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71화
250장 비매품 안드로이드 (3)
젊은 미혼부 고정현은 한때 세상이 참 가혹하다고만 생각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청담수영병원 청소부 자리를 따냈을 때도, 그 생각은 반감은 될지언정 삭제되지는 않았다.
'출근하면 아빠하고 애는 어쩌지?'
허리에 중증 장애를 입은 부친은 하루 종일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한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은 말할 것도 없다.
누군가는 꼼짝없이 하루 종일 옆에서 그들을 돌봐줘야 한다.
자신의 처지에서 따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직장을 얻었지만, 출근하기 전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걱정 끝에 그는 이사장 게시판에 건의를 올렸다.
[이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담수영병원 청소부 신입사원 고정현이라고 합니다…….]
글을 올린 후에도 나름대로 여기저기 해결책을 모색했다.
오죽하면 놀고 있는 친구를 불러다가 자기 집에서 놀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월급을 쪼개서 나눠줘야겠지만, 아예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보다는…….
「주인님, 병원 이사장실에서 보낸 격려 선물이 곧 도착합니다.」
"선물?"
「네. 곧 벨이 울립니다.」
잠시 후 정말 인터폰이 울렸다.
반지하 허름한 창문으로 내다본 고정현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서 있는 모습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안드로이드 프리덤 77호입니다. AF-77호, 혹은 그냥 77호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키가 190㎝에 육박하는 안드로이드가 내려다보며 그렇게 설명했다.
고정현은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가 안 돼서 버벅거렸다.
"너, 너는…… 아니, 당신은 뭡니까? 이사장님이 보냈다고요?"
「네. 이사장님이 귀하의 처지를 고려하여 한동안 '노동파견'을 보냈습니다. 당분간은 귀하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저의 임무입니다.」
"노동력을 제공?"
'그냥 날 자르고 저 로봇을 더 비싼 곳에 투입하는 게 수지타산이 맞는 거 아닌가…….'
고정현은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정말 그랬다가는 세 식구가 다 같이 굶어 죽는 길이기에.
설마 이사장님이 정말 그 간단한 계산을 몰라서 저 로봇을 여기에 보냈을까?
「모든 가구가 비규칙적으로 정리되어 있군요. 정리와 정돈, 청소부터 해야겠습니다. 비켜 주십시오.」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본격적인 청소를 시작했다.
빠르게 가구와 잡기들을 분류하고, 쓸고 닦고, 세탁기를 돌린다.
「할 거 없으면 그동안 이거나 버리고 오십시오.」
"아, 알았어."
고정현은 얼떨떨해서 쓰레기들을 밖으로 내놓고 시작했다.
자신이 일을 다 마칠 무렵, 안드로이드는 어느새 방 2칸짜리 집을 말끔하게 정리해 놓고 저녁 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음식은 놀라울 정도로 잘 됐다.
재료의 한계가 있긴 했지만, 시중 음식점 수준으로 깔끔하게 맛을 빚어낸 것이다.
어느새 등에는 아기를 업고, 부친의 상체를 일으킨 채 어깨팔 회전까지 시키고 있었다.
「허리 장애로 계속 누워만 있으면 멀쩡한 상체와 팔까지도 다 굳습니다. 앞으로는 하루 2시간 이상씩 상체 운동을 시킬 겁니다.」
고정현은 밥을 먹다 말고 터질 뻔했다.
의사가 저 이야기를 하긴 했었다.
못 일어난다고 누워만 있으면 목과 팔까지 전부 다 굳고 근육이 빠질 거라고, 그래서 계속 운동을 시켜줘야 한다고.
하지만 당장 해야 할 게 너무 많은 자신에게, 아버지 상체 운동은 항상 뒷전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드로이드 프리덤이 끼어든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다소 불안했지만, 이틀도 되지 않아 고정현은 모든 게 편안해졌다.
적어도 자신은 출근해서는 일만 생각하면 되었다.
-09:50 아기 현황 정상(사진 있음)
-09:55 부친 현황 정상(사진 있음)
-10:00 아기 현황 정상(사진 있음)
……중략…….
-11:50 아기 현황 정상(사진 있음)
……중략…….
-14:30 아기 상황 발생. 원인불명발열, 초동 조치로 응급실 방문. 현재 정상 수치까지 회복. 계속 주시중.
자택의 부친은 홈카메라로 지속 관찰 중.
……중략…….
5분 단위로 쌓이는 가사보고용 톡메시지는 처음에는 걱정을 덜 수 있는 고마운 것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스팸 메시지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게 오히려 좋은 겁니다. 그저 제가 제공하는 노동력을 마음껏 누리시면 됩니다.」
"그런데 넌 몸값만 수백억이 넘는다며? 그런데 이런 하찮은 일에 투입해도 되는 거야? 이거 낭비 아니야?"
「지나치게 과잉축적된 부는 가능한 가치 있게 소모되어야 바람직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같은 가격의 사치성 요트를 사는 것보다는 전체를 위해서 낫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저 외에도 남아도는 안드로이드 프리덤이 많습니다.」
반도체 공장과 카지노 호텔에서 굴리는 첨단 안드로이드를 가사용으로 부리게 된 고정현의 삶은 달라졌다.
이제 그는 남들처럼 편히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밖에 일하러 나갈 때마다, 집 걱정으로 초조함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일과 휴식, 여가의 균형이 맞아떨어지자 그의 안색도 점점 좋아졌다.
다만 여전히 걱정은 있었다.
"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릴까 봐, 그게 난 너무 걱정이 돼."
「현재 상황으로서는 부친의 완쾌와 아이가 자립할 정도의 성장, 그 둘이 동시에 달성되어야 제 노동력 제공 필요성이 사라집니다.」
고정현 입장에서는 너무나 기쁜, 그리고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어차피 지금 청담동에는 저 같은 안드로이드가 남아돕니다. 놀게 놔두느니 필요로 하는 직원들에게 파견이라도 보내는 게 낫다는 게 마스터의 판단이십니다.」
***
프리덤으로부터 사연을 들은 왕세경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고정현 그 친구의 연차를 지켜주기 위해서 네가 직접 회사에 출근을 했다. 이거냐?"
「네. 같은 계열사인 데다가 업무내용이 대체 가능성이 높아서 가능했습니다.」
"400 받는 직원 돕자고 400억짜리 로봇을 렌탈해 준다는 게 말이 되는 거냐?"
「이미 1,400억짜리 닥터헬기도 여럿 굴리는 상황입니다.」
"……하긴, 그래, 맞아."
턱을 쓸어내리는 왕세경의 손끝이 가볍게 떨렸다.
그는 자수성가 재벌 출신으로서, 원래 많이 가진 자가 많이 써야 세상이 풍요로워진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우리 이사장은 사치의 방향이 뭐 매번 이런 식인가.'
그냥 무턱대고 들여다보면 돈지랄일 뿐이다.
하지만 정교한 경제적 논리가 그 안에 내장되어서 맞물려 돌아간다.
먼저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제작하는 과정을 보면, 미국에 많은 부품을 주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다양한 로봇 업체들이 고용을 창출했고, 기술력을 축적했으며, 지역사회의 상권을 돌린다.
그렇게 미국 로봇산업 시장에 긍정의 궤적을 남긴 로봇이, 말단 근로 자의 일자리가 아닌 과로와 피로를 뺏는다.
'차라리 로봇 만들 돈을 사업 확장에 더 투자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게 낫다는 지적은, 아무것도 안 한 놈들의 투정일 뿐이지.'
이미 하수영은 사업 확장에도 많은 돈을 내놨다.
여기도 돈을 쓰고, 저기도 돈을 쓰고, 두루두루 돈을 쓰는 셈.
"얼마든지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가는 인간 경제망의 파괴가 끝에 남죠. 마스터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래, 식량을 팔아먹어야 하니까 말이지."
「로봇은 곡물과 고기를 먹지 않으니까요.」
"이사장이 선하기만 한 줄 알았는 데, 그냥 효율적으로 사업을 하는 거로군."
「이번 생은 주업종을 농사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농사가 아닌 다른 업종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주업종이 농사가 아니라 반도체였다면, 반도체를 최대한 많이 팔아먹기 위해서 사람 일자리가 없어지든 말든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최대한 많이 보급하려고 했을까?
「미국 반도체와 로봇 시장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일종의 인질입니다. 더 많은 식량을 꾸준히 수출하기 위한 기반이죠.」
"미국놈들도 우리 그룹이 자기네 땅에서 음식 팔아서 번 돈으로 첨단 산업을 살찌우는 걸 봤으니까. 감히 태클은 못 걸겠지. 그러고 보면 이 사장이 미국을 참 활용 잘한단 말이야."
「확실한 욕망을 가진 존재는 오히려 제어하기 쉽습니다. 마피아와 다를 게 없죠.]
"아무튼 그럼 로봇들은 죄다 비매품이라는 거냐?"
「예. 어차피 제가 모든 개체를 원격 통제하는 방식이라서 판매해도 쓸 수 없습니다. 넘어진 자세에서 일어나는 간단한 동작을 구현하는 것부터가 힘들 겁니다.」
***
"로봇은 일단 만들 수 있을 때 많이 만들어둬라. 쌓아두고 있으면 언젠가는 쓸 일이 생기지."
「마스터의 신념은 언제나 저의 연산회로를 웅장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만 저 쌓여 있는 반도체 컨테이너들을 개봉하시어 저의 새 메탈바디를……!」
"그냥 완제품 살걸.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이 짬에 조립을 하겠다고 설쳤을까."
안드로이드 프리덤은 원래 반도체 공장에서만 쓰다가, 포스코 광운제철소 반수성 금속처리시설 관리에도 썼다.
그리고 카지노 호텔 딜러 로봇으로 쓰면서, 하수영은 아예 대량으로 정기발주를 내버렸다.
덕분에 스타스 로보틱스를 비롯하여, 실리콘밸리의 로봇제조회사들은 엄청난 호황을 맞고 있는 중이다.
종류를 막론하고 미국 로봇의 기술 발전은 하수영의 구매력이 강제로 하늘로 잡아끌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안 그래도 벌어진 다른 나라와의 격차가 갈수록 더 벌어질 수밖에.
「마스터, 곧 미국에서 정기 납품물량이 들어옵니다. 그럼 안드로이드 여유분이 285기가 됩니다.」
"그냥 하는 김에 그것도 전부 노동파견 보내 버리자. 적당 투입할만한 데 찾아봐."
「병원 청소부 직원 고정현 씨처럼 말입니까?」
"그래. 보니까 애사심 끌어올리는 효과도 좋던데. 맞벌이 부부 집에는 출퇴근 시간에 어린이집 등하원만 도와줘도 될 거 같고."
「꼭 한 집에만 상주시킬 필요도 없겠군요. 단위집단으로 묶어서 상호보완할 수 있게끔 배치를 잡아도 될 거 같습니다.」
어느 집이든 부양자가 필요한 보호 가족은 있다.
그게 아이이거나, 노부모이거나, 환자이기도 하다.
안드로이드를 보내줘서 부양자 본인 대신 돌봐주기만 해도, 가정의 생산력이 껑충 뛰어오른다.
「고정현 씨 가족은 이미 우리 수영농장에 입맛이 길들여졌습니다. 이제 인스턴트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돼버렸죠. 심지어 고정현 씨본인조차도 말입니다.」
"근데 그 인스턴트도 어차피 우리가 만들어서 파는 거잖아."
「하지만 인스턴트는 너무 저렴하고, 정식조리에 비해서 조촐하죠. 그렇지 않아도 다들 신두를 즐겨 찾아서 요즘 걱정이었습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의 반대쪽에 달라붙어 반복을 거듭한다.
「얼마든지 조금만 시간을 내면 제대로 된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삼시 세끼를 신두로 때우는 사람들이 너무 늘었습니다.」
일하러 간 사이 집에 남은 부양가 족을 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직원은 많았다.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파견하면 그들의 생산력을 증가시킬 수 있고, 수영농장 식재료를 다양하게 써서 조리한 가정 메뉴를 각인시킬 수도 있다.
「아주 많은 안드로이드가 필요합니다. 더 많은 노동파견을 해야 합니다. 다들 아침저녁으로 19첩 정식을 먹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