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070화 (1,070/1,270)

프랜차이즈 갓 1070화

250장 비매품 안드로이드 (2)

모든 병원은 당연히 건강보험공단의 지정병원이 된다.

보험항목 의료행위는 정해진 수가 대로 받아야 하며, 치료비는 환자가 아닌(일부 자기부담 제외) 공단에 청구해서 받아야 한다.

영리병원 허용을 막고 있는 이 울타리를 처음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청담수영병원이 선택받았다.

당연히 사전에 그 어떤 교감도 없었기에, 왕세경은 물론이고 병원장, 그리고 각 과 교수들도 다 같이 황당해하고 떨떠름해 했다.

이를테면, 모든 소가 울타리가 갇혀 있다.

울타리 안에서 자라나는, 정해진 풀만 뜯어야 한다.

다들 울타리를 나가서 저 밖에 푸르른 풀을 마음껏 뜯고 싶다.

그런데 정작 울타리 나갈 생각 없이 묵직하게 쉬고 있는 소를 골라서 울타리 문을 열어준 꼴이다.

"이러면 뭐가 달라지나?"

"우리 병원이? 지금도 심평원 기준 무시하고 일단 좋은 시술부터 때려 놓고 보는데?"

예를 들어 같은 병인데, A약을 1차로 쓰고 잘 되지 않을 시 2차로 B약을 쓰라고 공단에서 지정해 놓았다고 하자.

B약이 효과는 더 좋지만 A약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재정을 위해서 이와 같이 정해 놓는다.

운 좋게 A약에서 1차로 치료가 되면 그만큼 재정을 아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수영병원은 B약부터 때려 붓고 시작한다.

당연히 환자 차도에는 효과가 좋지만, 이렇게 되면 규정을 어겼기에 심평원에서 '응 돈 안 줌.' 시전을 한다.

그럼 그 비용은 수영병원이 부담해야 한다.

'응. 니들 떡 묻은 돈 필요 없음.'

하지만 수영병원은 거리낌 없이 그 짓을 한다.

애초에 병원으로 돈 벌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수익을 생각했다면, 대당 1,400억 원이나 하는 닥터헬기를 그리 많이 들이지 않았겠지.

왕세경은 은은한 역겨움을 머금은 채 말했다.

"바로 그래서 우리가 선택받은 거야, 병원장."

병원장은 바짝 긴장해서 반문했다.

"바로 그래서라니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부이사장님."

"우리는 당연지정제에서 풀리나 안풀리나 변하는 게 없거든. 우리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렇지 않나?"

"그건 그렇습니다."

"영리병원 허용을 위해서는 당연지 정제 폐지가 필수인데, 첫 스타트를 끊어도 생각보다 의료시장에 큰 변화가 없으면?"

"아! 그런 착시 효과를 누릴 수 있군요!"

"각오했던 것보다 별거 아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이슬비에 몸 젖게 만드는 거지. 정신 차리고 보면 이미 홀딱 젖어서 옷을 훨훨 벗을 수밖에 없을 테고."

"이런, 저희가 이용당했군요."

"보건부 장관 하는 놈이 욕 안먹으려고 머리를 잘 썼어."

그러면서 왕세경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바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벨이 한 번 울리자마자 상대가 곧바로 받으며, 튕겨지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옙! 공오환입니다.

"나다."

-옙, 회장님.

왕세경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고, 상대도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다.

"공오환인지 공육환인지 모르겠고, 이거 누구 작품이냐?"

-하하…… 많이 당황스러우시고 노여우셨을까요, 회장님?

"속 긁지 말고 대답부터 하거라. 누구 머릿속 생각이냐?"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짚어주시면 더욱더 정확하게…….

"우리 수영병원 내세운 거. 우리한텐 아무 허락도 안 받고."

-아, 허락! 허락! 맞습니다, 허락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는데 이게 그만 실무진에서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사알짝 꼬이는 바람에…….

"자네, 언제 취임했나?"

-예? 이제 7개월이 되었습니다만…….

"내가 끌어내리기 전에 사임해, 오늘 안으로 당장."

-예? 회장님! 회장님! 아니, 이러지 마시고 제 말씀을 들어보시면……!

왕세경은 바로 그룹으로 연결했다.

"지금 보건복지부 장관, 가장 망신 줄 만한 거 하나 뽑아서 대기해, 오늘까지 사임발표 안 하면 날짜 넘어가자마자 바로 터뜨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룹 기조실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두말하지 않고 지시를 받아들었다.

눈앞에서 장관 한 명이 말 한 마디로 날아가게 생긴 걸 본 병원장은 바짝 군기가 들어 있었다.

"어디서 등신 같은 게 되도 않는 간을 보려고 지랄인지."

"그, 부이사장님…… 해결하거나 따지려고 전화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뭘 해결하고, 뭘 따져?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

"그리고 병원장도 말했잖나. 이거 우리 병원 입장에서는 달라질 게 전혀 없다고."

성주신이 되기 이전과 이후의 왕세경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왕세경은 속세의 것에 더 이상 물질적인 미련은 없었다.

그러나 속세의 것이 자신의 성주단지(병원)를 노린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맹장수술에 백을 받는 오천을 받든 속세 사정 내 알 바 아닌데, 감히 허락도 없이 사람을 무대 위로 던져놓으면 안 되지."

"부이사장님, 그럼 저희 병원에서는 반대 입장을 내는 겁니까?"

"뭐하러 여의도와 한남동 놈들이 짜고 치는 각본에 끼어드나?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라고 하면 되지."

왕세경은 손을 훠이훠이 내저었다.

하찮은 이익 분쟁 따위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묻어난다.

"우리 병원에 정치인 쪽 환자가 몇 명이지?"

「현재 총 37인입니다. 모두 정치인 본인은 아니며, 전·현직 정치인의 가족이나 지인입니다. 전부 3인실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1인실에 입원하고 싶어 했지만, 1인실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환자나 보호자의 상황을 보고 내주고 있었다.

너무 어려서 주변 소음에 민감한 환자 같은 경우 말이다.

어차피 1인실이든 다인실이든, 환자가 내는 입원료는 다 똑같다.

그렇기에 1~3인실을 향한 환자들의 열망은 더욱 치열하다.

"다 퇴원하려면 얼마나 걸리지?"

「마지막 퇴원자가 8일 후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병원장, 오늘부터 새로 받는 정치인 쪽 환자들은 전부 10인실로만 보내 버려. 5인실도, 6인실도 안 돼. 무조건 10인실이야."

병원장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부이사장님."

"혹 나중에 쓸모가 있을까 싶어서 3인실이라도 내어줬더니, 하여튼 권력놀음하는 정치업자들은 세상에 도움 되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병원장은 조금 헷갈렸다.

왕세경은 단지 이용당한 것 외에도, 영리병원 추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인술을 베푸는 것을 중시하니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막을 마음이 강해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부이사장님. 영리병원 허용은 그럼 지켜만 보고 계실 겁니까?"

"왜, 내가 막을까 봐 불안한가? 나중에 자네 자식들 개업의하는 데 방해될까 봐?"

"아이고, 그런 거 절대로 아닙니다."

"아니긴, 무슨. 그런 거 통과되면 자네 같은 의사들도 돈 더 많이 벌수 있으니 좋잖나."

병원장은 멋쩍어하며 말을 아꼈고, 왕세경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사는 목숨이야.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아. 소중한 곳에만 가열차게 쏟아붓고 싶네."

"부이사장님……."

"이 병원 하나만 지켜내기에도 벅차고, 할 게 너무 많네. 그런데 현역 회장 시절에도 안 하던 정치질? 눈길을 줄 이유가 없지."

"……."

"내 남은 천명은 우리 병원, 그리고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 있네. 다른 병원들이 환자를 상대로 붕대값으로 10만 원을 받든 100만 원을 받든, 그건 내 알 바 아닐세."

"전 직원들에게도 재단의 그런 방침, 확실하게 인지시켜 놓겠습니다."

"오래 앉아 있었더니 찌뿌드드하군. 한 바퀴 좀 돌아볼까."

왕세경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선호하는 곳은 역시 수술실 근처.

육신을 빠져 나와서 어버버거리는 작은 생령들을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가만히 앉아 있거라. 어디 먼 데 가서는 안 된다."

"할아버지는 제가 보여요? 다른 사람들은 왜 제가 안 보여요? 저 죽은 거예요?"

"네 몸이 지금 저 안에서 수술 중이다. 수술 끝나면 몸이 알아서 잡아당길 거야. 그러니 너무 멀리 가서는 안 된다."

"모의고사! 내일 모의고사 봐야 되는데!"

발을 동동 구르는 여고생 생령을 보며, 왕세경은 조용히 생각했다.

'저 나이 먹도록 몸과 혼이 저렇게 잘 유리되는 걸 보니, 무속인으로서 훌륭한 자질이 보이는데…….'

오래오래 살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성주신의 계보를 이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하수영 의원한테 어떻게 생각하나 한 번 물어봐야겠군.'

소녀의 얼굴과 수술받는 호실을 확인해둔 왕세경은 등을 돌렸다.

그때였다.

"으응? 저게 왜 여기 있어?"

로비 한복판에서 청소 카트를 끌고, 대걸레질을 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프리덤이 눈에 띠었다.

라스베이거스 수영 카지노에서 시범적으로 굴리는 딜러 로봇이라고 알고 있는데, 저놈이 왜 여기에서 청소질 중이란 말인가?

의사, 간호사, 직원, 그리고 환자 및 일반 방문객들의 시선도 다채롭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약속이라도 한듯이 잠시나마 멈춰 서서 안드로이드 프리덤을 뚫어져라 살피는 걸 빼먹지 않는다.

"우와, 저거 안드로이드 프리덤이잖아?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만 있다고 들었는데, 그거 맞지?"

"아니, 저게 왜 병원에서 대걸레질을 하고 있어?"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네. 수백억짜리 최첨단 로봇한테 겨우 대걸레질이나 시킨다고?"

주위에서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안드로이드 프리덤은 대걸레질에 열심이었다.

대걸레를 움직이는 각도와 선회 반경, 그리고 동선 이동이 모두 최적 화되어 있다.

인간 노동자는 감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효율적이며 빠른 청소 속도.

그래서인지 다른 청소 근로자들의 얼굴도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왕세경의 안색도 확 구겨졌다.

"저게 어떻게 된 거냐? 설마 이제 밑에서부터 로봇으로 직원을 대체하기로 한 거냐? 우리 이사장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당연히 아닙니다. 마스터는 생산소비 시장에서 인간이 물러나고 로봇이 모두 차지하는 풀메카닉 체제를 가장 경계하시죠.」

"그럼 저건 뭐냐?"

「청소부 고정현 씨를 돕기 위해 모기업에서 배정한 안드로이드입니다.」

"청소부 고정현?"

이름을 듣자마자 기억났다.

거동이 불편한 부친과 어린 젖먹이 아들을 부양하는 20대 미혼부 신입사원이었다.

그러고 보니 청소 카트 한쪽에 '고정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모기업에서 고정현이 그 친구한테 로봇을 배정해 줬다고? 그 비싼걸?"

「네, 본인이 출근하면 중증장애자 노부와 11개월 아들만 집에 혼자 남게 됩니다. 그래서 본인을 대신해서 가정을 케어할 수 있도록, 안드로이드를 빌려줬습니다.」

"……."

「덕분에 고정현 씨는 집 걱정 없이 편안히 출근해서 업무를 볼 수 있었는데요. 오늘은 고정현 씨가 몸이 안 좋아서 제가, 아니, 안드로이드를 대신 출근시켰습니다.」

"……병가나 연차를 쓰면 되는 거 아니냐?"

「병가는 무급이고, 연차는 아껴야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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