤, 히사타로가 규슈에 도착했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던지, 그는 500km 넘게 떨어진 교토에서 헬기를 타고 곧바로 여기까지 날아왔다.
근터 공터에 착지한 헬기에서 내린 히사타로의 안색은 흥분으로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놀라워. 정말 놀라워. 하늘에서 다 봤네. 이 아름다운 황금빛 벼들이 끝없이 뻗어 있는 광경이라니! 이보게 토요쿠니, 지금 여기가 정말 겨울을 맞이한 일본이 맞는가?"
"하잇, 그렇습니다!"
"벼이삭 몇 줄기만 꺾어와보게! 어서!"
"하잇! 알겠습니다!"
토요쿠니는 히사타로가 잘 볼 수 있게끔, 논에서 가까운 벼이삭을 꺾어서 공손히 두 손으로 받쳤다.
히사타로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쥐고는, 벼 이삭을 훑으며 껍질을 벗겼다.
"쭉정이가 아니야. 아주 튼실하고 단단한 알곡들이 들어 있어."
"하잇."
"허, 허허, 허허허……."
히사타로는 실성한 사람처럼 미친듯이 웃으며 알곡 껍질을 계속해서 벗겼다.
50개가 넘는 알곡을 전부 벗겼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알찬 알곡들이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벗긴 알곡들을 주저 없이 입에 털어 넣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토요쿠니 사장 일행과 수행원들이 당황했다.
"총리님!"
"괜찮으십니까?"
건조하지 않았다 해도 생쌀이다.
고령의 노인이 씹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히사타로는 아무렇지 않은듯이 천천히 오독오독 생쌀을 씹어 삼켰다.
"음, 맛도 아주 좋아. 생쌀이지만 씹을수록 훌륭한 단맛이 우러나오고 있어."
"총리님. 괜찮으십니까?"
"자네들도 한 번 씹어먹어 보게. 아주 맛이 좋아. 이 쌀로 초밥을 해서 먹으면 과연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하군."
토요쿠니 등 부하들도 히사타로의 권유에 이삭을 한 줄기씩 뽑아서 껍질을 벗기고 쌀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생쌀 맛은 잘 모르지만, 확실히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오는 게 느껴진다.
"훌륭해. 정말 훌륭한 맛이야. 겨우 두 달 만에 이런 훌륭한 쌀을 키워내고 수확하다니. 과연 수영농장이란 이름은 명불허전이로다……."
히사타로는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광채에 그저 가슴이 벅찼다.
그의 눈에는 저것들이 진짜 황금으로 보였다.
앞으로 붉은불개미와 이상기후로 인해 대흉년을 거듭할 일본의 식량시장을 좌지우지하게 해줄, 아주 거대한 황금.
현재 일본 정부는 700만 톤의 쌀을 확보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규슈, 일본의 울타리 안에서 이런 훌륭한 쌀을 길러냈다.
수영농장과 손을 잡긴 했지만, 일본 정부의 눈에는 자신의 이름만 보일 것이다.
"훌륭해. 이 정도면 일본 정부에 아주 값비싸게 수매를 강요할 수 있겠어."
물론 그 이익은 수영농장과 절반으로 나눠야 한다.
하지만 히사타로는 그것이 전혀 아깝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수영농장이 없으면 이 농지들은 다 무용지물이니.
수영농장은 자기 몫을 다했고, 이제는 자신이 몫을 다할 차례였다.
콤바인들이 곧바로 수확 작업을 개시했다.
껍질이 붙은 쌀알을 추수하고, 볏짚은 그대로 파쇄해서 가루로 만들어 논에 뿌려린다.
이렇게 파쇄된 볏짚은 분해돼서 토질을 북돋워 주는 거름이 될 것이다.
토요쿠니는 그 점을 아쉬워해서 인부들에게 물었다.
"볏짚을 따로 모아서 사일리지를 만들면 소 사료도 되고 좋지 않겠습니까?"
"보시다시피 사일리지를 쌓아서 발효시킬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습니다. 손도 많이 가고 동선 낭비도 있고요."
인부는 그러면서 콤바인을 뒤따르는 트랙터를 가리켰다.
"저거 보세요. 지금 수확하자마자 바로 콤바인으로 갈아버리면서 비료뿌리고 파종하고 있죠?"
"……."
토요쿠니는 할 말이 없었다.
인부의 말대로, 콤바인이 앞장서서 수확을 하면 트랙터가 바로 뒤를 쫓아가며 땅을 갈고, 비료를 뿌린다.
그리고 트랙터 뒤를 파종기가 뒤따르면서 볍씨를 뿌리고 있다.
수확과 파종이 한날한시에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곤포 사일리지까지 말아서 그거 또 굴려서 한쪽에 몰아놓고 하다 보면 동선이 다 꼬여 버려요."
"하잇. 알겠습니다."
"사일리지 같은 거 만들어서 축산농가에 파는 것보다 빨리빨리 논 돌려서 쌀알 하나라도 더 추수하는 게 낫습니다. 안 그래요?"
"하잇, 맞는 말씀입니다."
***
히사타로는 쌀 생산량에 매우 만족했다.
일본의 다른 벼 농가에 비해, 같은 면적 대비 140%의 소출을 보인 덕분이다.
생산량이 겨우 140%로 봐선 안된다.
연간 5, 6회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700%에서 840%까지 단위 면적 생산량이 차이가 날 수 있다.
'아니지. 내년 겨울도 올해 같다는 보장은 없으니, 일 년에 3, 4번만 다모작을 한다고 가정을 해야겠군.'
하늘이 도우심인지 올해는 겨울이 따뜻해서 수영농장이 바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최고 기온이 20도도 안 되는 날씨에서 직파법으로 어떻게 벼를 길러냈는지는 의문이지만, 결과로 보여주었으니 됐다.
'역시 농사로는 수영농장을 당해낼 곳이 없군. 카길 같은 국제 곡물 메이저들도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을 게야.'
콤바인으로 수확하며, 트랙터로 땅을 갈고 비료를 살포하고, 곧바로 파종하는 모습은 그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겨울은 지금 기온이 이대로 쭉 유지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상하리만치 규슈의 후쿠오카 위도부터 아래로 매우 따뜻한 기온.
당장 후쿠오카에서 북서쪽으로 95km 떨어진 대마도만 해도 영하권 날씨인데 말이다.
수확과 파종을 구경하기 위해, 히사타로는 주변에 돗자리까지 깔고 고리야마 초밥에서 도시락까지 받아와서 먹고 있었다.
따뜻한 겨울 날씨에 돗자리를 깔고, 사케와 초밥을 먹으며 수확하는 광경을 보고 있으니, 이게 바로 천국인가 싶었다.
"총리님. 그런데 날씨가 겨울치고 너무 따뜻해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잘됐지 않나. 날씨가 따뜻한 덕분에 봄까지 기다릴 것 없이 수영농장에서 바로 수확을 했으니. 이것으로 일본 정부도 쌀 걱정을 한 꺼풀 덜었을 걸세."
아무래도 내 나라 땅에서 나오는 소출이 가장 심적으로 든든한 법.
일본 국민들 역시 규슈의 겨울 수확을 무척 기뻐하며 반가워할 것이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치게 따뜻하면 다음 해 병충해가 크게 증가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점이 매우 걱정이 되어서……."
"걱정 말게. 하수영 의원은 병충해 따위는 전혀 상관없다고 자신했네."
"하잇?"
"영상 20도도 안 되는 날씨에 두달 만에 이 풍성한 벼를 거둬냈어. 그깟 병충해 따위야 알아서 잘 예방할 걸세. 그는 세계 제일가는 농부니까 말이야."
"하지만 규슈 농장 외의 다른 지역은 그 피해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붉은불개미만으로도 모자라, 다른 해충들까지 피해를 끼친다면……."
"그럼 더 잘된 거 아닌가?"
"하잇?"
히사타로는 늙고 주름진 손으로 사케잔을 마시며 인자하게 껄껄 웃었다.
"우리 히사타로농업 말고 다른 농가들이 병충해로 크게 피해를 보면, 결국 우리가 일본 쌀 시장을 독점할 수 있지 않겠나?"
"하, 하잇!"
토요쿠니는 황송해서 얼른 이마를 돗자리에 닿도록 깊이 숙였다.
지금 주인은 혼네(속마음)를 아주 또렷하고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드러내 보였다.
보통 속마음을 드러내더라도 저렇게까지 직설적인 표현을 쓰지는 않는데.
가신 된 입장에서 그저 황송하고, 감읍하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토요쿠니. 지금까지 잘해주었네."
"하잇,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잘 해주길 바라네. 나를 대하듯이, 수영농장의 주인을 대하게 알겠나?"
"하잇!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