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79화
252장 슈퍼 해충 개미 (2)
하수영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농부를 하늘에서 위협하는 게 슈퍼 장수말벌이라면, 땅에는 슈퍼 붉은불개미가 있죠."
고리야마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남은 알곡들을 하나하나 전부 확인하고 있었다.
"슈퍼 장수말벌이 꿀벌의 수를 줄여서 충매화 작물 농사를 망치게 한다면, 슈퍼 붉은불개미는 작물의 뿌리와 줄기를 갉아먹어 농사를 망치게 합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알곡이, 껍질을 까보면 엉킨 껍질이 뭉쳐서 내용물을 꽉 채우고 있다.
탄수화물이 뭉쳐 있어야 할 볍씨의 대부분이 엉성한 껍질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물이 찬 논바닥까지 파고들어 가서 뿌리를 갉아먹고, 개미들끼리 서로 얽힌 채로 뗏목처럼 물에 떠다니며 볏줄기를 갉아먹죠. 그런데 이놈들이 뒷일을 생각하는지, 꼭 벼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딱 갉아먹는다 이겁니다.
"슈퍼 붉은불개미…… 언뜻 이야기는 들었던 거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작년에 처음 발견됐을 겁니다. 근데 태풍이 너무 심했던 터라 대충 넘어갔죠. 그리고 해가 바뀌면서 전국으로 퍼져 나가며 번식 확장에도 성공한 거 같고요."
"정말 심각한 문제로군요."
"이 근처는 이제 더 볼 필요가 없을 거 같습니다. 한 군데만 더 보고, 곧바로 멀리 있는 벼 농가로 넘어가지요."
"회장님 말씀대로 이 근방은 이미 다 틀린 거 같습니다."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지, 이제는 그것을 살펴보는 게 중요했다.
8번째 농가 방문을 마지막으로, 하수영과 고리야마는 수백m 멀리 있는 벼 농가로 이동했다.
수확을 마친 텅 빈 논에서 큼직한 알곡이 붙어 있는 볏짚을 채집해서 내용물을 살폈다.
"이곳도 별반 다르지 않군요. 슈퍼붉은불개미한테 이미 다 먹혔습니다."
슈퍼 붉은불개미한테 줄기와 뿌리를 꾸준히 강탈당한 벼들은 제대로 된 알곡을 맺지 못했다.
10에 7, 8은 겉보기에만 멀쩡한 뿐, 속은 텅 빈 쭉정이나 마찬가지였다.
골치 아픈 건 육안으로는 구분이 안 된다는 것.
무게나 비중으로 차이를 구별하는 수밖에 없다.
"이래서는 알곡 선별 작업이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농사 기술이 좋아진 만큼, 쭉정이가 아무리 섞여 있어도 99.9% 이상 골라낼 수 있다.
하지만 상품성이 있는 물량은 전체의 2, 30% 이하로 줄어들어 버린다.
이 정도면 거의 농사 궤멸 수준이 아닐까.
"농민들 반응을 보아하니, 이미 농림성에서 벼 농가에 단단히 입막음을 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대체로 말은 잘 듣네요. 한 명쯤은 농사 망했다고 분노해서 사실대로 털어놓을 줄 알았더니."
"그랬다가는 일본 농촌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입이 가벼운 자라고 주변에서 평생 손가락질하며 경시하기 때문이죠."
보안을 유지하는 것은 농민들 본인들이 살아가는 농촌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농림성의 당부를 굳건하게 지킨 것이리라.
"그럼 한 번 정리를 해봅시다."
하수영은 태블릿으로 일본 지도를 펴고 손가락으로 죽 그어 내려갔다.
"최외곽 피해 지역을 모두 연결하고 그 안은 이미 정착을 했다고 가정하면… 일본 벼 농지의 80%이상이 이미 잠식을 당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고리야마도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확인된 것만 80%라는 의미이고, 나머지 20%도 클린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사실 전쟁에서 이 정도면 부대 전멸이 아니라 궤멸, 그냥 나라가 망한 수준이죠. 해충과의 전쟁에서 일본은 전면 패배한 셈이군요."
"그런데 슈퍼 붉은불개미가 정말로 서식한다는 증거는 아직 못 찾은 거 아닙니까?"
"장사질 하는 데는 심증이면 충분하죠. 그 이상은 필요 없어요."
고리야마는 최근까지 줄기차게 쏟아졌던, 일본 쌀을 구매하라는 압박과 회유를 떠올렸다.
놈들이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그랬던 것일까?
'슈퍼 붉은불개미 피해를 감추기 위해서 위장 연막을 피운 걸 수도 있지. 원래 내각은 항상 그런 식이었으니까.'
심지어 한국 정부에 대놓고 쌀 구매를 요청해 놓은 상황이다.
연막을 피우기 위해서라면 이것저것 모든 수단을 다 끌어 모으지 않았을까?
"선대 도우야 회장님이 살아계실 때, 쌀 화물선이 세관에서 막힌 걸 기억하실 겁니다."
"기억합니다. 내각에서 부린 수작때문이었지요."
"그때 일본 정부기관이 화물선에 붉은불개미를 몰래 뿌려놔서 트집을 잡으려고 했던 것도 기억하시죠?"
"네. 물론입…… 잠깐, 설마?"
"그때 미처 방역하지 못한 붉은불개미 세력이 일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여왕개미 한 마리만 빠져나갔다고 가정하면……."
"그 붉은불개미들이 슈퍼 붉은불개미로 변해서 돌아왔다는 겁니까?"
"전 그렇다고 봅니다. 일본 정부와 전문가들은 아마 다르게 생각하겠지만요."
"……."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일본 정부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수영은 전자지도를 훑어보다가 말했다.
"그나저나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졌으면 일본에서 이제 농사는 글렀는데요. 벼와 밀은 포기해야겠고, 다른 작물들도 뭐 답은 없네요."
"방법이 없는 겁니까?"
"아주 없지는 않아요. 커다란 완전 밀폐하우스를 만들어서, 소독이 완전히 끝난 흙만 골라서 제한적으로 농사를 짓는 거죠."
"……."
"이만큼이나 광범위하게 퍼졌으면 이제는 끝난 겁니다. 그렇다고 독한 농약을 흙 속에다가 뿜어댈 수도 없잖아요?"
"제가 슈퍼 붉은불개미를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 정도로 방역이 어려운 해충입니까?"
"개미라서 땅굴을 파서 사는 데다가 활동 범위가 무척 넓다 보니 아무래도 힘들죠. 식욕 왕성한 잡식성이기도 하고요."
고리야마는 일본의 농촌에 핵폭탄 이상의 심각한 위기가 터졌다는 것 만큼은 인지했다.
그러나 이 일이 언론에 보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보이지 않게 덮는다.
그것이 일본의 문화였고, 일본 정부의 오랜 방침이었다.
'미국은 말벌, 중국은 메뚜기, 일본은 개미……. 이렇게 골고루 악재가 쏟아질 수도 있나?'
"아무튼 잘 둘러봤습니다. 일본이 왜 갑자기 쌀을 550만 톤이나 사겠다고 했는지 의아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군요."
"회장님, 한국은 슈퍼 붉은불개미한테서 안전한 겁니까?"
"다른 농가는 모르겠지만, 우리 수영농장은 100% 방역을 확실하게 하고 있어요. 슈퍼 개미든 말벌이는 절대로 피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듣던 중 안심이 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고리야마초밥 식재료 공급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 겁니다."
"예, 그건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일본의 미래가 어찌 될지 염려됩니다."
고리야마는 하수영이 이상기후 문제를 가끔 언급하던 일을 떠올렸다.
"슈퍼 붉은불개미가 출현한 것도 이상기후와 관련이 있을까요?"
"이상기후 때문일 수도, 환경호르몬 때문일 수도, 아니면 인간의 과잉실험 때문일 수도 있겠죠."
"그런……."
"미국에서는 슈퍼 장수말벌이 중국의 공장 배출물질 때문에 장수말벌가운데 변종이 나온 거라는 해석도 있더군요."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지구환경이 인간한테도 가혹해지는데, 곤충이나 다른 생물들도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지 않겠어요?"
"……내년 농사가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군요."
"전 세계적으로 이미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나빠지고 있어요. 당장은 모든 게 풍요로우니까 눈에 안 띌뿐이죠."
"저는 자연이 이미 어획대란으로 1차 웨이브를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리야마 사장님도 장기적으로는 식량산업에 투자하세요. 손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다음 세계대전은 아마 식량 때문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거든요."
***
일본 2일차.
하수영은 고리야마와 함께 생선 암시장 경매 자리에 참석했다.
이곳에서 낙찰된 생선들은 일반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상류층의 가정으로 직배송된다.
모든 거래는 현찰로 진행되며, 거래 흔적은 전혀 남지 않는다.
따라서 행정적으로는 없는 거래로 치부된다.
대대적인 탈세 현장이니만큼 정부에서 단속을 해야 하지만,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
여기에서 낙찰된 생선들이 총리, 중의원 등 정부 고위직에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때문에 암시장이지만, 정부의 암묵적인 보호를 받는 암시장이다.
"실무거래의 배후에는 야쿠자들이 적지 않게 관여하고 있습니다.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주목받지 않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야쿠자란 말에 고리야마는 괜히 긴장이 돼서 옷깃을 바짝 올렸다.
막상 안에 들어가자 야쿠자로 보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풍경만 보면 평범한 실내 어시장경매장을 연상케 한다.
눈이 어질어질한 가격에 팔려 나가는 생선 박스들을 지켜보던 중, 하수영이 문득 입을 열었다.
"부자들 상대로 돈 뜯어먹기 참 좋아요. 서민 중산층은 못 누리는 거라고 하면 가성비 안 따지고 지갑을 열거든요.
"부자들이 아무래도 그렇지요. 골든 트러플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휴, 저는 그 돈 주고는 절대로 못 사먹을 겁니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향이 중독성 있게 강한 건 사실인데, 그게 비싸지 않았으면 아랍 부호들이 그렇게 좋아라 하며 찾지도 않았을 겁니다."
"제가 골든 트러플 덕분에 초기 사업 자금 쉽게 모았죠. 지금은 팟디서플라이에 정중히 양보했지만 말입니다."
"골든 트러플 양식에 성공하셨다고 들었는데, 다시 진출하실 마음은 없으신지……?"
"저는 박리다매를 선호해서 제가 건드리면 골든 트러플 브랜드 가치만 망가질 겁니다. 부자들이 사치를 부리고 싶어 하는 영역은 남겨줘야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인기척이 가까이 다가온다.
흘끗 눈길을 돌려보니,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은 남자 둘이 바로 옆으로 다가오고 있다.
반듯한 변호사 같은 이미지가 물씬묻어나는 인상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오신 하수영 회장님 되십니까?"
"네."
"영광입니다. 저는 가츠바라 히데 야시라고 합니다. 제가 모시는 분께서 정중히 하수영 회장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여기로 오라고 하세요. 다른 데 가지 않을 테니."
"……대단히 결례가 되겠습니다만, 그분은 세간의 이목을 무척 조심히 다뤄야 하는 입장이라서 함부로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저에게 회장님을 모시는 영광을 하사해 주실 수 있겠는지요?"
하수영은 가만히 남자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미스터 가츠바라 히데야시?"
"네, 그렇습니다."
"만약 나를 모시는 영광을 당신에게 내려줬는데, 내가 직접 발걸음하기에는 하찮은 내용이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은……."
"만약 그렇다면 가츠바라 히데야시본인을 포함해서 4촌까지 남은 인생을 피곤하게 만들어서 그 짜증을 풀어볼까 생각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말쑥한 가츠바라의 안색이 살짝 새파랗게 변했다.
하수영은 한 걸음 움직이며 얼굴을 바짝 내밀고 말을 이었다.
"각오가 되어 있군요. 좋은 충정입니다. 자, 지금 바로 안내하세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