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58화
247장 답답해서 내가 공장 (7)
강석은 미남으로 유명한 국민 배우였다.
40대 중반이지만 여전히 빼어난 미모와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그는, 스크린에서 잘 먹혀주는 보증수표였다.
혜성처럼 등장한 로한이 한국 미디어 시장을 잡아먹곤 있지만, 그래도 어디 가지 않는 존재감을 유지한다.
차를 좋아하는 그는 슈퍼카만 9대를 굴릴 정도의 내연기관 애호가였다.
경매 행사에 나온 스포츠카를 구매한 것도 전기 스포츠카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래 봐야 1,900만 원짜리가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그런 생각으로 차를 인수한 그는 처음 도어를 여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이것 봐라?"
내부 시설을 자신의 애마, 페라리에 비해서 전혀 꿇리지 않는 감성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시원하고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는 보자마자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구석구석 세심하게 훑어보았지만, 기어봉에 달린 버튼의 엣지까지도 섬세하게 빚어낸, 극한의 인테리어를 신경 썼다는 게 눈에 보였다.
"미쳤네. 이게 겨우 1,900만 원짜리 차 실내 인테리어라고?"
명품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성능 따위는 기본으로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기에 언급할 가치도 없다.
전조등, 후미등, 타이어, 심지어 브레이크와 기어축까지도 예술품처럼 조각해 놓았다.
그리고 후면의 모터룸을 연 순간,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함에 빠졌다.
"미친, 미친."
은백색으로 빛나는 티타늄 외장 안에 당당히 자리 잡은 황금색 원통.
마치 일부러 갑옷을 반쯤 벗어 내리고 근육을 자랑하는 천하장군을 보는 것 같은 기백이 느껴진다.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차라리 후면 보닛을 투명한 재질로 바꿔서 다니고 싶다는 충동이 뇌를 불태울 정도로,
***
백동원은 막내아들이 회사까지 찾아오자 의아해서 맞이했다.
아직 대학생인 막내아들은 놀기를 좋아해서 회사라면 얼씬도 하지 않으려 한다.
"무슨 일이냐?"
"아빠. 전에 청담동에서 집어온 그 차. 나 줘."
"뭐? 전에 사준 람보르기니는 어쩌고?"
"아, 그거 별로야. 그 차가 훨씬 더 나아. 그거 그냥 나 줘."
"그게 무슨……."
백동원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차량을 받아온 뒤 연구해 보라고 밑의 부하들에게 던져준 게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막내가 찾아와서 자기 달라고 떼를 쓰다니.
"내가 호기심에 타봤는데 진짜 끝내줘. 완전 마음에 들어. 람보 따위는 비교도 안 돼. 그러니까 나 줘."
"안 된다. 그 차는 회사 연구용이야."
"아씨. 하수영 회장도 그거 타고 다니라고 판 건데 연구해서 도용한다면 참 좋아하겠네. 내가 하수영회장하고 SNS 친구인 거 알지? 나가서 댓글 달아버린다?"
백동원은 버르장머리 없는 막내아들을 잘못 키운 것에 대해 한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겨우 1,900만 원 하는 차가 람보르기니보다 더 좋다고?"
"완전 좋아. 디자인도 성능도. 뭐든지 비교가 안 돼. 일단 프리덤이 달려 있잖아?"
프리덤이란 말에 백동원의 기분이 팍 상했다.
안 그래도 프리덤 차이 때문에 백두자동차가 북미 시장에서 영 힘을 못 쓰고 있는데…….
"제로백도 진짜 엄청나. 힘이 장난 아니야. 람보 따위는 비교도 안 돼. 아빠, 그 차 나 줘."
"생각해 보고."
"형들 주면 안 돼. 나 그럼 사고 칠 거야. 신문 1면에 우리 회사 이름하고 로고 아주 크게 나오게 할 거야."
"철 좀 들어라, 인석아."
시끄럽게 쫑알대는 아들을 쫓아버리고, 백동원은 폰을 들었다.
"나다. 지금 그 차 가져와."
얼마 후 차량이 도착했다.
백동원은 차량을 바퀴부터 시트까지 구석구석 자세히 살폈다.
2인승 차량을 탄 지는 오래됐지만, 겉에 보이는 완성도는 최고급 세단 못지않은 명품 장인의 섬세함이 엿보인다.
그는 손수 차에 올라서 운전대를 잡았다.
자율주행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엑셀을 밟으며 운행에 나섰다.
"힘은 아주 좋군."
정확하게 발끝으로 밟는 만큼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단순히 힘만 좋은 게 아니라, 출력 전달까지도 완벽하다는 증거다.
시내를 크게 몇 번 돈 뒤, 그는 애첩이 있는 한남동 단독주택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접근 불가 구역에 주차하면 어떻게 충전을 한다는 거지?'
아파트처럼 공개 출입이 가능한 주차장에 주차하면 조용히 몰래 충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주택 차고처럼 폐쇄적인 공간에 주차를 한다면?
애첩과 시간을 보낸 후 차고에 주차된 차에 오른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지?"
놀랍게도 배터리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100%로 되어 있었다.
외부 차량이 출입할 수 있는, 단독주택 개인차고에 두었는데도 말이다.
***
우렁각시처럼 몰래, 조용히 찾아와서 차를 충전하고 떠나는 무인카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강석과 백동원은 그중에서도 열렬히 추적하는 층에 속했다.
그 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거나, 그런 거 알아서 뭐하냐고 태연히 넘어가는 쪽이었고, 좀 이상하고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 깊이 파서 뭐하냐는 사람들이 6명이다.
의심파 중 하나인 강석은 몰래카메라까지 설치하면서 충전하러 나타나는 무인카를 잡아내려 했지만, 매번 나타나지 않는 것에 오히려 혼란에 빠졌다.
"대체 언제 충전을 하는 거야? 와, 미치겠네."
한 번 궁금한 게 꽂히면 풀릴 때까지 용납이 안 되는 성격.
그는 공개적으로 이 사건을 공개하고 집단지성의 도움을 받을까 궁리도 해봤다.
하지만 괜히 수영그룹을 저격하는 것으로 비칠까 봐 결국 공론화하지는 못했다.
대신 누군가가 먼저 공론화해 주면 슬쩍 후발주자로 올라타기로 마음먹었다.
반면 백두자동차는 자신들이 판도라의 상자 뚜껑 아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열렬히 파고들고 있었다.
"틀림없어. 개인차고에 놔뒀는데 저절로 배터리가 100%가 됐어."
"따로 충전 플러그를 꽂으신 게 아닙니까?"
"김 이사,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
"죄송합니다."
백동원이 빤히 쳐다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묻자 김 이사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 금수저 재벌 2세는 자기 손으로 직접 차에 충전 코드를 꽂을 인간이 아니다.
"달린 거리를 생각하면 절대로 100%를 유지할 수가 없어."
"샅샅이 조사하겠습니다."
회사 이름에 먹칠을 해버린다는 막 내아들의 칭얼거림을 무시한 채, 백동원은 더욱 강도 높고 촘촘한 조사를 지시했다.
이에 부하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씩 차를 운행하면서, 언제 어떻게 충전이 이뤄지는지를 면밀히 조사했다.
길게 자리를 비우는 것이라면 모를까, 충전 차량이 따라붙는다면 추적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치겠네. 또 게이지가 차고 있어. 이거 봐봐!"
10%를 찍었던 배터리 잔량 수치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금 한창 도로를 달리고 있는 중인데 말이다.
"따라붙는 차는?"
"없어. 애초에 달리는 차에 멋대로 바짝 붙어서 플러그를 연결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진짜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네."
"말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지. 딱 한 가지 개념이면 이걸 설명할 수 있어."
직원들은 꼬박 나흘에 걸쳐 운행을 쉬지 않으며 실험을 거쳤다.
그동안 주행한 거리는 트렁크와 조수석까지 모두 배터리로 채워도 부족할 정도.
하지만 충전 무인카가 달라붙는 것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이제 확신을 얻었다.
***
"무선 충전?"
백동원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기술이사는 괜히 움츠러드는 어깨에 애써 힘을 주며 대답했다.
"예. 무선 충전이 아니고서는 이게 설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선 충전이 말이 무선 충전이지, 1, 2m 이내로 바짝 붙어있어야 충전 기능이 작동되는 거 아닌가?"
"그, 미국에서 지향성 전자기파 발사를 이용한 근거리 무선 충전에 성공하기는 했습니다."
"지향성 전자기파?"
"예. 충전하고자 하는 대상을 향해 레이저빔을 쏘듯이 고에너지를 실은 전파를 발사해서 송전하는 방식입니다. 나사의 외주를 받은 일렉트릭슬라브란 회사가 10미터 이내에서 충전을 성공했고, 차세대 화성탐사로봇에 적용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술이사는 이내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도착한 에너지' 보다 에너지를 보내기 위한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훨씬 더 많으며.
송전 범위 안에 있던 실험쥐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다는 이야기.
"그럼 탑승자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죄다 위험하다는 거 아닌가?"
"그것이…… 차 내부에서는 통상적인 전자파와 자기장, 방사능 수치가 검출되었습니다. 즉 일반 환경과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럼 뭔가? 무선 충전이 아니라는 건가? 제대로 설명을 해!"
"제, 제가 생각하기로는…… 높은 신호등 같은 곳에 적당한 간격으로 송신기를 장착하고, 차체 전면의 수신부에 정확하게 고에너지 전자기파를 쏘아 보내는 방식이라면 좀 더 안전한 근거리 무선 충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런 송신기를 서울 곳곳에 설치했다면 당연히 내가 모를 리가 있겠나! 어디서 되지도 않는 망상을 내뱉고 있어!"
백동원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공상도 적당히 해야 들어줄 만하지, 이걸 지금 조사 보고라고 가져온 건지 화가 났다.
"차라리 차체 전체가 태양광으로 되어 있고, 그래서 실시간으로 발전을 해서 충전한다고 하지 그러나?"
"……."
"아니면 이건 어떤가? 주행거리 50㎞라고 한 게 사실 뻥이고, 엄청 발전된 배터리를 달아서 500㎞쯤되는 건데, 배터리 시장에 공매도 칠 준비 하느라 당분간 숨기고 있는 거라고."
"그, 그것도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공매도 수익을 위해서 발전된 기술을 일부러 숨긴다?
기술이사는 '서울 시내 신호등에 간격을 두어 설치한 지향성 근거리 무선 충전 장치'라는 확신이 급속히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자네가 듣기에도 내가 하는 게 더 말이 돼 보이지?"
"그, 그렇습니다."
"10%에서 100%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겉수치를 조작해서 보여주면 되고, 500km 주행 안에서는 어떻게든 몰래 충전을 할 틈이 생길 수도 있겠지."
실제로는 열 배 이상의 차세대 배터리가 달려 있는데 숨겼다?
금융시장에서 공매도 투자로 크게 해처먹기 위해서?
'500km를 쉬지 않고 운행할 일이 거의 없으니, 그럼 충전카를 보낼 틈이 나온다. 어차피 대부분은 언제 충전하는지 신경을 안 쓸 게 뻔하고, 의심을 하더라도 공매도 이익실현 전까지만 무시하면 그만이니까. 아!'
기술이사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자신의 모자람을 탓하고 싶었다.
'그저 기술적으로만 해석하기에 바빠서……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보고서를 올린 부하 기술자들을 향해 이를 바드득 갈았다.
"좀 말이 되는 상상을 해. 눈에 보이는 것만 덥석 믿지 말고, 받아들이지 말고, 뭐? 지향성 근거리 무선 충전 장치? 그런 게 있으면 벌써 우리 회사에 협박 들어왔어야 해. 그런데 안 하잖아?"
"사장님 말씀이 옳으십니다. 제가 그런 기술이 있었으면 진작 칼춤을 추었을 겁니다."
백두자동차 입장에서는 프리덤 자율주행보다 그런 차세대 배터리가 훨씬 더 무섭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성능과 편의성에 직통으로 연결되니까.
"처음부터 배터리 성능을 숨긴 거야. 보아하니 곧 어마어마한 공매도를…… 내가 이럴 때가 아니군."
백동원은 곧 선물시장에서 큰돈을 벌 기회라고 생각했다.
보아하니 수영그룹은 배터리 기술을 마지막까지 숨겼다가 크게 한 번 해처먹을 모양.
그럼 거기에 슬쩍 편승해서 포지션을 취하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지 않을까?
"김 이사. 방금 대화는 비밀로 해. 가족에게도 말해선 안 돼. 알겠나?"
기술이사는 서슬 퍼런 눈빛에 얼른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알았어. 나가 봐."
기술이사가 서둘러 나가고 난 뒤, 백동원은 흥분해서 집무실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자율주행. 모터. 배터리…… 수영모터스, 자동차 업계에서 슈퍼을 부품업체가 될 셈인가."
배터리 시장이 망할 것이다.
전혀 다른 경로에 빠졌지만, 어찌 어찌 목적지는 비슷하게 나아가게 되었다.
"이런 한탕에 나도 빠질 순 없지."
백동원은 배터리 시장이 망한다에 크게 걸기로 했다.
하수영이 무선전기 보급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시도하지 않았을 선택이었다.