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81화
252장 슈퍼 해충 개미 (4)
얼마 동안 굳어 있던 히사타로 전 총리가 선심을 쓰듯이 말했다.
"어색하군요. 그냥 서로 한 번씩주고받은 것으로 해두십시다."
하수영은 피식 웃었다.
"서로 한 번씩? 그건 아니죠. 손해는 혼자만 보셨으면서 왜 비긴 걸로 하자고 하십니까. 모양 빠지게요."
"……."
"자.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알고, 당신은 우리 구의회 부의장이 누구인지 모르니, 한 번씩 주고받은 게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한 대 안겨준 셈으로 해두고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히사타로는 뭔가 기세가 밀리는 느낌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그는 흥분하려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혹시 날 기다리고 있었소?"
"누군가는 호텔로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야식도 먹을 겸, 겸사겸사 대관을 했지요."
"그래도 1억 엔을 서슴없이 결재할 줄은 몰랐소."
"어차피 대신 내줄 건데, 별로 상관없지요."
"염려 마시오. 깔끔하게 대접해 드리리다."
메뉴가 쉴 새 없이 계속 나왔다.
히사타로는 접시가 내려놓이는 족족 해치우는 하수영의 식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치 전국시대 무장을 보는 거 같소. 정말 놀라울 정도로 엄청난 식욕이오. 과연, 천하를 쥐락펴락하는 사나이는 식욕부터가 남다른 것인가……."
"그냥 임진왜란 거북선의 이름 없는 노잡이였죠. 아, 그 무거운 배를 끌고 왜구들 사이를 이리저리 휘저으려면 보통 팔힘 가지고는 안 돼서요. 식욕도 엄청 늘죠."
"……충무공 이순신. 개인적으로도 매우 존경하는 해군 제독이오."
"그래요? 그 양반 밑에서 한 번 복무해 보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 실 텐데."
"마치 해본 것처럼 말씀하시는구려."
"부활의 이순신을 안 보신 모양이군요."
"그게 무엇이오?"
"충무공의 전공을 다룬 블록버스터 K-드라마입니다. 제가 투자했고, 출연도 했죠. 꼭 한 번 보세요. 진짜 잘 만들었습니다."
"알았소. 나중에 꼭 챙겨보리다."
"안 보실 거 같지만, 괜찮습니다. 나중에 내용 물어보면 되니까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확인을 할 거 같다.
히사타로는 나중에 하수영을 다시 만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드라마내용을 숙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갑자기 야쿠자들이 쌀 거래를 하겠다고 찾아와서 놀라셨을 줄 아오. 그 점에 관해서 유감을 전달하고 싶소."
"바지사장 내세우라고 배려 차원에서 일부러 일본에 들어온 겁니다. 그러니 유감을 표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부러 일본에?"
"우리 정부와 협상했다가는 어느세월에 쌀 550만 톤을 거래하겠습니까? 아니지, 그새 700만 톤으로 늘어났군요."
"……내각의 자존심을 잘 알고 있구려."
"당장 얼어 죽어도 한국에는 장작 한 조각도 꾸지 않겠다, 그게 내각의 체면이잖습니까."
한때 짓밟고 강탈했던 식민지였고, 지금도 한참이나 아래로 깔보는 옆나라이기에.
한국을 상대로 자존심 굽히는 거래는 절대로 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우익 내각의 체면이자 정체성이다.
"그런데도 내각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 일부러 일본에 들어왔단 말이오?"
"돈 때문이죠. 쌀 수백만 톤을 팔아치울 수 있는 거래는 흔치 않으니까 '바이어'의 니즈에 맞춰준 것뿐입니다."
"……."
"농부는 쌀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그게 어디든지 팝니다. 물론 적절한 가격과 조건이 갖춰져야 하지만요."
"그나저나 전직 총리가 직접 찾아온 걸 보면, 700만 톤은 시작일 수도 있겠군요?"
"전직 총리라고 해봐야 벌써 15년도 지난 일. 이제는 도쿄 정치판에서 잊혀진 뒷방 늙은이에 지나지 않소이다."
히사타로 전 총리는 불현듯 하수영의 태도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그는 지금 자신을 조금도 조심스럽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다른 걸 떠나서 나이와 연륜 차이만 해도 몸가짐을 신중히 하는데 영향을 줄 텐데, 그냥 평범한 거래 상대를 대하는 듯한 예의만 갖출 따름이다.
"나는 돈이 제법 있소. 물론 귀하의 눈에는 하찮아 보이겠지만."
히사타로는 과거를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총리직을 마지막으로 정계를 은퇴한 이후, 중앙정치판에 최소한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나름대로 작게나마 사업에 손을 댔소, 은퇴 이후의 작은 즐거움이었소."
"음, 그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힘들게 일하고 은퇴했으면 이제 힐링라이프를 즐겨야죠."
히사타로가 순간 당황할 정도로, 갑자기 부드러워진 태도였다.
"그래서 무슨 사업입니까? 혹시 농사?"
"농사는 아니고, 농기구 제조업이오."
"아아. 아무튼 농사와 관련이 깊군요. 회사 이름이?"
"센바츠정밀이라고 하오."
"잠시만요."
하수영은 프리덤이 센바츠정밀에 관한 정보를 즉각 정리한 내역을 쭉 훑어보았다.
30초면 센바츠정밀을 파악하는 데 충분했다.
"트랙터부터 농약과 비료까지, 말그대로 농업에 관한 것은 모두 손을 대고 있군요."
"난 어린 시절을 시골 농가에서 보냈소. 행정가를 거쳐 중앙무대에서 활동하면서도, 언젠가는 농지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지.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귀농은 했소이다."
어느새 하수영은 4병째 위스키를 따고 있었다.
그럼에도 안색은 멀쩡하고, 취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히사타로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면서도, 겉으로는 감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참으로 사내로다……. 어린 나이에 가히 하나의 가문을 일으켜 세울 만하구나.'
"정계 은퇴 후 농업 쪽으로 일을 하다 보니 자연히 농어촌의 흐름에 관해 알게 되었소. 그리고 식량주권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식량주권. 소중하죠. 사람은 먹어야 사는 동물이니까요."
"그런데 현 내각은 충분한 식량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 않아서 매우 유감이오."
히사타로는 냉수를 반컵 정도 마신 후 말을 이었다.
"일본의 농사 환경이 점차적으로 변하고 있소."
"일본뿐만이겠습니다. 어느 나라든다 그렇죠. 안 그런 곳이 없을 겁니다."
"기후변화는 농업에 관해 온갖 악재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지금 일본의 농가는 그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소."
"농가 차원에서 대비가 되어 있는 곳은 없을 겁니다. 아, 저는 빼고요."
"올 한해 벼와 밀 농사를 망쳤지만, 내각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소. 그저 덮어두고 바지사장을 내세워 외국에서 모자란 쌀을 사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소이다."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회 지도층이 반도체와 모바일, 위성, 항공기와 선박에만 미쳐 있는 시대 아닙니까. 쌀알 따위야 마트에 가면 언제나 널려 있는 공산품쯤으로 알고 있죠."
"하수영 의원, 귀하가 일본을 찾은 진짜 이유는 올해 쌀농사가 왜 부진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겠지요?"
"그것도 있었죠."
"그래서 알아냈소?"
"슈퍼 붉은불개미가 일본 전역에 퍼졌더군요."
"……."
늙은 전직 총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일본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알아냈다는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리 빨리 알아냈소?"
"전 제법 잘나가는 농부 중 한 명입니다. 해충이라면 당연히 많이 알고 있죠."
"제법 잘나가는 정도는 아니지요……."
히사타로는 속으로 근심을 중얼거리다가 다시 눈을 들었다.
"하 의원은 우리 일본 식량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시오?"
"머지않아 식량 문제에서 자유로울 나라는 세 곳 정도가 될 겁니다."
"한국은 당연히 포함되어 있겠고, 나머지 두 곳은 어디요?"
"미국, 그리고 프랑스."
"……."
"거기야 워낙 농사짓기 좋은 나라니까요. 이런저런 악재가 중첩돼도 자국민들 먹여 살릴 여력은 유지할 겁니다."
"우리 일본은……."
"이미 슈퍼 붉은불개미가 퍼질 대로 퍼졌어요. 이거 전멸 못 시키면, 아마 3, 4년 안으로 일본은 식량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할 겁니다."
이미 일본은 김, 전복 따위를 제외한 생선 수산물은 전량 한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전멸시킬 수 있겠어요?"
"불가능하다고 보시오? 겨우 개미인데?"
"다른 종들까지 전부 전멸시키고 전국의 토지를 오염시킬 각오가 되어 있다면 충분히 전멸시킬 수 있겠죠."
"……."
"슈퍼 붉은불개미는 활동 반경도 넓습니다. 자기들끼리 얽혀서 뗏목처럼 물을 타고 수십, 수백㎞를 이동하기도 하죠."
말년을 농기구제조업으로 장식한 히사타로는 지금 일본의 식량 사정이 큰 위기 전환점에 봉착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중앙의 현역정치인들이 위기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엔화의 강세를 걱정했고, 나날이 쇠퇴해가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사업을 염려했으며, 평화헌법의 개정방안을 두고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전 농토를 갉아먹은 슈퍼 붉은불개미는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혹시 수영농장은 슈퍼 붉은불개미의 방역에 성공했소?"
"한국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니 방역에 성공이고 실패고 논할 게 아니죠."
"무척 태연해 보이는데, 이미 선제적으로 방역에 성공한 것은 아니 오?"
"우리는 밀폐식 하드하우스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외부의 해충이 안에서 활개 치는 것은 불가능하죠."
"만약 슈퍼 붉은불개미가 한국의 다른 농가를 덮치면, 어떤 식으로 방역을 할 계획이시오?"
"농지 근처에서 개미굴이 보이는 족족 여왕개미를 잡고 전멸시키면 됩니다. 농작물 피해가 어느 정도는 발생하겠지만,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미굴을 공격하겠다는 겁니까?"
"레이저와 화염에는 내성이 생길수 없죠."
"……."
"아무튼 이제 본론을 말씀해 보시죠."
어느덧 하수영은 다음 위스키병을 따고 있었다.
서빙을 위해 대기 중인 직원들도 하수영의 식욕에 경악하고 있었다.
"늘그막에 농기구제조업을 하다 보니 이 나라 식량안보가 심히 걱정되오. 올해 부진한 쌀농사는 자연의 마지막 경고라는 점을 깨달았소."
히사타로는 신중히 단어들을 골랐다.
"이미 이 나라가 가진 힘만으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소. 그래서 수영농장의 힘을 빌리고 싶소이다."
"저는 예전에 쌀 수출로 일본 세관에 한 번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점은 내가 대신해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소."
"사죄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보험금 장사로 오히려 더 남겨먹었거든요. 지금 제시하셔야 할 건 신용이죠."
"모든 거래는 우리 측이 선이행, 귀하 측이 후이행으로 진행하면 어떻겠소? 그럼 귀하가 손해 볼 일은 없을 거요."
"그 정도면 괜찮네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슨 거래를 원하죠? 정기적 쌀 판매 보장거래를 맺자는 건 아닐 텐데요."
히사타로는 잔잔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수영농장과 센바츠정밀의 합작으로, 일본 농업에 진출할 의향이 있으시오?"
"의외네요. 아프리카 농장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일본에서 아프리카에 확보해 놓은 농지가 꽤 되지 않습니까?"
"전 지구적인 식량 문제가 생긴다면, 아무리 우리 소유의 땅이라 해도 식량을 해외로 반출하는 것은 힘들어질 거요. 위기 상황에서 해외농지는 완벽한 보험이 될 수 없소."
"흐음. 그건 그렇죠."
"내가 사는 땅에서, 내 울타리 안에서 짓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소출물이 되어줄 수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