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84화
253장 퇴치 : 하늘과 땅에서 (1)
"일본도 나름 농업 선진국인데 그 정도면, 그 해충이 다른 나라에 퍼지면 답도 없겠어."
"개미들 입장에서는 나무뿌리보다는 벼나 밀 같은 한해살이 작물이 갉아먹기 좋지요."
"참…… 갈수록 농사짓기 어려운 시대가 돼가고 있어. 내가 어렸을 적에는 대충 씨만 뿌려도 알아서 잘컸었는데 말이야."
"많이 보정된 기억일 겁니다. 수확량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을 거예요."
"그럴까?"
"그럼요. 시간 지나면 추억은 미화되고, 보정되기 마련이죠."
왕세경은 그런가 하면서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나저나 일본은 아프리카나 다른 나라에도 농지 많이 확보해 두지 않았나? 자국 땅에서 농사 못 지어도 돌파구는 되지 않을까?"
"아프리카라고 이상기후가 피해가진 않습니다. 거기도 나름대로 문제가 쌓일 겁니다. 그리고 글로벌 위기상황에서는 일본인이 아프리카 농지에서 지은 작물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반출이 되는 게 아니죠."
"허허, 이러다가 정말 현대판 경신 대기근이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
17세기 조선이 소빙하기로 인해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은, 유례없는 대흉년을 언급하자 하수영이 팔짱을 끼었다.
"그때 참 힘들긴 했죠……. 처음에는 대충 내 주변만 챙겼었는데, 세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때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반역 일으켜서 국권 잡고 수습했던 기억이 납니다."
"으음, 이사장은 전생에서 그런 일도 겪었었나 보군."
"뭐, 이제는 다 옛날 일입니다. 식량이 모자라서 인류가 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농사에 손을 댔으니까요."
"나도 하루빨리 이사장이 전 세계 농업계를 제패하는 걸 보고 싶군. 아, 이미 어시장은 완벽하게 제패를 했던가?"
"어부지리죠. 바닷속 말라붙는 것도 모르고 생선식품 회사들이 신나게 저인망으로 긁어댔으니까요."
"사람들이 좀 경각심을 가져야 할 텐데. 이사장 생각에는 바다가 언제 복구될 거 같은가?"
"복구 못 됩니다. 지금도 몰래몰래 조업하고 있는 배들이 한두 척이 아니에요."
"그래? 바다가 텅 비어서 더 이상은 그런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 분야는 이제는 이것 말고 다른 건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왕세경은 그 말을 듣고 과연, 하고 중얼거리며 끄덕였다.
"그렇지. 사람이 몇십 년을 하던 일을 관두고 다른 걸 찾기가 쉽지 않지."
"유엔에서 단속도 하고 얼러도 보는데 별 효용이 없나 봅니다. 요즘에는 상어 고기도 먹는대요."
"지느러미만 먹는 게 아니라 고기도 먹는다고?"
"네. 그렇다고 하네요."
"이런……. 그 말 들으니까 바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확 와닿는군."
"얼마 안 되는 최상위 포식자마저 전멸을 시켜놓으면 남는 건 먹이사슬 궤멸뿐이죠."
초원에서 늑대가 사람에 의해 전멸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천적이 사라진 초식동물이 폭증하게 된다.
그에 따라 뜯을 풀이 사라지고, 폭증했던 초식동물은 결국 굶어 죽거나 그곳을 떠나게 되며, 사막화가 시작된 메마른 땅만 남게 된다.
바다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상어 같은 최상의 포식자의 몰락은, 전체 생태계의 붕괴를 불러온다.
"이사장 자네의 어깨가 무겁군. 전 세계 인류가 굶어 죽지 않도록 부지런히 농장을 키워야겠어."
"열심히 해야죠. 언제 또 농사지을 기회가 올지 모르니까요. 아, 저승차사들이 혹시 병원에 기웃거리지는 않나요?"
"얼씬도 안 하니까 걱정 말게. 참, 내가 병원 운영을 크게 개편을 할까하는데."
"그런 거야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제가 병원 경영을 뭐 알겠습니까?"
"자네처럼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민망하지."
왕세경은 커다란 화면에 자료표를 띄우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쪽은 하루 내원자 숫자이고, 이건 진료예약 대기자 숫자일세. 적체가 꽤 심해. 병원 하루 진료 숫자가 100이라면, 예약 대기자는 300이 넘어. 문제는 이게 매일 쌓이고 있다는 거지."
"구로에 제2본원을 하나 더 냈는데도 이 모양이군요."
"제주도에서도 비행기 타고 우리 병원을 오려고 하니까."
"제주도에 있는 분원은 대체 놔두고 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분원은 의사나 장비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거지. 우리는 순환제라서 본원과 분원 간에 차이가 거의 없는데도 말이야. 아무리 설명해 줘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들도 있어."
"흐음."
"겨우 치질 수술 받겠다고 반년 예약 걸어놓고 약과 좌욕으로 버티는 사람도 있네. 그 정도는 지방 분원, 아니지 그냥 동네에서 적당히 큰 병원을 가도 될 텐데 말이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수영병원은 전국에서 가장 큰 과부하가 걸려 있는 병원이라고.
그러나 의료진이나 직원의 피로도는 상당히 낮은 편이다.
왜냐하면 의료진에게 주3일 이상의 휴일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졸음진료는 졸음운전만큼이나 위험하다.
의료진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다.
재정적 비용이 당연히 크지만, 애당초 사회환원 트로피이기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
전국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아직 아무도 죽어나간 적이 없는 병원.
그래서 전국의 환자들이 몰려든다.
"무엇보다 재단에서 병원비 지원을 해주니까."
재단에서는 환자의 가처분 소득의 19%를 초과하는 의료비를 대신 부담해준다.
극단적으로, 이식 수술을 받아도 총병원비가 10만 원도 안 나오는 셈이다.
최고의 병원이 의료비까지 지원을 해주니,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다인실을 좀 더 늘리고, 병상 간격도 조금 더 빡빡하게 할 참일세."
"흐음, 괜찮을까요? 돈독 오른 거 아니냐고 오해받을 수도 있을 텐데요."
"돈독은 무슨. 우리 병원은 지금 일반 환자는 받으면 받을수록 오히려 적자야. 그걸 가지고 뭐라 하는 놈들이 있으면 병원에 발도 못 붙이게 해야지!"
의료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를 거부할 수 없기에, 왕세경의 말은 그냥 분노에 차서 내지른 것뿐이다.
"내가 객실로 쓰던 특실도 그냥 빼기로 했네. 병실을 하나라도 더 굴려야지."
"저런, 괜찮으시겠어요? 그래도 병원에서만 쭉 생활하시는데 쾌적한 거주 공간이 있어야 오토 역할, 아니, 부이사장 업무에 집중하실 수 있을 텐데요."
"그걸로 환자 몇 명이라도 더 받는 게 나아. 예약 적체는 해소해야지."
왕세경은 신이 났는지,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채 말을 이어나갔다.
"다인실, 특실, 그리고 VVIP실. 이렇게 크게 세 분류로 나누기로 했네. VVIP실이야 원래 있으니 논외로 하고, 특실을 좀 더 늘리기로 했어."
"근데 특실용 병실은 애초에 정해져 있지 않았나요?"
"기존의 1인실과 2인실도 앞으로 전부 특실 간판 달아서 운영하기로 했네."
"VVIP실은 입원 못 하는 부자들을 위한 시설로 돌리려는 거군요."
"맞아. VVIP실은 하루 입원료가 2억 8,000만 원 가까이 하니까 웬만한 부자들도 엄두를 못 내지. 돈은 많은데 다인실은 입원하기 싫은 사람들은 이제 죄다 특실로 몰아넣으려고."
왕세경은 그동안 정계에서 무수한 입원 청탁을 받아왔다.
차라리 재벌들은 자신이 재계 원로이니 예의를 차린답시고 함부로 청탁을 못 한다. 웬만해서는 자기들 그룹이 소유했거나, 연결된 병원에 입원을 한다.
입원 청탁을 해오는 이들은 주로 정치권 인물들이다.
처음에는 나중에 쓸모가 있겠지 싶어서 3인실 이상으로 배정을 해줬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돈 더 내고 특실에 밀어 넣기로 한 것이다.
"특실 입원료는 하루 982만 원으로 설정했어. 물론 특실 환자는 병원비 지원은 없네."
"영리병원 허용 작전에 우리를 선두로 내세운 게 어지간히 화가 나셨군요."
"내가 경영을 오래 관둬서 잠시 깜빡했지 뭔가. 여의도에서 5년 이상 구른 놈들은 겸상도 해선 안 된다는 걸 말이야."
"제가 나중에 여의도 가도 대작해 주실 거죠, 부이사장님?"
"우리 이사장이야 다르지. 여의도 가서 그냥 다 씹어먹어 줬으면 좋겠어. 하나같이 다 마음에 안 들어."
"이제 속세의 복잡함은 잊으시고, 생로병사의 순환에만 집중하십시오. 부이사장님 더 이상 기업인 아닙니다. 성주신이에요, 성주신."
"아, 나도 모르게 한 번씩 속세에 몰입을 하게 되지 뭔가."
"음, 가택신이 좀 그런 경향이 있죠. 아무래도 살아 있는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수호하다 보니 싫어도 속세와 얽히게 됩니다. 예전에는 집안일 돕는다고 리어카 끌고 폐지 줍는 근육질 가택신도 있었다는군요."
"폐지 모으는 대신 병원을 굴리니까 나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아유, 부이사장님 정도면 성주신 중에서도 복 받은 겁니다. 기왕 머슴을 할 거면 대감댁 머슴을 하라는 말이 있죠? 성주신이라고 다를 게 없어요, 다를 게 없어."
잠시 샛길로 샜던 대화가 다시 원래 흐름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이럴 줄 알았으면 지방분원 시설 개량에 덜 투자할 걸 그랬어. 돈 아까워."
시간이 지나면서 지방의 분원들도 발달을 거듭했다.
이제는 규모가 조금 작은 대학종합병원 수준의 시설을 갖췄다.
분원에 파견 나간 이들은 언제든지 고속헬기를 이용해서 서울을 방문할 수 있었다.
때문에 순환근무에 대한 거부감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서울 본원만 고집하는 이들이 다수이니, 왕세경 입장에서는 기가 찰 수밖에.
"지방 분원 병상은 그럼 놀고 있나요?"
"거의 다 놀고 있지. 며칠씩 입원할 정도로 큰 환자들은 죄다 서울로 오려고 하거든. 지방에서 뭐 이식수술 같은 큰 건이 얼마나 되겠어."
"잘됐네요. 그럼 이참에 해군병원역할이나 좀 시켜야겠습니다."
"해군병원?"
"해군병원들 시설 좀 둘러봤는데 영 별로더라고요. 해군 의료진도 별로고요. 다들 빨리 기간 채우고 전역할 생각밖에 없어서요."
"아무래도 민간병원과 수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 해군 병사들은 좋겠군."
"분원에 병상 남아도는 건 그럼 일정 부분 해군 티오로 잡아주십시오. 이참에 심한 환자 병사들은 옮기라고 해야겠어요."
"알겠네. 하여튼 해군 녀석들은 복받은 게야. 자네 같은 원수 장군을 만났으니."
그 뒤로도 왕세경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별안간 프리덤이 말했다.
「마스터, 농식품부 검역본부에서 급보가 왔습니다. 부산항에서 슈퍼붉은불개미가 발견되어 즉각 방제했다는 내용입니다.」
"뭐야, 결국 놈들이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나?"
「방제팀이 광범위하게 수색 중입니다만, 아직 부산항을 벗어났다는 흔적을 잡지 못한 모양입니다.」
슈퍼 붉은불개미는 가진 독성으로 사람의 목숨도 위협하고, 농작물에도 막대한 피해를 끼친다.
때문에 농식품부에서 하수영한테 급히 연락을 한 게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일본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진 이상, 우리나라에도 유입되는 것은 이미 예정된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도 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흠, 그렇다고 100% 수경재배 체제로 갈 수도 없고, 일본에서 보니까 지금 방제기술로는 해결을 못 한다고 견적 딱 나오던데."
수영농장은 염려될 게 없다.
일대에 성역이 쳐져 있어 붉은불개미 같은 해로운 존재는 가까이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단 전국 농민들한테 공지 띄우고, 특히 부산 주변 농가에도 신경써서 살펴보라고 해."
「알겠습니다.」
***
검역본부는 항만을 중심으로 물샐틈 없는 수색 작업을 펼쳤지만, 추가로 슈퍼 붉은불개미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방심하지는 않았다.
수천 마리에 달하는 2개 군체가 발견되었고, 여왕개미는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검역망을 빠져나갔다고 가정하고, 처음부터 샅샅이 수색해!"
"하지만, 본부장님. 수색이 너무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건 잘 알려지지 않은 슈퍼 변종입니다."
"아무튼 무조건 찾아! 이거 전국에 퍼지면 답 없다!"
사흘째 되는 날, 엉뚱한 곳에서 흔적이 나타났다.
부산 해안가 대규모 최신 아파트단지가 갑작스럽게 정전된 것이다.
개미가 중요한 전기 시설을 갉아먹은 탓에, 아파트 전체에 전기가 끊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