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78화
252장 슈퍼 해충 개미 (1)
전 세계적으로 작황은 꾸준히 나빠지고 있었다.
동아시아고, 동남아시아고, 유럽이고, 미국이고 가릴 것 없이.
작황이 나빠지는 원인은 지역마다, 그리고 작물마다 조금씩 달랐다.
겉으로 드러나는 작황 악재 또한 달랐다.
미국을 대표하는 악재는 장수말벌로 인한 꿀벌 피해였다.
사람들은 미국 농사하면 '꿀벌 피해 때문에 아몬드, 당근, 양파가 망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중국 농사하면 '장강 수량 고갈과 메뚜기떼 피해'를 떠올린다.
베트남은 강우량 감소로 인한 가뭄피해가 대표적이었고.
한국은 '태풍 때문에 망했지만 수영농장의 하드캐리에 얹혀가는' 이미지로 굳어졌으며.
일본만큼은 그럭저럭 흉년 피해에서 비껴가는 섬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일본? 거기가 농사 망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한 번 베트남에서 쌀 수입한 거 말고는 별로 피해 본 거 없지 않나?'
'예방주사 독하게 맞고 나서 내각이 불철주야 일한 덕분에 지금은 농사 아무 문제 없지 않나?'
이게 대중이 갖는, 일본 농업계의 이미지였던 것이다.
한두 번 치명타를 맞긴 했어도, 유유히 넘기는 데 성공한 나라.
한국, 중국, 동남아, 유럽 등과는 달리 내수농업이 문제없이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던 나라.
생선이야 어느 나라든지 간에 차별없이 겪는 문제이니 예외로 치더라도.
그런 일본에서 갑자기 쌀 550만 톤을 수 하려고 하니, 농식품부에서 의아하게 여겼다.
"일본 올해 농사가 망했다고 하던게 사실이었나?"
"처음에 그런 악재 보도 번나 오다가 문제없다고, 풍년은 아니지만 식량안보에는 영향력 없다는 기사로 도배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거기는 냄새가 풍기면 청소를 하는 게 아니라 덮어두는 게 문화라서, 말하는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돼."
"근데 제가 수확 철에 일본 여행 갔었거든요? 쌀 생산지로 유명한 지역을 한 번 쭉 둘러봤는데, 온통 황금빛 논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래?"
"네, 여기 사진 찍어온 것들 있는데 한 번 보시죠. 제가 직접 발로 뛰면서 찍은 것들입니다."
한 직원이 보여준 수백 장이 넘는 사진을 보고, 식량정책국은 저마다 신음하며 생각에 잠겼다.
"사진만 보면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물론, 일본 농지 전체를 찍은 건 아니지만."
"일본도 농사 피해를 안 입은 건 아닌데, 550만 톤을 갑자기 수입하려고 나올 정도는 아니거든요? 뭔가 이상하긴 해요."
"저번처럼 우회수입 안 하고 직접 수입을 거론할 정도면, 일본도 어지 간히 다급하다는 이야기인데, 이거 아직 보도는 안 떴지?"
"예. 일본에서 엠바고를 걸었습니다. 어차피 일본에서는 이거 싹 묻을 거고, 우리나라에서도 메이저 언론사들은 안 다룰 겁니다. 일본 지원으로 큰 회사들이잖아요."
"그 자존심 강한 나라가 갑자기 550만 톤이나 수입을 요구하다니……."
한국은 비축해 놓은 쌀이 상당히 많았다.
태풍과 강우에 전국의 비축미가 거듭 털렸지만, 그만큼 수영농장에서 채워 넣어준 덕분이다.
한국이 앓고 있는 식량위기 불감증은 수영농장이 심어놓은 거라는 말이 괜히 나도는 게 아니다.
"일본에서 제시한 가격이 괜찮은데, 비축미를 팔고 차익을 챙기는 게 어떻습니까?"
"그럼 공공비축미가 내년 가을까지 텅 비어버리는데, 그사이에 무슨 일이 터지면 어떡하나?"
"뭐 내년 가을까지 갑니까? 수영농장에서 봄 쌀을 또 내놓을 텐데요."
"거기는 진짜 대체 농사를 어떻게 짓기에 그 코딱지만 한 땅에서……."
잠시 샐 뻔한 이야기는 다시 일본 쌀 무역으로 돌아갔다.
"근데 정부에서 쌀 무역장사로 돈챙기면 수영농장에서 그리 좋아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예. 수영농장에 양해를 구하든, 아니면 끼워주는 하는 게 모양이 좋을 듯합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었다.
"550만 톤이라고 해봤자 수영농장입장에서는 그리 대단한 물량도 아닌데, 귀찮게 신경 쓰려고 할까요?"
"맞습니다. 이번에 중국과 거래한 물량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
고리야마 초밥.
일본 1위였던 도우야 초밥을 인수한 이후, 자타공인 일본의 스시 황제 브랜드가 된 업체다.
일본에서 거의 유일하게 생선을 취급하는 소매점으로, 모든 식재료를 수영농장에서 공급받아서 쓴다.
일본의 서민들이 생선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기에, 고리야마초밥은 일본의 외식업 프랜차이즈공룡 기업으로 말뚝을 박을 수 있었다.
"사장님, 생선 일부를 부자들 상대로 비밀장사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습니다. 많이도 필요 없어요. 0.1% 정도만 빼돌려도 톡톡히 남길수 있습니다."
"한 번만 더 그런 말을 하면 자네는 해고야."
"헉! 사장님?"
"수영양식장은 생선 투기가 아니라 외식업을 하라고 생선을 공급해 주고 있네. 자네 말은 나더러 신뢰를 저버리라는 뜻이야. 난 절대 그런 짓은 할 수 없어."
생선 일부를 몰래 부자들 판매에 빼돌려도 수영양식장에서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고리야마는 답답하리만치 원칙과 신뢰를 고수했다.
"지금 시국에 어디에서 생선을 구하나? 수영양식장에 우리 고리야마초밥의 생존이 걸려 있어. 조금이라도 신뢰를 저버리는 짓을 해선 안돼."
일본에는 생선 암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부자들을 상대로 생선을 납품하는 유통업자들이 비밀경매를 벌이는 시장이다.
어획대란 이전의 수백 배 이상으로 가격이 형성되며, 세금 등 온갖 행정추적에서 벗어나 있는, 말 그대로 부자들을 위한 리그.
그 암시장을 지배하는 큰손이 바로 수영양식장인데, 고리야마 초밥이 어찌 감히 그쪽 시장에 발을 들이밀수 있겠는가.
생선은 일본인들의 주식이다.
식당에서 생선을 내놓지 못한다는 것은, 다리 하나를 떼고 달리기에 나가는 것과 같다.
일본의 외식 산업은 빠르게 무너져가고 있었고, 그 와중에 체질변화를 통해 살아남은 업체들은 아예 생선 메뉴를 포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생선을 취급하는 외식업 브랜드가 된 고리야마 초밥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러브콜에 시달렸다.
자기들 식자재를 납품받아 달라는 유통업자들의 간청이 넘쳐났다.
그러나 고리야마 사장은 수영농장식재료와 겹치는 것은 철저히 거절했다.
필요한 식자재가 있으면 반드시 수영농장에 체크했고, 취급하지 않을 시에만 일본 업체들로부터 구매했다.
고리야마 초밥의 규모가 워낙 대단하다 보니, 정치인들이 나서서 납품을 중개하는 촌극마저도 벌어졌다.
"고리야마 사장, 이건 니카타 현에서 생산된 최고급 고시히카리 품종이오. 이만하면 고리야마 초밥의 명성에도 해가 되지는 않을 것 같소만."
"우리 고리야마 초밥은 이미 한국의 수영농장에서 쌀을 납품받고 있습니다."
"허어, 알고는 있어요. 하지만 일본인은 일본에서 난 쌀을 먹어야 건강에 좋은 법 아니겠습니까?"
"의원님."
"한국 쌀을 무조건 거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일본의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 쌀로 만든 초밥을 먹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권리는 어떻게 합니까?"
"그럼 다른 초밥집을 가거나, 아니면 직접 만들어서 먹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고리야마 사장!"
"의원님, 대형 프랜차이즈 운영에는 납품라인의 간소화가 중요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기저기서 동시에 쌀을 받으면 번거로워지기만 할 뿐입니다. 그런 손해를 감수할 이유가 없습니다."
의원은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듯이 말했다.
"정녕 일본의 벼 농가들을 외면하시렵니까?"
"진짜 남의 사업장에서 이렇게 어거지를 쓰실 겁니까?"
"뭐요? 어거지?""
정치인은 설마 이런 말까지 들을 줄은 몰랐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일본 전통의 돌려 말하는 화법이 아닌, 직격으로 가슴에 바로 꽂는 고리야마의 말투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조선인과 어울리더니 천박한 말투마저도 조선인을 닮아가는구나!'
고리야마는 또박또박 말했다.
"내가 오늘부터 의원님의 열렬한 팬이 되겠습니다. 의원님과 가족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구매하며,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며 사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빼먹지 않고 지켜보렵니다."
"고리야마 사장? 지금 설마 나를 협박하는 거요?"
"협박이라니요. 벼 농가의 미래를 그리 절절하게 생각하시는 참된 정치인을 죽을 때까지 우러러보겠다는 겁니다. 의원님은 오늘 정말 큰 지지자 한 명을 얻으신 겁니다."
쾅!
정치인은 결국 얼굴이 창피함과 분노로 새빨개진 채 거칠게 사무실을 나섰다.
아무렇지 않게 들어온 비서실장이 공손하게 보고했다.
"사장님, 오늘 하수영 회장님이 도쿄를 방문한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래? 생선 암시장을 둘러보려고 그러시는 건가?"
"그런 거 같습니다."
"준비하게. 바로 나가야겠어."
고리야마는 바로 도쿄만으로 향했다.
정박한 커다란 화물선에서 냉동 컨테이너가 줄줄이 하역되고 있었다.
줌왈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 육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리라.
고리야마는 겨우 하수영을 발견했다.
평범한 캐주얼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어, 바로 발견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 생선 때문에 온 건 아닙니다."
"그러시면……?"
"요즘 벼 농가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으로 압니다."
"사실 외교부에 이상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하수영이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자, 고리야마의 눈에도 의아함이 깃들었다.
"우리 일본에서 쌀을 550만 톤이나 수입하려고 했단 말입니까?"
"이상하잖아요. 벼농사가 망했으니까 그런 제안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오셨군요."
"네, 이렇게 후려치기 좋은 기회는 좀처럼 안 옵니다. 아랫사람들에게만 맡기고 구경하고 있을 순 없죠."
"……."
"그래서 고리야마 초밥에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성심껏 돕겠습니다."
***
고리야마 초밥에서 전국의 벼 농가를 순례하듯이 돌아보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고리야마는 주요 벼 생산지 위주로 하수영을 손수 안내했다.
농가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고리야마 초밥에서 나왔다고 하면 일단 함박웃음을 지으며 맞이했다.
"올해도 대풍년입니다. 아주 좋은 햅쌀이 가득 쌓여 있어요. 주문만 하시면 최고급 햅쌀을 바로 받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흉년이요? 그런 농가 이야기는 못들었습니다. 올해 벼농사는 대체로 다 잘됐습니다."
"이상하군요. 농사가 망했다는 벼농가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들리는 벼 농가마다 그런 반응을 보였다.
8번째 농가를 향하는 차 안에서 고리야마가 하수영한테 물었다.
"벼농사에 특별한 이상은 없는 같습니다만."
"그런 거치고 모두들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던데요. 거짓말에는 소질이 없는 거 같아요."
"거짓말을 했단 말입니까?"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이거 한 번 보실래요?"
그러면서 하수영은 종이백에 넣어둔 것들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알곡이 붙어 있는 볏짚 가닥이었다.
"논에 떨어져 있던 것들 중에서 큰 알곡이 붙어 있는 것들로만 골라봤습니다."
"으음, 탐스럽게 잘 여문 벼 알곡이군요. 이것만 봐도 흉년이 들었다는 건 못 믿겠습니다."
"한 번 손가락 사이에 끼고 눌러보실래요?"
"그런다고 달라질 게…… 허어, 이게 뭡니까?"
무심코 검지와 엄지 사이에 알곡을 끼고 누른 고리야마는 푹 들어가는 느낌에 당황했다.
단단히 여문 알곡인 줄 알았는데, 살짝 누르기만 해도 푹푹 찌그러졌다.
하나만 그런 게 아니라 열에 일곱이 그러했다.
그것도 방문한 7개 농가에서 획득한 것들 모두.
"이거 보세요. 겉보기에는 멀쩡한 알곡인데, 까보면 안은 쭉정이입니다."
"이래서는 상품성이 전혀 없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여기 뿌리를 한 번 보세요. 갉아먹은 티가 확 나죠?""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벼 뿌리의상태가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슈퍼 붉은불개미입니다. 벌써 일본에 꽤나 퍼진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