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60화
248장 차라리 슈퍼을이 되어주면 (2)
백동원은 계속해서 곱씹었다.
"이상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10배 이상의 밀도를 가진 차세대 배터리를 생산했다면, 자신에게 차량이 흘러 들어가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자동차 회사를 가진 자신이 분해해서 뜯어볼 가능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하수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이 추첨에 뽑힌 게 의도이든 우연이든, 차량이 넘어가는 것을 놔두었다.
"이건 혹시 나에게 보내는 신호인가? 배터리 성능을 체크하고 알아서 굽히고 들어올 수밖에 없게끔 유도 하기 위해서?"
자율주행, 모터, 그리고 배터리.
이 3박자를 눈으로 확인한 자신이 절망감을 곱씹다가 어쩔 수 없이 굽히고 들어오는 미래를 예상했을까?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 중 자신이 추첨인 7인에 뽑힌 게 의도였을 수도 있으리라.
"1,900만 원이라는 가격도 말이 안되고, 생산 원가가 그 정도밖에 안될 리가 없는데. 더군다나 양산품도 아니고 수제 생산이었는데."
양산을 시작하면 가격은 더 다운되게 마련.
설마 1,900만 원에서 더 싸질 가능성이 있다면, 이 미친 경쟁은 사양하고 싶다.
생각을 마친 백동원은 기술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터리, 뜯어서 확인해 보는 게 좋겠어. 오늘 바로 시행하도록."
-전에 보고드렸다시피 봉인씰에 전자적 보호장치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봉인씰을 뜯는 순간 제조사에 알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방해전파 같은 거 쓰면 되잖나. 서해그룹이 하이패스 사업권 가지고 외국 경쟁사 탈락시키려고 수작 부렸던 것처럼."
-시간차를 두고 지속적으로 발신을 할 경우를 대비해서 방해전파를 계속 쏘거나, 아니면 완전폐차를 해야 합니다.
"방해전파를 계속 쏘든 납을 두르든, 아무튼 봉인씰 뜯었다는 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게."
차량의 주요 부품들에는 전자적 안전장치가 달려 있었다.
사후수리 책임면제보다는, 역설계를 위해 뜯어보았다는 것을 바로 알기 위함으로 추정된다.
최후까지 미뤄두었던 봉인씰을 이제 뜯어서 파헤쳐볼 때가 되었다.
'놈이 의도했건 아니건, 이제는 완전히 분해할 때가 되었지.'
하는 김에 모터까지 완전히 다 뜯어서 샅샅이 파헤쳐볼 셈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백동원은 당혹스러움에 가득 찬 연구소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막내 도련님께서…….
"막내가 왜? 왜 막내 일을 가지고 자네가 전화를 하는 건가?"
-그, 연구 중이던 수영 스포츠카를 몰래 몰고 나가셨습니다…….
"뭐? 아니, 대체 차키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그게 이상합니다. 저희가 보관 중이던 차키는 그대로 있습니다.
"뭐야?"
완전 자율주행을 지원하는 Acinonyx jubatus의 차키는 일종의 운행 증명서다.
소유주는 프리덤이 인식을 하기에, 차키가 없어도 문을 열거나 운행하는 등 모든 게 가능하다.
차키는 소유주가 타인에게 일시적으로 내어주는 운행 증명.
프리덤은 차키를 쥔 사람을 소유주가 운행을 허락한 인물로 간주한다.
"망할! 어디로 갔는지 빨리 찾아!"
-지금 비서실에 연락해서 찾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보고부터 먼저 했어야지!"
백동원은 성질을 부리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긴, 몰래 훔쳐 가지고 도망친 사고뭉치가 전화를 받을 리가 있을까.
그때 불현듯 막내가 어디서 차키를 얻었을까, 하는 의문이 피어났다.
'차키라고 해봐야 2개인데, 하나는 연구소에 있고, 다른 하나는…….'
백동원은 자신이 손수 스포츠카를 몰고 애첩의 집에 들렀었음을 기억해냈다.
그는 서둘러 애첩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철이! 세철이 그놈이 혹시 거기 갔어?"
-네, 아까 왔었어요.
"혹시 내가 놔두고 온 차키 같은 거 가져갔나?"
-네. 제가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거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줬어?"
-안 주면 사모님께 일러바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놈이 말로만 그러는 건 너도 알잖아! 달란다고 그걸 주면 어떡해!"
-중요한 거였어요? 죄, 죄송해요.
어린 애첩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자동차 키가 중요해 봤자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사고뭉치 막내가 아버지가 새로 뽑은 차가 마음에 들어서 보관 중인 키를 강탈해가는 게, 애첩의 입장에서는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으니.
백동원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애첩한테 분풀이할 일이 아님을 깨닫고 부드럽게 말했다.
"화내서 미안. 근데 그놈이 뭐 행패 부리지는 않고?"
-막내 도련님이 저한테 안 그러는거 아시잖아요. 아, 여자 친구도 데려왔었어요.
"뭐? 그놈이 여자 친구까지?"
-여자 친구가 아니고 그냥 애인이었나? 아무튼 저한테 살갑게 굴더라고요.
"알았어. 혹시 뭐 생각나는 게 있으면 연락해."
-아, 그리고 냉장고도 털어갔어요. 회장님 드리려고 만들어놓은 반찬들…….
"이런 호로자식을 봤나!"
***
백동원의 애첩 신지연은 20대 후반.
20대 초반인 백세철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
그녀는 아직도 백세철을 처음 맞닥뜨렸던 그 날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처음 그가 무작정 자신을 찾아왔을 때, 신지연은 여러 가지 의미로 바짝 긴장했다.
아버지의 첩, 당연히 본처의 아들인 백세철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미운 여자이리라.
또한 백세철이 술과 여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망나니라는 점 때문에, 혹시 험한 꼴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아버지의 여자든 뭐든 간에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면 분노와 욕망에 취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테니까.
백동원은 말로만 무섭지, 늦게 얻은 자식 앞에서 쩔쩔매는 평범한 아버지였다.
자신이 험한 꼴을 당하더라도 자식 편을 들 남자라고, 신지연은 그렇게 믿었었다.
하지만…….
-여사님이 우리 아빠 소실이야?
-네? 네?
-여사님이라고 부를게. 호칭 적당하지 않아?
-…….
-내가 여사님 집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안 중요하고, 우리 아빠가 개인보안이 영 형편없으시거든. 근데 집 좋네. 끽해야 청담동 아파트 정도 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한남동 단독주택?
백세철은 자기 집에 온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집안을 휙휙 둘러보았다.
신지연은 자신보다 몇 살, 내 남자의 본처 막내아들 앞에서 한없이 위축돼 있었다.
-우왓! 여겠네! 에르메스 비론시차테 백!
무슨 압수색하듯이 집을 훑어보던 백세철은 가방 하나를 찾아내고는 환호했다.
백동원이 얼마 전 '정말 어렵게 구했다'라며 선물한, 다이아몬드로 덕지덕지 치장이 된 명품백.
대충 10억이 넘어가는 백이라고 했던가?
-여사님, 이거 나 줘.
-……예?
-나 주면 엄마한테 비밀로 할게. 어때?
-그, 그게 무슨…….
신지연은 혼란스러웠다.
가방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본처 아들이면 당연히 자신에게 명백한 적의나 경멸심을 드러내야 하지 않는가?
언젠간 이런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각오했지만, 이건 전혀 상상밖이었다.
-남자가 삼처사첩 거느릴 수도 있지. 난 그걸로 우리 아빠 욕 안 해요. 여사님. 우리 엄마도 아빠 몰래 나보다 어린 애인 데리고 있는데 무슨.
-…….
-그래도 엄마가 여사님 알면 여러모로 불편하겠지? 이거 나 주면 엄마고 형이고 안 꼬지른다니까?
-그, 그건 여자 가방인데 어디에 쓰시게요?
-내 여자 친구 생일 선물로 주려고.
신지연은 얼떨떨해서 끄덕였고, 백세철은 휘파람을 부르며 가방을 들고 사라졌다.
심지어 신지연의 전화번호도 받아갔다.
그 뒤에도 백세철은 신지연을 가끔 찾아와서 비밀유지를 명목으로 이것 저것 요구했다.
백동원이 준 신지연의 카드를 빌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아빠가 또 카드 정지시켰어! 그러니까 여사님 카드라도 빌려줘!
재벌들의 사생활이란 이런 것인가?
백세철의 행동은 영화, 드라마, 그리고 다양한 뉴스 매체를 통해서 구체화했던 상상의 형태 그 어느 것과도 닮지 않았다.
심지어 백세철은 SNS로 친구를 맺으며, 가끔 특별한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백동원의 반응.
조심스럽게 고백했는데, 백동원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반응했다.
-대충 알고 있었어.
-아, 알고 계셨어요? 어떻게…….
-절대 네가 긁지 않았을 것 같은 카드 내역들이 있었거든. 아, 세철이 그놈이 또 엄마에게 일러바친다고 하면서 카드 뺏어갔구나, 하고 생각했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 아니, 이거 괜찮은 걸까요?
-세철이 그놈이 그래도 남자라서, 자기 입으로 한 약속은 지켜. 걱정마.
백세철은 신지연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신지연은 자신을 비상금고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용돈을 요구한다든가, 좋은 옷이나 가방, 보석을 달라고 한다든가, 카드를 빌린다든가.
한 번은 아버지한테 요구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여사님,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구두쇠인지 알아? 자식 버릇 나빠진다고 일정 이상 용돈 안 주려고 해. 카드 한도도 2억밖에 안 돼서 내가 얼마나 쪼들리며 사는데.
-…….
신지연은 이 부자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나이 많은 재벌 유부남의 첩 생활을 하는 자신도 보통과는 궤를 달리 하지만, 진짜 재벌들은 그 이상이었다.
오늘도 그렇다.
'또' 바뀐, 처음 보는 얼굴의 애인을 데리고 나타난 백세철은 지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의 애첩이 열심히 만들어놓은 반찬을 통째로 긁어갔다.
애인 앞에서 꼬박꼬박 여사님이라고 부르며, 아버지의 첩을 대한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오빠. 근데 이분은 누구셔?"
"응. 우리 아빠 회사 사람 부인."
"아아! 그래서 여사님, 여사님 하는구나. 난 되게 젊으신데 왜 그렇게 부르나 했어."
"……."
그렇게 백세철은 애인과 함께 반찬통을 들고, 차키까지 챙겨서 나갔다.
어쩐지 차를 안 끌고 왔을 때부터 이상하긴 했었다.
***
백동원은 결국 수영모터스에 전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제조사의 AS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에는 뭐해서, 그냥 그날 8인의 구매자 중 한 명이라고만 설명했다.
「혹시 프리덤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시나요?」
"……이용합니다. 왜 그러시오?"
「아, 그럼 프리덤과 대화하는 게 훨씬 더 빠르고 편리하게 처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희와 대화하는 것보다도요. 프리덤은 차량에 설치된 AI와 직접 연결할 수 있거든요.」
"알았소. 그리하리다."
백동원은 프리덤 구독 서비스를 이용한다.
프리덤폰도 따로 사서 쓴다.
하지만 보안 때문에 평소에는 프리덤폰을 거의 꺼 놓는다.
프리덤이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수영그룹에 흘러들어 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원을 켜고 상황을 설명하자 프리 덤이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네, 제가 바로 해당 차량 모델 AI에 연결해서 필요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어서 찾아다오."
「검색 중입니다. 찾았습니다. 백세철 님은 한지원 님과 함께 수영병원강릉분원에서 검진 중입니다.」
"뭐? 그놈이 왜 강릉까지 가 있어? 그리고 무슨 검진?"
「교통사고입니다. 130km/h까지 속력을 올린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멧돼지를 피하려다가 안정성을 상실했고, AI가 안전조치로 즉시 운행권을 회수했습니다. 차량은 전파 되었으나 안전벨트와 에어백이 정상 작동하여 치명적인 부상은 입지 않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비서실에 연락해서 당장 차, 아니, 헬기 준비하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