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063화 (1,063/1,270)

프랜차이즈 갓 1063화

248장 차라리 슈퍼을이 되어주면 (5)

전기차 글로벌 1위를 자랑하는 헤슬라는 주문을 넣고 인도받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로 유명하다.

새로운 라인업을 선보이고 싶어도, 기주문 폭증을 라인이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일 정도다.

원래 하수영은 헤슬라 상표가 붙은 자동차에 수영모터스 전기모터를 넣은 차량을 직접 생산하는 ODM 계약을 원했었다.

그러나 헤슬라는 수영모터스가 1위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될 것을 우려 해서 ODM 계약을 거절했다.

'우리 주문으로 수영모터스가 자동차 조립 공장라인을 갖추게 만들 순 없다.'

'우리 매출로 경쟁자를 키워주는 꼴이다.'

'겨우 50㎞도 못 달리고 퍼져 버리는 자동차를 우리 책임으로 생산할 순 없다. 수영모터스만 생산 경험을 축적하는 꼴이다.'

프리덤 자율주행 모듈에 족쇄가 걸린 헤슬라로서는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었다.

대신 헤슬라는 수영모터를 탑재한 헤슬라 모델을, 하수영이 원하는 만큼 생산해서 최우선 납품해 주기로 했다.

출고 예정 물량까지 모조리 하수영에게 먼저 새치기로 내주기로 한 것이다.

과연 몇 대를 요구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속보! 람보르기니, 전기 트럭 만든다?]

[람보르기니 트랙터는 우리가 흔히 아는 슈퍼카 람보르기니와는 뿌리가 같을 뿐, 이제는 엄연히 다른 회사다. 그런데 이 회사가 수영모터스와 합작해서 전기 트럭을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전기 트럭뿐만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트랙터를 비롯한 모든 제품을 기술을 합하여 함께 만들기로 한 것이다.]

[람보르기니 트랙터는 최우수 개인 고객인 하수영 농민 회장의 제안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액수가 얼마인지는 대외비라고.]

[포괄적 기술 교환인가? 아니면 대규모 인수합병인가?]

하수영이 람보르기니 트랙터와 손을 잡았다는 속보가 월가를 강타했다.

뒤집어진 헤슬라 CEO는 세이브렌 CTO를 불러서 확인했다.

"세이브렌,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저도 기사는 봤습니다. 할 말이 없군요."

"수영그룹이 진심으로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게 아닌가?"

자율주행 모듈과 모터, 그리고 배터리.

전기 자동차의 핵심 기술을 내세워서 헤슬라의 ODM을 뜯어낸 이후, 양산 경험을 차근차근 축적해 종래에는 자기들이 전기차 시장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야심.

헤슬라 입장에서는 최악으로 여겼던 시나리오가, 이제는 다른 회사를 통해서 영화화되게 생겼다.

"세이브렌, 자네가 수영그룹에 전화해서 한 번 확인해 주게."

"이미 이 계약에서 나는 빠지겠다고 말을 해놓은 상황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ODM을 따오겠다고 약속해 놓고 도망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또 연락을 하라고요?"

"내 전화는 안 받는단 말일세."

"……휴.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

체면이 있는 대로 구겨지는 일이지만, 세이브렌은 하수영한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하수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고, 헤슬라 CEO는 그래서 안색이 더 구겨졌다.

조심스러운 안부 교환 끝에 넌지시 람보르기니 일을 물어보았다.

-람보르기니와 계약을 한 건 헤슬라와 아무 상관 없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특유의 유쾌함이 가득한 대답이지만, 헤슬라 CEO는 절대 안심할 수 없었다.

그는 소리 없이 타이핑으로 세이브렌이 던져야 할 질문을 실시간으로 알려주었다.

"ODM 계약이 지연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가 아닌가 해서요. 회사에서 그런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건 람보르기니와 저의 비즈니스입니다. 염려해 주신 것은 고맙지만, 그 이상의 질문은 비밀유지 때문에 곤란합니다.

"실례했습니다."

-제가 이제부터 람보르기니 ODM에 올인하기로 했다고 해서 헤슬라에 자율주행 모듈을 안 팔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러니 헤슬라도 저에게 우선 주기로 한 10만 대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10만 대?'

순간 세이브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CEO를 쳐다봤고, CEO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이 커다란 동작으로 부정을 나타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 뒤로 이번 일의 자세한 내막을 몰라서요. 10만 대라는 게 혹시……."

-네. 우리 모터를 단 자동차부터 우선적으로 만들어서 저에게 인도해 주겠다는 거요. ODM이 지연되는 보상이라고 하셨는데요.

"10만 대를 주문하셨던 겁니까?"

-아, 지금 옆에서 그러는데 제가 아직 발주를 안 했다고 하네요. 지금 정식으로 주문할게요. SUV 모델로 10만 대 부탁합니다.

"……."

-그냥 모터 빼고 빈 차들만 먼저 보내주시고, 모터는 한국에서 조립하는 게 낫겠지요? 혹시 추가 비용이 든다면 그것도 제가 부담할게요.

8만 달러짜리 SUV 10만 대 주문.

80억 달러에 달하는 큰 주문이지만, 헤슬라 입장에서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10만 명의 대기고객들을 줄줄이 컷해야 이행 가능한 주문이기 때문이다.

CEO가 황급히 모니터에 타이핑했고, 세이브렌은 얼른 말을 이어 나갔다.

"죄송하지만, 너무 많은 주문입니다. 아, 저희가 이행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저희 예상 수치를 너무 웃도는 수준이라, 이행 능력이 아무래도……."

-그럼 몇 대까지 가능하시죠?

"당장 5,000대까지는 확실하게 가능합니다. 그 이후에도 최대한 서둘러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생산된 물량에서 당장 뺄수 있는 건 5,000대 정도라는 거 죠? 나머지 95,000대는 대기 순번에 이름 올려서 기다려야 하고요?

"완전 후순위 배치는 아닙니다."

-음그렇게 하죠. 그럼 일단 5,000대만 먼저 받겠습니다. 그건 바로 인도받을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힘들게 통화를 끊은 뒤, 세이브레은 CEO를 향해 불평을 했다.

"그러게 처음에 모터 테스트 하고 제가 보고했을 때 5,000대 주문을 받아들였으면 됐잖습니까."

"유감스럽게 됐네. 하지만 그때에는 무조건 받아들일 수 없는 주문이지 않았나."

"주문은 주문대로 받아들이고, 저는 저대로 말 뒤집는 사람이 돼버렸습니다. 그래놓고 아쉬워서 다시 주문량을 줄여달라고 간청한 셈이 돼버렸고요."

"설마 전기 승용차 시장에 진출하진 않겠지?"

"모릅니다. 람보르기니 트랙터와 계약을 한 걸 보면 앞으로 트랙터와 트럭 같은 중장비 차량에 집중할 거 같긴 합니다만."

***

삼성동 고급 일식집.

주로 기업가와 연예인들이 찾는 가게에, 한 고급 세단이 들어섰다.

뒷좌석을 열고 내린 백두백화점 사장 백서훈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조용한 통로를 지나 별실로 안내받은 그는 한 미모의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미소 지었다.

온갖 여자를 다 만나본 재벌 2세인 자신조차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미모를 지닌,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 중 하나로 언제나 이름이 빠지지 않는 여자였다.

"효주야."

"어서 오세요, 사장님."

"네가 웬일로 날 먼저 보자고 했어? 내가 얼마나 설렜는지 알아?"

"그러시면 안 돼요. 조카뻘 되는 여배우한테."

"네 앞에서는 언제나 늘 20대 청년이라고, 내 마음이 말이야. 우리 뭐 먹을까? 맛있는 거 먹자."

백서훈은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이용해 장효주에게 무수히 구애를 했던, 그녀 주변을 맴도는 흔한 물고기 중 하나였다.

존재하지도 않는 어장을 스스로 만들어 자발적으로 갇히고자 하는, 잡어의 마인드를 가진 대형 회유어.

"우리 백화점하고 또 CF 하나 찍어야지? 이제 곧 겨울이니까 겨울 컨셉으로 스키복 브랜드 하나 잡아 볼까? 백화점 전 지점 외벽에 네 얼굴 아주 크고 이쁘게 걸어줄게."

"CF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내가 하늘의 별은 못 따다 줘도 명품 브랜드 CF는 줄줄이 따다 줄수 있다. 너하고 CF 계약 안 하면 입점 못 시켜주겠다고 하면 지들이 어쩔 거야?"

"보통 그 반대 아니에요? 샤넬만 돼도 백화점이 함부로 못 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려고 들 텐데."

"하하, 샤넬 따위가 무슨. 로로피오나도 리모델링 시즌만 되면 좋은 자리 안 뺏기려고 얼마나 눈치 데굴데굴 굴리는지 알아?"

"그러고 보니 페라리하고 콜라보하나 한다고 들은 거 같은데."

"아아? 페라리? 이야,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오다가다 들었어요. 근데 페라리가 웬 백화점하고 콜라보? 자동차 매장이 백화점에 입점할 것도 아니면서요."

"LV 브랜드하고 페라리 콜라보해서 의류 몇 종류 리미티드 콜렉션내기로 했는데, 우리 백화점에서 아시아 홍보 허브를 맡기로 했어. 초대장 돌릴 테니 너도 나중에 놀러와."

"그래도 사장님 친형 되는 분이 자동차 사업하시는데 압박 같은 거 주지…… 하긴, 어차피 자동차 하향세니까 사장님도 눈치 볼 거 없으시겠네요."

"어차피 하향세? 그게 무슨 말이야?"

보기만 해도 좋은지 시종일관 실실 웃고 있던 백서훈이 돌연 표정을 차갑게 만들었다.

장효주는 자연스럽게 '실수로 말을 흘려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만들었다.

"아, 제가 괜한 소리를 했나 봐요. 죄송해요.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미안한데 좀 말해줄래? 우리 그룹 자동차가 하향세라니,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어?"

장효주는 몇 번이고 주제를 바꾸려고 시도했고, 백서훈은 참을성 있고 웃는 얼굴로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고 했다.

결국 장효주가 졌다는 듯이 말했다.

"수영모터스요."

"나도 알지. 그거하고 상관있어?"

"저도 이번에 한 대 받았잖아요. 행사 출연료 대신해서. 아, 그때 사장님도 오시지 않았어요?"

"나도 갔지. 너 참 예쁘더라."

"제가 밟아봐서 아는데, 주행거리 50km라는 것도, 무인 충전카 서비스도 다 가짜더라고요."

"……가짜라고? 아니, 수영그룹은 나중에 그거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그런 거짓말을 한 거래?"

"거짓말은 거짓말인데, 축소한 거래요. 과장을 한 게 아니라."

"축소라고? 과장이 아니라?"

백서훈의 표정이 조금 더 심각해졌다.

"전 세계 스포츠카 시장 잡으려고 아주 자신만만하던데. 50km니 무인 충전카니 하는 것도 원래는 다 반전마케팅이었대요."

"반전 마케팅?"

"강릉 발전소하고 패키지로 묶인사업이라는데, 더 자세한 건 몰라요. 아무튼 백두자동차에서 굽히고 들어올 수밖에 없을 거라고, 지금 헤슬라하고 람보르기니도 넘어갔거나 넘어가기 직전이라고. 뭐, 그 정도?"

"강릉 발전소?"

"한전하고도 뭐 엮여 있다나? 아무튼 무인카 같은 건 없어요. 있는 척 꾸미려고 노력도 안 해요."

"한전까지 엮여 있다라……."

백서훈은 골똘히 뭔가를 생각했다.

백두자동차, 친형이 운영하는 회사.

재벌 일원인 그에게는 형제라는 인격적 지위는 유전자를 공유하는 경쟁자를 그럴듯하게 서술했을 뿐이었다.

"근데 이거 나한테 말해줘도 되는 거야? 너, 하수영이 그 친구하고 잘해 보려던 거 아니었어?"

"그래 볼까 했는데, 정서희 부회장하고 벌써 그렇고 그런 사이 같아서. 천하의 장효주가 자존심이 있지, 한 남자 두고 딴 년하고 다툴 거 같아요?"

"그렇지. 네가 절대로 그럴 애가 아니지. 내 프로포즈도 매번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하는 애니까."

살짝 의심이 깃들었던 백서훈은 순식간에 헤벌쭉해졌다.

마음의 틈을 절대 내주지 않는 차가운 재벌 사장이지만, 장효주 앞에서는 늘 쉽게 허물어진다.

네가 결심만 하면 즉시 이혼할 거 다, 언제나와 똑같은 그 말을 대충 흘린 장효주는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선물받은 스포츠카, Acinonyxjubatus에 지친 몸을 실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걸 우리 수영 씨가 알아줘야 할 텐데."

「제가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잘 정리해서 전달하겠습니다.」

"12% 정도는 과장 좀 보태줘. 늙은 재벌 사장한테 영업했으니 그 정도 보너스는 줄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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